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집중기획_ 국립현대무용단 ‘전통의 재발명전’
예술작업에서 전통의 창조적 계승 혹은 현대화

 

 

 

 



국립현대무용단이 개최한 공모전 ‘전통의 재발명전’(8월 22-24일, 아르코예술소극장)은 전통을 모티브로 한 컨템퍼러리 댄스 창작을 독려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동시대적 관점과 태도에서 전통에 접근하도록 하기 위해, 장르와 나이에 제한을 두지 않고 다양한 작품을 수용하고자 했고 이 작업은 어느 정도 성공했다.
전통의 창조적 계승 혹은 현대화 문제는 우리 춤계의 오랜 화두이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국의 안무가로서, 어떤 장르의 춤을 전공했느냐와 관계없이, 이미 전제되어 있는 한국인의 몸과 인류학적 독특성, 삶의 양식 등을 결코 무시할 수 없고 이러한 구체성의 세계는 컨템포러리댄스의 무궁무진한 원천이기도 하다.
<춤웹진>은 기획에서부터 제작에 이르기까지 ‘전통의 제발명전’이 가시적인 성과를 얻어낸 것에 주목, 공모전의 심사위원, 제작 스텝(멘토), 한국춤 전공자로 전통의 현대화 작업을 시도해 온 안무가, 비평가, 그리고 공연 후 현장에서 이루어진 토크 내용을 모아 ‘전통의 현대화’에 대한 다양한 관점에 접근해 본다. (편집자 주) 

 

 



(1) 심사위원의 시선



지금 여기와 퇴적된 것 사이의 긴장

 

이지현_춤비평가


 모든 예술가들에게 ‘전통’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의 문제는 반드시 어떤 식으로든 고민을 하게 되는 경과의 문제이다. 그때의 전통은 시간상 먼 ‘고전’이 되기도 하고 자신과 바로 맞닿아 있는 예술적 ‘관습’을 의미하기도 하는가 하면, 공간적으로 자신이 포함된 지역, 역사, 문화의 깊숙한 것이기도 하고 인류 보편의 것으로 확장되기도 하는 여러 갈래와 여러 지점을 갖는다.
 극단의 예를 들자면 전통과 관습으로부터 가장 멀리 달아나려 하는 전위예술조차도 전통을 반하려 했기 때문에 전통 개념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모순을 담고 있는 것처럼 예술가나 관객 모두 그것으로부터 완벽히 무관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전통 상실 혹은 단절이라는 단어와 맞닿아 있는 우리의 역사적 상흔이 우리에게 ‘전통’을 피부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머릿속에서 작동되는 어떤 것으로 만들어 버린 것은 예술가에게는 심히 안타까운 환경임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지금으로부터 그다지 멀지 않은 80년대 ‘전통의 현대화’ 담론과 우리 것에 대한 치열한 추구는 한국 춤의 르네상스와 맞닿아 왕성하고도 풍부하게 춤의 창조성을 자극하였다. 지금 국립현대무용단이 다시 등장시키고 있는 ‘전통담론’은 그런 흐름과 일맥상통하면서도 2000년대를 경과한 후에 맞고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흥미와 기대를 갖게 하는 ‘전통의 현대화’의 새로운 라운드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전통의 재발명전> 심사를 진행하면서 느낀 것은 지원한 2,30대의 젊은 안무가들이 앞서 말한 80년대 안무가들이 가지고 있었던 전통에 대한 관념적인 무거움에서 많이 자유로워진 듯 보인다는 것이다. 그들은 전통 양식을 차용하는 문제에서도 이전까지의 범주를 벗어나는 신선한 선택이 많았고 그것을 다루는 문제에서도 양식적 차용은 하되 그것을 동시대 주제와 균형감을 잃지 않으려는 고집스러운 태도는 인상적이었다.  

 쇼케이스까지 올라온 작품들은 전통 양식을 동시대 감성에 어떻게 접합시킬 것이냐의 고민을 포함하여 전통을 양식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로 보고 그것에 담겨 있는 의미에 깊숙이 접근하고 있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잊혀진 변경에서의 삶에 대한 역사적 조망을 춤으로 담아보려는 시도까지 볼 수 있어서 완성작에 대한 상당한 기대를 갖게 했다. 

 

 



 특이하게도 우리 예술은 ‘전통’의 문제로부터 원심력을 갖다가도 마치 그것에 끈이 달린 것처럼 구심점을 향해 다시 회귀하는 습성을 보인다. 이는 우리의 전통 예술과 문화가 갖고 있는 시간의 퇴적층이 두껍고, 그것이 내는 발효의 향이 깊기 때문이기도 하고 거기에 이제는 우리 것이 동시대인들과 함께 누릴 만 한 것이라는 자부심이 은연중에 작용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국립현대무용단의 전통에 대한 집요한 물음이 아직은 체계를 갖추어 확장된 목소리를 내지는 못하지만 <전통의 재발명전>과 같은 기획을 통하여 젊은 세대와 함께 이 질문을 다시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전통을 어떻게 바라보고 다룰 것인가를 위한 또 한 계절을 열어 주었다는 것에서 다가오는 계절이 흥미롭다. (<전통의 재발명전> 팜플렛 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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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제작멘토의 시선



전통에 대한 새로운 태도를 발명하다- 스스로를 담아내는 그릇으로

조성주_바누인터미디어 예술감독


 국립현대무용단이 제시하는 ‘전통의 재발명’이라는 어마무시한 명제를 처음으로 접한 순간 숨은 전제에 대한 궁금증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전통이 이 시대에도 기여할 것이라는 확신으로 시대 성격에 맞는 업데이트를 기대하는 것인지, 과거의 전통은 있는 그대로는 못쓰겠으니 아예 새로 만들어야겠다는 비판과 제시인지, 어떤 전통도 하늘에서 떨어진 절대적 권위가 아니라 결국은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것일 뿐이라는 객관적 각성을 촉구하는 것인지 알듯말듯했다.
 실제로 이 프로그램은 그러한 다양한 입장이나 해석을 특정한 방향으로 제한하지 않은 열린 상태로 진행되는 듯했고 그 때문에 창작자들은 전통을 창작의 기제로 사용하는 방식에 대해 충분히 독자적일 수 있는 여지가 생긴 것이었다. 필자가 <전통의 재발명전>의 ‘제작멘토’ 로 참여하게 되면서 가장 관심이 갔던 부분은 ‘예전 어느 한때 컨템포러리였던’ 전통으로부터 2014년 현재의 컨템포러리 예술인들이 무엇을 발견하며 어떻게 반응하는가였다. 

 

 



 공연을 불과 한 달 남짓 앞둔 시점에서 만난 창작자들은 고독한 자문을 던지던 중이었다. 자신들이 선택한 전통적 모티브와 관련하여 ‘본능 vs 맥락’ 혹은 ‘욕구 vs 설득력’ 사이에서 어느 지점쯤에 위치해야 하는지와 연결된 의문들이었다. 물론 어떤 작품을 만들던 있을 법한 갈등이었겠지만 특히나 ‘전통’이라는 뭉글뭉글한 비정형의 보따리를 한 짐 더 짊어진 채 크고 작은 기대를 끌어안아야 할때는 그 고민의 깊이는 더욱 유난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프로그램에 대한 이런저런 기대와 우려, 제작진이 공유한 압박감 속에서도 안무자들의 고민은 굳건히(!) 진행되었다. 사실 자신들이 선택한 전통적 요소-강강술래(김보람, 이은경), 전통상례(임진호)-에 대한 안무가들의 태도는 보다 주체적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들에게 전통적 요소를 설득력 있게 재해석하여 그려내는 작업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듯 했으며 그에 대한 관심조차 일반적 수준을 넘어서지 않고 있었다. 반면 그들에게서 발견된 공통점은 그 전통적 요소들이 지금의 자신들에게 어떤 감각이나 생각의 고리로 사용되느냐에 보다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창작자들이 전통에 대항(?)하는 주체적인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었으나 그 때문에 더욱 시퀀스들의 운영과 세부 소재 및 설정들에 대해 자의적인 의미부여 이상의 전달력을 갖추었는지 의심하고 보완해야할 필요성도 절실했다. 

 

 



 제작멘토로서의 정책이라면 정책이었던 것은 ‘의도를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는 표현들이 무책임하게 난사하는 모호함을 극복하고 오독의 여지를 최소화함으로써 최종적 전달력을 정련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것이었고, 보다 본질적이고 가장 중요한 것은 ‘해답은 예술가 스스로가 이미 가지고 있다’는 한 가지 믿음을 잃지 않는 것이었다.  

 두 팀을 각기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연습을 지켜보는 실제 작업을 통해서 창작자들의 의도를 보다 정밀하게 파악하고 문제를 인식시키기 위해 어지간히 많은 집요한 질문을 던졌던 것 같다. 다각적인 -때로 환영받지 못하는- 질문들을 던지고 창작자들이 스스로 작품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재확인하며 심화시키는 모습을 지켜보는 기쁨이기도 고통이기도 한 과정은 결국 마지막 공연까지 이어졌다.
 글의 도입에서도 밝혔듯 프로그램에 대한 해석의 폭이 넓었기에 두 선정 작품이 주최 측의 기획방향과 얼마나 잘 맞아 들어갔는가에 대해서는 단언할 수 없다. 하지만 전통 그 자체보다는 전통에 대한 접근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데에 더 무게를 싣고 있는 젊은 창작자들의 모습에서 큰 잠재력을 발견했기에 유익할지는 모르겠으나 그 인상들을 남겨본다.
  


 작품 <어긋난 숭배>

 이은경과 김보람이 함께 작업한 <어긋난 숭배>는 강강술래의 기원이 되는 고대 제사의식을 모티브로 삼고 있으며 조공례의 소리로 풀어지는 남도 들노래 ‘강강술래’ 중 각기 다른 장단으로 진행되는 몇개의 단락만을 가져와 자신들만의 이야기적 장면으로 풀어놓는다.
 더하여 곳곳에서는 강강술래 노랫말에 일차원적 움직임 묘사를 접합시키는 행위나 한국춤을 비롯한 여러 춤사위의 특징들을 과장하여 차용하는 모습에서 자신들이 발견한 흥미로운 요소들을 시치미를 뗀 채 유희적으로 재조합하고 있는 안무자들의 진지한 장난기를 발견하게도 된다. 하지만 작품의 전개에 있어서 회사원으로 설정된 정장을 입은 인물(김보람)과 군복을 입은 인물(이은경)의 행위를 통해 세상을 지배하는 숭배의 대상들인 물질, 권력, 종교, 성문화 등에 대한 현실비판적 은유나 상징들은 전달가능한 장치를 충분히 마련하지 않은 채로 지나칠 만큼 조밀하게 제시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들만의 제의를 발명하고자 했던 안무자들은 ‘이 공연이 작품이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제의가 되기를’ 원했다. 그런 의도 때문인지 ‘어긋난 숭배’는 공연이라는 형식 안에 있지만 다분히 수행적인 경향이 짙어 보인다.
 전통적 강강술래가 누구나 참여하는 집단적 놀이이자 민중적 의례인데에 반해 이은경과 김보람이 제시한 ‘New 강강술래’의 방향은 스스로를 제물로 바치며 카오스적인 문제제기와 반어법적 해소를 거치는 그들만의 제사이다. 그 안에는 창작자들이 의도했던 ‘불친절함’도 더불어 있는데 그것은 관객들의 만족도를 높이거나 잘 전달하기 위한 노력이 제의적 행위에 대한 집중보다 결코 더 우선시될 수 없다는 이 작품에 대한 소신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그렇게 당당한 불친절함에도 불구하고 세 번의 객석 반응을 관찰했을 때 김보람과 이은경이 <어긋난 숭배>에서 진지하게 수행하는 키치적인 제의의 풍경을 통해 관객들은 두 안무자들이 간절하게 품었던 숨은 바람을 어느 정도 읽어낼 수 있었던 듯도 하다. ‘보이는 사실 그대로를 보려하지 말고, 그 보이는 것의 의미를 보아 달라’는 바로 그 바람. 

 

 



 토끼 모양의 봉제인형들을 향한 두 등장인물의 맹목적 행위들은 그 어떤 것들도 집착과 숭배의 대상이 될 수 있는 현대사회의 부조리함을 떠올리게 한다. 그런데 제물을 바치듯 공들여 쌓은 토끼인형 무더기를 한 순간 초토화시키고나서 그들은 다시 속옷 차림으로 바닥에 퍼질러 앉아 방금 벗어던진 자신들의 의상(정장과 군복) 속에 그 인형들을 꾸역꾸역 집어넣으며 말을 건넨다. 이은경이 김보람에게 묻는 것이다. ‘언제까지 이 짓을 할거야? 그만둘거라는 말을 몇 년째 계속하고 있잖아.’ 김보람은 시선만 이리저리 돌릴 뿐 대답이 없다.  

 객석에 안 들려도 그만이라고 여기는 그들의 대화에서는 현대인의,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 자신들이 느끼는 너절한 현실에 대한 자조와 진정성이 혼재되어 내비쳐진다. 전통적 제의를 새로운 방식으로 재현한다는 구실을 달아 진실과 거짓이 구별되지 않는 거대사회 속에서 초라하고 무기력해지는 개인의 현실을 담아내고자 했던 두 공동안무자의 태도에는 마음이 짠해지는 비아냥과 자기고백이 묻어난다.
 현실 속에서 좌표를 상실한 채 부유하고 있는 -어쩌면 안무자들 자신일 수도 있는- 사람들을 키치적 의식의 제물로 바치는 <어긋난 숭배>는 사실 상당한 비장함을 내포하고 있다. ‘눈치보고 도망 다니는 토끼 같은 인간들’에 대한 연민도 있다. 하지만 안무자들은 결코 그것들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는다. 낯을 가리는 것일까. 혹은 소통의 가능성을 이제 더 이상 믿지 않게 된 걸까.



 작품 <혼구녕> 

 전통 상례는 죽음을 대하는 산 자의 매뉴얼이며 죽음이 던져주는 주체할 수 없는 혼란을 감당해 내기위한 사회적 장치이다. 오랜 시간이 흐르며 선별되어 남겨진 절차 속에서 관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오늘날의 상례 주변은 온갖 키치스러운 대용물들이 범람한다.
 <혼구녕>에서 임진호는 개인적 환경으로 인해 죽은이를 위한 의식과 절차들을 실제 현장에서 수없이 수행한 사람으로서 이를 정밀하게 포착해낸다. 그의 시선을 통해 그려지는 ‘죽음을 대하는 산 자들의 태도’와 ‘죽은 자들이 맞이하는 세계’는 상투적인 표현과 소란스러움, 그리고 유희성이 난무하는 총체적 혼란이다.
 죽음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왜 이러한 톤으로 표현하고자 했는지를 안무자에게 물은 적이 있다. 집안의 가업인 장례지도사를 3대째 이어가며 20대 중반에만 300회가 훌쩍 넘도록 시신을 직접 염습하고 입관해온 젊은이가 체감해온 죽음의 주변 풍경에서 그가 버리지 않고 있는 뜻밖의 믿음은 ‘사후세계=행복한 곳’이었다. 그래서였다. 염에서 입관까지를 수행하는 자신의 행위가 고인들의 평화를 위한 일이라고 굳건히 믿을 수 없다면 그 일을 계속 감당할 수 없었을 거라고 말하는 이 특별한 이력의 안무자가 <혼구녕>에서 고블린파티의 동료들과 그려내는 사후세계에 웃음과 놀이가 가득한 이유는. 임진호가 그리듯 칠성판 너머의 세계가 희희낙낙이라면 죽음에 대한 절망적 당혹감의 무게를 조금은 덜어내고 살아있음에 더 집중할 수 있지 않을까.
 임진호는 ‘고인의 죽음으로 한자리에 모여든 사람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온갖 이율배반적 충돌을 목격하며 수많은 순간 미묘한 감정들을 느꼈다. 그래서 그것을 풀어내보고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공연을 하며 동시에 두려움을 느끼기도 한다는 고백도 있었다. 그간 직접 염습을 하여 잘 모셔드린 고인들이 일일히 떠오르며 그분들이 혹시나 이러한 의식을 무대에서 행하는 것을 노여워하시지는 않을까를 고민하게 된다는 것이다.
 삶의 경계를 넘은 육신을 귀하게 모셔 떠나보내야 하는 ‘산 자의 책무에 대한 변질되지 않은 진지함’, 그리고 사후세계에 대한 초긍정적 해석이 아니고서는 견뎌내기 힘든 ‘죽음의 무게에 대한 겸허한 인식’이 내재되어 있는 <혼구녕>은 단순히 전통상례의 부분적 재현이 아니라 한 집안을 통해 전해져온 죽음과 관련한 의례와 철학들이 한 현대무용가의 몸을 통해 우리 앞에 드러나는 또 하나의 파생적 제의인 것이 아닐까. 본디 ‘공연’은 그 자체로 인류와 함께 해온 제의이며 놀이이니 말이다. 

 

 



 두 작품에서 공히 나타나는 경향은 키치와 카오스이다. 그 원인을 생각해 보건데, 전통이란 결국 지금의 세대에게 있어서는 비논리적이며 설득력 없는 혼란의 덩어리이기 때문이 아닐까싶다. 본질은 퇴화하고 화석만 남아버린 상태?  

 수억 년 전 생존했던 공룡의 색깔이나 피부는 그 누구도 알 수가 없다. 남은 것은 오직 뼈의 흔적뿐이니까. 그것도 해체된. 기록에 없었던 새로운 공룡의 화석을 복원하면서 잘못 끼워 맞춰졌다가 수년이 흐른 후에야 오류가 발견된 사례도 있었다. 지금의 전통 재현이란 그것과 다르지 않은 듯하다.
 그러므로 이에 대한 젊은 예술인들의 키치와 카오스적 어휘는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그래도 부러 점잖을 떠는 차원에서 이 시대의 창작자들에게 다소 고답적인 질문을 던져본다면 ‘그 카오스의 원형을 추적하고 맥락을 이해해보려하는 의지가 있는가?’이다.
 어느 시대에든 중간자가 있기 마련이다. 도래하는 시대에 중간자의 책무는 샤먼도 종교인도 아닌 바로 예술가들에게 돌아가는 것이 아닐까 싶기 때문이다. 두 작품의 또 다른 공통점은 수행적이며 또한 자기중심적이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춤의 언어로 충분히 정련하지 않은 거친 표현들이 많았다는 비판도 있었다. 그러나 수행적 자세로 작업에 임하는 순간 어느 이상의 예술적 꾸밈은 예술가 자신에게 거짓으로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해주는 관객들이 많아졌으면 한다.
 이은경, 김보람, 임진호는 <전통의 재발명전>이라는 커다란 그릇을 만나 많은 성장통을 겪었던 듯하다. 그토록 궁금했던 그들의 태도와 반응을 지켜보고 마침내는 공감하며 그들이 컨템포러리 예술가들이라면 마땅히 겪고 지나가야 할 방향을 결코 비껴나있지 않음에 신뢰를 가지게 되었고 앞으로의 예술적 행보가 궁금할 따름이다.
 작업을 마무리하며 이런 생각을 했다.
 누군가 제작멘토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 뭐냐고 묻는다면 “예술가들이 끝까지 솔직할 수 있도록 도와주라고 말해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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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한국춤 전공 안무가의 시선

<살풀이춤>에 배어 있는 감성, 우리 선조들은 그 깊은 눈물의 샘을 어찌 발견했을까?

손인영_NOW무용단 예술감독


 사회적 풍토나 역사적 현실은 한 사람에 의해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이 되고 역사적 상황이 무르익을 때, 깃대든 용감한 사람이 나서면 역사의 흐름은 변화를 시도한다.
 춤계 또한 마찬가지이다. 모호한 계통적 분류와 명확하지 않는 자기모습에 대한 물음 속에서 춤은 서구보다 더 서구적인 몸짓과 생각을 무대에 올리며 반세기를 흘러왔다. 1930년대 최승희가 제대로 뿌려놓은 한국춤의 창작정신은 그 동안 ‘향수’로 전락하고 역사를 기리는 정도에서 멈추었다. ‘전통’이란 전시대에 통념되던 어떤 것임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굴곡을 거치는 동안 ‘전통’은 절대 바꾸어서는 안 되는 그 무엇으로 인식되었다. 자연적으로 흘러나오는 창작정신을 묶고 흐름을 잘라버린 것이다.
 그 사이 1960년대 미국적 현대무용이 창작정신을 대신하게 되면서 춤계는 오로지 한국에서만 존재하는 한국 창작춤, 발레, 현대무라는 다소 기형적인 분류 속에서 휘청거리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무용가들은 이미 그 흐름을 인지하고 있고 또 바꾸어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어떻게 그 물꼬를 변화시킬지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제 그 역사적 순간에 도달하여 새로운 변화의 시발점을 찍은 공연들이 바로 국립현대무용단이 시도하는 “역사와 기억” 기획 시리즈가 아닌가 한다. 그 중 8월 22-24일 아르코예술소극장에서 있었던 “전통의 재발명전”은 미래를 기대와 흥분 속으로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공모를 통해 선정된 2개 공연 중 가다프로젝트의 <어긋난 숭배>(안무 이은경 김보람)는 강강술래란 춤이 어떻게 탄생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듯하다. 억압된 환경 속에서 자기분출을 시도하던 여성들이 뒷산에 모여 달밤 아래서 웃고 떠들고 놀면서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만든 것이 강강술래이다.  

 <어긋난 숭배> 또한 스트레스로 만연한 사회·경제적 환경 속에서 억압을 ‘웃음’으로 치환하려는 젊은이들의 자기표현이다. 다양한 소재들이 중첩되어 나타나는 이 작품에는 김보람의 장기인 음악의 흐름을 몸으로 전달받아 몸의 언어로 변화시키는 뛰어난 능력이 배어있다.
 두 무용수는 강강술래 음악에 맞춰서 즐겁게 논다. 놀이성과 즉흥성은 한국춤의 대표적인 표현방법이다. <어긋난 숭배> 또한 이런 유희와 막춤의 묘한 절충이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그러나 거기에는 계산된 아웃라인이 존재한다. ‘숭배’는 자기를 잊고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발악이다. 물신과 종교라는 달콤한 뱀의 혀 속에 빠짐으로서 자신의 초라함을 잊고 억압을 해소하려는 우리들의 자화상을 이 작품은 보여준다.
 그러나 웃지 못 할 진지함 또한 작품 속에서 드러난다. “너 언제까지 이 짓 할 거야?” 묵묵부답 “이번에만 하고 안한다며...” 묵묵부답... 그 묵묵부답 앞에서 관객들의 가슴은 쓰리다.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 사이에서 견디지 못하고 웃음으로 스스로를 치유하려던 조선시대 여성들과 다르지 않는 모습이다.
 그러나 중첩된 이야기는 다소 산만하다. 강강술래 또한 산만하게 다양한 소재들이 얽혀있다. 주제를 정하고 계획적으로 작품을 만든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의 생각들이 모여서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된 모의적 창작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강술래는 음악의 힘이 있고 세월의 켜를 첩첩이 가지고 있어 능구렁이처럼 잘 넘어간다.
 <어긋난 숭배>의 산만함은 톡톡 튀는 즉흥적 창의력의 새로움을 다소 느슨하게 한다. 앞부분의 제의적 시작, 강강술래 음악과 놀기, 중간부분의 무거운 대화, 마지막 부분의 물신에 빠진 자화상, 텐트라는 자아 속으로 숨는 고독한 인간의 모습 등 너무 많은 이야기들이 어지럽게 혼재되어 있어 주제를 모호하게 했다. 그러나 결론은 ‘재미있다’이다. 

 

 



 두 번째 작품 고블린파티의 <혼구녕> (안무_임진호)은 죽음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접근하면서 다양한 소재를 여러 각도에서 실험한 작품이다. 제목부터가 상당히 예스럽다. 위험에 처했다 겨우 모면하게 되면 우리는 “아이고 죽을 뻔하다 살았네!”라고 말한다. 시쳇말로 혼구녕이 난 것이다. 제목이 주는 친근함이 미소 짖게 한다.  

 첫 장면은 다소 엄숙하다. 마치 1980년대식 현대무용을 연상하게 하는 설교식 음성녹음이 들린다. 그러나 2014년도에 듣는 그 목소리는 오히려 약간 키득거리게 하는 생경함이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도 똑같은 뉘앙스를 풍겼다.
 임진호는 고리타분(?)한 설교를 마치 무당이 공수를 하듯 중얼거렸다. 그 무거움을 애써 지우고자 말과 말 사이에 위트 있는 멘트로 관객을 웃음 속으로 몰아넣었다. 21세기는 진지함을 참지 못한다. 관객의 취향을 반증하듯 진지함을 웃음으로 치환시킴으로서 어색함을 줄였다.
 다양한 재료들이 제시되면서 시작하는 작품 <혼구녕>은 마치 안무의 정석을 보는 듯했다. 천 조각, 상복, 새끼줄, 널판지(칠성판) 등의 재료들은 작품에서 다양한 이미지로 변환되고 차용되었다. 중요한 의미가 만들어질 거 같지 않은 긴 판자(아마도 관 또는 죽음을 의미)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면서 해학적이고 특징적인 안무의 재료로 활용되었다. 4명 무용수들의 4개의 목과 8개의 팔과 8개의 다리는 긴 판자를 사이에 두고 얽히고설키면서 신기한 장면들을 연출했다.
 이 작품에서 독특하게 드러나는 안무 기법은 느림의 묘미를 극도로 살려서 자세히 들여다보기를 통해 더 흥미로운 장면을 목격하게 하는 것이다. 사진의 컷을 슬라이드로 보듯이 장면 장면의 구성은 의도되었고 완성되었다. 속도는 이 시대의 쟁점이다. 빨리하지 않으면 답답해하던 관객의 요구에 더 빠르게 대답하던 시대를 이제 조금씩 넘어서려고 한다.
 <혼구녕>은 이러한 관객의 새로운 요구에 즈음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안무기법이 서구에서부터 비롯되었고 일정부분 모방의 뉘앙스가 풍기기는 하지만, 동서양은 어차피 서로모방하며 발전하는 것이니 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의 안무기법을 가지고 어떻게 이야기를 풀고 드러내는가에 있다.
 작품 <혼구녕>은 어렵지 않다. 작품에서 관점은 다양하게 변화된다. 죽은 자의 모습과 산자의 모습 그리고 남은자의 안도와 죽어가는 자의 처절함 등 ‘죽음’을 바라보는 보편적 인간의 관점이 자연스럽게 펼쳐졌다. 주제가 명확하고 대중적 소재를 편안하고 리드미컬하게 전개하고 있기 때문에 느닷없는 충격과 낯설게 하기는 없다. 리드미컬하다는 것은 동전의 양면이다. 부드럽게 넘어가기에 즐겁게 관람할 수 있으나 기억에 남는 것이 약할 수도 있고, 자칫 지루할 수도 있다.
 안무자는 한 가지 기법에 너무 오래 접근함으로서 생길 수 있는 좁은 시각에 유의해야 한다. 하나의 안무 기법으로 한 가지 주제에 접근할 때는 다양한 기법으로 다양하게 접근하는 것 보다 더 치밀해야 한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에 깊이 빠지면 자칫 시간을 잊어버리게 된다. 그러나 그것을 바라보는 관객은 시계를 본다. 제 3자의 관점은 흐름의 전체를 볼 수 있지만, 한 곳에 빠져있는 안무가는 그 빠진 곳으로부터 벗어나기가 어렵다. 

 

 



 <어긋난 숭배>와 <혼구녕>은 ‘전통’ 또는 ‘한국적’이라는 우리 본연의 모습을 어떻게 작품 속에 녹아 낼까에 대한 고민에서부터 출발했다. 그 고민을 우리는 백 년 동안 했다. ‘전통’이란 역사적 산물을 어찌 취급해야 할지 몰라 그 동안 박물관에 고이 보관했다. 박물관에 있는 ‘전통’이 창작의 씨앗이라는 것을 모르지는 않았겠지만 행여 사라질지도 모르는 불안감이 더 컸다.  

 ‘전통’은 박물관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삶과 생활 속에서 살아 숨 쉬어야 한다는 당연한 진리 앞에서 우리는 오래 서성거렸다. 내려주고 이어가고 새롭게 탄생하면서 흘러가는 것이 역사며 전통이다. 그러나 급격하게 변화되는 문화적 상황 속에서 자신을 지키려는 처절한 보호본능이 필요했다는 것을 우리는 충분히 이해한다.
 지난 역사에 대한 한탄보다 이제 시작하려는 새로운 미래에 대한 기대로 이 공연을 바라보고자 한다. 전통춤을 전공하고 한국창작춤을 하는 나의 시각에서 이 공연은 흥미 그 자체였다. 감성의 시대로 나아가는 세계적 추세에 즈음하여 좀 더 깊이 있는 감성의 흐름을 끄집어내었다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
 <살풀이춤>에 배어 있는 깊은 감성, 우리 선조들은 그 깊은 눈물의 샘을 어찌 발견했을까? 그래서 전통은 연구 대상이자 창조의 원천이다.
 국립현대무용단은 새로운 시대를 열고 있다. 백 년 동안의 좌충우돌을 뒤로 하고 가장 한국적인 컨템포러리 춤 작업의 산실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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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춤 비평가의 시선_ 가다프로젝트 <어긋난 숭배>

일상의 수집으로 재조립한 ‘전통’

권옥희_춤비평가


 무대 위, 작고 큰 납작한 토끼봉제인형들이 원을 그리며 놓여 있다. 그 가운데 김보람과 이은경이 향로처럼 보이는 것을 두고 마주앉아 있다. 불을 붙인 담배를 향로에 꽂는다. 무대 오른쪽 위에 떠(매달려)있는 노란 달.
 강강술래의 기원이 되는 고대 제사의식을 모티브로 삼았다는 작품 <어긋난 숭배>(아르코예술소극장, 8월 22-24일)의 첫 장면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언어라고 일컫는 수메르어의 ‘감간수할레’(gam굽다-gan일어서다-suhale춤)와 ‘강강술래’. 뜻과 소리가 많이 닮았다. 세계각지에 퍼져 있는, 원무(圓舞)와 달 속에 토끼가 살고 있다는 전설에서 출발해본다.
 이은경과 김보람은 달에서 토끼를 불러낸다. 징검다리를 건너듯, 쿨렁거리는 걸음으로 인형을 하나씩 밟으며 돈다. 시바신이 혼돈과 물질에 깃든 악령을 밟듯, 환영을 깨뜨린 후의 해방감을 상징하는 가벼운 발놀림이다. 인형을 하나씩 무대 중앙에다 쌓는다. 봉분 같다. 절을 한다. 보름달이 뜨는 밤은 기원과 환희, 희생의 시간이다. 이들에게 달을 숭배하는 것과 토끼를 숭배하는 것의 차이, 없다. ‘숭배’하는 자의 자조로 보인다. 

 

 



 조공례의 소리 ‘강강술래’, 춤이 음악으로 전통이란 옷을 세련되게 입고 시작된다. ‘청애(청어)엮자, 청애(청어)풀자’의 반복되는 가사부분의 춤을 영리하게 풀었다. 한쪽이 상대를 싸안는가 싶으면 다른 한 쪽이 상대의 안에서 미끄러져 나가며 거듭되는 탄력적이고 유연한 춤의 반복. 마치 달이 상징하는 순환적 시간의 리듬을 그려낸 것 같은 인상적인 춤이다.  

 ‘손치고, 발치고’의 자진모리 박자가 시작되면 몸을 두드려대며 옷을 벗어 던진다. 속옷만 남아있는 몸. 자신들이 벗어던진 껍데기와 널부러져 뒹구는 인형을 주섬주섬 챙겨서 마주 앉는다. 옷의 형태대로 인형들을 집어넣는다. 인형은 자신들의 그릇된(어긋난) ’욕망‘ 혹은 ’꿈‘을 상징하는 것일 수도. 브레지어와 팬티만 입은 채 옷 속에 차곡차곡 인형을 쟁여 넣는 작업을 보고 있자니 인형 속을 솜으로 채워 넣었을 또 다른 이들의 고단한 작업과 시간이 오버랩 된다.
 이은경이 김보람에게 무슨 말인가를 계속 건넨다(정확하게 전달되지 않는). 몇 단어를 조합하니, “우리, 성공하자” “보람아! 넌 왜 (어른들? 선배?) 인사를 안 하니(이 바닥에서 성공하려면 인사를 잘해야 한다?)” 지루하다. 의미 없는 이은경의 대사가 지루함에 일조. 그녀를 간간히 쳐다볼 뿐 대꾸 않는 김보람, 둘이 떠드는 수다보다 나은 설정.
 깃털과 온갖 번쩍이는 장신구로 치장한 가운(성공)을 걸치고 강강술래의 기와밟기. ‘어딧골 지완가(기와인가)’, ‘전라도 지와세(기와세), ‘25냥 줬네’ 가사에서 상체를 우쭐. ‘어딧골 지완가’, ‘장자골 지와세’, 어김없이 또 다시 우쭐 건들, 가락에 잔뜩 실린 현대적 움직임이 재미있는 놀이가 된다.
 맥락과 관계없는 움직임. 김보람이 공중에 돈을 뿌려대고 이은경은 객석을 등지고 비스듬히 누워 브레지어를 벗는다. 매달려 있던 달을 열고(지퍼가 달렸다)무언가를 꺼내 바닥에 던진다. 일인용 텐트. 텐트의 지퍼를 열고 들어가 앉는다. 브레지어를 흔들어대는 이은경을 보다가 지퍼를 닫는다. 도대체 이들은 자신들의 껍데기 속에 뭘 채워 넣은 것일까. ‘숭배’의 노골적 표현으로 인해 ‘전통’은 어긋나버리고 격은 떨어졌다. 예술영화에다 시류를 탄 홍콩영화를 이어붙인 것 같은 결말이다. 달의 사악한 신(sin)이 발동한 것이다.
 이은경의 가운 뒷자락에 새겨진 ‘믿음부자’ ‘불신지옥’, 오늘의 경구되겠다. 

 

 



 근엄하지만 않는 놀이와 같은 예술, 원초적인 감정과 감수성의 노출을 자신만의 카드로 내보일 줄 아는 것과 가벼운 키치만 난무하는 것, 다르다. 작품에 슬픔이나 고통의 기류가 보이지 않는다. 우리 모두 안에 숨어있는 다른 것을 꺼내 ‘교집합’을 만들어내지 못한 것이다. 누구나 내면에 가지고 있을 법한, 조금은 아이러니하고 그로테스크한 부분, 그것이 헛된 꿈이고 금기된 욕망일지라도 고통스럽고 아름답게 춤으로 꺼내 놓을 수 있어야 오랫동안 좋은 작품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  

 이은경과 김보람을 관심 있게 지켜봐야할 이유, 많다. 달에게 절을 하는 대신 달 속의 토끼를 불러내어 한바탕 놀겠다는 재기어린 발상, 전통음악을 듣는 귀, 전통에 내포된 의미를 해석하는 힘과 춤으로 구성해내는 능력, 무대미술에서 볼 수 있는 유머, 거기에다 근사한 춤의 몸을 가졌다는 것 등. 이러한 것을 바탕으로 적나라하면서도 창조적인 스타일을 구축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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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공연 후 현장 토크 지상중계





사회 : 전통과 관련한 여러 가지 고민들, 창작자들이 짊어지고 있는 여러 가지 의문들, 제약들을 함께 공유하다 보면 전통이라는 걸 바라볼 때, 컨템퍼러리를 바라볼 때 - 어떻게 봐야할까에 대해서 답을 드릴 순 없지만 - 기존에 가졌던 의문보다 훨씬 더 다양한 의문을 가지게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우선 초대되신 패널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왜 전통을 다루고 계시는지, 전통의 어떤 측면이나 요소에 관심을 가지시기 때문에 그런 작업을 하시는지 간단히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자기소개와 더불어 어떤 작업의 형태를 시도하고 계신지 먼저 설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라지웅 : 안녕하세요. 라지웅(VJ ASTRA)입니다. 저는 전통이라는 소재만 가지고 작업을 하는 건 아니고요. 지금은 정보들이 많이 열려있기 때문에 굉장히 다양한 소스들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전통이라는 소재를 일부러 찾아서 하려고 했던 것보다는, 독특하게 어느 날 전통이 다가왔다고 말씀을 드리겠는데요. 저희 어머니가 동양화를 하시는데, 제가 그런 환경에 노출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이 익숙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일본에서 출발된 민화를 접하면서 제가 몰랐던 전통의 느낌을 확 받았던 거죠.
굉장히 유니크하고 독특한. 그래서 사실 작년 같은 경우는 전라도의 재래시장에서 작업을 했는데, 전통이라는 소재가 지금은 굉장히 도회적인 소재인 것 같아요. 상대적으로 먹힌다고 해야 할까요? 그 독특함이 전통에 노출이 많이 되어있는 지방분들에게는 그 자체가 신기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제 영상을 틀어드리면 ‘무당 나오겠다’ 라고 하시거나 하는걸 보고... 내가 갖고 있는 전통, 민화에 대한 느낌이 상대적으로 격차가 많구나 하는 걸 느꼈어요. 저는 지금 전통이라는 소재 자체가 도회적이라는 소재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포스트모던한 느낌을 잡아내서 좀 더 개발을 해서 작업을 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회 : 이미지와 더불어 음악을 같이 사용하시잖아요. 음악, 민화를 어떤 감각으로 매칭시키고 어디에서 그것들이 어떤 관객을 대상으로 펼쳐지는지 말씀해주세요.


라지웅 : 저는 영상으로 vjing을 하려고 했던 것보다는 호기심, 취미로 시작해서 일로까지 이어진 것 같은데요. 현대판 샤머니스트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약간 제의적인 느낌. 그들이 퍼포먼스를 연출하면서 흥분하고 trans상태가 일어나는. 개인적으로 춤을 좋아해서 클럽에서 춤을 추다가, 저는 지금은 영상으로 춤을 춘다는 생각을 해요. 똑같은 효과를 느끼고 있죠.
밴드들과 작업을 할 때는 전통적인 소재를 제한적으로밖에 사용 못하고, 전통적인 느낌의 음악이 있을 땐 그러한 소스를 많이 취하고, 상대적으로 DJ와 작업을 할 때는 자유롭게 맥락과 흐름에 맞춰 제가 느끼는 세계관을 다양한 이미지로 일상적의 삶의 모습과 믹스하기도 합니다. 제3의 이질적인 것들이 만나서 생겨나는 독특한 세계들, 그러한 것들이 재밌어서 계속 작업을 하고 있죠.

사회 : 시작 전에 보여드린 영상이 지금은 편의상 스크린에 투사를 했지만, 실제로는 클럽의 전면 벽이나 대형 스크린에 투사 되는 거죠. 공간 전체가 이미지와 리듬감이 가득 차게 되면서 ‘샤먼’의 분위기 메이킹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음으로 강혜숙 작가님은 일러스트레이터이시지만 조금 묘한 작업을 하고 계십니다. 어떻게 이런 작업을 시작하시게 됐는지 간단히 설명해주세요.


강혜숙 : 저는 이야기를 만들어서 그림으로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고요. 저도 만다라를 좋아해서 쓰고 있다기보다는, 제가 이야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기승전결이 있는 이야기이다 보니 그림이 최소 4컷 이상이 필요하잖아요. 그런 작업을 하다가 실험적으로 단 한 컷에 이 이야기를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하다가 그 답을 찾는 과정에서 만다라를 접하게 되었고, 그 뒤로 쭉 한편의 이야기를 한 장에 그림으로 그리는 작업을 하고 있는 거구요. 묘하게도 이 만다라를 아시는 어른들은 그냥 만다라네, 하시지만 아이들은 100퍼센트 ‘오 이안에 주인공이 있고 이런 일이 있고 이렇게 됐구나’ 하고 신기해합니다. 때문에 제가 만든 책은 어린이 코너에 있습니다.

사회 : 만다라에 대해 모르시는 분들이 있으니 간단히 설명 부탁드립니다.



강혜숙 : 만다라는 아시다시피 밀교에서 그리던 종교의 그림인데, ‘만다‘라는 건 ’깨달음, 본질‘이고, ’라’가 ‘가지게 되다’라는 뜻. 그래서 ‘만다라’는 ‘본질을 얻다’라는 뜻이 되고, 그림 자체가 종교적인 힘이라고 하더라고요. 제가 만다라에서 꽂혔던 부분은 부처님의 세계가 엄청나게 길고 버라이어티한데, 그걸 한 장으로 그린 것이고, 몇 백 년의 이야기를 한 장으로 그려냈으니 나도 할 수 있겠구나 싶어서 하게 됐구요. 제 종교는 참고로 기독교입니다. 하하하.

사회 : 굉장히 깨알 같은 이미지가 많은데, 받아들이는 분들이 문제가 없으신지, 다 좋다고 하시는지 어떤지...

강혜숙 : 종교적으로 보시는 분들은 이거 불교의 그림을 그렸구나 하고 넘어가시는 분들이 있고, 불교의 그림이라는 걸 모르고 보시는 분들도 있어요. 출판사에서 가장 좋아했던 것은 남미의 출판사 쪽에서 자기 나라 그림인가 의심하면서 아시아 쪽 작가가 그렸다고 하니 굉장히 놀라면서 ‘그래? 이거 우리나라 스타일인데?’ 하더라는 거에요. 제가 볼 땐 전 세계적으로 통할 수 있는 그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사회 : 만다라가 사실 말씀하신 것처럼 밀교의 정식 구도의 과정, 종교적 이야기를 담은 것인데 지금 사실은 형태를 가져오신 거잖아요. 왜 내용적인 측면은 가져오시지 않았는지?

강혜숙 : 많은 분들이 제 그림에 대해서 심오하게 알고 싶어 하시지만, 사실은 제가 내용보다 형식에 꽂혔기 때문에 만다라를 흉내 내고 있는 것이지 내용은 전혀 다릅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 실망하시는 분들에게는 더 훌륭한 만다라가 있으니 그걸 보시라고 하고 형식을 어떻게 내 이야기로 풀어냈는지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제 그림을 봐주십사 말씀을 드리는데요. 이야기를 만다라의 형식으로 풀어낸 것이 제 그림의 특징입니다.

사회 : 전통적 요소에서 형식만 가져오셨다고 하고요. 남인우 연출님의 작업을 보실 텐데요. <사천가>, <억척가> 등의 작품을 하셨어요. 해외에서도 많은 공연을 하셨구요.


남인우 : 영상을 보시면, 이야기는 독일의 이야기에요. 역시 형식이 판소리죠. 한 명의 스토리텔러가 음악과 함께 이야기를 하죠. 그리고 판소리의 형식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특징 하나가 다양한 형태로 변화되고 한 이야기꾼이 여러 명의 인물이 되었다가 서사자가 되었다가 인물이 되었다가 하는 것이고, 음악적으로는 리듬 위주의 음악구성. 이 뼈대를 가지고 저희가 작품을 만들었죠. 그렇다고 한복을 입거나 했던 건 아닌데요.
이건 <억척가>라는 작품인데 그때나 지금이나 음악적 구성은 같습니다. 특히 다른 타악기 말고 포크기타, 전자베이스가 나오는데, 이것을 선택했던 이유는 전자베이스가 리듬악기여서 리듬 위주의 음악을 구성하자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억척가> 역시 서양의 브레히트 작가의 이야기를 가지고 중국과 한국을 배경으로 다시 만든 작품이고요. 이야기의 큰 시놉을 가지고와서 거기 나오는 인물이나 사건을 많이 바꾸었습니다.



사회 : 판소리 형식을 가지고 왔고 이야기는 서양의 것을 가지고와서 접합을 시키셨는데요. 판소리를 갖고 왔다라고 할 때 에이... 하는 반응은 없었나요? 사실 판소리는 고정된 곳에서 별다른 시각적 장치 없이 진행되는 것인데, 이 작품은 굉장히 화려하게 펼쳐놓았다는 거죠.

남인우 : 일단 초연을 할 때는 전통과 관련된 분들이 많이 안 오셔서요. <사천가> 같은 경우는 중간에 현대무용 같은 장면이 나오거든요. 그래서 오히려 왜 다 판소리로만 하지 갑자기 연극적으로 등장했냐는 얘기는 들었구요. 음 이게 왜 판소리냐 하는 말은 잘 못 들었던 것 같아요. 아마 하셨겠지만 제가 못 들었을 수 있어요 남의 말 잘 안 들어서...
왜 외국 작가의 이야기를 했냐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요. 브레히트니까 판소리랑 맞았지 하는 말씀을 많이 하시는데, 저는 의견이 좀 다릅니다. 물론 브레히트가 서사극이라 제3자의 이야기처럼 진행되지만, 형식 때문에 브레히트를 판소리와 만나게 한 건 아니거든요. 브레히트가 하고자하는 이야기가 지금의 이야기와 맞았기 때문에 선택한 것입니다. 예를 들면 지금 자본주의에서 착하게 살 수 있다는 게 무엇인가? 신자유주의의 끝판을 달리고 있었거든요. 2007년 저걸 만들 당시에.
그래서 브레히트와 만났던 거고, <억척가> 같은 경우도 당시 연평도해전이 터지면서 전쟁분위기가 고조되고, 모든 사람들이 자본주의나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었을 때이기 때문에, 그러다가 브레히트를 만났던 거지, 브레히트와 판소리의 형식이 유사해서 작품을 만든 것은 아닙니다.

사회 : 다들 전통적인 소재들을 다양하게 사용하고 계신데요. 김보람, 이은경 작가님은 본인들의 작업은 어떤 식으로 전통에서 컨템포러리적 작업으로 연결했는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은경 : 제 답이 질문과 잘 맞을지는 모르겠는데요. 일단 이 공모 인터뷰를 할 때도 드렸던 말씀인데, 제가 외국에 살면서 해외공연으로 팔려나가는 한국 작품을 많이 봤는데, 제가 느끼기에 너무 1차원적인 전통 소재의 사용, 한복을 입는다거나, 음악, 전래동화를 사용한다거나, 그런 작품들이 대부분이고 인기도 좋습니다. 저는 그걸 보면서 그게 자랑스럽기도 하지만 조금 안타까웠던 거죠. 그게 지금 현대사회 한국의 모습은 아니고, 외국에 한국의 현대성을 알리고 싶다면, 전통을 사용해서 2014년 현대인의 걱정과 바람을 드러내는 작품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마침 한국에 오게 되고 김보람씨 만나면서 현대사회의 문제점을 생각해보면서 그것을 전통에 빗댈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사회 : 왜 하필 강강술래였나요?



김보람 : 저는 원래 작업할 때 ‘왜’라고 따지기보다는 그냥 본능적으로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처음에 저희가 ‘전통의 재발명전’에 선정되기 전 이미 작품을 생각하고 있을 때, 그 음악을 본능적으로 선택을 했어요. 그리고 그렇게 선택을 하면서 강강술래의 유래나 이런 것들을 접했고 우리가 현대사회의 문제점을 풀어낼 수 있겠구나 싶어서 작업을 들어갔고요. 그 이후에 이 공모전에 신청을 해서 여기까지 오게 된 거죠. 특별히 전통을 사용해야겠다 거나 이걸 아이디어로 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된 것 같아요.

사회 : 돌이켜보니 어떤 요소가 꽂히는 데 영향을 끼쳤나요?


김보람 : 그냥 뭐 아까 얘기한 것처럼 본능인데요. 저는 원체 한국의 음악 등 한국은 전통이 굉장히 발달되었다고 생각하고 있고, 제가 작품으로 만들지 않더라도 그 중요성을 많이 느끼고 있었어요. 그래서 그냥 음악을 들었는데, 이 음악이 굉장히 현대적이고 저희가 하고자 하는 현대사회의 이야기, 비판에 가장 적합한 것이 들어있더라고요. 그런 게 그냥 느껴졌던 것 같아요.

사회 : 음악에서 현대적인 느낌을 받으셨다고 하네요. 임진호씨는 마찬가지로 전통에서 어떤 요소를 가져왔는지 설명해주세요.

임진호 : 저는 죽음에 관한 모든 장면들과 죽음에서 연관될 수 있는 이미지들을 가져와서 작품화했습니다. 이 작품의 배경에 대해 얘기하자면, 실제로 제가 죽음과 가까운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 했던 개인의 경험을 토대로 작품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사회 : 개인의 경험을 조금 더 자세히...

임진호 : 장례식장에서 일하는 장례지도사. 염을 하고 발인하는 데까지 전 과정을 진행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사회 : 염을 하시고, 춤을 추시고... 양쪽 다 감당하기 힘든 직업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뭔가 상쇄되는 부분이 있기도 하겠지요? 어쨌든 이번에 전통을 다루시는 데 두려웠던, 우려가 됐던 부분이 있으셨는지?


임진호 : 죽음에 대한 행사는 살면서 누구나 한두 번씩은 겪게 되잖아요. 그런 과정에서 ’너무 똑같은 모습이 직접적으로 연출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많이 했구요. 그러면서도 너무 두려움을 느낀다든가 혹은 ’아 징그러워‘ 하고 생각하지 않게 해야 된다고 생각했고요. 그래서 그 안에서 조금이나마 유쾌함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매 장면마다 전통의 요소가 있지만 그 안에서 나타날 수 있는 재미라든가 부조리한 면 또는 외면의 이야기들을 함께 가져가려고 노력했습니다. 죽음 하나에만 집중하지 않고 여러 측면과 함께 같이 볼 수 있도록 하려고 했습니다.

사회 : 현실을 너무 직접적으로 옮기는 부분을 우려하셨네요. <어긋난 숭배>는 어떤 우려를 하셨나요?

김보람 : 저희는 특별히 그러지 않기 위한 노력을 안 했구요. 그 공연을 하면서 제사 형식으로 표현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고, 저는 이게 무용작품처럼 보이지 않게 하려고 노력을 했던 것 같아요. 무언가를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작업이 아니라, 결국 의미는 있지만 그걸 굳이 이야기하려고 하기보다 무대 안에서의 형식을 계속 밟아갈 수 있게끔 노력을 한 것 같아요. 당연히 관객과 소통을 하고 의미를 전해야 하겠지만, 저희는 나름 전통을 재발명한다고 하면서 새로운 제사의 형식을 만들고 싶었지, 기존의 어떤 작품처럼 만들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이은경 : 아까 말씀 드린 대로 제가 우려했던 건 1차원적인 소재의 선택을 피하려고 했는데, 그건 이미 김보람씨와 만났을 때 소통이 된 부분이기 때문에 걱정이 없었구요. 보람씨가 말씀하신대로 작품에서 모든 걸 다 보시지 못하셨어도 상관은 없지만, 여기에 담고 있는 내용은 굉장히 많아요. 그런데 어떻게 하면 그걸 친절하지 않게 저희만의 방식으로, 이 많은 이야기를 전달할까. 기승전결보다는 뻔하지 않은 우리만의 연출방법으로. 이러한 점을 많이 고민했던 것 같습니다.

사회 : 공연예술자들 사이에서 ‘친절하고 싶지 않다’ 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죠. 관객분들 입장에서는 어색하시겠지만. 관객 분들께서 낯설어 하실까봐 한번 짚고 넘어가는 겁니다.
사실은 이런저런 작업을 하실 때, 의도대로 했을 때 많은 비판들이 있을 수 있거든요. 어떤 비판들이 있었고 그것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으신지 말씀해주시죠. 라작가님 먼저...

라지웅 : 별로 비판을 안 받아봐서... 아까 잠깐 말씀드렸듯이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저게 별다르지 않고, 소재주의에 대해서는 많이 얘기를 듣긴 하지만, 공연 행위 자체가 소재를 어떤 마인드로 끌어다 쓰느냐에 따라 맥락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 같아요. 비판자체는 무시하는 편이죠.

강혜숙 : 저는 불교적이라는 비판 두 가지가 있는데요. 하나는 할 거면 똑같이 하지 더 못했다, 또 하나는 전통보다 못한 것을 왜 하느냐는 것이죠. 가령 <꽃을 든 부처>라는 작품이 있는데요. 제 모토가 열심히 노력하여 재능을 꽃피우자이기 때문에 이것을 패러디해서 그림을 그렸는데 난리가 나더라고요. 그래서 제 느낌에는 섣불리 건드리면 욕을 엄청 먹고, 완전히 다른 내용을 담으면 욕을 덜먹지 않나 싶습니다. 

 

 



사회 : 지금 흥미로운 얘기를 하신 것 같은데, 만다라를 가져왔는데 오리지널한 만다라에 비해서 정교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으셨다는 거죠. 그걸 가지고 오면 그만큼 정교해야한다는 생각들을 하시는 거죠. 전통을 또 가져와서 이런저런 작업을 하시는 남 연출님은 어떠신가요??  


남인우 : 비판들을 신경 안 쓰진 않죠. 저도 그런 비판 많이 받았어요, 저는 양쪽진영에서. 제 초연작이 <가믄장아기>라는 작품이었는데, 그 작품이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했거든요. 정말 우연의 선택이었어요. 저랑 같이 공부하던 친구가 해금하던 친구여서, ‘너 옆에서 해금 연주할래?’ , ‘제주도 이야기니까 제주도 말로 할까?’ 이런 식으로 하게 됐어요.
그랬더니 전통 하시는 분들이 ‘이거 뭐 마당극이야 뭐야?’ 하시고, 서양 연극 하시는 분들은 ‘이거 완전 마당극인데...’ 하시고. 저는 마당극이 뭔지도 몰랐고 사실 이걸 내가 왜 규명해야하나... 이건 그냥 난데.
<사천가> 같은 경우는 특히 판소리하시는 선생님들이 목을 내는 방식이 이상하다, 고수가 북을 너무 못친다... 못 치기는 했지만. 그런 것들 때문에 많이 혼났죠. 젊은 친구들은 대부분 좋아했고 해외에서의 반응은 좋았지만.
재밌었던 에피소드는 저희 팀

2014. 09.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