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강수진이 슈투트가르트발레단과 함께 한, 한국에서의 마지막 전막 공연 <오네긴>은 대한민국 출신의 발레 무용수가 ‘안무’를 빛내고 세계 정상급 발레단의 위상을 드높이고, 관객들을 극한의 감동으로 몰아치는, ‘특별한 무대, 살아있는 예술‘을 선사했다. 공연 현장 리뷰와 함께 언론의 반응, 미국과 캐나다에서 발간되는 무용 전문지 〈Dance International〉 최근호에 게재된 직격 인터뷰, 그리고 그녀의 춤 30년 연보를 함께 게재한다. (편집자 주)
□ 공연 리뷰
강수진에 의해 더욱 빛난 드라마 발레의 정수
장광열_춤비평가
그것은 진정 '살아있는 예술(living arts)' 이었다.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간판 작품은 강수진으로 인해 더욱 빛났고, 안무가 존 크랑코는 무용수 강수진에 의해 더욱 그 존재감을 높였다. 그리고 관객들은 드라마 발레의 정수를 만끽했다.
11월 6-8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오네긴>(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평자 6일 관람) 공연은 컴퍼니나 안무가, 관객 모두에게 소중한 무대로 자리매김 되었다. 강수진의 타티아나는 드라마 발레가 갖는 가치를 높여주었고,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은 강수진이란 무용수로 인해 발레단의 이미지를 더욱 고양시켰다. 그리고 관객들은 강수진과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이 만들어낸 한 편의 명작 발레를 눈과 귀, 가슴으로 음미하는 호사를 누렸다.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허무주의적 행동으로 자기 자신은 물론 주위 사람들까지도 불행하게 만드는 비극적인 인물 오네긴과 이런 그에게 마음을 빼앗긴 시골 영주의 딸 타티아나. 여자의 일방적인 연모와 이를 외면하는 남자의 비정함.
강수진의 타티아나는 슬픔과 절망감, 기쁨과 회환의 경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들었다. 드라마를 이끌어 가는 연기력, 주인공의 심리를 담아내는 섬세한 감정표현과 춤, 그리고 파트너십은 일품이었다. 음악을 타고 흐르는 제이슨 레일리(오네긴 역)와의 호흡은 깃털 같은 가벼움으로 때론 무대를 장악하는 카리스마로 결코 쉽지 않은 크랑코의 안무를 육신으로 녹여냈다. 세 차례의 파드되에서 보여준 강수진과 제이슨 레일리의 앙상블과 감정의 교감은 춤이 얼마나 사람의 감성을 저 깊은 곳에서 터치할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드라마를 이끌어 가는 4명 주요 인물들의 모호한 거리감을 없애고 인물들 간의 구체적인 갈등에 초점을 맞춘 캐릭터 창출, 올가와 타티아나·오네긴이 함께 추는 3인무, 올가와 오네긴의 2인무를 군무진들의 커플 댄스와 접목시켜 렌스키의 질투를 끌어내는 등 인물들의 갈등을 자연스럽게 춤과 접목시켜 표출해내는 존 크랑코의 연출력은 그가 왜 드라마 발레의 거장인지를 확연하게 보여주었다.
두 한국인 무용수 올가 역을 맡은 강효정(그녀는 이어진 11월 22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 도쿄 공연에서 타티아나를 춤추었다)과 타티아나 역 강수진이 조합된 캐스팅은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향후 행보를 예측케 하는, 한국의 발레 무용수들이 세계무대에서 어떻게 진화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1997년 홍콩에서 마르시아 하이데(타티아나)와 리차드 크레건(오네긴)이 출연한 <오네긴>을 본 적이 있다. 오래 전 마르시아 하이데는 타티아나를 통해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간판 스타로 자리매김하고 예술감독의 반열에까지 올랐었다. 2015년 11월 6일 강수진의 타티아나는, 평자가 1996년 슈투트가르트 오페라극장에서 본 강수진의 타티아나, 그리고 1997년 홍콩에서 본 마르시아 하이데의 타티아나를 분명 넘어섰다. 1998년 7월 ‘뉴욕 타임스’가 격찬한 강수진의 줄리엣, 그해 10월 슈투트가르트에서 관객들의 수십 번에 걸친 커튼콜의 환호가 이어진, 그녀에게 브노아 드 라 당스(Benois de la danse) 최우수 여성무용수상을 선사한 강수진의 마르그리트에 이어 이날 공연은 강수진의 타티아나가 정점을 찍은 무대였다.
강수진이 창조한 타티아나는 ‘자신의 가슴에 묻어두면서 그 사랑을 이루고자 한 동양적인 비련의 여주인공’이었다. 1965년 4월 13일 슈투트가르트에서 초연한 <오네긴>은 50년을 넘어서면서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서 강수진에게 ‘불멸의 무용수’란 칭호를 선사한 명연으로 기록될 것이다.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을 사용한 쿠르트-하인츠 슈톨체의 편곡과 위르겐 로제의 무대와 의상은 언제 보아도 이 작품과 잘 어울린다. 지휘자 제임스 터글이 리드한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음악도 드라마 발레의 흐름을 좇아가는데 일조했다.
강수진과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은 <로미오와 줄리엣>과 <까멜리아 레이디> 그리고 <오네긴>까지 그동안 몇 차례 내한했지만 모두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이 치러졌다. 작품의 규모에 비해 극장은 너무 컸고 주요 배역들의 감정선은 관객들과 소통하기에 어려웠다. 이번 공연의 성공은 흥행에 연연하지 않고 스토리텔링이 있는 드라마 발레의 감상을 위한 최적의 공연장을 선택한 주최측(크레디아)의 노력도 일조했다.
사진제공_크레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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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공연 현장 스케치
눈물 펑펑 쏟은 30년 '발레 여왕'… 아듀! 강수진
유석재 기자
조선일보 2015-11-09 보도
예술의전당서 발레 '오네긴' 열연…
국내 고별 무대
48세 나이에도 깃털같은 몸동작…
2人舞 할땐 미술관 속 名畵 보듯
마지막 장면에선 폭풍같은 오열
'발레 여왕'의 마지막 무대는 폭풍 같은 오열로 막을 내렸다. 여주인공 타티아나로 나선 발레리나 강수진(48)은 옛 연인 오네긴의 구애를 뿌리치는 마지막 장면에서 절규하듯 입을 벌린 채 어린아이처럼 눈물을 뚝뚝 흘렸다〈작은 사진〉. 30년의 현역 발레리나 인생을 마무리하는 격정의 눈물처럼 보였다.
8일 오후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강수진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전막 발레 '오네긴'의 마지막 공연이 끝났다. 커튼콜에서 애써 웃음 짓던 강수진은 객석을 향해 고개를 숙이다 끝내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2200명의 관객이 모두 일어나 박수와 환호를 보냈고, 강수진의 눈가와 뺨은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무용수와 스태프 80여 명이 한 명씩 무대에 나와 강수진에게 장미꽃 한 송이씩 선사하는 깜짝 이벤트가 이어졌다. 두 팔로 가득 꽃을 안은 강수진이 펑펑 울었다.
이날 공연은 강수진이 고국에서 펼친 고별(告別) 무대다. 그녀는 "이 공연을 끝으로 한국에서 다시 무대에 서는 일은 없을 것"이라 선언했다. 내년 7월 이 작품의 독일 공연을 끝으로 그녀는 은퇴한다. 열아홉이던 1986년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최연소 무용수로 입단한 지 꼭 30년 만이다.
강수진의 은퇴는 결코 기량이 떨어졌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이날 공연은 증명했다. 중력을 무시하듯 공중으로 솟구친 강수진의 몸은 한없이 가볍고 우아한 몸짓으로 허공을 부유(浮遊)했다. 오네긴 역 제이슨 레일리와 호흡을 맞춘 1막과 3막 파드되(2인무)는 미술관 속 명화(名畵)가 연속 동작으로 펼쳐지는 것처럼 유려하고 황홀했다. 가녀린 손짓과 수줍은 표정으로 연기한 십대 소녀의 들뜬 모습은 실제 나이를 무색하게 했다.
'오네긴'은 강수진의 발레 인생에서 특별한 작품이다. 그녀는 지난 4일 기자 간담회에서 "1996년 처음 공연했을 때부터 사랑에 빠졌고, 내 스타일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작품"이라며 "'오네긴'으로 은퇴를 하게 돼서 기쁘다"고 했다. "더 활동할 수는 있지만, 작품을 100% 최고 수준으로 할 수 있을 때 그만두고 싶었다"고도 했다.
15세 때 모나코로 발레 유학을 떠났던 강수진은 1985년 스위스 로잔 발레 콩쿠르에서 우승했으며, 이듬해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 들어간 뒤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 정상급 발레리나로 활동했다. 지난해 국립발레단장을 맡은 뒤로는 무용가와 대표의 역할을 병행해 왔다.
8일 공연이 끝난 뒤 분장실에서 강수진을 만난 한 무용계 인사는 "무대에서 울던 감정이 진정된 모습이었다"고 했다. 기분 좋은 표정으로 활짝 웃으며 그곳을 찾은 국립발레단 단원들에게 "내일 봐요"라며 인사했다고 한다. '끝이지만 시작'이라는 본인 말처럼, 후진 양성과 발레단 운영에 전념하게 될 강수진의 새로운 삶은 이제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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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 간담회 일문일답
인사
리드 앤더슨: 안녕하세요. 시차 때문에 조금 힘들지만 다시 와서 기쁩니다. 한국에서 여러 번 공연했는데 강수진 덕분에 그런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은 지난번과는 다르게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많은 젊은 무용수들이 있고, 이미 수석무용수이고 유럽 전역에서 스타가 된 무용수가 많습니다. 젊은 무용수와 함께 오니 제가 19살에 느꼈던 걸 다시 느낍니다. 설레고 흥분되는 공연입니다.
저희 발레단이 유명하게 연출했던 작품이 존 크랑코의 1961년 <로미오와 줄리엣><오네긴><말괄량이 길들이기> 등이 있습니다. 수년 전만해도 미국, 유럽에서만 공연했는데, 오늘 날 특히 <오네긴>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고, 한국, 중국, 일본을 비롯 유럽 전역에서 공연되고 있습니다. 강수진이 잘 해줘서 그녀에게 최적의 역할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곳에서 오네긴으로 다시 만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강수진은 지금 한국 국립발레단 예술감독으로 자리하고 있는데, 예술감독으로서 저의 세대에서 새로운 세대로 바통을 넘겨 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이슨 레일리는 강수진과 여러 차례 공연했습니다. 한국에서 환상의 호흡을 보여주는 무대를 기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강수진: 반갑습니다. 바쁘신데 시간 내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공연은 아시다시피 저에게도, 한국 팬들에게도 굉장히 특별하다 생각합니다. 발레리나로서 한국 무대에 서는 것은 마지막이라고 선언했고, 내년 독일에서 은퇴공연이 더 있지만 한국에서는 마지막입니다. 3일간 많은 분들의 성원이 필요합니다. 내일 공연하는 컨디션이 중요한데, 준비는 잘 되었고 최선을 다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제이슨과 3번 공연 모두 주역으로 오르게 되었습니다.
리드 앤더슨에게 특별히 감사합니다. 국립발레단 예술감독을 시작했을 때 조언을 많이 해 주셨어요. 그리고 20년간 앤더슨 아래에서 발레리나로 작업하고 예술감독인 그를 보면서 어떻게 행정을 이끌어 나가는지 많이 배웠습니다. 저에게는 최고의 감독님입니다. 덕분에 제가 감독으로 쉽지 않지만 완전히 새로운 문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정말 많이 배웠고, 배우는 과정에서 또 배우는 이러한 것들이 흥미롭고 감사드립니다. 내일 저녁 프레스콜에 오셔 공연과는 분위기가 좀 다르지만 발레단이 열심히 하는 모습 봐주시기 바랍니다. 언제나 생각해주고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이슨 레일리: 안녕하세요. 이곳에 오게 되어 영광스럽습니다. 특히 강수진과 다시 호흡을 맞춰 영광입니다. 설레는 공연입니다. 같은 마음으로 즐겨주시기 바랍니다.
질의응답
Q1. 발레단으로서 한국에서는 것은 마지막이라고 들었다. 다시는 무대에 서지 않는가?
강수진: 내년까지는 발레를 해요.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번 세 번이 마지막입니다. 전막으로서도 마지막이고, 제 생각으로는 한국에서의 발레는 마지막이 될 거예요. 단장으로서 국립발레단에 왔을 때 처음에는 같이 무대에 오르려고 했는데 지금은 우리 발레단이 정말 잘합니다. 지금 생각으로는 발레리나로서 한국에서는 마지막이고 내년 독일에서 은퇴합니다.
이후에는 한국에서 저를 발레리나로서 보는 것은 없을 겁니다. ‘은퇴는 은퇴’입니다. 말 그대로 이제 발레는 안 한다는 의미예요. 이번 무대는 저를 사랑해주는 분들께 감사드리는 무대입니다. 전석 매진이라는데 정말 감사하고,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이 자리에 올 수 있었던 것은 많은 분들의 성원과 사랑입니다. 그런 감사의 마음으로 올리는 공연입니다. 그래서 더 특별하고요!
Q2. 마지막 무대, 특별할 것 같다. 이번 <오네긴> 작품을 공연하는 소회, 마음은 어떤가?
강수진: 사람일은 모르잖아요. 오늘은 정말 안 한다고 말씀 드리는데 어떻게 될지 모르죠. 하지만 지금으로서 제가 결정한 것은 이번이 마지막 한국에서의 발레 무대입니다.
마지막 무대, 당연히 특별하죠. 그런데 단장으로서도 할 일이 많아요. 최선을 다해 준비하는 과정에 있고 우선 좀 잤으면 좋겠어요. (하하)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중요하잖아요. 저한테는 그게 당연히 마지막이라 드라마틱하지만 마지막이면서도 새로운 시작이라는 느낌이 있어요. 어느 나라에 가든 마지막 무대는 특별하지만 아직까지는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 마지막 무대까지 가봐야 알 것 같아요. <오네긴>은 언제든지 제 마음을 완전이 빼내가요. 이번은 특히 더 그럴 거예요. 좀 더 감동적인 무대가 될 거예요. 저에게는.
Q3. 2004년 많이 울었는데
강수진: 이번에도 그렇겠죠. 그날의 타티아나로서 느낌이 또 다르겠죠. 그 감정이 쉽지는 않을 것 같아요. 무대가 완전히 닫혔을 때 알 수 있을 것 같네요. 아쉬움요? 저로서는 오히려 아쉬움 없어요. 늘 얘기했지만 하루하루 열심히 살았어요. 당연히 열심히 할 수 있는 만큼 연습하고요. 아프더라도! 제 나이가 거의 50이에요. 국립발레단에 아름다운 무용수가 많아요. 제 자신에 완전히 만족하고 늘 최선을 다 해서 더도 덜도 후회 없어요. 이번 공연도 최선을 다해서 할 거고 후에 바통은 좋은 때에 물려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후회 없는 이 느낌이 좋고 아쉽지 않아요.
Q4. 강수진이라는 발레리나를 내년에는 놓아줘야 한다. 기분이 어떤가?
리드 앤더슨: 이번 시즌이 제가 강수진과 함께하는 20년째 되는 해입니다. 슈투트가르트 부임한지도 20년입니다. 특별하죠. 그리고 우리는 지난주에 슈투트가르트에서 같이 공연 했고 이번 주는 한국에서 합니다. 우리는 정말 호흡이 잘 맞는 사이입니다. 발레단 운영에 대한 저의 철학은 무용수가 나에게 무엇을 해주느냐가 아니라 내가 무용수에게 무엇을 해주느냐가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저희가 지금 하나의 고전발레를 함께 해 오면서 전 세계적으로 알리고자 많이 노력했습니다. 함께해온 작품이나 시간이 전 세계적인 차원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강수진이 저를 떠난다 해도 떠난 게 아닙니다. 제 마음에서는 떠나지 않습니다. 다른 무용수들도 마찬가지지만 무용수들이 객원으로 많이 가는데 혼자 가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는 슈투트를 가지고 갑니다. 세계 어디에서든 동료들에게, 후세에게 나눠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 우리가 배운 것이고 강수진이 떠나더라도 그녀가 하는 일에 대해 다 알 수 있습니다. 수진과는 뗄레야 뗄 수 없는 마음으로 이어진 관계입니다. 그리고 서로를 존경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예술가에게는 중요한 마음이죠. 사랑하는 마음과 존경이 있는 한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Q5. 행정일을 많이 하셨을 텐데 연습은 어떻게 했나?
강수진: 은퇴생각은 하지 않았는데, 단장을 받아들이면서 은퇴를 결정했어요. 발레리나로서 타티아나로 은퇴한다는 것은 정말 복있는 발레리나에요. 96년부터 이 작품을 하고 있는데 처음부터 사랑에 빠졌어요. 많은 작품들이 어느 순간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이 있는데 <오네긴>은 아니에요. 마지막 작품으로 이 작품보다 좋은 건 없어요. 발레리나마다 다르겠지만 저에게 이 작품이 은퇴작으로는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다행히 할 수 있는 작품이고요. 언제나 얘기 하듯 늦기 전에 은퇴하고 싶었어요. 무대에서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그 느낌을 잃고 싶지 않았어요. 더 할 수는 있죠. 하지만 제가 원하는 것은 아니에요. 어렸을 때부터 생각했고, 저는 제 느낌이 중요해요. 특히 작품에 대한 존경이 너무너무 커요. 100% 최고의 수준으로 해야 한다는 나름대로의 압박 같은 게 있어서 저 자신에 대한 게 매우 중요해요. 그리고 관객들에게는 더 중요하죠. 관객들이 돈까지 주면서 ‘아니다’ 하시면 안되죠. 관객 없이 저는 무대에 설 필요는 없어요. 제 스타일에 맞는 작품이고 제가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역이라 은퇴작으로 선택했습니다.
인터뷰 때 들으셨겠지만 하나의 모험이었어요. 행정을 한 번도 안 해보다 작년에 시작했는데 사람은 뭐든 배우면 되더라고요. 발레리나로서 발레만 해온 인생은 아니었어요. 전 세계 다니면서 사람들을 만났고, 감독님이 가끔 프리랜서로 얘기했는데 계산을 배우면 돼요. 수학을 그렇게 못하진 않았어요. 계속 보다보면 그렇게 못 배울 것은 아니에요. 당연히 직원들에게도 많이 배웠어요. 모르면 직원들에게 물어봐요. 그래서 작년보다는 훨씬 많이 배웠고, 재밌어요. 저는 직원들을 사랑해요. 사무실 가는 거 너무 행복하고, 단원들도 사랑하고요. 스태프들과 이렇게 잘 맞을지 몰랐고 감사드려요. 20년간 아래에서 지켜보면서 감독님이 홍보, 기획, 경영하는 것, 사람들 만나는 것, 제가 봐 온 것이 많았어요.
잠 못 자는 이유죠. 단장직이 우선 저에게 1순위에요. 제가 예스를 한 순간부터 발레리나로서 24시간은 못한다는 것을 알았어요. 새벽에 원래 일찍 일어나지만 더 일찍 일어나고, 단장 역을 하기 위해 더 일찍 연습하고, 단원들과 함께하고, 코치하고, 나름대로 관리해야 하고.. 사실 한꺼번에 할일이 많아요. 대신 불편한 것은 없어요. 인생 한번 사는 거 이렇게 사는 거 너무 감사드려요. 나중에 무덤가면 계속 잘 거에요. 그거 생각하면 도움이 되요. 힘들다고 생각하면 힘들어요. 그런데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니에요. 이렇게 좋은 기회를 주셨고, 거기에 대해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단장으로서 발레리나로서 정말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아까도 헤롱헤롱 했지만 잠이 부족했어요. 언젠가 자겠죠. 한 달에 한번은..
은퇴이후에 안하고 싶어도 연습은 하게 될 거에요. 늘 해온 거라 안 할 수 없어요. 이건 습관이니까요. 내년 일이니까 내년에 다시 말씀 드릴게요.
Q. 예술감독으로서 강수진을 평가한다면?
리드 앤더슨: 유명한 감독이신 존 크랑코가 살아있을 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어떤 종류의 아티스트이든 그에게 특별한 재능이 “그게” 있어 “It”! 이렇게 말했습니다. 있거나 없거나 둘 중에 하나지 중간에 얻을 수 있는 건 아니죠. 그가 말한 ‘It’ 이라는 게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딱 정확히 말하지 못하지만 카리스마라고 할 수도 있죠. 강수진에게는 그게 있어요. 이 공연을 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이미 상상을 하죠. 강수진이 무대에 올라오는 순간 인생에 특별한 누군가가 들어온다는 것을 경험하죠. 강수진은 엄청난 훈련을 합니다. 그것들 깨닫기 까지는 매일매일 연습과 훈련이 있는데 게을리 하지 않는 부지런한 무용수입니다. 재능, 열정, 카리스마를 다 가지고 있는 무용수입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오네긴>의 감성적인 역부터 <말괄량이 길들이기>의 재미있는 역까지 다 할 수 있습니다. 추상적인 작품으로도 관객들에게 정확하게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처음에 말씀 드린 ‘그것’이 있기 때문에 강수진은 특별한 예술가입니다.
Q. 다른 발레리나의 은퇴공연에도 같이 하셨다. 뛰어난 분들과 은퇴 공연을 같이 하는 이유는?
강수진: 제 생각에 제이슨은 파트너로서 최고예요. 제이슨 손안에서의 느낌이 확실해요. 발레리나로서 파트너가 받쳐주고 연습과정에서부터 신뢰가 있어요. 무용을 같이 할 때는 내가 어떻게 되는 제이슨이 있으니까 라는 생각이 있어요. 가면 갈수록 제이슨도 경험과 연륜이 있어서 앞으로도 많은 발레리나가 은퇴 작품을 같이 하지 않을까.. 어떤 파트너와 춤을 추는지 중요하고 감사하고 행복해요.
Q 대중적인 인기, 최고라는 수식어가 부담스럽지 않은지?
강수진: 아니에요. 너무 단순해서 탈이긴 한데 저는 그냥 하루하루 잘 살아요. 시작해서 끝을 잘 내면 저는 행복해요. 대중들이 저를 인정해주고 사랑해주는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다보면 부담을 느끼지 않아요. 쇼핑을 할 때도 알아보면 그저 감사해요.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 저를 이렇게 생각해 주신다는 게 감사해요. 부담을 안 느낀다는 게 감사하는 제 진심이 있기 때문일 거에요. 빵집에서 하나 더 줄 때 있잖아요. 진짜 감사해요. 그래서 나중에 가면 3배로 사요. 살아가는데 감사하는 건 중요해요.
Q. 해외에서 활동하는 롤 모델이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많은 수식어가 붙기도 하는데---
강수진: 아마도 이 모든 수식어는 저로서는 만약에 제가 아무리 최고, 최초라는 말이 붙었을 때 저는 중요하지 않았어요. 저를 사랑해 주신다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어요. 많은 부분들이 처음으로 시작했고, 후배들은 그 후에 시작했잖아요. 제가 발레를 시작했을 때 한국에서는 발레를 잘 몰랐어요.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 수식어가 붙어요. 어떤 일들은 제가 아니라고 해도 그렇게 붙여줘요. 지금은 거기에 대해 신경 안 써요. 제가 이력서를 낼 때는 항상 사실만 내요. 아마도 많은 분들이 처음에 최고, 최초라고 쓰기 시작해서 거기에 계속 딸려가요. 근데 저는 그런 거 신경 쓰며 살 여유 없어요. 그래도 감사해요. 제가 하는 말은 항상 사실이에요. 쓰시는 분에 따라 좀 바뀌지만 많은 분들이 그렇게 쓰는 것은 저를 그렇게 생각해 주시기 때문일 거에요. 30년간 프로 발레리나로서 살면서 조금한 것에서 감사가 시작돼요. 연습이 잘 되어서 기쁘고, 사람들이 꿈꾸는 공연장에서 추억이 생기죠. 하나하나 꼽기는 힘들지만 꾸준히 살아온 것에 대해 자부심이 있어요. 힘든 적은 부상을 당했을 때에요. 모든 무용수가 거쳐야 할 삶이라서 불평하지는 않아요. 회복했을 때 더 강해지거든요. 제 이름을 ‘강감사’ 라고 해야 할 것 같아요.
Q. 요즘 스케줄은? 은퇴 후의 계획은?
강수진: 쪽잠인가요? 20분자다 일어나고 10분자다 일어나고. 그래도 다행히 어제는 2시간은 잔 것 같아요. 쪽잠이 습관되다 보니까. 365일 시차에 적응하려고 노력하면서 사는 것 같아요. 어디 한곳에 오래 머물 때 새벽에 쭉 자면 행운이고, 2시간 정도 잤다면 쪽잠을 자게 되죠. 차에서 긴 시간 이동할 때 그런 쪽잠들을 많이 자요. 그래서 견디는 것 같아요. 제 꿈은 하루에 7시간을 한번 쭉 잤으면 좋겠고 그런 날이 올 거라 믿어요. 믿으면 이루어진다니까. 수면제를 먹을 순 없죠. 통증 약을 제외하고는 몸을 위해 먹을 수가 없으니까요. 은퇴 후에는 아마도 수면제 한번 먹고 잘 수도.. 이건 농담입니다.
은퇴 후에는 저한테 집중적으로 중요한 것은 단장 역할입니다. 제 생각에는 특별히 길게 생각하지는 않지만 후배들과 작업하며 발전하는 것을 보는 게 너무너무 행복해요. 마지막 마지막 하지만 그렇게 마지막을 생각할 시간도 없고, 의미가 크지만 한편으로는 크지 않은 게 또 다른 시작이 있으니까요. 은퇴 한 다음날에도 계속 일은 해야 하니까요.
마지막 인사
리드 앤더슨: 특별히 한국 관객 여러분께 드리고 싶은 말이 있어요. 한국 무용수들 중에 유럽에서 굉장히 존경받고 가치있게 여겨지는 무용수가 많습니다. 전 세계에 잘 나가는 발레단에 가면 잘 훈련된 한국인 무용수가 없는 곳이 없습니다. 자부심을 가지셔도 좋습니다. 존 크랑코 스타일의 발레 외에 다른 스타일을 많이 가르치고 작품을 하는데 가는 곳마다 훌륭한 무용수가 많습니다. 활발한 활동을 하는 한국 무용수를 보지만 그래도 최고 중의 최고는 강수진입니다. 슈투트에 입단했을 때 정말 어린 나이였는데, 한국인 무용수를 위해 길을 열어 주었습니다. 한국 무용수들을 위해 큰 업적을 남겼습니다. 강수진과 함께 한국에서 작품을 하게 되어 정말 기쁘고 많이 기대해 주세요.
제이슨 레일리: 이번 무대를 또 한 번 하게 되어 정말 감사하고 행운입니다. 지난 번 무대와는 여러 면에서 다르지만 여러분이 보시면 훨씬 즐겁고 좋아하실 것 같습니다. 많이 사랑해 주세요.
강수진: 소중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뒤에서 서포트 많이 해 주셨고, 관객들한테 너무 감사드리고, 최선을 다해 좋은 공연 보여드릴 테니 언제든지 진심어린 마음으로 하는 공연들 좋게 봐주시고 즐기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