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벨기에를 중심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안무가 겸 무용수 허성임이 신작 〈님프(Nymf)〉(8월 22-23일, 문래예술공장 박스씨어터, 평자 22일 관람)를 발표했다.
10년 넘게 유럽에서 활동한 허성임은 관능적이며 개방적인 면모가 돋보인다. 한국과 유럽을 오가며 이질적인 여러 문화에 담금질되면서 얻은 개방성은 표현에 있어 경계가 없는 과감함으로 토출되고, 예쁘고 고운 여성 무용수에 대한 객석의 기대를 향해 솔직하고 거침없는 매력으로 도전장을 던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녀가 국내에 선보였던 작품들은 ‘여성’, 특히 저돌적이고 적극적인 여성으로서 현대사회를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감수성을 갖는 것인지에 대한 탐구를 꾸준히 이어 왔다(〈여자가 남자의 주역일 때〉, 〈필리아〉, 〈튜닝〉 등). <춤웹진> 8월호에 실린 춤비평가 김채현과의 인터뷰에서 허성임은 <님프> 역시 억압된 한국여성의 잠재된 내면을 끄집어내어 형상화하는 작품이 될 것이라고 소개했었다.
신작 〈님프> (Nymph가 아닌 Nymf로 철자를 바꾼 것도 원래 성별을 말할 수 없으나 여성성에 치우쳐 묘사되어온 중성적 존재 님프와 인간 여성과의 접점을 찾으려는 아이디어 중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는 한국, 특히 한국 여성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연출가 스테프 레누스와의 협업으로 이루어졌다. 스테프 레누스가 이끌고 있는 벨기에의 극단 아바토와 페르메(Abattoir Fermé)의 배우 세 명, 착실하게 커리어를 쌓아온 무용수 최진한과 김혜경 그리고 허성임 본인까지 총 여섯 명이 결합한 만큼 제법 기대와 주목을 받는 무대였다.
작은 샹들리에가 드리워지고 커튼으로 가려진 비밀의 상자 같은 방이 자리 잡은 무대에 조명이 들어오면 배우 힐 반 베르켈(그는 최진한과 함께 이 무대에서 상반된 이미지를 가진 남성의 두 축을 이룬다)이 커피메이커로 커피를 내리는 동작으로 공연은 시작된다. 차례차례 들어온 배우와 무용수들은 커피를 나누어 마시기도 하고 자유롭게 춤추며 움직인다. 이렇게 뚜렷한 목적성이나 분위기를 파악하기 모호한 장면은 한동안 펼쳐진다.
이어 작은 방의 커튼을 걷어내면 교복을 입고 한껏 생기발랄함을 뽐내는 허성임이 등장한다. 뒷벽에 걸린 유치원 졸업사진과 화려하지만 낡을 대로 낡아 세월의 풍화작용을 고스란히 담은 꽃무늬 벽지는 대조적이다. 그런 배경 속에서 작위적(?)으로 귀여운 연기를 펼치다가 얼굴에 립스틱을 떡칠하고 유리벽에 비벼대는 허성임의 모습은 더욱 그로테스크하게 느껴진다.
사실 이 공연은 전반부 내내 감정선의 흐름을 파악하기 어려울 만큼(흡사 조증과 울증이 번갈아 나타나는 것처럼) 거칠게 동작과 장면을 이어붙이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 상기한 장면 뒤에는 흰 가운을 입은 출연진들이 마치 방 안에 갇힌 허성임을 상대로 어떤 실험에 몰두하는 것처럼 차트를 적기도 하고, 만삭에 가까운 허성임의 알몸을 공개하기도 했다. 생명을 품을 수 있는 여성의 몸, 자연의 신비에 대한 경외감을 나타내려는 것일까? 아니면 오랜 세월 혹독한 훈련으로 다져진 무용수의 근육조차도 모성 앞에서는 해제되어야만 하는 특수한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 함일까?
임신한 무용수의 알몸을 굳이 적나라하게 공개하는 것이 작품 전개에 어떤 의미를 가진 것인가 고민하려는 순간 그녀가 앉은 방에는 정육점이나 홍등가를 연상시키는 것처럼 붉은 형광등이 켜졌다. 진지한 접근을 무색하게 할 만큼 그 순간 허성임의 모습은 그저 ‘몸뚱어리’로 관람당하고 읽히는 것이다.
그리고 무대 앞쪽에선 김혜경이 먹물을 입에서 토해내며 배우들의 손길에 의해 옷이 벗겨지고 물감으로 몸이 더럽혀지지만 별다른 손을 쓸 수 없이 무기력하게 늘어지는데 여기서도 여성의 몸은 그저 몸뚱어리에 불과하다. 이것을 관음증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기엔 무용수가 착용한 테이핑이나 무릎보호대가 이 몸이 여전히 고단하게 노동하고 있다고 살짝 꾸짖는다.
김혜경이 먹물을 토하며 변태하는 과정은 로열발레단의 〈메타모르포시스〉가 떠오르고, 이졸데의 ‘사랑의 죽음’이 흐르는 가운데 최진한이 실리콘 인형 같은 김혜경의 몸을 휘두르거나 굴리는 장면은 최진한이라는 무용수의 특성이 더해져 코믹하게 비틀어졌다는 것 말고는 맥밀란 안무의 〈마농〉이 연상되었다. 이렇게 그럭저럭 의도에 들어맞는 것 같으면서도 참신하다고 보이진 않는 연출이 잇따른 것은 아쉬운 부분이었다.
배우들이 김혜경의 알몸을 비닐 랩으로 칭칭 동여매어 누에고치 같이 만들고 뉘었을 때, 그리고 유리벽 너머 허성임의 알몸 역시 웅크린 같은 자세로 등장한 뒤에야 님프를 작품에 끌고 들어온 리플렛 글이 비로소 가닥 잡히며 주제가 완결되는 듯 했다. 뭇 생명들은 다양한 변태와 죽음을 거치고도 또다시 부활하게 마련이니 길고 긴 우주의 사이클을 두고 보았을 때 찰나에 불과한 늙음과 무기력함에 연연해할 필요 없지 않겠는가.
마지막에 출연자들 모두 남성용 메리야스 런닝과 팬츠를 입게 한 것은 전반부의 검은 복장과 대비되게 하면서 자유롭게 노니는 분위기를 만들려고 한 것일까? 개인적으로는 여성성을 시각적으로 제거하기만 해도 무대가 얼마나 삭막한(?) 풍경이 되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허성임이 전반부에 노래 ‘Perfect Day’를 울며 쥐어짜듯 불렀던 마무리는 평화로운 결말을 기다리는 관객을 끝까지 순순히 놓아주지 않는 작은 펀치 같았다.
신작 〈님프〉에 대한 홍보물를 통해 이 공연이 스토리가 아닌 이미지 위주로 꼴라주한 작품이 될 것이란 점은 예상했으나, 연출가 스테프 레누스가 한국 여성들의 모습에서 느낀 것이 과연 무엇이기에 이런 난삽한 접붙임, 다소 거칠고 폭력적이라 느껴질 만한 이미지들의 매치가 등장하는지 의문스러웠다.
유난히 외모를 가꾸는데 신경을 많이 쓰고, 영원히 젊음을 간직하고 싶은 한국 여성들의 욕망을 요사스럽고 매혹적인 이미지를 가진 님프에 투사하는 것이 작품의 컨셉트였던 것 같다. 그러나 자기 몸의 주체적인 주인으로서 기능하지 못하고 관찰 당하고 함부로 다뤄지는 여성의 몸, 그걸 보여주는 장면의 비중이 훨씬 크다 보니 그 끔찍한 수동성은 오히려 다른 방향에서 신화 속 님프의 이야기와 겹쳐졌다. 이를테면 헤라 여신을 노하게 하여 형체가 없어지고 목소리만 남은 ‘에코’라든가, 아폴론의 일방적인 구애를 견디다 못해 차라리 월계수로 변해야만 했던 ‘다프네’처럼 연약하고 무기력한 존재들로서 말이다.
그런 점에서 여성들이 점점 더 많은 성폭력에 노출된 채 살아가는 세태를 감안하면(랩으로 감기는 김혜경의 모습을 핸드폰 카메라로 찍는 최진한의 연기가 시사하는 바다) 지극히 현실적이라 할 수도 있는 잔혹한 연출이지만, 그간 허성임이 나름대로 개척해온 주체적이고 에너제틱한 여성성에서는 몇 발 물러난 작품인 듯 하여 못내 아쉽다.
한편 임신한 무용수의 몸이 불러 일으켰던 특별한 시너지를 차후 공연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풀어낼 것인지 궁금하다. 이번 공연에서는 신화 속 님프의 모습과 흡사한 외모이면서 허성임의 아바타가 되어 육체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파고가 큰 격렬한 장면들을 무리 없이 소화해낸 김혜경의 공로가 가장 눈에 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