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이보휘 슈투트가르트발레단에는 어떻게 입단하게 되었나요?
강효정 저는 중학교 1학년 2학기 때 미국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문훈숙 단장님 소개로 워싱턴 D.C에 있는 키로프 아카데미였습니다. 그리고 1년 뒤쯤 거기 교장선생님 추천으로 스위스 로잔 발레 콩쿨을 나가게 됐고, 거기서 입상하면 원하는 학교를 고를 수도 있고, 장학금도 주어지잖아요. 그래서 선택한 학교가 슈투트가르트발레단에 있는 존 크랑코 학교였습니다. 저는 사실 갈 때는 독일이라는 곳이 낯설기도 하고 차가운 이미지여서 무서웠어요. 그래서 1년 정도 공부하다 원래 다니던 학교로 돌아가거나 한국으로 돌아올 생각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세계적인 발레리나를 꿈꾸진 않았거든요. 또 독일 가서 처음으로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공연을 봤는데 너무 잘하는 거에요. 그래서 전 어림도 없다고 생각했었죠.
그런데 존 크랑코 학교 들어가서 3개월 뒤에 크리스마스라고 발레단이랑 같이하는 공연이 있었습니다. 1막은 학생들이 하고, 2막은 발레단 단원들이 하는 형식이었어요. 그때 발레단 단장님께서 절 보시고 발레단에 들어왔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저는 생각도 못했던 일이라서 처음에는 고민을 했었습니다. 처음부터 독일에 오래 있을 생각도 없었고, 내가 과연 여기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는 걱정도 많이 됐었는데 사실 답은 정해져 있었죠. 당연히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럼 몇 살 때 입단하게 된 건가요?
18살이었던 것 같아요. 원래 존 크랑코 학교가 중학교, 고등학교가 있고 아카데미가 2년이 있는데 아카데미 2년 코스를 마쳐야지만 발레단에 들어가든 오디션을 볼 기회가 주어지는데 사실 전 1년 밖에 안했거든요. 장학금도 1년이고, 원래부터 1년만 있을 생각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운이 좋게 1년만 하고 학교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1년을 발레단 다니면서 실기시험만 보는 형식으로 해서 졸업장을 받게 되었습니다.
당시 아카데미 학생들의 시샘도 있었을 것 같아요.
시샘은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제가 싸우고 그런 성격이 아니어서 친구들이 오히려 더 좋아해주고 그랬어요.
정말 좋은 혜택을 받으신 것 같습니다. 이제 입단한지 몇 년 된 건가요?
입단은 2003년도 준단원으로 했으니까 10년 넘었죠.
2011년 줄리엣 역 이후 수석무용수로 승급되었어요. 예술가라면 누구나 꿈꾸는 상황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능력을 있는 그대로 인정받은 거잖아요. 그 뒤 당연히 맡는 배역 변화도 있었겠지만 혹시 무용단 내에서 다른 변화는 없었나요?
사실 제 자신은 변한 게 없는 것 같아요. 좋은 것은 더 좋은 배역이 들어오고 옛날엔 꿈도 못꿨던 배역을 맡아서 춤을 출 수 있게 됐고요. 그런데 저보다 주위에서 더 변한 것 같아요. 저를 대하는 모습이요. 사실 아직도 저는 불편해요. 저는 예전처럼 똑같이 다가가는데도 상대가 다르게 반응을 하니까. 그래서 아직도 적응이 안 되긴 해요.
그런데 승급이 되고 하는 것을 떠나서 많은 무용수들이 수백 번, 수천 번의 공연을 하고도 기억에 남는 공연이 없다고 하잖아요. 저도 많은 공연을 했지만 그날은 정말 잊을 수 없는 날인 것 같아요. 주역이 되고 싶어서 한 것도 아니었고 꿈꿨던 것도 아니었고. 그냥 저랑 제 파트너랑 발레 마스터랑 정말 재미있게 보석 다듬듯이 매일 연습해 오던 것에 대한 성취감이 너무 컸어요. 그래서 주역으로 승급된 것도 공연 끝내고 난 행복감에서 그렇게 크진 않았던 것 같아요. 이미 너무 만족했고 행복했거든요. 정말 소중한 케익 위에 체리 하나 얹은 정도였던 것 같아요.
사실 많은 무용수 분들이 만족스럽게 무대를 내려오는 경험이 많진 않잖아요. 항상 아쉽고, 좀 더 잘할 걸 이라는 생각이 들고요. 그러니 더 기억에 남으실 것 같습니다. 현재 발레단 단원은 몇 명 정도 인가요?
왔다갔다 하는데 한 70명 정도 인것 같아요. 그래도 공연 수가 워낙 많고 연습량이 많다보니 많이 다쳐요. 그래서 단원이 부족하면 발레학교에서 불러다 하기도 하더라고요.
발레단 분위기는 어떤가요? 경쟁적인 의식이 많은 편인가요 함께 힘을 북돋아 주는 분위기인가요?
둘 다 있는 것 같아요. 물론 경쟁이 치열해요. 질투심도 많고 한데 그런데도 자기가 무용수로서 인정하는 무용수한테는 질투하지 않고 격려해주고 북돋아 주는 것 같아요. 그래서 무대에 서면 느껴져요. 다들 정말 뒤에서 응원하고 있구나 라는 것이 느껴집니다.
1년에 공연은 몇 회 정도 하나요?
제가 세어 본 적은 없어서 정확히 말씀은 못드릴 것 같고요. 바뀌긴 하지만 일주일에 적어도 2~3번은 하는 것 같아요. 이번 시즌 끝날 때는 <잠자는 숲속의 미녀>를 8일 동안 매일 했습니다. 그럴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고요. 이번에 <잠자는 숲속의 미녀>는 좀 예외였지만 보통 한 작품을 계속 올리기보다 여러 작품을 올려요.
그럼 <잠자는 숲속의 미녀>를 공연하는 동안 관객은 어땠나요?
항상 매진이었어요. 제가 주역을 하면서도 표 1장 구하기도 힘들었어요.
사실 한국은 2~3일 지나면 더 이상 보러오는 관객이 없어서 한 작품을 8일 동안 하기에 무리가 있거든요.
슈투트가르트에는 오래된 발레 팬들이 많으세요. 그래서 나이 드신 관객들도 많으시고 이제 막 발레를 보기 시작한 어린 관객도 있고요. 정말 발레 팬들은 한 캐스팅을 봤다고 해서 그 작품을 봤다고 생각 안하시고 똑같은 작품을 다른 사람이 하는 것에서 오는 재미를 즐기세요. 그래서 보면서 평가도 하고 비교도 하시고요.
해외 투어도 많이 하지요?
해외 투어는 크게 1년에 2~3번 있는 것 같아요. 이번에는 러시아, 싱가폴, 홍콩 갔고요. 돌아오는 시즌에는 일본이랑 한국에서도 공연을 해요.
사실 한국에서 발레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알고 있는 단체가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이 아닐까 합니다. 국내에서 슈투트가르트발레단 소개할 때도 항상 세계 5대 발레단이라는 수식어가 붙고요. 슈투트가르트발레단에 있으면서 어떤 자부심을 느꼈던 적이 있나요?
사실 발레단에서 항상 연습하고 공연할 때는 잘 못느끼는데 개인적으로 갈라 공연을 간다든지 단체 전체가 해외투어를 가게 되면 제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신경 써 주세요. 저를 어렵게 대하시기도 하고요. 그럴 때 마다 우리 발레단이 많은 분들이 잘하는 발레단이라고 인정해주고 있구나 라고 느끼는 것 같아요. 그리고 발레단에 있으면 저뿐만 아니라 다른 단원들 하는 거 보면서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보이니까 ‘이제 우리 발레단이 안 좋아졌나’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다른 발레단 공연을 보게 되면 ‘아 우리 발레단이 잘하는 구나, 잘하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죠.
당연히 2011년 로미오 역을 맡으셨을 때의 공연이 가장 기억에 남겠지만 그 공연 말고 혹시 또 기억에 남는 공연이 있나요?
사실 제가 학교 다닐 때 항상 솔로나 주역을 맡았었어요. 그래서 자신감에 차서 발레단에 들어갔는데 처음 3년 동안은 솔로 한번 해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자신감이 계속 떨어지고, 계속 발레를 해야 하나 라는 생각도 들고요. 하루에 한 번씩 친구들이 와서 “넌 여기에 있기 아깝다. 다른 곳으로 가라”라고도 하고요. 그러다 보니 기회가 오더라고요. 존 크랑코 안무가가 짠 좀 오래된 <이니셔스>라는 작품이었어요. 존 크랑코가 살아 계실 때 항상 쓰셨던 무용수 4명이 있으세요. 그 분들과의 우정을 생각해서 만든 작품인데 아직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이에요. 거기 나온 솔로 역할을 한 거였는데 그 때의 기분을 잊을 수가 없어요. 항상 친구들이랑 빽빽하게 서서 공연 했었는데 혼자 무대에 서있으니 기분이 이상한 거에요. 발가벗고 서있는 기분도 들고요.
또 제가 사실 부상을 당해서 조금 쉬었어요. 그리고 복귀해서 처음 한 공연이 <잠자는 숲속의 미녀>거든요. 그 동안 많이 다쳐왔고 쉬기도 하고 그랬는데 이번에는 쉬면서 ‘이 길이 정말 내가 원하는 길인가’라는 생각이 많이 들더라고요. 그러다가 한 첫 공연이라서 정말 열심히 했고, 이번 공연을 준비하면서 내가 발레를 정말 사랑하는 구나도 느꼈고, 발레가 정말 어려운 것이라는 것도 다시 한 번 느꼈고요. 그렇게 올라간 공연인데 공연이 너무 잘됐어요. 공연을 하면서 시간이 정지된 것 같은 느낌도 받고 컨디션도 너무 좋았고요. 피곤함도 모르고 공연을 했던 것 같아요.
어디를 다쳤었나요?
스트레스 골절이었어요.
혹시 무용단에서 무용수들의 부상방지를 위한 프로그램 같은 것은 없나요?
주로 스스로 알아서 하는 편인 것 같아요. 필라테스도 하고 요가도 하고요.
리드 앤더슨(Reid Anderson) 예술감독은 어떤 분이세요?
정말 단장님으로서 완벽한 분이세요. 지금은 연세가 드셔서 약간 할아버지 같은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제가 지금 아버지를 보듯 가끔 안쓰럽게 느껴질 때도 있어요. 강하기만 하시던 아버지가 약해지셨다고 느낄 때 그렇잖아요. 제가 들어가기 전만 해도 정말 무서운 단장님이셨대요. 내일이 공연이어도 마음에 안 들면 캐스팅 다 바꾸기도 하셨대요. 칼 같은 면이 있으시면서도 인간적인 면도 있으세요. 단원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인간적으로 이해해주시고요. 그리고 굉장히 현명한 분이세요. 정말 잘하는 무용수가 있는데 단장님 스타일이 아니다 하면 단장님이 솔직하게 이야기 해주시는 거죠. “나는 네가 정말 잘하는 것을 알지만 내 스타일이 아니니 여기서 시간 낭비하지 말고 너를 정말 좋아하는 발레단에 가라”라고 현명하게 조언하시는 분이세요.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굉장히 존경하는 분이에요.
또 저희 발레단 단장님께서 아마 유일하게 안무를 안하시는 단장님이실 거에요. 단장님이 안무를 하시는 것이 좋을 수도 있지만 저는 안무를 안하시는 단장님이셔서 더 좋아요. 세계적으로 유명한 정말 좋은 안무가들의 작품을 저희가 더 많이 접할 수도 있고요.
아무래도 안무를 안하면 더 객관적인 시각을 갖고 단체를 이끌고 갈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네. 맞아요. 존 크랑코 안무가님이 살아계실 때 저희 단장님께선 단원으로 활동했었데요. 그때부터 발레단을 어떻게 이끌고 가야겠다는 방향성을 설정해두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럼 발레단 내에 소속 안무가가 상주하는가요?
네. 2명의 총 안무가가 계세요. 그리고 외부 안무가를 초청해서 하기도 하고요. 아니면 저희 발레단은 ‘노베어 소사이어티’라고 안무작을 발표할 기회가 있어요. 함부르크발레단 존 노이마이어 단장님도 여기 출신이시고 포사이드 안무가도 여기 통해서 데뷔하셨고요. 큰 규모는 아닌데 아마추어도 자기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공연이에요. 거기서 발탁되는 분들도 많으세요. 저희 단장님께서 보는 눈이 높으세요. 그래서 거기서 괜찮은 작품이 나오면 안무가를 섭외해 오세요. 저희 총 안무가님도 거기 통해서 발탁되신 분이세요. 단원 중에도 거기에 작품을 발표해 갈라 공연을 다니는 분도 있어요.
거기에 작품을 올려봐야겠다는 생각해 본 적은 없나요?
생각을 안해본 것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안무라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닌 것 같아요. 무용했다고 해서 다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창조적인 그 무엇을 만드는 특별한 재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무용수가 가진 재능이랑 안무가가 가진 재능은 다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한국의 많은 대학교에서 무용수와 안무가를 같은 선상에 놓고 교육하고 있어서 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발레리나로서 본인의 강점, 장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제가 생각하기엔 타고난 무언가가 있었으니까 어렸을 때부터 솔로, 주역을 맡고, 단장님의 눈에 들어 여기까지 온 게 아닌가 합니다.
아무래도 발레는 신체도 중요하고, 예술적 재능도 중요 하니까 타고나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무용 쪽은 아니지만 저희 외할아버지께서 미국에서 지휘자로 계셨고, 저희 이모는 오페라도 하시고, 피아노도 하셔서 어렸을 때부터 그런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 보면 운도 좋았던 것 같아요. 저를 뒷바라지 해주실 수 있었던 것도 그렇고 IMF 때 유학 보내주신 것도 정말 감사하고요. 제가 가지고 태어난 재능 플러스 외부에서 주신 도움이 큰 것 같아요.
그래도 가장 큰 장점은 인내심인 것 같아요. 발레단 처음 들어가서 정말 힘들었는데 참고 꾸준하게 했던 것도 지금의 저를 가능하게 한 것 같고요. 또 저희 발레단은 클래식이랑 모던이랑 다양하게 하는데 사실 저는 여기 들어오기 전에 모던을 해본 적이 없어요. 여기 들어와서 모던발레의 즐거움도 배웠고 두 가지 다 소화 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 인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잘 모르겠는데 주변에서 제가 좀 특별하다고 이야기를 해주세요. 춤을 추다 보면 자신만의 스타일이 생기고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을 알게 되잖아요. 그러면서 저만의 무언가를 찾아가는 것 같아요.
그 특별하다는 것이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강효정씨가 뿜어내는 오로라라고 할까요, 아니면 특별히 올 곧은 자세에서 오는 아름다움일까요, 뛰어난 감정 표현 능력일까요?
솔직히 저도 사람들이 무엇을 보고 특별하다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제가 하는 것을 못 보겠더라고요. 지적할게 너무 많아서 항상 영상 보다가 그냥 꺼버려요.(웃음)
반대로 단점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제 단점은 제 자신을 너무 채찍질 하는 것 같아요. 가끔은 열심히 했다, 잘했다라고 자기 위로도 필요할 것 같은데 그런게 너무 없는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 한테는 진심으로 최선을 다했으니 된거라고 위로하면서도 저에게만은 그게 안되더라고요. 아무리 열심히 한걸 알아도 이건 왜 안됐을까, 이건 왜 못했을까 계속 다그치게 되는 것 같아요.
발레단 생활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처음 입단해서 3년이 가장 힘들었어요. 그리고 최근 있었던 부상도요. 부상은 많이 익숙하니까 어떻게 회복해야 하는지 알고 하는데 정신적으로 많이 주춤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다시 돌아오기 까지가 힘들었어요. 발레를 하고 있을 때는 발레가 이렇게 어려운 줄 몰랐어요. 그런데 다치고 쉬다가 다시 하려니까 내가 예전처럼 하려면 진짜 많이 올라가야 하는 구나를 느꼈던 것 같아요. 예전엔 쉽게 되던 동작들이 안되는 거에요. 그래서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는 입장이었고 그래서 힘들었어요.
독일에서의 생활은 어떤가요?
독일에 너무 오래 있다보니 한국에 오면 너무 좋아요. 그런데 한 1~2주 정도는 적응기간이 필요하더라고요. 너무 바쁘게 흘러가니까 정신이 없더라고요. 마트를 가도, 길을 걸어도 가슴이 두근두근 거리고, 사람이 너무 많고 시끄럽고 하니까요. 그래도 전 가족들이 있으니 한국이 좋아요.
여가 시간에는 주로 무엇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나요?
주로 토슈즈를 꼬매요. 적어도 하루에 하나씩은 꼬매요. 2개씩 할 때도 있고요. 나중에는 너무 자주 갈아 신으니까 제가 꼬매는 속도가 못 따라 가는 거에요. 그래서 찾은 게 초강력 본드였어요. 이번 <잠자는 숲속의 미녀>할 때는 초강력 본드로 버 텼어요. 한 시간에 한 켤레 씩 나갈 때도 있고요. 토슈즈는 무용단에서 제공해주고 이름 적혀있는 개인 박스에 토슈즈를 채워주세요. 그게 다 떨어져서 긴급 상황으로 주문하고 다른 사람 슈즈를 신기도 하고 그랬어요. 너무 많이 사용하니까 미안하기도 하더라고요.
토슈즈 줄어드는 것 보고 누가 얼마나 연습하는지도 확인 가능하겠어요. 한국에는 자주 오나요? 오면 주로 무엇을 하나요?
1년에 6주의 휴가가 주어지는데 주로 3주는 다른 곳에서 보내고 3주는 한국에 꼭 와요. 이번엔 6주 내내 한국에 있었어요. 주로 가족과 시간을 보내려고 해요.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세요?
제가 정말 사랑하는 발레라는 것을 다시 깨우쳐서 있는 그대로 즐기고 싶어요. 관객들이 감동을 받고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저도 그 자체로 걱정 없이 즐기고 싶어요.
그럼 관객들의 기억에 어떤 발레리나로 남고 싶으세요?
요즘 많은 사람들이 생활이 각박하고 하니까 스트레스 많이 받고 계시잖아요. 그래서 제 공연을 볼 때만이라도 그런 걱정을 내려놓을 수 있는, 저와 같이 빠져들 수 있는 그런 감동을 줄 수 있는 무용수가 되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아무래도 현역 무용수라면 은퇴 후의 삶을 생각해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어떤 일을 하고 싶으세요? 주로 어떤 모습을 상상하나요?
안무가는 좀 더 생각해 봐야 할 것 같고요. 저는 그동안 제가 무용을 해오면서 느끼고 배웠던 것들을 어린 학생들에게 전수해 주고 싶어요. 지금까지 제가 보고 배운 것들을요.
오늘 시간 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즐거운 만남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