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현대무용수 치고는 비교적 가늘고 아름다운 몸의 선을 가진 이윤희의 춤은 늘 무대 위에서 빛났다. 그녀의 춤세계가 궁금했다. 국립현대무용단의 2015년 신작 <공일차원>(6월 5-7일, 대학로 예술극장 대극장) 마지막 날 공연을 마치고 그녀를 만났다.
권옥희 공연을 마치자마자 인터뷰에 응해줘서 고맙다. 무용수로서 최근 근황부터 소개해주기 바란다.
이윤희 지금은 국립현대무용단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국립현대무용단은 1년 계약직이고, 매년 오디션을 본다. 국립현대무용단에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재직하고, 1년 쉬고, 다시 올 1월에 오디션을 보고 2월부터 춤을 추고 있다.
국립현대무용단에서 춤을 춰야겠다고 생각한 특별한 이유가 있었는가?
창단되고 난 뒤, 한 프로젝트가 끝나고 응시했다. 그 전에는 이미 개인적인 프로젝트 공연이 많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었다. 그런데 국립현대무용단의 첫 공연을 보고 무용수들이 부러웠다. 그래서 응시를 했다. 무대에서 원 없이 춤출 수 있겠다는 생각, 그것도 안정되게. 무용수가 경제적으로 안정되게 춤을 출 수 있다는 것은 큰 것이다.
짧지만, 국립현대무용단의 (작품)역사와 함께 해 온 것 같다. 국립현대무용단이 창단된 이후 무용단이 공연한 거의 모든 작품에서 만날 수 있었다. 그동안 무용단에서 공연한 작품을 꼽자면?
홍승엽감독님의 <수상한 파라다이스> <호시탐탐> <개와 그림자> <달보는 개> <뿔> <아Q> <말들의 눈에는 피가> <데자뷔> <벽오금학> 등 홍감독님의 거의 모든 레퍼토리에 참여했었다. 그리고 안애순감독님의 인도네시아 초청공연 <불쌍>, <이미 아직> 이번 <공일차원>에서 춤을 췄다. 10월에는 창단 5주년 기념 <어린왕자>에 출연할 예정이다.
무용수로서 참여한 이번 <공일차원>은 어땠나?
다른 작품보다 몸을 많이 썼던 것 같다. 힘들었지만 재미있게 작업을 했다. 좋은 평가가 있었으면 좋겠다.
국립무용단을 1년 쉬는 동안 ‘댄싱9 시즌 2’에 출연한 것을 봤다. 출연하게 된 동기? 그 때의 경험을 얘기해 달라.
대중들에게 현대춤이란 장르를 알리고 싶었다고 방송에서 말했던 기억이 있다. 물론 그런 의도도 있었지만 무용수로서 나 자신을 알리고 싶었다는 것이 더 솔직한 대답일 것이다. 다행히 시즌 2가 끝날 때까지 살아남아서 많이 알려진 것 같다. 부끄럽지만 길을 가는데 알아봐주는 분들도 있고, 무엇보다 제 춤을 보러 오는 분들이 있다는 것이 보람이다. 감사한 일이다.
좋은 점만 있었나?
춤을 출 수 없는 환경, 말하자면 쇼적인 재미를 보여주는 방송이다 보니 예술적인 요소보다 춤을 대중화시키는 장면 연출을 위한 장치로 인해 어려움을 좀 겪었다. 예를 들어 모래사장이라든가 악조건의 상황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춤을 춰야하는 점, 전혀 다른 장르의 무용수들과 공동작품을 만들어 내는 작업 등. 힘들었지만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이번 시즌 3에도 출연제의를 받긴 했었다. 멤버 안에 들었다고. 때마침 국립현대무용단 합격소식도 함께여서 둘 중 한 곳을 선택해야 했고, 무대에서 춤을 추고 싶어서 국립현대무용단을 택했다. ‘댄싱 9’을 통해 현대무용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줘서 고마웠다. 앞으로도 더 많은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을 졸업한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떤 생각으로 그곳으로 진학하게 되었나?
출신지가 지방(포항)이다 보니 학교에 대한 정보도 없었고, 그냥 좋은 학교라는 것만 알고 들어갔다. 막상 들어가고 보니 서울 친구들에 비해 모르는 것이 많았다. 예를 들어 외국무용단이 내한했을 때 친구들에 비해 난 모르는 것이 많았다. 대학생활을 하면서 미처 몰랐던 것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하게 된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대학에서의 수업은 유익했다. 미나 유 교수님의 즉흥수업이 좋았고, 4학년이 되면서 교수님들이 가르치고자 하는 것에 대한 목적이랄까? 근본적으로 수업에 대한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그러한 경험이 졸업한 뒤에 무용수로서 큰 도움이 되었다.
어떤 사람이(무엇이) 되고 싶었나?
질문이 어렵다. 춤 말고 다른 생각을 해본 일이 없는 것 같다. 당연히 무용수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고, 지금 춤을 추고 있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춤을 떼놓고 나 자신을 생각하는 것은 어렵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발레를 시작했다. 발레리나가 되고 싶었는데, 중학교 때 현대무용으로 전공을 바꾸게 되었고, 별 고민 없이 춤을 춰왔다. 열심히 했던 것 같다. 중학교 때 춤을 추다가 발등에 금이 가서 깁스를 한 일이 있었다. 당연히 춤 연습을 못하고 쉬어야 했다. 그런데 학원에 나가 앉아 있어야 마음이 편했다. 학교는 안 가도 아무렇지도 않는데 이상하게 학원을 못가니, 불안하고 하루가 지루했다. 그래서 그냥 가서 앉아 있었다. 그러니 다른 일을 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당연히 생각조차 못했다. 질문에 맞는 답일지는 모르겠으나, ‘춤을 추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무용수로 밥은 먹고 사는가?
괜찮다.(웃음)
무용수의 하루의 일상은 어떤가?
무용단에 있기 때문에 평일에는 출퇴근 시간이 정확하다. 11시부터 6시까지 무용단에 있다. 출근해서 자유롭게 연습하고, 공연이 있으면 공연 연습, 그리고 공연을 하고, 끝나면 영화도 보고, 사진전도 보러 다닌다. 주말에는 대부분 문화생활을 통해 재충전하는 시간을 가지고, 그리고 쉰다.
그동안 무용단에서 출연한 작품 중 가장 인상에 남는 작품이 있다면, 소개해 달라. <수상한 파라다이스>와 <소셜스킨>에서 인상적인 춤을 췄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소셜스킨>은 해외안무가 초청공연작품이었다. 개인적으로 그 작품이 좋았다. 무용수로서 해보지 않았던 동작이 많았고, 연습하고 난 뒤에는 근육통으로 시달렸으나 춤의 장면이라든가 연습하는 모든 과정이 좋았었다. 무용수와 안무가와의 유대, 무용수들과의 관계도 그렇고 기억에 남는 작품이었다.
안무자, 그러니까 무용수로서 예술감독의 의도를 파악하고 표현하는 일은 어떤가?
물론 안무자에 따라 그 정도차이는 있지만 대체적으로 큰 어려움은 느끼지 못한다. 가끔 안무의도를 명확하게 파악하지 못한다든가, 제대로 제시가 안 되면 여전히 힘들기는 하다.
자신의 세계에 대한 고민, 생각을 작품으로 표현하고픈 욕망이 있는가?
있다. 어렸을 때는 예쁘게 보이고 아름답게 보이고 싶은 욕망이 먼저였는데. 이제는 세계에 대한 고민을 내가 춤으로 풀었을 때 얼마나 같은 공감대를 형성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한다.
한국의 춤계에 바라고픈 것이 있다면?
무용수의 복지부분이 더 좋아져서, 오래 춤출 수 있었으면 좋겠다.
춤을 시작하고 난 뒤 내내 행복했나?
마냥 행복하지는 않았다. 특히 부상당했을 때.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무릎의 십자인대를 심하게 다쳤었다. 약물치료와 재활운동을 오랫동안 했었다. 그 때 슬럼프를 심하게 겪었다. 이후로는 춤추는 자체가 행복하다. 물론 무대에서 제대로 춤의 의도가 전달이 안됐을 때는 속상하지만.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충분히 춤을 추고 난 뒤, 안무 작업을 통해 나의 세계, 관심 분야를 춤으로 만들어보고 싶은 욕심이 있다. 그리고 공연하면서 가게 되는 여행 말고, 많은 여행을 해보고 싶다. 자유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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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매일 발레로 몸을 훈련하고 있다는, 무용수 이윤희는 매우 성실해보였다. 아마도 지금의 그녀를 만든 것은 성실함과 노력이었을 것이다. 무용수로서 좋은 신체조건을 가진 것, 큰 행운이다. 하지만 그 조건을 갈고 닦은 것 또한 온전히 그녀의 노력이다. 지금껏 무용수가 되기 위해 몸을 혹사해온 자신의 시간이 그녀를 예술가로 더 멀리 데려다 줄 것으로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