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우리에게도 많은 감상을 남기는 단어 ‘콩쿠르’가 불어라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최소한의 식사, 자는 시간을 줄여가며 해야 하는 살인적 연습량, 치열한 경쟁 그리고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수 도 있는 탈락에 대한 두려움 혹은 대학입학이나 군대면제라는 복권을 한손에 질 수 도 있는 기회를 떠올리게 하는 이 단어를 포함한 행사(‘당스 엘라지’)가 새로운 개념으로의 춤의 확장을 위해 2년에 한번씩 열렸고, 올해는 서울과 파리에서 동시에 열리는 행운을 맞았다.
우리에게 토착화된 ‘콩쿨’의 개념과는 그야말로 완전히 반대항에 위치하는 이 국제 콩쿠르는 테아트르 드 라 빌(파리시립극장/ 극장장 Emmanuel Demacy-Mota), 렌에 있는 뮤제 드 라 당스(예술감독 Boris Charmatz) 공동주최로 ‘춤을 기반’으로 ‘3인 이상, 10분 이내’ 작품이라는 규칙 이외에는 나이, 국적, 학력, 분야에 제한 없이 출전할 수 있는 경연 프로그램이다.
2014년 테아트르 드 라 빌이 아시아와의 공동주최를 구상하던 중 한불수교 130주년을 맞아 한국문화원에게 한국 측 파트너 추천을 요청했고, 문화원이 LG아트센터(담당 이현정 기획팀장)에 제안하면서 올해는 양국이 공동주최할 것을 협의했다고 한다. 원래 이 콩쿠르의 후원을 에르메스 재단에서 해왔던 것과 어느 정도의 균형감을 맞추기 위해 한국내에서 해외 춤공연예술과의 교류, 기획, 제작, 초청에 두루 경험이 많은 LG아트센터가 파트너가 된 것은 아주 적절한 균형이라고 생각한다.
‘당스 엘라지’ 입장에서는 한국을 파트너로 삼으면서 지리적으로 참여국가의 반경을 아시아로 확장할 수 있게 되었고, LG아트센터 입장에서는 여태까지 해보지 못한 새로운 개념의 프로그램을 시도함으로써 민간극장으로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춤공연예술을 선도해오던 극장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특히 한국의 젊은 안무가 지망생들은 새로운 포맷의 콩쿠르를 통해 국제감각을 익히고 유럽진출의 지름길을 밟을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었으니 ‘당스 엘라지’가 예술가나 관객 모두에게 많은 호기심을 유발하며 작은 흥분을 일으킨 것은 당연한 일이다.
2016년 6월 18일(17팀 예선-10팀 선정), 19일(10팀 본선-3팀 수상) 양일에 걸쳐 파리의 중심부 테아트르 드 라 빌에서 치러진 ‘당스 엘라지’는 1,000석을 가득 메운 관객의 뜨거운 흥분으로 출렁이고 있었다. 국립 샤이오 극장과는 달리 시민의 극장으로 소탈함과 당당함을 갖춘 이 극장은 고대 원형극장의 객석처럼 급경사로 쏟아지는 객석이 무대를 향한 집중력을 높여, 많은 인원이 관람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생길 수밖에 없는 거리감을 최소화하려는 목적이 잘 실현된 극장으로, 이 극장과 춤 관객에게 열린 극장이 되고자 하는 이 행사의 취지가 잘 맞아 떨어져 관람의 감흥을 한층 높여 주었다.
한국에서 예선, 본선을 끝내고 일주일 뒤에 심사위원 전원이 파리로 이동하였고, 경비상의 이유로 파리 공연팀은 한국 예술가 포함된 팀이 3팀, 나머지 대다수의 팀들은 프랑스 팀이 주축이 된 유럽연합 팀들로 구성되었다. 첫날 3개의 세션으로 나뉘어 17개 팀이 공연하고 심사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전 주에 LG아트센터에서 열린 경연 실황과 춤 관련 영상물이 상영되었다. 심사결과 7개 팀이 탈락하고 10개 팀이 통과하여 이튿날인 19일 다시한번 경합을 벌였고, 최종결과가 나오기 전에 참가한 모든 팀이 무대에 한꺼번에 나와 자신의 작품을 공연하는 Crash-Test라는 코너를 진행하여 콩쿠르의 경쟁심을 화합과 축제의 난장판으로 분위기를 바꾸고 관객에게 새로운 융합 작품을 보는 듯한 경험을 주는 것이 흥미로웠다.
연령과 학력에 제한은 없었지만 대다수의 참가자들은 각국에서 무용교육을 착실하게 받은, 작품이력도 화려한 편인 젊은 안무가들인 점은 다른 무용경연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물론 음악가, 시각예술가들과 연합팀을 이루어 장르 확장을 꾀한 팀들이 많았으나 작품은 생각보다는 시각예술이나 음악에서 새로운 시도가 돋보이는 작품이 많지 않은 것은 가장 큰 실망을 주었다. 상금이 큰 편이기는 하지만 자비로 제작비와 여행경비를 마련해 참가해야 하는 부담때문인 듯 해서 다른 지원방식을 고민해야할 지점으로 보인다.
프랑스까지 와서 경연에 참가한 한국팀 3팀은 프랑스와 연합하여 장구잽이(고기혁)와 배우(한강우)로 참가한 작품 〈Moloch〉, 달 프로젝트(이정호, 곽소민, 유태금, 정재원, 곽소진)의 〈Erase the Moon〉, 그리고 3등의 영예를 안은 권령은의 〈Glory〉였는데 한국적 특성을 장구와 의상에서 강하게 보여준 〈Moloch〉은 한국적 색채로 눈길을 끌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하였으나 탈락하였고, 한예종 출신의 이정호와 영상 기반의 곽소진이 함께 만든 〈Erase the Moon〉는 현대사회의 무감해져가는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을 시시각각의 시간의 흐름의 중요함을 인식하고 발견하려는 의도의 작품으로 결선까지 올라왔으나 3등 안에는 들지 못하였다.
권령은 안무의 〈Glory〉는 한국 무용계의 병역면제 현실을 김성현의 실제 상황을 바탕으로 직접화법으로 다루어 콩쿠르 속의 콩쿠르를 다루는 중복 설정에 성공하여 흥미를 주었다. 지미 세르가 전체상황의 나레이터로 한국에서의 병역의무와 남자무용수들이 그것을 피하기 위해 콩쿠르에서의 입상을 위해 무수한 시도와 탈락에 대한 경험을 불어로 얘기할 때, 객석에서는 때때로 놀라움의 탄식 소리가 들린다.
2년간 10번의 콩쿠르 참가하지만 1등을 하지 못하고 그래도 또 해보겠냐는 질문에 김성현은 어게인, 어게인을 굳은 표정으로 강하게 외칠 때 객석에서는 쓴웃음이 흘러 나온다. 이런 블랙코미디 상황은 김도원이 김성현의 숙달된 현대무용 동작 뒤에서 그의 몸을 감싸 안은 채로 발레와 현대무용동작을 제식훈련 동작으로 변형시키는 장면에서 정점에 달한다. 이 장면은 군대 제식훈련과 콩쿠르의 묘한 동거를 동작적으로 잘 조합해낸 안무의 쾌거로 꼽을 수 있었다. 한 개인 남자무용수의 현실이라는 작은 점 안에 최후의 분단국으로써 한국사회를 중첩시키고 춤과 제식훈련의 겹치기 그림으로 사회적 모순을 발견하게 하는 〈Glory〉의 대본과 안무의 성공은 통나무 대신 수박을 등장시켜 제식훈련을 재연하는 후반장면의 무미건조함을 보완한다면 사회성을 확보한 작품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긍정적 받침돌이 될 것으로 보인다.
〈Glory〉와 더불어 정치적 성향의 작품인 〈Deplacement〉이 대상을 받았는데, 시리아와 터키 출신의 남자 3인무인 이 작품은 음악 없이 강하지 않은 발 스텝의 소리 외에는 어떤 소리도 침범할 수 없는 깊은 침묵으로 진행되었다. 일상복 차림의 세 남성은 발동작 중심의 스텝을 이어간다. 작품 내내 전쟁이나 갈등 혹은 그와 관련된 어떤 구체성을 보여주지 않아 좀 싱겁긴 하지만 점진적 변화 속에서 상의를 벗으면서 이들이 마른 몸이 드러나고 침묵 속에 약간의 박해와 고난의 동작 이미지는 침묵과 더불어 상승되는 스텝의 복잡함과 변주와 더불어 어느 새 침묵의 깊은 울림을 만들어 나간다. 절제를 잘 유지하면 작은 몸짓 하나로 깊은 울림을 만들 수 있다는 안무법을 확인시켜준 작품이었다.
잘 숙련되지 않아도 젊은이들의 감성과 촉각을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이 신선함이 무엇인지를 충분히 느낄 수 있게 했지만, 뮤제 드 라 당스의 젊은 예술감독이자 자신 역시 새로운 개념의 컨템포러리 안무가로 활동하고 있는 보리스 샤마츠가 인터뷰에서 밝힌 “현대의 안무가들이 레퍼토리, 재건축 reconstruction, 재현 revival, 도용 appropriation, 참조 reference, 인용 quotation 등을 만드는 데에는 많은 비중을 두는데 반해 작품을 만들고 창의성을 발휘하는데 필요한 요소나 조건에는 관심이 적다. 그런 이유에서 1980년대에 성행했던 무용 경연형식을 부흥시키고자 했고, 이것을 일종의 ‘ready-made'라고 하는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하여 아티스트들을 만나보고자 했다”는 의도는 이번 4회를 맞는 ’당스 엘라지‘에서는 충분히 만족스러운 작품을 만난 것 같지는 않다.
참가의 제한이 적은 이유로 출품작의 다양성이나 수준의 편차를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 심사의 기준을 일관되게 적용하기 까다로운 면이 있겠지만, 올해의 참가작들은 보리스가 말한 ’ready-made'의 관습적 미학에 대한 반미학적 시도에 대한 지지를 보낼 수 있는 안무력이나 과감한 형식적 시도의 측면에서는 전반적으로 약한 모습을 보여서인지 그 기준을 관철하기 보다는 공동주최국에 대한 배려와 국가차원의 정치상황에 대한 민감성에 좌우 받은 느낌을 주어 콩쿠르의 신뢰에 오점을 남긴 것이 아쉬웠다.
하지만 기존공연에 싫증난 무용관객을 새로운 개념의 무용에 대한 시도와 무료공연이라는 방식으로 확장하고 새롭게 창출해보겠다는 의도는 어느 정도는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또 창조와 교류의 장으로서 축제 같은 콩쿠르에 대한 시도 역시 가뿐하게 성공하였다. 출연자와 관객이 모두 즐겁게 참여 하면서 경쟁보다는 공감에 초점을 두었고, 콩쿠르 경연이라는 의미는 과감한 시도와 창의적인 해법을 위한 긴장감으로 한쪽으로 돌려놓고, 해프닝의 생동감과 호기심으로 분위기가 채워지는 것이 파리의 테아트르 드 라 빌에서 확인되었다.
한국과 공동주최한 올해의 행사가 앞으로도 얼마나 지속될 지는 아직은 결정된 바가 없지만 우리는 ‘당스 엘라지’에 대한 새로운 경험을 통해 우리가 가진 수많은 콩쿠르들을 테크닉 경연이 아니라 춤예술의 창의성을 위해 변신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체험하였다. 대학이 이렇게 축소되고 무력화됐는데도 수많은 무용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허술한 기준과 천편일률적인 형식의 경연대회에 똑같은 화장을 하고 아무 생각 없이 기계처럼 참가한다. 우리의 춤예술이 관객과 함게 하는 것이 되기 위해선 어쩌면 콩쿠르부터 바뀌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을 것이다. 경연의 기준을 다르게 정하고, 그 기준의 다양성을 아티스트와 관객이 함께 즐기면서 만들어 나간다면 새로운 춤문화를 현장에서 생성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올해를 경험한 LG아트센터의 확인된 역량이 꼭 공동주최가 아니더라도 한국무용예술과 관객을 위해 단독으로라도 새로운 콩쿠르를 시도한다면 무용공연예술 문화에 적지 않은 변화와 영향을 줄 것은 확실하다. 7명의 예술가 심사위원(물론 9명의 관객심사위원도 있었다) 중 3명의 한국 심사위원- 안은미(심사위원장), 장영규, 이불 -이 이런 흐름을 이끌어 새로운 콩쿠르를 선도하는 것도 또 다른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테아트르 드 라 빌의 잘생긴 젊은 예술감독 Emmanuel이 말한 것처럼, 파리가 아직도 신진 예술가들에게 거주지로서나 다듬어지지 않은 작품을 선보이는 무대로서는 여전히 접근하기 어려운 도시이고, 극장이 현대무용에는 상대적으로 닫혀있는 곳이기에 관객과 예술가가 잘 만날 수 있도록 해주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우리의 현실과도 그리 다르지 않다.
경연이 능숙함이나 능란한 기술을 위한 반복연습만을 요구하는 시절은 지나갔다. 어차피 비워둘 극장이라면 무료공연으로 관객에게 문을 활짝 열어주고, 다듬어지지 않은 수많은 작품을 한 후에야 좋은 작품을 하게 되는 아티스트에게 그들의 신선한 실험을 맛보고 느껴줄 관객을 만나게 해주는 곳이 되도록 하는 것은 어떤가? 관객이 박수치고 웃고 환호할 예술가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극장 문턱을 낮춘다면 객석점유율이라도 늘리면서 무언가 함께 만들어 나가는 공연문화를 만드는 것이 극장, 관객, 아티스트 모두에게 좋은 일이 아닌가?
경연이라는 말에 예술을 경쟁시키려 한다고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것 보다는 ‘당스 엘라지’처럼 자신의 현실에 대한 정확한 진단으로 그에 맞는 기준을 선택하고 그것을 놀이처럼 만들어 갈 수 도 있는 가능성을 탐구해보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은가?
국내 첫 선보인 ‘댄스 엘라지(DANSE ÉLARGIE)’ 서울 경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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