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기획 취재_ 2015 무용창작산실 우수작품 공연
과시적, 기대이하의 빈약한 완성도
김인아_<춤웹진> 기자

 창작 활동의 활성화를 목적으로 추진된 창작산실 지원사업은 지원규모나 방식에 있어 기존 사업과 차별화된 정책으로 예술계의 이목을 집중시켜왔다. 무용분야의 경우 2011년 발레를 시작으로 2013년 한국무용, 현대무용 부문까지 지원을 확장시켰고, 장르별로 운영주체를 달리해 예산과 세부사항을 해당기관이 집행했다. 운영주체, 지원방식 등 크고 작은 변화를 겪은 끝에 지난해 사업예산이 문예진흥기금으로 이관되면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최·주관하는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창작산실 지원사업은 크게 시범공연지원사업(쇼케이스), 우수작품제작지원사업(우수작품 공연), 우수작품재공연지원사업(재공연)으로 나뉘어 연계적으로 운영된다. 올해는 시범공연지원사업 무용부문에 21개 팀을 지정, 대극장 공연에 각 천오백만 원, 소극장 공연에 각 천만 원을 지원하였다. 이후 단계별 심사과정을 거쳐 지난 5월, 창작산실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우수작품에 총 9개 팀을 최종 선정하였다. 대극장 5작품에 각 6천만 원(총 3억원), 소극장 4작품에 각 3천만원(총 1억2천만원) 등 총 4억2천만 원의 제작 예산이 지원되었는데, 특히 우수작품제작지원사업의 지원금이 전년(3억2천만원) 대비 1억원 증액된 점은 이번 창작산실의 달라진 점이었다.
 올해 창작산실 우수작품 공연은 11월 9일부터 28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에서 열렸다. 대극장 부문에 정신혜무용단, 최소빈발레단, 아트프로젝트 보라, M발레단, 미나유 등 5개 단체, 소극장 부문에 안수영컴퍼니, 마홀라컴퍼니, 이정연 댄스프로젝트, 최진수발레단 등 4개 단체가 60분 안팎의 작품을 각각 이틀씩 공연하였다. 지난해 소극장 공연의 경우 두 작품씩 짝을 지어 올렸던 것에 비해 올해 모든 작품이 풀타임으로 제작되어 각각 이틀의 공연기간을 확보한 것이 달라졌다. 관객 입장에서는 하루 한 편씩 여유롭게 관람할 수 있어 마치 무용축제처럼 이번 창작산실을 즐길 수 있었던 셈이다. 장르별로는 한국무용 2편, 현대무용 4편, 발레 3편이 올라 지난해 총 9편 중 2개 작품에 그쳤던 발레가 올해 3편으로 늘어났다.

 



 안수영의 <뉴턴의 3법칙>은 관성의 법칙, 가속도의 법칙, 작용·반작용의 법칙을 춤과 말이 결합된 렉쳐 퍼포먼스로 풀어냈다. 일상 속에 숨어있는 과학이론을 재기발랄한 춤으로 입증해나가는 재미가 단연 돋보인다. 어렵기 만한 ‘과학’과 ‘무용’이 유쾌하게 만나는 과정에서 관객과의 소통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냈다.
 춤비평가 김예림은 “과학이론에 대한 깊이를 조금 더 탄탄히 다져야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관객과 소통하기 위해 치밀하게 시나리오를 짜고 연습한 흔적을 엿볼 수 있었고, 안무가 스스로도 한 단계 발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완성도 높은 작품을 보이는 것 못지않게 안무가가 성장하는 과정을 담는 것도 창작산실의 긍정적인 결과물일 것”이라고 평했다.
 마찬가지로 이정연댄스프로젝트의 〈Smile Mask Syndrome〉은 평범한 일상의 의미를 춤으로 구현해 대중의 이해를 높인 작품으로 꼽을 수 있다. 작품은 가상의 공간인 SNS에서 항상 행복한 모습만을 드러내는 현대인의 허상을 꼬집는다. 스마일 강박증에 사로잡힌 나머지 현실과 가상의 자아를 일치시킬 수 없는 괴리감이 오롯이 투영되어 있다. 모니터 또는 액정화면을 연상시키는 사각형의 다양한 프레임 안에 몸을 가두고 부자연스럽게 뒤틀리는 움직임을 쏟아낸다던지 ‘안녕’, ‘외로워’와 같은 활자 영상이 몸에 투사되는 등 움직임, 대사, 소품, 영상, 조명을 매개로 보다 직접적인 주제전달이 이뤄져 관객의 공감을 자아냈다.

 



 올해 창작산실에서 관객의 가장 많은 호응을 얻은 작품은 아트프로젝트보라의 <소무>였다. 사회적 관념이나 상징에 은폐되어 있는 여성의 몸을 직시하고 명징한 몸의 언어로 여성을 진지하게 성찰하겠다는 다소 둔중한 의도가 깔려있다. 거문고를 형상화한 오브제와 수조(水槽)를 연상시키는 무대장치가 시선을 사로잡는 가운데 스트링으로 제한적인 공간에 가둬진 여성의 몸, 그 안에서 과장되고 그로테스크한 움직임이 나열된다. 동서양을 아우르는 현악의 음색과 일렉트로닉 리듬을 가미한 음악은 시각에 이어 청각마저 마비시키는 증폭된 감각을 보여준다.
 춤비평가 이지현은 “장점을 갖춘 젊은 주자로서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안무가이나, 대극장에서의 안무는 감각만으로는 부족하다. 주제의식을 책임있게 소화해 내지 못한 채 억압된 여성성으로 생기를 잃은, 세련되지 않은 감각을 표출하였다. 페미니즘에 대한 더욱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춤비평가 김예림은 “감각적인 시각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관객들의 호응이 좋았지만, 심오한 주제에 접근하지는 못했다. 사회가 바라보는 여성의 몸에 대해 탐구하는 것이 과제로 남았다. 안무자에게는 시각을 연구할 수 있는 좋은 연습의 기회가 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무용 1세대인 미나유 안무가의 〈2015〉는 그 자체로 이목을 끄는 작품이었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통틀어 일어날 수 있는 여러 상황들을 7가지 이미지로 대별시켰다. 무대 위의 움직임은 폭력적이거나 활기차고, 때론 현란하거나 혼란스럽다. 압축된 이미지를 뚜렷한 연계성 없이 펼쳐져 구체성이 덜하고 따라서 명확한 내러티브를 확인할 수 없다. ‘현재, 우리는 어디까지 왔을까?’ 프로그램북에 있던 묘연한 의문은 관객 저마다의 생각으로 마침표를 찍었을 것이다.
 정신혜무용단의 <화火, 화和-바람을 만나다>는 물, 흙, 바람, 불이 만나 하나의 그릇을 만들어내는 것과 같이 전혀 다른 물질의 결합과 생성, 조화의 과정에서 의미를 찾는 작품이다. 깊은 호흡의 우리 춤, 낮은 음역의 보이스 무브먼트, 설치미술과 조명, 영상 등이 자연의 각 요소를 구현하며 화합을 이뤄간다.
 춤비평가 김예림은 “여러 장르와 협업을 시도했는데, 그 중 서양의 소리와 동양의 움직임 조화가 인상적이었다. 다만 군무 무용수들의 연령대가 낮아 완숙미를 보여주지 못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평했다.
 한국 창작춤의 다른 하나는 마홀라컴퍼니의 <거울속의 거울>이다. 서로를 들여다보고 나를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 속에서 서로 닮아가는 모습, 다르지만 비슷한 우리의 모습을 서정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부부무용가 김재승, 장윤나의 호흡과 세밀한 움직임이 라이브 음악과 충만한 교감을 이루며 작품의 깊이를 더했다.

 



 3편의 발레작은 모두 역사적 인물을 주요 소재로 하였다. 최소빈발레단의 <길 떠나는 가족>은 이중섭의 다양한 그림들을 통해 가족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하였고, 최진수발레단 〈LA DANAIDE〉은 로댕을 사랑한 비운의 예술가 까미유 끌로델을 묘사하였다. M발레단의 <안중근, 천국에서의 춤>은 일제강점기 시대적 고뇌가 서린 안중근의 삶을 재조명하여 대극장 무대에 올렸다.
 이번 발레작품에 대한 전반적인 반응은 매우 부정적이었다. 올해는 전체 작품 가운데 발레작품의 안배를 높여 창작발레를 적극적으로 지원, 육성하는 움직임을 보였기 때문에 안타까움이 더했다.
 장승헌 전문무용수지원센터 상임이사는 “안중근을 다룬 M발레단의 작품은 발레 구성에 용이한 사랑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주인공의 인간적인 고뇌를 느끼기에 부족했고, 역사적 인물에 대한 접근이 가벼워 완성도를 보여주지 못했다. 최진수발레단의 경우 일주일 간격으로 서울무용제에도 참가했는데 창작과정의 어려움, 공연의 완성도를 고려한 조율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춤비평가 방희망은 “영웅주의만을 내세운 작품은 이제 너무나 진부하다. M발레단의 <안중근, 천국에서의 춤>은 <박쥐>서곡이나 말러 교향곡 5번 등 대중적으로 많이 쓰인 음악을 짜깁기하고 맥락 없이 상모돌리기를 넣는 등 창작에 대한 고민을 심화시키지 못했다. 단지 애국심을 내세운 소재라는 것과 안무가의 경력만 보고 창작산실 지원작품으로 선정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실망스러운 수준의 작품이었다”고 촌평했다.
 지난해 창작산실 지원사업을 진단하는 <춤웹진>의 좌담에서도 발레부문의 열세가 강조되었고, 전반적인 침체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다. 이번에도 창작발레 관련 문제제기와 해결방안을 두고 얼마간의 진통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춤비평가 김예림은 “창작발레의 열악함을 인식했기 때문에 창작산실도 2011년에 발레 분야를 처음으로 지원한 것이었다. 창작발레의 결과물이 이렇게 취약한데 장르별 쿼터제를 굳이 지켜야하는가?라는 의견과 공공기금의 특성과 순수예술의 장려를 위해 고루 선정해야한다는 의견 대립이 끊임없이 불거져 나왔다. 그러나 정작 발레 안무가들은 정체된 상태에서 안일한 자세로 작품에 임하고 있다. 작품을 바라보는 관점, 춤 어휘 동작, 음악에 관한 연구 없이 과거부터 이어져온 극무용 형식의 창작발레에 안주한 것은 아닌지 자문해봐야 한다. 컨템포러리 정신에 입각해서 전세계적으로 창작춤이 어떤 흐름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감지하고 자신만의 작품 색을 찾기 위해서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피력했다.

 



 연속되는 수준저하, 무용창작산실 지원사업 해법은 없는가?

 올해 창작산실은 “수작이 없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인상적이었거나 호응이 있었던 작품을 꼽을 수는 있어도 창작산실 지원사업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완성도 높은 작품을 찾기 어렵다는 총평이다.
 춤비평가 이지현은 “이번 창작산실은 다분히 과시적이었다. 새로운 안무가들이 쏟아내는 다양한 스타일의 신선한 작품, 경계를 넘나드는 창작활동을 기대했으나 오히려 예년에 비해 전체적으로 창작물로서의 완성도는 떨어지고 말았다. 창작산실은 지원금과 무대라는 안정성을 기반으로 안무가를 훈련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이것이 다른 지원제와 차별화되려면 창작과정에 자극을 줄 수 있도록 지원 전과정을 심화된 프로그램으로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단순한 멘토링을 넘어서 창작 과정에서 ‘전문적인 컨설팅’이 지원되어야 하며, 안무 훈련을 위한 ‘창작 워크샵’의 기회도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춤비평가 김예림은 “결과적으로 지난해보다 눈에 띄는 작품이 적었다”면서 “무용창작산실지원사업은 참여하는 예술가나 관객의 만족도가 그리 높지 않다. 연극의 경우 대본 심사, 대본 낭독 등 쇼케이스 전부터 훨씬 더 체계적인 선정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결과물의 완성도가 만족스러울 수밖에 없다. 무용은 1차 서류심사 후 바로 쇼케이스, 이후 우수작품 공연으로 넘어가기 때문에 중간과정을 관리, 지원하는 시스템이 결여돼있는 상태다. 무용 역시 장르별 특성을 고려한 세분화된 프로그래밍, 예를 들어 쇼케이스 전후로 프리젠테이션이나 라운드테이블과 같은 중간 점검 과정을 거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무대에 오르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소모적인 문제를 조율하고 매끄러운 흐름을 조언할 수 있는 전문적인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 등 간접지원의 영역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한편 문예위는 12월 4일부터 27일까지 아르코미술관 스페이스 필룩스에서 무용창작산실 우수작품 전시 <춤추는 시간의 기록 : HOW DO YOU WRITE DOWN A DANCE?> 를 개최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2015 무용창작산실 우수작품’의 제작과정에서부터 실제 공연에 이르는 전 과정을 김근우의 사진과 남지웅의 영상으로 만날 수 있다. 

2015. 12.
사진제공_김근우/한국문화예술위원회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