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일 안에서 찾은 자유
- 슈투트가르트와 서울의 강수진
글_Gary Smith
강수진이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스튜디오로 들어서자 모두의 이목이 일제히 그녀에게로 집중되었다. 어린 무용수들은 그들이 하던 것보다, 그리고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길게 스트레칭을 하고 더 멀리 도달하기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의 눈길은 여전히 라벤더처럼 우아함을 뿜어내는 무용단의 주역 강수진에게 향해있었다.
무용수 강수진에게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 소중한 해이다. 만 47세, 강수진은 많은 발레리나들이 생각하는 시간, 그 이상을 뛰어넘어 자신의 커리어를 지속하였다. 가냘프면서도 우아한 그녀의 모습에는 표범과 같은 강인함과 나비와 같은 연약함이 동시에 담겨있다. 바에 서 있는 강수진을 보고 있자면 고도의 집중력이 그대로 전해진다. 클라스가 시작되기 전 워밍업을 위해 스튜디오로 들어오는 그 순간부터, 그녀의 깊고 진한 눈 뒤에는 완벽함을 향해 돌진하는 사투와 두려움이 숨겨져 있지만 그녀가 가지고 있는 발레에 대한 사랑이 그것을 이내 덮어버린다. 그녀의 춤이 가지고 있는 깊은 통찰력은 어쩌면 그녀가 클라스를 대하는 태도에서 나온 것일 게다. 움직임 하나하나가 그녀의 손가락 끝까지 퍼져나가고 어떠한 가식이나 허위 따위는 찾아볼 수 없다.
이후 우리는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구내식당에 함께 앉았다. “저는 이렇게 오랫동안 춤을 출 수 있어서 운이 정말 좋다고 생각해요. 일반적으로는 훌륭한 예술가가 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이제 겨우 다 배웠다고 생각될 즈음이 되면, 몸은 벌써 동이 나고 말죠. 맞아요. 그리고 지금 저의 춤에는 더 많은 자유가 있지요. 왜냐하면 제 마음 또한 예전보다 더 자유롭기 때문이죠. 지금의 저는 무엇이 중요한지를 알고 있기 때문에 저는 어렸을 때 보다 지금이 더 행복합니다. 그것은 다리를 얼마나 높이 올리는지, 피루엣을 얼마나 많이 하는 지와는 상관없어요.”
1967년 서울태생의 강수진은 춤 세계로의 입문에 대해 “발레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을 때의 저는, 그저 아름다운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는 것이 좋았어요.” 라고 꾸밈없이 터놓는다. 1986년 슈투트가르트 발레에 입단한 그녀는 1997년에 발레단의 프리마 발레리나 압솔루타가 되었다.
강수진은 이내 그녀의 춤 인생에 영향을 끼친 5인에 대해 경의를 표하며 이야기를 꺼냈다. “몬테카를로 무용학교에서 공부할 당시 마리카 베소브라소바 선생이 저의 기초를 형성해 주셨죠.” 그리고 전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무용수였던 그녀의 남편 툰치 소크만은 현재 그녀의 매니저이기도 하다. “제가 발레단에 합류했을 때 툰치 역시 무용수로 활동하고 있었어요. 그는 제가 프로 무용수의 인생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프로 무용수로서 어떻게 일을 해야 하는지 보여주었지요.”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예술감독 리드 앤더슨과 전 예술 감독 마르시아 하이데 역시 그녀에게 큰 영향을 끼친 인물들이다. “제가 이 두 분의 예술감독과 함께 일할 수 있었던 건 큰 특권이었다고 생각해요. 두 분 모두 저의 롤 모델이자 멘토였습니다. 특히나 마르시아는 무용수로서, 리드는 지도자로서의 역할에 들어설 수 있도록 정말 많이 도와주셨어요.” 그녀는 존 크랑코의 무용 표기법 연구자이자 존 크랑코의 춤 유산 관리자인 게오게테 칭게리데스에 대한 언급도 빼놓지 않았다.
슈투트가르트에서의 강수진은 발레단이 가지고 있는 레퍼토리의 거의 모든 주요 역할을 도맡아 왔다. 그녀는 존 크랑코의 <오네긴>에서 어쩌면 일어났을지도 모르는 일로부터 가책을 느끼는 여인 ‘타티아나’의 모습을 인상 깊게 춤춘 바 있다. 마지막 장, 타티아나가 사랑을 포기하는 장면에서 그녀는 넝마가 된 사랑의 편지를 안고 눈물을 흘리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비탄에 가득 찬 여인의 찢기는 마음을 움켜쥐었다.
존 노이마이어의 <카멜리아 레이디>에서 그녀가 부서질 것 같은 몸으로 등받이 의자에 기대어 삶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옴을 느끼고 있을 때, 거기에는 관객의 마음을 무너뜨리는 후회와 슬픔이 함께 있었다. 케네스 맥밀란의 <대지의 노래>에서 강수진이 ‘다크 하트’를 춤출 때, 관객은 오색찬란한 발레리나가 본능에 충실한 역할을 춤출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 지를 목격하게 된다.
강수진에게 가장 좋아하는 역할에 대해 묻자 그녀는, “저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작품을 좋아합니다. <오네긴> <로미오와 줄리엣> <말괄량이 길들이기> <까멜리아 레이디> 같은 작품들 말예요. 저는 한 역할에 빠져들어서 그 역할 자체가 되는 작업을 사랑합니다. 몸과 마음, 영혼까지 혼연일체가 되었을 때, 그건 마치 다른 세상에 있는 것과 같지요. 그것이 아마도 저에게 굉장한 만족감을 주는 것 같아요. 그 순간 저는 제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쏟아 부어야 하고, 그저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역할이 ‘되는 것’이죠. 만약 그 역할을 연기하는 것에 그친다면 거기엔 깊이가 없다고 생각해요.”
강수진은 그녀가 지나온 길고 흥미진진한 일들을 자신이 매일 매일 거르지 않고 쏟아 부은 노력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저는 지금도 제 일에 똑같은 방식으로 접근하려고 합니다. 어떤 일을 할 때 그것을 사랑해야지만 더 열심히 하게 되고 그러면서도 즐길 수가 있어요. 열심히 하는 것은 모든 일의 전제 조건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장 내일 이 모든 것들이 끝날 수도 있으니까요. 어떻게 보면 이것은 규칙 같은 것이죠.”
강수진은 2016년 슈투트가르트에서 발레리나로서 은퇴공연을 갖는다. 2014년 65명의 무용수(트레이너와 관계자를 포함하면 총 80명)가 속해있는 한국 국립발레단의 단장직을 수락한 이후, 그녀는 줄곧 서울과 슈투트가르트를 오가며 지내왔다.
강수진은 자신의 새로운 역할에 대해 “저는 단 한 번도 예술감독이 되고 싶다고 원하지 않았어요. 단장직 요청을 받은 건 굉장한 영광이었고, 도전을 하기로 결심했죠.” 라고 꾸밈없이 말한다. 이제 그녀는 새로운 변화에 어느 때보다 열정적으로 임하고 있다. “어린 무용수들과 함께 일할 때면, 그들 하나하나가 조금씩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개개인이 다른 몸은 물론 다른 사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정말 매력적인 일이예요. 또한 다른 이들에게 무언가를 전해줄 수 있다는 것이 매우 보람차게 느껴집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지식을 그들에게 전해주고, 용기를 북돋우고, 도전을 하게 하죠.”
현재 국립발레단은 루돌프 누레예프의 <잠자는 숲속의 미녀>와 마츠 에크의 <카르멘>부터 조지 발란신과 유리 그리고로비치의 작업까지 방대한 양의 레퍼토리를 보유하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는 단장 강수진을 통해 새롭고 주목할 만한 다양한 작업들을 더 많이 접하게 될 것이다.
“제가 이 자리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용단을 내부부터 단단하고 강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무용수와 스태프들의 팀워크를 견고하게 하는 것부터 개개인을 강화하는 것까지요. 바로 그들이 우리 무용단을 만드는 것이니까요. 모두가 함께 같은 방향으로 나아갈 때 비로소 우리는 성공적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년간의 독일 생활 후 한국으로 돌아오는 것에 대해 그녀는 냉철했다. “저는 오고 가는 것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지 않았어요. 저에게는 오로지 일이 모든 것입니다. 한국의 집으로 돌아오는 것 혹은 슈투트가르트를 떠나는 것은 일을 하고 춤을 추는 와중에 일어나는 일일뿐입니다. 어딘가를 오고 가더라도 저의 일은 변하지 않으니까요.”
예술감독으로의 강수진은 독재적인 접근을 피하려고 노력한다. “규율은 안쪽에서 오는 것이지 바깥에서 오는 것이 아니에요. 어린 무용수들이 갖고 있어야하는 책임감은 첫째로 그들 스스로를 위해서, 그 다음은 관객을 위한 것이죠. “
강수진은 어린 무용수들을 위한 조언을 잊지 않았다.
“만일 이 직업을 선택했다면 ‘무’로부터는 아무것도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해요. 자신의 일을 즐기세요. 그것이 기본입니다. 결국에는 늘 열심히 노력하는 것으로 돌아오죠. 노력한다면 그 안에서 자유를 찾을 수 있어요. 그리고 그 자유는 자신이 하는 일을 사랑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그녀는 발레계가 자신이 처음으로 무용을 시작했을 당시와는 많이 변화되었다고 말했다.
“지금은 그때보다 발레 레퍼토리가 훨씬 다양하기 때문에 더 어렵습니다. 무용수로서는 그만큼 더 많은 작품들을 소화해야하기 때문이죠. 오늘날 세계 탑 클라스의 무용단에서 일을 하기 위해서는 정말 모든 것을 춤출 줄 알아야합니다. 그것은 무용수로서 모든 것을 열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위해 몸은 물론 마음까지 유연해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발레 레퍼토리의 다양화는 똑똑한 발레리나와 발레리노를 더 강하게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물론 무용수로서 해야 할 일은 두 배가 되겠죠.”
그녀는 또한 컨템포러리 발레 작품의 강세가 전통 방식의 트레이닝을 잊어버리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며 전통에 기초한 클래식 트레이닝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많은 현대 작품들을 춤추고 소화해 낸 후에 클래식 작품으로 돌아오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본에 충실한 연습을 늘 유지해야 하고 그것이 무용수들에게 엄격한 수업이 매일매일 필요한 이유입니다.”
뛰어난 춤 연기자, 강수진. 그녀는 국립발레단이 모든 작품에서 깊이 있는 감정과 드라마를 표현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자극하고, 그 앞에 서서 무용단을 이끌 것이다. “저는 그저 동작을 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제 DNA 와 제 피 속에는 존 노이마이어, 마르시아 하이데, 게오게테 칭게리데스와 함께 일을 했던 것이 그대로 남아있어요. 그리고 지금 저에게는 그것을 다른 이들에게 전해 줄 기회가 주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실질적으로 배움에 시간이 걸리는 것은 발의 스텝이 아니라 감정과 표현, 공연에 영혼을 담는 방법 때문이죠. 동작은 호흡과 함께 자연스럽게 따라오기 마련입니다. 그것을 넘어 섰을 때야말로 진정한 캐릭터를 춤추게 되는 것이죠.”
강수진에게 존경하는 무용수를 묻자 그녀는 어느 한 사람의 이름을 대길 거부했다. “저는 모든 무용수들을 존경합니다. 전 슈투트가르트에 있는 저의 동료들 그리고 한국의 제 무용수들을 사랑합니다. 전 그들 모두를 존경해요. 무용은 정말 힘든 일이거든요.”
번역_정다슬
원문_ 캐나다 〈Dance International〉 2015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