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집중기획_ 공공 무용단 운영 무엇이 문제인가
김채현_춤비평가

10년 허송세월, 복합 처방으로 마침표 찍어야

- 공공 무용단 여론조사 이후(5·完)



 지난달 국내 어느 재벌의 경영권 다툼이 세상에 알려졌을 때, 국가 경제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오너 리스크를 예방할 장치로서 이사회, 감사가 제구실을 하도록 상법을 고쳐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다. 동감이다.
 현행법에 따라 국내 대규모 상장 기업은 내부 권력의 집중·남용을 방지하고 사회적 책임을 성실히 수행하기 위해 사외(社外) 인사가 절반 이상 차지하는 사외이사회제도를 운영해야 한다. 그런데 지난 3년간 해당 재벌의 계열사들에서 304회의 이사회가 열렸어도 이견(異見)이 노출된 경우가 전혀 없었다는 사실도 보도된 바 있다.
 국내 일부 공공무용단에나마 설치된 이사회나 운영자문위 등의 운영이 위의 사례보다 얼마나 나을까? 공공무용단 운영 장치가 근본적으로 미비하고, 설령 운영 장치가 있어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이것이 국내 공공무용단의 현주소이다. 지난 호에 제기한 공공무용단의 예술감독 선임 절차의 대수술 역시 근원적 처방의 하나이다. 그전의 호들에서도 주로 공공무용단 운영 규정의 손질을 제기하였다. 또 제도를 대수술해도 예술감독이나 단원 집단이 틀면 해결도 어렵다는 지적도 덧붙였다.
 본란을 통해 누누이 환기되듯이, 공공무용단의 문제는 따지고 보면 만만치 않고 그런 만큼 근원적 처방이 아니고서는 문제 해결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따지고 보면 딱 부러진 해결책은 없는 것 같은데, 이런 현실을 해결 불가의 상태로 방치해야 하는가 아니면 다른 해결책이 찾아지는가.
 딱 부러진 해결책을 지목할 수 없는 상황이 시사하는 것은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런 상황에서 읽어내야 할 것은 딱 부러진 해결책보다는 여러 해결책을 동시에 펼쳐야 해결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그간 이런저런 해결책이 더러 시도되었음에도 잘 풀리지 않은 원인은 해결책이 일면적이었던 데 있을 것이다.
 공공무용단을 위한 근원적 처방은 단 하나로 설정되지 않는다. 공공무용단의 문제를 거론하기 시작하면 으레 여러 현안들이 엮여져 나오는 것이 다반사인 것도 그 때문이다. 공공무용단의 문제는 그만큼 복합적이고, 어제 오늘의 현상이 아니다.

 



 2006년 1월 18일 오후 국립무용단이 포럼을 열은 바 있다. 기억하건대, 갑자기 추진되어 열린 때문이었는지 그날 포럼의 제목은 없었으나 ‘국립무용단 단장의 역할과 기대’가 주제였다. 그 바로 직전에 국립무용단 신임 단장으로 배정혜씨(당시 재임 2006-2011)가 선임되었던 터라, 아마도 신임 단장 선임을 계기로 추진된 포럼이었을 것이다.
 그 포럼은 정기적 포럼도 아니었고, 우리 춤계에서 춤단체가 공공이든 민간이든 포럼을 여는 경우가 흔치 않은 관행에 비추어 이례적인 포럼이었다. 그러나 신임 단장 선임을 계기로 공개 포럼을 열어 무용단의 향방을 묻고 다지겠다는 취지는 매우 이례적이었던 동시에, 적절한 표현일지 모르겠으나, 가상(嘉尙)하였다.
 그날 포럼에서 필자가 발제한 원고 ‘국립무용단 예술감독의 역할과 기대’에서 필자는 국립무용단 예술감독의 역할과 역량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6. 국립무용단 예술감독에게 기대되는 역할과 활동
1) 양질의 작품 창작 2) 양질의 레퍼토리 개발 3) 양질의 공연 성과: 국내외(관객 동원/비평/보도/반응 등등) 4) 효율적 단체 관리 5) 높은 경영 성과
7. 국립무용단 예술감독의 역량
1) 예술적 안무력 2) 예술적 연출력 3) 시대적 안목과 감각 4) 신공학과 디지털 매체 적응력 5) 내부 지도력 6) 대외 섭외력”

 

 이 발제를 화두로 평론가와 국립무용단원들의 토론이 꽤 길게 펼쳐졌다. 토론에서는 예술감독보다는 국립무용단에 대해 요구하는 바가 훨씬 많이 제시되었는데, 이 제안들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1) 정체성을 강화해야 한다.
2) 국립무용단에 적합한 작품 스케일과 수준을 갖춰야 한다.
3) 국립무용단은 안무 등의 측면에서 새 양식을 정립할 의무가 있다.
4) 예술감독에 따라 작품 양식이나 경향이 좌우되는 폐단을 막아야 한다.
5) 레퍼토리를 다양화해야 한다.
6) 국립무용단을 개방해서 국내외의 유능한 안무자를 초빙하고 외부의 우수작을 구입해서 수용할 필요가 있다.
7) 장기간에 걸쳐 진행되는 창작 기획 체제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8) 운영자문위원회는 실질적 운영을 기해야 한다.
9) 예술감독 독임제를 벗어나 국립무용단 내에서 역할을 분담하는 집단의 예술진 같은 진용이 필요하다.
10) 레퍼토리 선정 과정이 투명해야 한다.
11) 노조는 단원을 보호하고 기량을 검증할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10년이 지난 지금 이상의 제안들이 얼마나 실행되었는지 의문이다. 이 제안들은 비록 흘러간 그 옛날의 제안일지라도 비단 국립무용단만이 아니라 국내 공공무용단들에서 지금에라도 반복 제안될 수 있는 것들이며, 그래서 오히려 생생하게 다가오는 듯하다.
 그 2년 전인 2003년 9월 18일 한국춤평론가회(한국춤비평가협회의 전신)가 열은 춤정책 세미나에서 필자는 직업무용단 운영 정책에 대해 발제하였다. 여기서 직업무용단은 당시로서는 공립무용단, 지금으로서는 공공무용단을 뜻한다. 춤 지원, 교육, 국제교류 정책을 아우르는 여러 발제들 중의 하나로 진행된 터여서 그날 직업무용단 운영 정책에 대해 집중적인 토론이 이뤄지지는 않았다.
 이 발제문은 당시 춤계에서 제기되던 공공무용단의 현안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1) 단원 처우가 열악하다.
2) 레퍼토리가 희소하다.
3) 레퍼토리의 예술성이 미약하다.
4) 실현되는 공공성이 낮다.
5) 목표-지향점이 불명확하다.
6) 단원 신분이 불안정하다.
7) 단장과 예술감독의 동일인 체제가 비효율적이다.
8) 단장과 예술감독이 분리되어도 단장을 행정직이 맡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9) 지원 부서에서 연구, 기획 등 전문인의 비중이 낮다. 여기에 이어서 이 발제문이 지적하는 문제점을 덧붙여본다.
10) 공공무용단의 정체성이 모호하다.
11) 공공무용단의 자문위원회나 이사회가 요식행위로 운영된다.
12) 공공무용단의 임의적 운영을 방지하고 운영을 검증하면서 공공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규정을 손질해야 한다.

 

 타임머신을 타고 10년 전으로 되돌아가 공공무용단의 문제점을 살펴보면 지금과 대동소이하다는 것이 재확인된다. 그러면, 지난 10여년 사이 공공무용단은 완전히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었던가. 단원 기량의 향상 그리고 무대 감각의 세련화 등 일부 측면에서 진전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진전이라면 진전이랄 수 있는 이런 점도 따지고 보면 춤계가 쌓은 성과를 공공무용단이 거저 거둬들인 거나 다름없어 보인다. 특히 공공무용단은 공공성을 달성하는 데 핵심을 이루는 양축, 즉 합리적 운영과 예술성 제고 측면에선 제자리걸음을 해왔다. 춤계의 중론을 대변하는 이런 평가 속에서 공공무용단이 지난 10년 동안 허송세월해왔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더욱이 지난 10여년 공공무용단 바깥 세상은 디지털 시대로 완전히 탈바꿈하였고, 소위 순수예술의 입지는 더욱 좁혀지지 않았는가.
 과거를 되돌아보기보다 중요한 것은 물론 미래를 향해 대책을 찾아가는 일이다. 그렇더라도 어떤 과거와 역사는 오늘과 미래를 좌우할 씨앗일 것이고, 공공무용단의 현상황에서는 가까운 과거를 애써 외면할 일이 아니다. 아무튼, 그간의 경험에 비추어, 공공무용단의 공공성을 살리기 위해서는 근원적 처방이 다면적으로 여러 개 설정되어 동시에 추진되어야 한다는 인식, 그것이 근원적 처방의 출발점이라 여겨진다. 다소 입체적인 이 같은 인식을 전제로 근원적 처방을 찾아 나서야 할 것이다.
 지난봄에 수행된 공공무용단 운영실태 춤계 여론조사가 계기가 되어 또 이 조사 결과를 토대로 본란이 연속으로 게재되었다. 향후 대책을 염두에 두면서, 그간 게재된 기사 내용을 다시 요약해보자.
 먼저 연속 기사 1에서는 공공무용단이 핵심 예술과제에서 본연의 역할을 다하지 않고 있다는 여론이 소개되었다. 연속 기사 2에서는 공공무용단이 작품 창작과 레퍼토리 선정 작업에 대해 명문 규정도 없이 예술감독에 일임하는 탓에 공공무용단이 개인 무용단 같은 사조직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농후한 현실이 지적되었다. 연속 기사 3은 공공무용단의 사조직화를 방지할 장치로서 공공무용단 내에 작품개발위를 두는 한편 외부 여론을 수렴하여 중장기 계획을 공표하는 방안을 제시하였다. 연속 기사 4는 공공무용단의 핵심 두뇌에 해당하는 예술감독의 선임 시기를 앞당기고 (신임) 예술감독의 직무수행계획서를 공표할 것을 제안하였다.(이번 연속 기사에서 단원 신분이나 복지 등에 관해서는 언급이 없었는데, 그것은 공공무용단이 핵심 예술과제를 회복하는 데 있어 단원 신분이나 복지 같은 지엽적 문제보다는 작품 개발에 관한 명문 규정이나 사조직화를 방지하는 장치에 논의를 우선 집중해야 한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연속 기사들에서 제시된 여러 방안들은 지난 10여 년 표출된 공공무용단들의 현안들 가운데 다수를 해결할 대책으로 믿어진다. 이상의 방안들이 근원적 처방인지 아닌지 관점에 따라 다른 판단이 나오겠지만, 이 방안들을 실현하는 데 있어 무엇보다 공공무용단의 기존 관행과 체질이 걸림돌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시 말해, 공공무용단의 기존 관행과 체질의 대폭 변화를 전제로 실현되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근원적 처방으로 인식될 필요가 있다.
 예술감독에 일임하는 예술감독 독주 체제와 불투명한 직무수행계획서, 예술감독과 단원이 각자 자기 유리할 대로 복무에 임하는 풍토를 조장하는 단기계획 식의 운영을 극복하지 않으면 공공무용단의 미래는 갈수록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우려에서 그리고 그간 춤계에서 거론되어온 숱한 진단을 토대로 위에서처럼 근원적 처방이 복합적으로 제시되었다.
 신(神)의 한 수가 없다는 한계가 공공무용단의 문제 해결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신의 한 수가 없다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합리적 운영으로 예술성과 공공성을 제고시키고 예술성과 공공성 제고를 목표로 합리적 운영을 정착시키는 일, 적어도 이것을 근원적 처방의 방향타로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실현하려면 사실상 공공무용단을 새로이 창설하는 것과 맞먹는 심기일전부터 선행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공공무용단은 그 내부 구성원을 통해서만 공공성을 실현할 수 있다. 공공무용단의 ‘존재’가 곧 공공성의 실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공공무용단이 공공성을 ‘실현’할 경우에만 공공무용단은 공공성을 실현하게 된다. 공공무용단의 존재는 공공성을 실현할 물리적 바탕에 지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내부 구성원이 공공성을 실현할 의사가 박약하면 공공무용단의 공공성은 결코 실현되지 않을 것이다. 춤계의 초미의 과제인 공공무용단의 공공성 회복 측면에서, 한국춤비평가협회가 올해 수행한 공공무용단 운영실태 춤계 여론조사가 실질적인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2015. 10.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