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공연을 알리는 콘텐츠 제작에는 문자가 필수적이고, 문자의 서체에도 권리가 있다는 것쯤은 상식으로 알고 있다. 다만 서체의 저작권은 어디까지 인정될까? 공연과 전시에서 포스터나 브로슈어 등 관련 콘텐츠 제작, 홈페이지 운영에 필요한 다양한 서체들이 새로운 저작권 이슈로 대두하고 있다. 서체의 권리자나 그 대리인이 서체의 저작권을 침해하였으니 그 사용을 중단하고 손해를 배상하라는 내용의 경고를 받는 경우가 그러하다.
어느 날, 위와 같은 경고를 담은 내용증명 우편을 갑자기 받는다면, 먼저 당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 내용증명 가운데는 보이스피싱과 유사한 것도 있고, 사용자의 책임이 덜한 경우도 있다. 서체의 이용 과정 및 방법에 따라 저작권 침해 여부나 손해배상 정도가 달라진다. 당황한 마음부터 진정시키고, 서체 저작권 해결 사례를 차분히 들여다 보며 해결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사례] 공연 제작사인 A사가 포스터 디자인을 디자이너 B에게 맡겼는데, B는 저작권자에게 허락받지 않은 서체 파일을 이용하여 이미지를 제작하였다. 서체 파일의 권리자 C는 A사의 포스터에 자신이 창작한 서체가 사용된 것을 확인한 후, A사에 대하여 저작권 침해를 이유로 포스터의 복제 및 배포 중단을 요구하는 한편 손해 보상으로 해당 서체가 포함된 라이선스 패키지 구매 비용 500만원을 배상할 것을 요구하였다.
서체 도안과 서체 파일은 다르다
저작권은 저작물에 대한 권리이며, 저작물은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을 말한다. 따라서 저작물에 해당하는 것만이 저작권법의 보호 대상이 되는데, 서체의 경우 저작권법의 보호 대상이 되는지, 보호 대상이 된다면 어느 범위까지 보호되는지에 따라 저작권 침해 여부가 달라지게 된다.
글자의 모양 자체, 즉 서체의 도안은 저작권법상 보호 대상이 되지 아니한다. 저작권법에는 서체의 저작권에 대하여 명시적인 규정을 두고 있지 않는다. 통상 서체의 권리자가 창작한 창작물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저작권이 인정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법원은 서체의 저작물성을 부정하고 있다. 서체 도안 자체에 일부 창작성이 포함되어 있고 문자의 실용성에 부수하여 미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점은 인정된다. 그러나 그 미적 요소 내지 창작성이 문자의 본래의 기능으로부터 분리·독립되어 별도의 감상의 대상이 될 정도로 독자적 존재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서울고등법원 1994. 4. 6. 선고 93구25075 판결 참조).
한편 저작권법은 컴퓨터 내에서 일련의 지시ㆍ명령으로 표현된 창작물인 “컴퓨터프로그램”을 저작물의 하나로 보호하고 있다. 법원은 서체 도안 자체가 아닌 컴퓨터 폴더에 저장되는 개별적인 서체 데이터 파일은 컴퓨터 내의 다른 응용프로그램을 통하여 표현될 수 있는 창작물로서 저작권법상 “컴퓨터프로그램저작물”에 해당하여 저작권법의 보호대상이 된다고 보고 있다(대법원 2001. 6. 29. 선고 99다23246 판결 참조).
따라서 서체 파일의 이용자가 권리자의 허락 없이 서체 파일을 무단으로 다운로드하여 컴퓨터 내에 설치하거나 업로드하는 경우는, 서체 파일 저작자의 저작권을 침해한 때에 해당한다. 다만 보호 대상인 것은 어디까지나 서체 도안 자체가 아닌 서체 파일이다. 때문에, 서체 파일의 이용행위가 완료된 결과물인 서체 도안을 이용하는 행위 자체만으로는 저작권 침해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서체 도안 이용과 서체 파일 이용은 구분된다
앞의 사례에서 디자이너 B는 특정 서체로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하여 저작권자 C의 허락없이 서체 파일을 이용하였다. 이 경우 그에 따른 저작권 침해 책임은 해당 서체 파일을 이용하여 포스터를 제작한 디자이너 B에게 있다. 반면 B의 서체 파일 이용행위가 완료된 후 해당 결과물을 복제, 배포한 A사는 서체 파일을 이용한 결과물인 이미지만을 이용하였으므로 서체 파일에 대한 저작권을 침해하였다고 할 수 없다.
그리고, B가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서체 파일을 무단으로 이용하여 서체 도안 및 포스터를 작성하였더라도, 서체 파일 자체를 이용하는 것이 아닌 서체 파일로 만든 도안이 저작권을 침해하는 것은 아니므로, A사가 포스터 사용을 중단하거나 포스터에서 해당 서체 도안을 삭제하지 않아도 저작권법 위반의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만일 서체 파일을 이용하여 포스터를 제작한 B가 A사의 외주업체가 아니라 A사에 고용된 직원이었다면 A사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저작권법은 회사 직원이 업무에 관하여 저작권을 침해한 때에는 직원을 처벌하는 것과 함께 회사에 대하여 벌금형을 부과하도록 하고 있다. 업무와 관련한 범칙 행위는 반복적·계속적으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므로 위반행위 발생을 방지하고 범칙행위로 인하여 실제로 이득을 본 자를 처벌고자 하는 취지이다.
다만 회사가 직원의 저작권 침해 행위를 방지하기 위하여 해당 업무에 관하여 상당한 주의와 감독을 다하였다면 위와 같은 취지에서 처벌의 필요성이 낮으므로 처벌하지 않도록 예외를 두고 있다. 따라서 회사는 합법적인 경로를 통하여 파일을 다운받고 불법 프로그램을 이용하지 않도록 교육을 하는 등 저작권 침해를 방지하기 위한 지속적인 주의와 감독을 할 필요가 있다.
이용허락 범위를 벗어난 서체 파일의 이용
만일 위 사례에서 B가 개인적 목적에서 무료로 다운로드 할 수 있되 영리 목적시 허락을 받도록 한 서체 파일을 개인적으로 다운로드 하였다가 추후 회사의 포스터를 제작한 경우나, 서체 파일이 포함된 X프로그램을 적법하게 구매하였으나 해당 서체를 X프로그램이 아닌 다른 Y프로그램을 통하여 이용한 경우에는 어떠할까?
이때도 저작권 침해 여부는 서체 파일을 구매하여 컴퓨터에 설치하거나 이를 복제하는 행위에 대하여서만 문제가 된다. 따라서 사례와 같이 B가 정상적으로 구매하여 컴퓨터에 설치하였다면 이후의 이용 행위는 서체 파일의 복제나 전송 행위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저작권 침해가 되지 아니한다. 대법원 또한 복제를 허락받은 사용자가 프로그램의 사용 방법이나 조건을 위반하였다고 하더라도 저작재산권자의 복제권을 침해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대법원 2017. 11. 23. 선고 2015다1017, 1024, 1031, 1048, 판결 참조).
다만 법으로 정하여둔 저작권 침해와 별도로 권리자가 정한 사용 방법이나 조건을 위반한 때에 해당하므로, 계약 위반에 대한 문제는 발생할 수 있다. 즉 이용약관에서 비영리적 목적에서의 개인적 이용만을 허락하고 영리적 목적에서의 이용은 금지하고 있거나, X프로그램 내에서만 이용하여야 한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른 저작권 침해는 아니지만 권리자가 계약을 통하여 허락한 범위를 벗어난 이용으로서 계약 위반에 따른 민사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따라서 서체 파일을 적법하게 다운로드 받는 경우라 하더라도, 설치 약관에 이용범위에 대한 제한이 있는지 이에 대한 확인이 필요하다.
권리자 표시가 없는 서체의 이용
한편 서체 파일을 다운로드 받아 이용한 B는 서체 파일을 다운로드 할 때 권리자 표시나 이용금지 표시를 확인할 수 없어 저작권 침해에 대한 고의가 없었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저작권은 저작물의 창작과 동시에 권리가 발생하고 권리자의 이름을 표시하여야 하는 등 형식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실제 서체 파일의 권리자가 사용자에 대하여 저작권 침해를 주장을 할 가능성이나 형사 처벌의 가능성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권리자의 허락 없이 무단으로 파일을 이용하였다면 저작권 침해 행위가 될 수 있으며 B는 저작권 침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따라서 권리자가 어떠한 방식으로든 별도의 이용허락없이 서체 파일을 이용할 수 있다는 표시가 되어 있지 아니하는 한, 이용허락 여부에 대한 확인을 한 후 이용하는 것이 안전하고 바람직하다.
손해배상의 범위
만일 그 고의 여부를 불문하고 서체 파일을 무단으로 이용하여 권리자에 대한 저작권 침해가 인정이 된 경우, C가 요구하는 라이선스 구매 비용을 전부 배상하여야 할 것인지가 문제된다.
저작권법은 권리의 행사로 통상 받을 수 있는 금액에 상응하는 액을 손해의 액으로 하여 그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때 대법원은 저작권자가 침해행위와 유사한 형태의 저작물 사용과 관련해 저작물 사용계약을 맺고 사용료를 받은 사례가 있는 경우라면 원칙적으로 사용계약에 정해진 사용료를 기준으로 손해액을 산정하고 있다(대법원 2013. 6. 27. 선고 2012다104137 판결 참조). 따라서 해당 서체를 이용하기 위하여 C사의 500만 원짜리 라이선스 패키지를 구매하여야 했다면, 원칙적으로 해당 사용료를 기준으로 손해배상액을 산정될 것이다.
관련하여 서울북부지방법원은 서체 권리자가 침해자에 대하여 서체 프로그램 구입 비용인 572만원의 지급을 청구한 사안에서 해당 프로그램에 포함된 수백 가지의 서체 가운데 하나의 서체를 이용하였던 점 등에 비추어 손해의 범위를 30만원을 인정한 바 있다(서울북부지방법원 2022. 5. 24. 선고 2020나42041 판결 참조).
즉 구체적인 사건에서의 저작권 침해의 경위 및 양태, 이후 경과 등 변론에 나타난 제반 사정을 종합한다면, C사의 라이선스 패키지 이용료 전체를 배상하지 아니하여도 될 수 있다.
요컨대 인터넷 상에서 다운로드 등의 방법으로 서체를 이용하는 경우 권리자로부터 허락을 받아 이용하고 이용하는 경우에도 허락의 범위를 확인하고 준수하는 한편, 저작권 침해가 되지 아니하는데도 배상을 하거나 침해를 한 경우에도 책임의 범위를 벗어난 과도한 배상을 하지 않도록 적절히 대응할 필요가 있다.
이예희
디케이엘파트너스 법률사무소 변호사. 한국춤비평가협회 고문 변호사.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각각 연극과 문학을 전공하고 변호사가 되었다. 현재 문화, 예술, 엔터테인먼트 등 콘텐츠 IP와 관련된 분야에서 법률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