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웹진>에서는 2015년 한 해 동안 다양한 작품에서 활약할 주목할 만한 무용수를 연속으로 인터뷰해 소개한다. 공연 현장을 지켜보는 춤비평가들이 직접 추천과 인터뷰를 진행한다. (편집자 주)
방희망 안녕하세요. 만나게 되서 반갑습니다. <춤웹진>에서 이번 3월호부터 ‘이 무용수를 주목하라’는 제목으로 꼭지를 만들어 비평가 한 사람이 2015년 기대되는 무용수를 한 분씩 소개하기로 했어요. 그런데 국립발레단 한나래님이 첫 테이프를 끊게 되었네요. 저는 한나래님을 작년 4월의 〈백조의 호수〉에서 러시아 공주로 출연했을 때 처음 제대로 보았는데, 그때 눈에 확 들어왔거든요.
그 후 가을에 KNB STARS 공연에서 〈Little Monsters〉에 출연한 모습을 더욱 인상 깊게 보아 추천하게 되었고요. 한나래님을 지면에서 처음 만나는 <춤웹진> 독자들을 위해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발레를 시작하게 된 이야기나, 오래전 일이긴 하지만 2007년에 독일 베를린국제무용콩쿠르에서 금상을 받은 이야기라든지, 국립발레단 입단한 과정 등이 궁금해요.
한나래 안녕하세요. 한나래입니다. 제가 첫 타자라니 영광입니다(웃음). 저는 취미로 발레를 하다가 선생님들의 추천을 많이 받아 본격적으로 하게 되었어요. 중학교 때부터 시작해서 사실 많이 늦은 편이라 체격이 좋다는 말에도 반신반의 하면서 했는데 서울예고를 힘들게 들어갔어요. 실력이 많이 부족해서요.
그렇지만 학교에서 정말 잘 배웠고 이화여대에 진학하게 되었지요. 재학 중에 UBC를 잠깐 들어가게 되었거든요. 발레단 생활은 이런 거구나 1년 정도 경험하다 다시 학교에 돌아와 국립발레단 입단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국립발레단에 들어와서는 그냥 열심히 했어요. 욕심 안 부리고 주어지는 대로요. 군무든 솔리스트든, 이번에 주역을 맡아서도 너무 감사하지만 맡은 역할을 즐기며 열심히 하고 싶어요.
너무 오래전 일이라 잘 기억은 안 나지만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 나간 콩쿠르였어요 . 어떻게든 작품을 만들어서 나가보자 해서 연습을 했는데 하필 국내가 처음이 아니라 국제 콩쿠르가 처음이 된 거에요. 친구 두 명과 같이 가서 엄청 긴장을 많이 했는데 막상 가보니까 할 만 하겠더라고요(웃음). 자신감을 얻어서 연습 때보다 무대에서 더 잘 했던 것 같아요. 그때 작품은 〈레이몬다〉, 〈돈키호테> 3막 키트리 바리에이션 등을 준비했었어요. 국립발레단은 2012년에 입단했고 2013년부터 정단원이 되었어요.
늦게 시작해 힘든 점은 없었나요?
지금은 늦게 시작했다고 해서 힘든 점은 없구요, 어렸을 때는 다른 친구들이 워낙 유치원 때부터 해오니 실력 차이가 많이 나고 제겐 생소한 동작들도 많으니 받아들이는 게 느리고, 작품에 대해서도 많이 모르고, 그래서 남들보다 늦게까지 남아서 정말 많이 노력했어요. 마음고생도 많이 했었는데 지금은 좋아요. 학교 다닐 때부터 훌륭한 선생님들을 만나서 잘 극복하게 된 것 같아요.
지난 해 연말에 〈호두까기인형〉의 주역으로 데뷔하게 된 게 화제가 되었었지요. 끝나고 나서 스스로 얻은 것에 대해 평가를 내린다면 어떤가요.
정기공연이고 예술의 전당 큰 극장 무대, 전막 첫 주역이었거든요. 아주 부담스럽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스트레스가 심했는데, 여태 발레단 생활 하면서 이런저런 역할을 하며 무대에 섰던 것을 기반으로 잘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묵묵히, 꿋꿋하게, 흔들리지 않고 하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그 전에도 지방 공연 무대에 많이 서 봤으니, 할 수 있겠더라고요.(웃음) 많이 부족했지만, 다양한 역할을 맡으면서 융통성이 늘어나서 성숙해지고, 춤을 출 수 있는 범위가 늘어나고 그런 소득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무대에서 봤을 때는 치명적인 매력도 있었는데, 막상 만나보니 인상은 앳되면서도 긍정적이고 예상과 달라서 놀랍기도 하네요.(웃음) 제가 인상 깊게 보았던 공연 두 작품을 위주로 얘기해 볼게요. 아무래도 직접 추었던 무용수의 해석이랄까 그런 얘기를 더 많이 듣고 싶거든요. 〈백조의 호수〉의 러시아 공주는 디베르티스망에서 자칫 처지기 쉬운 역할일 수도 있는데, 한나래 님이 춘 모습을 보고 아, 이걸 이렇게도 할 수 있구나 싶었어요. 러시아는 동서양으로 길게 걸쳐져 있어 동양의 정적인 정서도 많이 가지고 있잖아요. 러시아 공주 춤이 음악도 그렇지만 좀 정적인 분위기라 눈에 띄기 쉽지 않은데, 그때 손끝까지 매무새가 신경을 많이 쓴 걸 느낄 수 있었고 그런 동양의 여백의 미랄까? 그런 것도 잘 살렸다는 생각이 들어서 신선했거든요.
일단 〈백조의 호수〉 러시아 공주 역할은 원래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역할이에요(웃음). 제게는 다른 것보다도 춤출 때 정말 즐기면서 출 수 있는 그런 역할이거든요. 애착이 많은 작품이라서 하다보면 재미있어요. 어떻게 하면 좀 더 예쁘고 세련되고 우아하게 표현할 수 있을지, 처음 등장할 때부터 퇴장할 때까지 그 사이에 어떤 부분을 강조할지 그런 것을 많이 생각했어요. 주는 대로만 하지 않고 저만의 러시아 공주를 표현하고 싶어서 연구를 많이 한 거랍니다. 막상 들어있는 동작은 별로 없지만 시선처리까지, 제가 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했어요.
데미스 볼피의 〈Little Monsters〉는 어땠나요. 작품 참 좋게 보았거든요. 그 작품에서 강조된 ‘턴 인‘은 연인 사이의 내밀한 애착과 집착을 구조적으로 형상화한 것이 잘 맞아떨어졌고, 그러면서도 감정의 결이 풍부하게 살아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저는 러시아 공주 하던 사람이 이런 격한 작품도 해내네? 하고 한결 더 관심 있게 보게 되었어요.
작년 여름에 데미스 볼피가 왔을 때 안무를 받았는데, 처음엔 제 작품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영상을 보았는데 원래는 남자는 헐크처럼 건장한 몸을 가지고 여자는 아주 작으면서 근육질이고 그래서 역동적인 느낌이 강하더라고요. 제가 키가 커서(172cm) 제 키에는 너무 힘든 움직임이었어요. 에너지가 분출되어야 하는 게 정말 힘들어서 첫날엔 걷지도 못할 정도로 근육통이 심했었지요. 다른 사람들도 다치고 인대가 나가는 등 고통이 심했었고 아무도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할 수가 없었어요. 저는 저대로 안무를 받더라도 키가 너무 크니까 무대엔 서기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거든요. 그러다가 데미스 볼피가 돌아갈 때쯤 파트너가 이영철 선배님으로 바뀌었어요. 그러면서 안무가가 런스루를 해보라 했고, 동작보다는 느낌을 위주로 했는데 괜찮다고 해주시는 거에요.
〈Little Monsters〉는 이 작품만 열심히 한다고 해서 소화를 해낼 수 있는 작품이 아니라서 근력 운동을 정말 많이 했어요. 스태미너가 아주 많이 필요하거든요. 출근하기 전에 유산소 운동과 근력 운동을 하고, 퇴근해서도 계속 운동을 했고요. 제가 키가 커서 파트너가 힘들어하니까 운동을 안 하면 서로 힘든 거예요. 피해를 안 주려고 나름대로 신경을 많이 썼었지요.
말씀하시는 걸 들어보니 원래 영상대로 강한 이미지와 체격을 가진 무용수들이 등장했더라면 극적으로 확 와 닿았을 수는 있어도, 일상 속 연인 간의 복잡한 감정을 현실적으로 느끼기에는 어려웠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동작 하나하나의 구조적인 아름다움을 곱씹어보기에도 그렇고, 감정적인 측면에도 좀 더 집중해 보게 되었던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이영철씨와의 캐스팅은 잘 어울리고 좋았다고 생각해요.
저도 다른 무용수랑 했으면 그렇게 나오지 않았을 것 같아요. 이영철 선배님도 손끝까지 감정적인 면이 표출이 되는 분이거든요. 동작도 동작이지만, 감성적인 면에 더 중점을 두고 표현하는 편인데 그런 면에서 잘 맞았던 것 같아요. 항상 믿고 할 수 있고 시너지가 나오는 걸 저도 느낄 수 있었어요.
스스로 생각했을 때 장단점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은 어떤 게 있나요.
단점 정말 많죠(웃음). 저는 일단 장점이라면, 할 수 있는 데까진 꾸준히 끝까지 최선을 다한다고 자부해요. 앞으로도 그렇게 할 거구요. 테크닉을 떠나서 감정적으로 성숙한 무용수가 되려고 노력을 하고 있어요. 요즘은 키가 큰 친구들도 많긴 하지만, 아무래도 작고 튼튼한 사람들 보다는 약하거든요. 열심히 해서 테크닉을 보강할 수 있는 부분은 물론 있지만요. 아직 저는 많이 안 해 본 것 같아요. 더 많은 가능성이 있으니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춤에 장르가 많은데 아무래도 클래식만 해왔으니 춤에 있어서는 성숙하지 못한 느낌이랄까요?
그러면 감정표현을 풍부하게 하기 위해 따로 특별히 하는 게 있나요?
아뇨, 따로 하는 건 사실 없어요. 처음 안무를 받았을 땐 바로 감정이 나오지 않거든요. 동작을 익히는 게 우선이니까요. 그렇지만 움직임이 몸에 익고 시간이 지나다보면 점점 속에서 올라오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런 걸 보여드리려고 노력하다보면 저도 모르게 저절로 표현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꼭 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다, 이런 거 얘기해주세요.
저는 할 수 있는 한 다 해보고 싶지요(웃음). 아직 발레단 레퍼토리에 없는 건데 〈까멜리아 레이디〉 같은 드라마 발레를 해보고 싶어요. 그런 작품을 하면서 제가 내면의 심오한 성장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제 한계를 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렇지 않아도 선이 길쭉길쭉해서 드레스를 입고 추는 드라마 발레 역할이 잘 어울릴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국립발레단원으로서의 지난 1년을 돌아보고, 요즘 젊은 국립발레단원들이 파이팅 하는 분위기라 관객들도 관심을 많이 갖고 있는데 그 속에 몸담고 있으면서 느끼는 분위기를 좀 전해주세요.
작년에 제가 이런저런 역할 가리지 않고 무대에 많이 선셈인데요, 〈라 바야데르〉는 전막에 걸쳐 계속 다른 역할로 등장했고 〈백조의 호수〉 때도 그래서 아주 힘들어 살이 많이 빠지기도 했었어요. 그래도 실력도 많이 늘고 무대에 일단 많이 설 수 있었다는 자체가 좋았습니다.
강수진 단장님 오시고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어요. 보여지는 실력으로 평가를 하시기 때문에 다들 열심히 할 수밖에 없거든요. 실력이 있어야 캐스팅도 되고, 그만한 대우도 받을 수 있으니까요. 환경도 자유로워서 자기가 알아서 애착을 갖고 하는 분위기로 가고 있는 것 같아요.
3월 〈지젤〉의 미르타 역할 기대하겠습니다. 앞으로도 무대에서 자주 만났으면 좋겠네요. 오늘 즐거운 인터뷰 고맙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많이 관심 가지고 지켜봐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