기획ㆍ특집

표지공연_ 정금형 〈심폐소생술 연습〉, 〈개인소장품〉展
오브제와 맺는 도발적인 몸의 탐구 과정
김인아_<춤웹진> 기자

 아티스트 정금형은 오브제와의 은밀하고도 관능적인 교감이라는 맥락을 다양한 방식으로 구현해왔다. 움직임으로 물체에 생명을 부여하고 몸과 오브제와의 관계를 재설정하고 있는 다수의 작업에서 결코 구태의연하지 않은 뚜렷한 작가주의, 예술가의 견고한 뚝심을 엿볼 수 있다.
 연극과 무용을 전공한 독특한 이력을 기반으로 2000년대 중반부터 발표된 작품들은 하나의 예술장르로 가두어둘 수 없는 전방위적인 성격을 띤다. 정금형의 작품에 굳이 경계를 짓는다면 무용, 미술, 다원예술, 연극에 이르는 다장르의 태그를 다는 것뿐이다. 폭염이 주춤하기 시작한 여름의 끝자락, 국내예술계가 주목하고 있는 정금형의 작품세계가 각기 다른 방법으로 공연장과 미술관의 공간에서 펼쳐졌다.

 

 



 안산문화재단이 주최하는 ‘2016 ASAC 몸짓페스티벌’은 정금형의 작품 두 가지, 〈심폐소생술 연습〉 (8월 24일, 안산문화예술의전당 달맞이극장)과 〈소방훈련 시나리오〉 (8월 31일-9월 1일 안산문화예술의전당 별무리극장)를 선보였다. 그 가운데 필자가 관람한 〈심폐소생술 연습〉은 오브제와 신체의 관계성에 집중한 퍼포먼스 작품 중 하나다. 2014년 광주비엔날레 초연 당시 전문가의 호평을 받은 수작으로, 재연임에도 불구하고 몸짓페스티벌의 메인 프로그램으로 초청받아 기대를 모았다.
 런웨이처럼 길게 깔린 고무바닥 끝에 의료용 인형이 누워있고, 다른 한 편에는 심폐소생술을 위한 응급의료기구가 배치되어있다. 편한 차림의 정금형이 누워있는 인형 앞으로 걸어가 서슴없이 옷을 벗고 그 옆에 몸을 누인다. 도입부터 도발적인 퍼포먼스에 지켜보던 관객은 이내 숨을 죽이고, 들숨 날숨으로 연결된 안정된 숨소리의 음향효과가 더 크게 공연장을 에워싼다.

 

 



 정금형은 오직 오브제와의 소통 혹은 교감만을 위해 움직임을 이어나간다. 생명력을 부여받은 인형의 손이 퍼포머의 이마에서부터 부드럽고 세심하게 흘러내린다. 은밀하고 관능적인 전희의 순간은 살아있는 듯한 인형의 행위(의지), 그리고 오브제의 몸짓에 반응하는 퍼포머의 수동적인 움직임을 통해 노골적으로 묘사된다. 사람과 인형, 생물과 사물의 관계에서 조종하는 주체와 제어당하는 객체를 전복시키는 것, 이 같은 과정으로 정금형은 타자와의 관습적인 위계질서에 의문을 던지고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퍼포머의 몸을 탐닉하던 인형이 호흡을 멈춘다. 남녀의 은밀한 애욕의 몸짓을 공개적으로 엿본 것 같은 불편함이 인형의 심박이 정지하는 다급한 상황의 긴장감으로 단숨에 전환된다. 안정적이었던 숨소리 대신 심전도 모니터의 비상 경보음이 공간을 위협한다. 숨이 멎은 인형을 살리기 위해 가슴 정중앙을 일정하게 압박하는 것에서부터 갖은 수단을 동원한 심폐소생술이 긴박하게 진행된다. 무대 끝에 놓아둔 응급처치기구들을 재빠르게 가져와 심장을 자극하고 호흡을 주입한다. 인형을 살리려는 필사적인 몸짓이 한계에 도달하자 심박도 영원히 멈추고 말았다. 정금형의 몸을 재료로 살아 숨쉬는 오브제를 만들어낸 긴장감 넘치는 퍼포먼스는 50분 내내 관객의 시선을 단단히 붙잡고 있었다.

 

 



 작품에 쓰인 다양한 오브제를 무대가 아닌 전시장에서도 만날 수 있다. 에르메스 재단이 후원하는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는 ‘제16회 에르메스재단 미술상’ 수상자인 정금형의 작업여정을 담아 <개인소장품>전을 열었다. 무대공간에서 아티스트의 욕망을 투사하고 교감했던 다양한 인형과 도구들을 ‘수집과 소장’이라는 맥락으로 치환하여 재구성한 이번 전시는 수동적인 타자의 시선으로 정금형의 욕망을 바라보던 관객들에게 또 다른 방식의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2000년에 제정되어 올해로 ‘16회를 맞는 에르메스재단 미술상’은 국내 미술계를 지원하기 위한 에르메스재단의 문화지원 프로그램 중 하나로, 지난해 최종 수상자로 정금형을 선정하였다. 당시 에르메스 미술상의 심사위원단은 “정금형 작가는 미술계에서 활약하는 퍼포머 가운데서도 가장 강력한 에너지를 지닌 작가 중 한 명으로, 신체와 성, 권력과 억압 등의 이슈를 전례 없이 창의적인 바디 퍼포먼스로 표현한다. 연극과 현대무용을 수학한 후, 시각예술로까지 확장하며 새로운 형식의 예술을 구축한 정금형의 작업은 에너지가 넘치다 못해 아나키스트적이어서, 보는 이에게 긴장감을 고취시키고 강력한 매혹을 불러 일으킨다”는 심사평을 밝혔다. 수상의 영애를 안은 정금형은 프랑스 파리에서 4개월간의 레지던시 기회를 갖고 작품제작 및 전시를 지원받아 <개인소장품>전을 펼치게 됐다.

 

 



 아뜰리에 에르메스 전시장 내 수십 개의 흰 탁자가 늘어선 진열대에는 마네킹의 두상이나 손, 팔의 부위부터 성인용품, 여성용 속옷, 재활치료용 도구, 진공청소기, 드론, 헬스머신 등 수십 점의 전시품으로 가득하다. 신체부위별 혹은 용도별로 나름의 분류 방식에 따라 질서정연하게 배치, 배열된 사물들은 공연장에서처럼 도구로서의 일상적 기능을 벗고 미술관에서 개별 작품으로 탈바꿈하였다. 천장에 설치된 여러 대의 모니터에서는 각각의 사물이 어떤 공연에서 오브제로 등장하고 있는지를 친절하게 보여주고 있다. 화면에서는 10여년간 펼쳐온 작업 가운데 <휘트니스 가이드> <심폐소생술 연습> <재활훈련> 등의 작품 창작과정과 실제 퍼포먼스 장면이 나온다.
 무대에서 보였던 오브제와의 소통 혹은 교감, 공개된 공간에서 펼쳐지는 불편한 관음증적 시선을 미술관으로 옮겨 펼쳐 보이는 이번 전시는 공연에서와는 다른 방식으로 아티스트 정금형이 주목해온 인간 몸과 몸에 대한 욕망의 탐구과정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다. 9월 24일에는 미술평론가 임근준의 사회로 진행되는 아티스트 토크, 9월 10일과 10월 8일에는 아티스트가 직접 작품의 의미를 가이드 투어가 마련된다. 전시는 10월 23일까지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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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인형극을 통한 행위와 시각의 불편한 유희, 작가 정금형

 

안소연_미술비평가


 정금형(1980~)은 대학에서 연극·영화를 공부한 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에서 무용을 전공했다. 공연예술에 기반한 그의 초기 행보는 다원예술에 대한 문화예술계의 새로운 관심과 맞물려 자연스럽게 미술현장으로 연결됐다. 특히 그는 1인 인형극에 주목해 그것의 핵심을 이루는 두 가지 요소, 즉 ‘인형’이라는 오브제와 그것을 다루는 ‘신체’의 관계에 대해 탐구해 왔다. 2005년 〈피그말리온〉을 시작으로 최근 발표한 〈재활훈련〉(2015)에 이르기까지, 그가 연출한 대부분의 1인극 상황에서는 작가의 신체와 의인화된 인형(혹은 인형 대체물로서의 기계) 간의 끝없는 역할 교환이 이루어진다.
 정금형은 작품의 전체적인 흐름에서 자신의 신체와 오브제의 복잡한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줄곧 남녀 간의 성적 행위를 환기시켜왔다. 조금 더 분명하게 말하자면, 정금형이 연기하는 대부분의 장면들은 무생물의 도구를 이용한 한 개인의 자위(masturbation) 행위를 연상시킨다. 때문에 공연 위주의 연극적 행위로 일관해 온 그의 작업은 정황상 최근 미술계에 복귀한 퍼포먼스와 페미니즘 주제에 대한 관심과 공존하고 있다. 지난 한 해, 그는 《2015 뉴뮤지엄 트리엔날레》(New Museum), 《동아시아 페미니즘: 판타시아》(서울시립미술관), 《댄싱마마》(코리아나미술관), 《혼자 사는 법》(커먼센터), 《무브 앤 스케일》(시청각) 등 여러 단체전에 참여했으며 연말에는 신작 《재활훈련》(문래예술공장)을 발표했다. 이러한 많은 활동에도 불구하고 정금형은 엄격할 정도로 작업에 대해 이렇다 할 자료와 설명을 외부에 남기지 않아서 공연현장이 아니면 그의 작업을 다시 보기란 매우 어렵다. 이에 신작 공연을 마친 정금형에게 인터뷰를 요청해 보기로 했다.

안소연 연극과 무용을 전공한 것으로 아는데, 현재 정금형 작가의 활동을 보면 국내외 미술계에서 더 큰 주목을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굳이 장르를 구분하려는 것은 아니고 의미도 없다고 보지만, 예술가로서 본인 스스로 자신의 작업 기반을 어디에 두는지 궁금합니다.
정금형 제가 연극에서 무용으로 넘어간 것은 공연예술이라는 큰 틀에서 보면 같은 맥락인 것 같아요. 구체적으로 ‘나는 어떤 공연을 해야 할까’라고 고민해가는 과정에서 그렇게 선택한 것 같아요. 무용 자체에 대한 큰 매력도 갖고 있었고요. 처음에는 무용기술을 좀 더 연마하고 발전시키고 싶은 생각이 컸어요. 무용을 시작하기에는 늦은 나이였지만 더 늦기 전에 하면 아직은 괜찮을 것 같았어요. 대학 졸업하고 무용학원을 다니다가 한예종 무용원 전문사 과정에 들어갔어요. 대학원 과정이니까 매학기 정기발표회가 있었고 졸업을 하려면 자기 작품을 꼭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그게 좋은 기회였던 것 같아요. 제가 제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상황이 됐잖아요. 제 작품을 만들어야 하니까 그때부터는 약간 방향이 달라졌어요. 일단은 제가 다른 무용수들에 비해서 몸의 움직임은 초보자에 가까우니까 내가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혹은 내 관심사가 어떤 것인지 많이 고민하게 됐어요. 제가 제 작품을 하면서 스스로 창피하지 않아야 하잖아요. 창피하다는 것이 작품이 나빠서가 아니라, 정금형이라는 제 이름으로 작업을 보여주면서 제가 제 옷을 입은 느낌이 분명히 들어야 한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여러 가지 고민을 했는데, 결과적으로 무용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고 조금 더 다른 방향으로 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아무래도 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했으니까 그런 관심사가 연극에서 올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제가 처음 작업을 시작할 때는 한참 다원예술을 지원할 때였거든요. 200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그런 식의 프로그램 지원공모를 많이 했어요. 장르에 구분 없고 실험적인 다원예술에 주목하는 시도들이 많이 있었고, 특히 연극축제인데 움직임에 더 관심이 많은, 피지컬 시어터, 마임축제나 실험연극축제와 다원예술축제에서 공연을 할 수 있었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작가의 개별적인 관심사와 다양한 표현 방식들이 동시대의 문화예술 현장에서 매우 유연하게 소통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관객과의 소통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공연형식의 작업인 데다 내용에 관한 레퍼토리나 설명을 잘 제시하지 않는 탓에 관람에 많은 제한이 따르는데, 이에 대한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작년에 서울시립미술관 《동아시아 페미니즘: 판타시아》에 참여하면서, 미술관에서 공연을 하다 보니 공연이 없을 때의 전시 관객들도 고려해야 했어요. 전시공간에서 영상설치로 공연을 소개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공연은 관객이 공연장에 와서 직접 보는 것을 전제로 만들어요. 공연 관람의 시작은 공연에 대한 정보를 취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공연정보를 제공할 때 그 정보를 통해 관객이 무엇을 예상할지, 그것이 관람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를 염두에 두는 편이에요. 그러다 보니 자세한 줄거리 묘사나 결정적인 장면의 사진과 동영상을 인터넷에 노출하지 않으려고 해요. 인터넷에 정보가 많으면 더 많은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더 많은 관심을 받을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적은 사람들이 공연을 보더라도 공연장에 있는 그 시간의 매 순간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요. 미리 공연에 대한 주요 정보를 아는 것보다는 그 시간을 차곡차곡 쌓을 때의 효과가 있는데, 미리 앞서 가서 어떤 장면을 기다리게 되면 별로 안 좋은 것 같아요. 공연장에서 호흡이 같이 가는 게 좋아요. 어떤 장면은 앞선 호흡들을 같이 쌓아두었을 때 분명한 의미가 있잖아요.

정금형 작가의 작품은 보통 인형이나 특정 도구를 이용한 1인극 형식인데, 흥미롭게도 몰입해서 보다 보면 관객 입장에서는 2인 이상의 배역이 등장해 극의 흐름을 이끌어가고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또한 렉처 퍼포먼스 형식의 〈유압진동기〉(2009)에서 작가는 자신이 다루고 있는 도구들에 대해 ‘그’라는 표현을 쓰더군요. 동시에 ‘그’를 자신의 신체와 분리될 수 없는 존재로 ‘자웅동체’라는 개념도 사용했습니다. 작품에서 자신의 신체와 특정 도구들이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해서 설명 부탁드립니다.
기본적으로 인형극을 하고 있고 제가 인형의 조종사로서 인형과 저의 관계를 설정하고 있어요. 저는 움직이지 못하는 상대역의 사물을 움직이도록 하고 싶어요. 온갖 억지스러운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움직이고 마치 살아있는 듯이 보이도록 하고 싶어요. 그런데 스스로 움직이는 자동인형을 원하는 것은 아니고 제 몸을 통해서 인형의 움직임이 실현되기를 바라는 거예요. 제 몸이 사물을 작동시키거나 이동시키기 위한 장치가 되었으면 해요. 예를 들어, 도르래나 회전무대 따위의 무대기계 역할을 제 몸으로 하는 거예요. 그와 동시에 제 몸의 모양새가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으니 그 생김새를 무대에서 적절하게 사용하려고 해요. 그래서 제가 인형을 조종하면서 동시에 인형의 상대역을 맡게 되는 거죠. 저는 배우이기도 하지만 사물을 작동시키는 오퍼레이터에 더 가깝다고 생각해요. ‘자웅동체’는 제가 혼자서 여자와 남자, 두 명의 역할을 동시에 하면서 습득한 인형극 연기기술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어요.

 

 


공연시간이 보통 1시간 내외로 제법 긴 편인데요. 이렇다 할 서사적인 내용 없이, 또 많은 등장인물과 무대장치 없이 정금형 작가의 신체가 인형이나 기계들과 맺는 관계만 가지고 시간가는 줄 모르게 관객들을 집중시키는 힘이 대단한 것 같습니다.
네. 저는 공연이 어떤 내용이라고 미리 설정하지는 않아요. 관계 설정이 먼저 있고 어떠어떠한 움직임들이 보태지고 그러면서 전체적인 흐름을 엮는 편이에요.

정금형 작가의 작품은 각각이 다른 관점에서 서로 연결되거나 확장되는 경우도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피그말리온〉(2005)이 인형극 형식의 첫 작품으로 알려졌는데, 사실 그게 나중에 〈금으로 만든 인형〉(2008)과 〈7가지 방법〉(2009)에 계속 등장하면서 몇 차례 진화를 겪지 않습니까? 또 〈휘트니스 가이드〉(2011)는 〈My Wish List〉(2012)나 〈제품사용후기: 사람형 펀칭백 PRO2500〉(2015)과도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아요.
네, 맞아요. 〈피그말리온〉은 제가 학교에서 처음 만든 작업이에요. 2004년에 학교 정기발표회에서 소개했고, 그다음 해에는 춘천마임축제에 참여해서 학교가 아닌 곳에서 제 이름을 걸고 처음 발표한 작품이에요. 2004년부터 1년마다 10분짜리 공연을 계속 만들었어요. 작품이 모여서 2008년에 하나의 공연으로 엮었는데, 그게 〈금으로 만든 인형〉이었어요. 그리고 그다음 해인 2009년에 〈7가지 방법〉으로 수정했어요. 첫 작업의 최종 완성본은 〈7가지 방법〉이라고 하고 싶어요. 그렇게 보면 정말 오랜 시간에 걸쳐서 만들어졌어요. 〈7가지 방법〉에 앞서, 〈금으로 만든 인형〉을 만들고 나서 바로 굴삭기를 가지고 아까 말한 〈유압진동기〉를 제작하기도 했어요. 〈금으로 만든 인형〉의 공연 과정을 찍은 영상으로 일종의 렉처 퍼포먼스를 하게 되었어요. 그게 2008년이었어요. 저는 첫 작업을 변형시키며 계속 반복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저는 계속 반복을 하는 것에 의미를 부여해요. 그것이 매번 다른 방식으로 반복될 때, 어떻게 반복하는지를 같이 보면서 재미를 느끼거든요.
제 작업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7가지 방법〉 공연의 일부인 〈진공청소기〉를 먼저 설명해요. 제 몸을 움직여서 기계를 움직이게 하고 그것이 주인공임을 설명하기에는 〈진공청소기〉가 편리한 것 같아요.

 

 



〈진공청소기〉(2007)는 대형 진공청소기에 남자 인형 얼굴을 거칠게 연결해 그것으로 작가가 인형극을 펼치는 거잖아요. 연출된 상황이 작가와 인형의 적나라한 성적 행위였고 결국 의심할 여지없이 한 여성(작가)의 능동적인 자위행위가 작업 전반에서 강하게 표출된 것 같습니다. 때문에 표면상 여성성이나 주체의 전복으로 보이는 본인의 작업에서 정작 작가가 중요하게 생각하며 다루는 관점은 무엇입니까?

저는 제 몸의 생김새를 무대에서 사용하려고 하는데 제가 여자의 몸을 가지고 있으니 당연히 여자로서의 몸을 다루게 되는 것 같아요. 저는 인형극의 작동 원리에 주목하면서, 선택한 공연의 재료에 대한 기능적인 지식에 접근하려고 해요. 그래서인지 괜히 자격증에 집착하는 것도 좀 있고요. 그런데 자격증을 따기 위한 내용을 정리해 놓은 딱딱한 책 있잖아요? 그런 책에 쓰여 있는 말 중에서 제 작업에 딱 맞아떨어지는 보석같은 게 찾아질 때가 있어요. 〈유압진동기〉 때도 굴삭기 자격증 시험을 보려고 이론 공부를 하면서 유압의 원리에 대해서 아름답다고 느끼게 되었고, 그런 내용이 작업에 더 보태지면서 이야기의 방향이 자연스럽게 엮였어요. 최근에 작업한 〈재활훈련〉과 그 이전 작업인 〈심폐소생술〉(2013)도 그렇게 관련 지식에 먼저 접근하고 그때 알게 된 지식이 공연의 방향을 결정했어요.
그리고 작업할 때 도구를 장만하는 것 또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요. 그 기계가 같은 종류의 기계라도 어떤 회사에서 만들었고 어떤 디자인이며 어떤 기능을 갖고 있는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따라서 공연의 리듬이 형성되기 때문에 일단 제 작업에 맞는 도구들을 준비해야 해요. 계속 만지작거리면서 ‘얘가 어떻게 작동되는구나’를 알아내야 거기에 맞게 어떻게 행동할지가 결정되거든요.

작가 특유의 진지한 표정과 태도 때문에 공연장을 찾은 관객들 또한 숨죽이며 매우 진지하게 참여할 수밖에 없는데, 그게 역설적이게도 피식거리는 웃음을 유발하기도 합니다. 또 몇몇 영상작업들은 매우 유머러스하더라고요. 작가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는 몇 편의 작업은 어떤 광고영상 같기도 한데 공연 형식의 작업과 어떤 관계가 있는 건가요?
실제로 벌어지는 상황 때문에 관객에게는 더 안쓰럽기도 하고 웃기게 보일 수 있는 것 같아요. 저는 목적이 절실하게 있는데, 그래서 우스워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잖아요. 어떤 분들은 웃기기도 한데 동시에 슬프기도 하다고 하세요.
영상 작업의 경우, 저는 영상 편집하는 것을 굉장히 좋아해요. 특히 짧은 트레일러들이요. 〈My Wish List〉, 〈Venuri n Jeong Geumhyung〉을 말씀하시는 것 같아요. 〈My Wish List〉는 제가 2011년 〈휘트니스 가이드〉 제작 준비를 하고 있는데 운동기구 관련된 걸 검색하다가 찾은 사람형 펀칭백 광고 영상을 이용한 거예요. 그걸로 뭔가를 하고 싶었고 제가 직접 공연을 하지 않아도 영상으로 충분할 것 같았어요. 그런데 나중에 녀석을 실제로 구입해서 〈제품사용후기〉(2012)라는 공연도 만들었어요. 〈Venuri n Jeong Geumhyung〉은 스리랑카 작가 베누리(Venuri Perera)와 최근 호주의 한 레지던시에서 1주일 동안 한 팀으로 작업을 하면서 같이 제작한 거예요. 우리가 따로 한 공연 작업이 있었는데 그 작업의 예고편이기도 하고 일단 우리가 만나서 뭔가를 한다는 걸 예고하는 영상이에요.

현재 준비하고 있는 전시가 있나요? 
8월에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개인전이 있어요.

한 시간가량의 인터뷰를 마쳤다. 정금형은 ‘제16회 에르메스재단 미술상’(2015) 수상자로 선정돼서 올해 개인전을 앞두고 있다. 그동안 그는 〈피그말리온〉, 〈진공청소기〉, 〈7가지 방법〉, 〈유압진동기〉, 〈문방구〉, 〈휘트니스 가이드〉, 〈비디오카메라〉, 〈심폐소생술연습〉, 〈제품사용후기: 사람형 펀칭백 PRO2500〉 등의 작업을 통해 흔히 말하는 퍼포먼스 작가로 국내외 예술계에 이름을 알려왔다. 지난해 연말에는 무려 2시간 30분이 넘는 〈재활훈련〉을 3일간(3회) 총 100명 남짓한 관객들에게 신작으로 선보였다. 앞서 인터뷰에서 그가 말했듯, 정금형은 공연 현장에서 일어나는 관객과의 호흡을 매우 중요하게 다룬다. 보통은 공연시간이 1시간 내외이고 〈재활훈련〉처럼 더 긴 시간이 소요되는 경우도 있는데, 공연 내내 작가의 능숙한 행위에 몰입하다 보면 공연이 끝났을 때는 작가 못지않게 관객도 묘한 희열과 체력의 소진을 느끼게 된다. 예컨대, 작가는 〈휘트니스 가이드〉에서 일련의 운동 기구들로 1시간 동안의 체력 단련을 감행한다. 잘 단련된 그의 몸이 보여주는 능숙한 행위는 운동 기구를 순식간에 성적(性的) 파트너로 단정하면서 관객의 눈 앞에 펼쳐진 장면은 남녀의 성교 혹은 한 여성의 자위를 연상시킨다. 이때 관객은 작가가 바닥에 펼쳐놓은 요가 매트에 앉아 그의 움직임에 따라 연신 방향을 바꿔가며 숨죽여 이를 지켜본다. 공연 내내 흐트러지지 않고 진지한 작가의 표정만큼이나 관객들 또한 쉬이 표정을 드러내지는 못한다. 운동 기구 대신 재활 치료기를 이용한 〈재활훈련〉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정금형은 이러한 자신의 작업을 인형극이라 말한다. 한 명이면서 두 명인, 수동이면서도 능동인 주체의 끝없는 전복은 작가의 신체와 인형(기계) 사이의 관계 속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 낯설고 모호한 상황은 거기서 끝나지 않고, 다시 무대와 관객 사이로 확장돼 (작가의) 행위와 (관객의) 시각을 뒤섞는 불편한 유희가 지속된다. 때문에 정금형의 작업은 모종의 유희 속에 가담한 관객들만을 일련의 증인이자 목격자로 삼게 된다.  


* 웹진 아르코 1월 18일자 재수록(http://webzine.arko.or.kr

2016. 09.
사진제공_안산문화재단, 에르메스재단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