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송년기획_ 2015 예술계 Key Word ‘예술검열’
문화융성과 예술탄압이 공존하는 나라
장광열_<춤웹진> 편집위원

 대한민국의 예술검열 문제가 일본 도쿄 한복판에서 열린 라운드 테이블의 주제로 올랐다. 2015년 11월 28일 토요일 Tokyo Owlspot Theater. 일본의 연출가 토시키 오카다(Toshiki Okada)의 주최로 열린 이날 행사는 오후 3시 45분부터 5시까지 진행되었으며, 한국(안무가 정영두, 프로듀서 고주영)과 일본(토시키 오카다와 연출가 Junnosuke Tada)에서 각각 두 명이 패널리스트로 참여했고 주로 한국에서의 검열사태에 대해 이야기를 듣는 순서로 진행되었다.
 안무가 정영두의 발언.
 "저는 먼저 공연을 방해했거나, 막았던 분들에 관해 생각해 봅니다. 그 분들은 스스로 무언가 두려웠던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러한 자기검열... 모든 예술가의 꿈은 이런 방식의 자기검열로부터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펼치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언가 하려고 할 때 ‘하면 안돼!’라고 막는 무의식은 아마도 억압의 기억에서 비롯되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국가, 혹은 사회로부터 받은 억압과 연관됩니다. 그러나 인간의 역사 속에서 ‘국가’라는 개념이 도입된 것은 짧은 시간일 뿐입니다.
 한 국가의 국민으로 결정되는 과정을 보면 우리는 태어나면서 스스로 ‘국가’를 선택할 수 없습니다. ‘국가’는 국민이 국가가 원하는 국민, 국가가 원하는 인간으로 키워지기를 원합니다. 반면에 국민이 ‘국가’에게 바라는 권리는 점점 더 상실되는 세계 속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불과 몇십년 전, 50-60대 세대만해도 한국사회에서는 동료나 가족, 친구들이 어느 날 갑자기 죽거나 사라지는 일이 흔한 일이었습니다. 이러한 공권력을 보며 자라난 우리 세대는 아마도 이러한 공권력에 대한 두려움을 무의식 속에 가지고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내가 두려워하는 이 두려움이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인지를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두려움이 국가와 사회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를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검열에 관해 한국과 일본, 중국이 모두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말씀하신 분이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한국과 일본이 더 심각한 상황이라고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한국과 일본은 스스로 민주주의를 완성한 척 하고, 완성한 것처럼 믿고 있으니까, 스스로 자유롭다고 생각하는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2015년 한국의 공연예술계는 패닉 상태에 빠져있다. 메르스 여파에 예술지원정책을 좌지우지 하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좌초는 평론가들의 심의 거부, 예술가들의 연좌농성, 릴레이 시위 등으로 이어졌다.
 국회 국정감사에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직원과 위원장이 증인으로 출석해 특정 예술가의 예술탄압과 관련해 볼쌍사나운 모습을 연출하더니,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산하 공연예술센터의 직원이 자신들이 운영하는 공연장에서 하는 공연을 의도적으로 방해하는 초유의 행위로 직무정지를 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대한민국 전통예술의 본산이라고 하는 국립국악원에서는 애매모호한 이유를 들어 자신들이 초대했던 예술단체에게 공연불가를 통보하는 희한한 행위를 하더니 급기야 여타 예술가들이 연속으로 공연취소를 하는 사태를 야기 시키는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런 일련의 사태가 이어지면서 한국의 공연예술계 현장에서는 ‘정치검열’ ‘예술검열’이란 단어가 가장 많이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안무가 정영두의 1인 시위가 페이스북을 통해 알려지면서 드러난 국립국악원의 예술검열 사태는 급기야 외국의 예술가들이 한국의 예술검열을 논할 정도로 우리에게 엄청난 부담을 안겨주고 있다. 광주항쟁 때 군인들이 민간인들에게 총을 겨누던 모습, 국회의원들이 커다란 도끼를 들고 국회 회의장을 부수던 모습, 죽음에 직면한 수많은 승객을 버리고 혼자 살겠다고 배를 버리고 탈출한 세월호 선장의 모습을 통해 무참하게 짓밟힌 대한민국의 국가이미지는 이제 예술가들의 창작정신을 훼손하고, 아직도 예술을 검열하는 후진적인 정책으로 또 한번 대한민국의 국가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있다.
 무용가들의 잇단 공연출연 거부로 이어진 국립국악원의 예술검열 사태는 2015년 가장 나쁜 뉴스였고, 예술가들의 사기를 저하시킨 악재였다. 사태의 발단이 되었던 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 금요공감 프로그램은 올해 처음 시행되었으나 거의 매회 만석을 기록하고, 뛰어난 프로그래밍과 높은 예술적 성취도로 호평과 함께 국립국악원의 이미지를 개선시키고 있던 일등공신이었기에 이 같은 불행한 사태는 더욱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국립국악원 예술검열의 이모저모를 안무가 정영두와 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 금요공감의 전 예술감독을 통해 들어보았다. 예상했던 것보다 그 과정은 너무나 놀라웠다.
 그들의 생생한 증언은 대한민국 예술행정의 부끄러운 민낯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고 있다. 한국의 현장 예술가들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국립국악원에 의해 자행된 이 불행한 사태가 담당 직원과 기관 책임자 혼자의 결정이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듯했다. 상급기관의 지시를 받아 이루어진 일이고 그래서 그들은 서스럼 없이 ‘정치검열’이라고 말했다.
 중앙정보부 요원이 공연장에 파견 나와 있고 공연예술윤리위원회에서 예술을 검열하던 그 시대로 회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문화융성을 내걸고 문화융성위원회까지 만든 이 정부가 보여주고 있는 최근의 행보는 그래서 이율배반적이다. 문화와 예술이 숨 쉬는 나라가 아니라 문화와 예술이 숨을 막는 모양새이다.
 한국의 정부는 2015년 한해 잘못한 일련의 사태를 거울삼아 문화와 예술이 살아 숨쉬는, 문화예술을 통해 대한민국의 국가 이미지를 고양시키는, 진정한 문화융성을 위한 예술지원에 전력을 다 해야 한다.

 



국립국악원 예술검열 사건일지

 

● 10월 24일
국립국악원은 앙상블시나위, 정재일, 극단 골목길의 박근형 출의 협업으로 11월 6일 "풍류사랑방 금요공감"의 공연에서 연출가 박근형 씨에게 맡은 연극적 요소를 빼고 공연해달라고 앙상블시나위에 전화연락, 이를 앙상블시나위가 거부, 국립국악원은 이날 공연을 다른 프로그램으로 변경했다.

● 10월 26일
극단 골목길 사무실에서 박근형 연출가, 앙상블시나위 대표, 풍류사랑방 금요공감 예술감독이 회의를 가짐.
박근형 연출가는 자신과 극적인 요소를 빼고 공연할 것을 권했으나 정재일, 앙상블 시나위는 끝까지 함께 협력하는 공연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국립국악원에 통보했고 결국은 공연이 취소되었다. ● 10월 28일 안무가 정영두는 자신의 페이스 북에 "국립국악원은 이유 없는 아티스트 탄압과 작품의 사전 검열을 중단하라!"라는 제목의 글을 게재했고, 미국인 음악가 젠 슈와 거문고 연주자 허윤정과 함께 즉흥 트리오를 공연할 예정이었지만, 출연을 거부했다. 출연거부 이유로 국립국악원 공연 작품 사전 검열과 특정 연출가에 대한 정치적 탄압을 목격한 이상, 아티스트로서의 최소한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출연을 거부했다고 밝혔다.

● 10월 29일
예술검열 사태가 불거지자, 국립국악원은 상반기에 세 차례에 걸쳐 연극적 요소가 포함 된 프로그램을 개최했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고, 국악 연주에 적합한 공연장이기 때문에 연극배우들의 대사 전달 등에 문제가 있다는 판단 때문이라고 변명했다. 또한 박근형 연출가와 직접 접촉 한 적은 없다라고 거짓 해명을 했다.

● 10월 30일
안무가 정영두는 자신이 출연하기로 예정되었던 ‘SOLO RITES : SEVEN BREATHS ’의 개막 시간에서 종연 시간까지 국립국악원 앞에서 사전 검열과 특정 아티스트 탄압에 대하여 사실 해명할 것을 요구하는 1인 시위를 벌였다.

● 10월 31일 - 11월 1일
안무가 정영두는 국립국악원 앞에서 사전 검열과 특정 아티스트 탄압 사실을 해명하고 예술검열 중단과 사과를 요구하는 1인 시위를 이어갔다.

● 11월 2일
안무가 정영두는 국립국악원 상부기관인 세종시 문화체육관광부, 그리고 국립국악원 앞에서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김해숙 국립국악원 원장, 용호성 국립국악원 기획운영 단장에게 예술검열 사실을 해명하고 검열 중단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 11월 3일, 11월 5일
안무가 정영두는 주일 한국대사관 앞과 시부야에서 한국 정부의 예술검열에 항의 하는 1인시위를 벌였다.

● 11월 5일
국립국악원 2차 해명, 1차 해명과 다르지 않음, 국립국악원 쪽에서 박근형 연출과 접촉한 사실에 대해 객원 예술감독이 접촉한 것이지, 소속 직원이 접촉한 것이 아니라는 어이없는 해명과 함께 앙상블시나위, 안무가 정영두를 비롯해 여러 예술가, 기획자들이 해명을 비판하고 재차 해명을 요구하자 인터넷 게시판을 폐쇄했다.

● 11월 6일
앙상블시나위는 국립국악원의 해명에 반박하는 글을 국립국악원 인터넷 게시판과 페이스북에 게재했다.

● 11월 11일
풍류사랑방 금요공감 김서령 예술감독은 자신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예술감독의 책임과 권한을 무시하는 국립국악원에 반발하여 10월 30일 예술감독직을 자진사퇴했다고 밝혔다.

● 11월 12일
11월 13일 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 금요공감 무대에 올릴 예정이었던 <여향> (차진엽,권송희,심은용) 공연 취소, 정치적인 이유가 아니라, 대사가 많은 공연이어서 풍류사랑방 금요공감에서의 공연은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해서 취소를 결정했다.

● 11월 17일
무용집단 ‘무버’ (대표 남현우, 김설진) 11월 20-22일, 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 금요공감 무대에 올릴 예정이었던 공연을 취소했다. 권리에 대한 문제가 불거지고 있는 국립국악원 금요공감 무대에서 올바른 권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작품인 를 공연할 수 없다는 이유로 공연 취소를 결정했다.

● 11월 28일
일본 도쿄 Owlspot Theater에서 오타다 토시키, 타다 준노스케 두 연출가 한국의 예술검열이라는 주제로 주최한 토론회에 안무가 정영두 참가, 국립국악원의 예술검열 사태를 소개했다.

● 12월 14일
현재까지, 예술감독이 사퇴하고 많은 공연들이 취소되는 일들이 발생했다. 국립국악원 예술검열 사건의 핵심 책임자들 중에 단 한명도 납득이 갈 만한 해명을 내놓지 않고 아직까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2015. 12.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