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커튼콜로 공연이 끝나는가 했더니 갑자기 한 명의 무용수가 움직이더니 새로운 춤이 시작되었다. 20명이 넘는 무용수들의 현란한 팔의 움직임과 스피디한 춤은 음악과 조명, 젊은 무용수들이 만들어내는 잘 정제된 지체의 움직임에 푹 빠져있던 관객들에게는 또 다른 선물이었다. 풍족한 춤과 관객들의 열광적인 환호는 17일 동안 이어진 축제의 대미를 장식하는 맛깔스런 디저트였다.
두 번째 커튼콜 마지막 순서에서 또 한 차례 반전이 일어났다. 무대 중앙에 거의 근접한 안무가가 출연자들을 향해 갑자기 엎드려 절을 했다. 안무가의 돌출행동에 출연자들도 놀라 모두 함께 무릎을 맞대고 맞절을 했다. 안무가와 댄서들 사이에 순식간에 일어난 이 작은 사건(?)은 이번 대한민국발레축제가 거둔 성과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평자에게는 이것이 무용수에 의해 안무가 빛이 났고, 안무에 의해 무용수들의 춤이 빛난데 대한 예술가들 사이의 필(feel), 공감, 존경과 성취감이 빚어낸 자연스러운 행위로 비쳐졌다.
제6회 대한민국발레축제 폐막 작품인 김용걸댄스씨어터의 〈Work 2S〉(5월 28-29일 토월극장, 평자 29일 관람)는 이전 공연보다 훨씬 업그레이드 되었다. 20명 댄서들의 앙상블, 라이브 연주자들과 무용수들의 호흡, 그리고 조명과의 매칭을 통한 시각적인 이미지구축이 특히 빼어났다.
기존의 레퍼토리들이 새로 유통되고, 또 다른 극장에서 새로운 관객들과 만나면서 그 예술적인 완성도가 높아지는 것은 공연예술축제가 갖는 순기능이 아닐 수 없다. 이날 함께 공연한 이원국발레단의 〈신데렐라〉가 동화 속 캐릭터를 코믹하게 구성하여 가족들 모두가 즐길 수 있도록 제작된 타깃형 레퍼토리란 점에서 두 작품을 1부와 2부에 매치한 시도는 주말을 이용, 극장을 찾은 다수의 가족관객들을 배려한 프로그래밍으로 달라진 축제운영진들의 노력을 읽을 수 있었다.
올해 대한민국발레축제의 창작발레 공연프로그래밍은 서로 다른 성격의 공연들을 매치시킨 것이 특징이었다.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5월 20-21일, 평자 20일 관람)에서 공연된 임혜경 Le Ballet의 “이야기가 있는 발레”와 다크서클즈컨템포러리댄스의 〈노련한 사람들〉(안무 김성민) 역시 관객들에게는 서로 다른 양식의 발레 공연을 음미할 수 있는 순서였다.
〈기도〉〈Middle of Nowhere>〈Y.S. Wonderful!〉〈무무 Passacaglia〉 네 개의 소품 사이사이에 안무가 임혜경이 등장해 이야기를 담아내는 Talk Concert 형식으로 진행된 “이야기가 있는 발레”는 한 명의 남성무용수와 5명의 여성 무용수가 등장해 30분이 넘게 하나의 콘셉트로 진행된 〈노련한 사람들〉과 함께 공연됨으로써 더욱 시너지 효과를 높였다. 4개의 소품을 서로 다른 색깔로 조율해 내는 임혜경의 안무가로서의 감성을 음미할 수 있었던 것도 별미였다.
다크서클즈컨템포러리댄스의 〈노련한 사람들〉(안무 김성민)은 지난해 이 무용단의 정기공연에서 초연되었을 때보다 연기와 움직임이 만나고 분리되는 접점의 타이밍, 무용수들의 연기와 군무의 앙상블, 그리고 김성민의 조정자로서의 자연스러움이 더욱 배가되었다. 코믹한 요소를 움직임과 적절한 수위로 조율시키는 안무가의 감각이 빛난 작품이었다.
휴먼스탕스 아트그룹의 〈Burn:타오르는〉(안무 연출 조재혁 김병조), 이루다블랙토프로젝트의 〈블랙 스완 레이크〉(5월 27-28일 자유소극장, 평자 27일 관람) 역시 서로 다른 성격의 작품이 매칭되었다.
〈Burn:타오르는〉은 복싱과 발레를 한 작품 안에 녹여낸 기발한 발상이 눈길을 끌었다. 복서가 갖는 민첩성과 순발력, 발레무용수들이 갖는 리듬감과 박자감각에서의 유사성, 복서와 발레무용수 모두 열정을 갖고 있는 것을 공통적인 요소로 설정한 제작진들은 실제 복서의 멘트와 거친 숨소리까지도 음악적인 요소로 활용하는 퓨전 작업을 펼쳤다.
이즈음 들어 세계 춤 시장에는 스포츠와 춤을 접목시키는 컨템포러리댄스 작품들이 적지 않게 공연되고 있다. 축구, 탁구, 10미터 허들경기, 유도, 양궁 등 평자가 국내외 춤 공연무대에서 본 작품만도 부지기수다. 대부분의 작품들이 해당종목의 특성과 사용되는 구기들을 움직임으로 활용한 작업인데 비해 〈Burn:타오르는〉은 이질적인 두 종목(장르)를 비교적 단선적으로 접근시켰다. 향후 복싱과 발레가 갖는 움직임 자체의 공통적인 요소들을 더 찾아내고 이 부문에 무게중심을 더 많이 두는 쪽으로 전개된다면 작품의 경쟁력 역시 그만큼 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
이루다블랙토프로젝트의 〈블랙 스완 레이크〉(안무 이루다)는 백조가 아닌 흑조들이 사는 호수를 배경으로 하는 발상부터가 눈길을 끈다. 자유소극장의 3층과 2층 그리고 1층 공간을 입체적으로 활용한 무용수들의 배치와 분장 의상 등 시각적인 효과를 살려내는 장식, 그리고 시종 빠른 템포의 움직임 구성, 백조가 아닌 흑조의 시선으로 담아내면서 현대사회 속에서 생겨나는 부정적인 인간관계를 암시하는 메시지를 표방한 점 등이 관객들의 눈길을 끄는 요소들이다.
전체적으로 움직임 구성이나 틀을 지나치게 방송댄스 형태로 전개시킨 점, 적절한 타이밍에서의 완급 조절, 그리고 메시지를 담아내는 접점 찾기 등이 보완된다면 젊은 안무가로서 이루다의 개성을 담아내는 경쟁력 있는 레퍼토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
선정된 작품들이 모두 서로 다른 색깔로 독창성을 갖고 있고, 이를 한 축제 안에서 만날 수 있도록 한 탄력적인 프로그래밍은 축제의 생산성을 높이는데 적지 않게 기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