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국립무용단
국립무용단은 어디로 가고 있나?

2014-2015 국립극장 레퍼토리 시즌 개막작으로 공연된 국립무용단의 신작 <토너먼트>(Tournament)는 예술감독 윤성주와 안성수가 공동 안무자로 참여한데다 ‘판타지를 소재로 두 안무가의 서로 다른 스타일의 춤 대결 형식’을 표방하면서 흥행성을 의식한 홍보문구로 주목을 끌었다. 도전과 혁신을 통한 한국무용의 새로운 가능성 탐색과 맞물린 이 작업은 일부 언론으로부터는 호평과 혹평을, 전문가들로부터는 혹평을 받았다. 연배가 다른 3명 춤비평가들의 리뷰와 함께 공연 후의 반응을 현장취재와 함께 꾸몄다. (편집자 주)

 



■ 리뷰 1



현란하고 강력한 형상감 속에 묻힌 춤언어의 의미

채희완_춤비평가.미학


 국립무용단의 <토너먼트>는 제목이 암시하듯이 대결국면의 연속이었다.
 신의 세계를 쳐들어간다는 ‘인간계’와 이를 중간에서 막아 퇴치하는 ‘중간계’의 싸움이라는 판타지의 다소 몽롱한 가운데 춤으로 한 판 대결을 벌인다니. 춤에 호기심 많고 춤을 즐기는 젊은 세대로선 참 흥미로운 구경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공연 홍보 안내판에는 만 7세 입장가 라는 글귀도 있다. 또 춤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을 위한 ‘한국춤 입문작’이라고도 하였다.
 근현대시기에 와서 많은 예술들이 알게 모르게 갈등구조를 속에 깔고 무엇인가를 표현해내는 놀이일을 해왔다. 이 작품은 대립적 요소 간의 쟁투, 또는 갈등을 동기부여 또는 주제적 소재로 삼아 싸움판으로 놀아보자 하였으니 이미 현대적 예술세계로 들어와 있는 것이다. “싸움을 통한 진지한 놀이성”은 가상세계가 현실화되어 가는 사이버시대의 한 첨예한 예술정신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이와 통해 있다. 

 

 



 요사이 들어 국립무용단이 벌이는 의욕적인 시도는 한국춤이 전통적인데 머물지 않고 춤이 시대와 함께 간다는 것이고 온 사람들과 두루 통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보수해야 할 ‘국립’으로서 가히 도전적이고 선도적인 바 있다.  

 이 단체가 지향하는 새로운 한국춤의 현단계는 ‘한국춤의 현대화’와 현대춤의 한국화‘로 설정되어 있는 듯하다. 주장하는 바로는 한국춤의 기본을 토대로 한 세계화인 셈이다. 그것이 ‘현대적인 한국춤’ 작업을 시도해온 묵중한 의지력의 윤성주와 한국적인 현대춤을 추구해온 곡진한 표현술의 안성수 사이의 합작품이라는 데서 위의 지향점과 취향은 이 작품 <토너먼트>에서 일차적인 접점이 이루어지게 되지 않았는가 싶다.
 그것이 ’대결‘이라는 춤싸움판에서 벌어졌으니 연출가 정구호의 작품 개념 ‘대치국면’은 핵심적인 연계고리가 되었다. 엄숙하거나 숭고하거나 장엄하거나 비장하거나 하지않고 경쾌하고 발랄하고 재미있는 모험과 상상력의 세계에서 경쾌한 중량감을 주는 감성적 인식을 유도한 점도 이 작품의 장점이 아닐 수 없다.
 다만 현란하고 강력한 형상력이 발휘될수록 자유분방하고 유려하고 멋있는 춤짓 속에 스며지닌 춤언어의 의미와 문해성(literacy)이 잠세화되거나 해체되어간다는 점이다. 이는 음악과 소리와 빛과 조명과 색채와 의상에 춤이 묻힌 데서 오는 것이 아니었고, 또 춤 한사위 춤 한가락의 강력한 개성적 표현을 위한 기법이나 기교의 고단위성 때문만도 아닌 듯하다.
 춤으로 싸워야하는 춤대결판에서 춤의 언어 상실 또는 춤언어의 의미 상실은 자칫 춤전쟁터에서 무장해제 당한 꼴일 수 있지 않겠는가. 

 

 



 오늘의 한국춤을 향하여 그 발언을 정확하고도 진실되고 아름답게 구사할 오늘의 한국춤언어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 이러한 문제의식이 있는 춤작업이 현대한국춤의 그 도전적 시도로서 계속 요망된다는 것이다.  

 최종 결승판에 오른 두 대결자만 남긴 채 중간 마무리된 <토너먼트>의 승부내기는 ‘싸움을 통한 화해’인지 ‘두 대립되는 것의 이중교호적 교합을 통한 기우뚱한 균형’인지 결판이 나지 않아 현재진행형이다.
 신무용의 뒷그늘에서 벗어나 진정한 의미에서 ‘오늘 이땅의’ 현대한국춤일 것을 추구한 작업들과 함께 이 작품을 논의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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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뷰 2




줄 세우기로 도배한 진부한 이분법

방희망_춤비평가


 소문 ‘낸’ 잔치엔 먹을 것이 없었다. 국립극장의 2014-2015 레퍼토리시즌 개막작인 국립무용단의 <토너먼트>(9월 17-20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는 문학과 영상에서 이미 큰 인기를 얻어 그 기본 매력치가 검증된 바 있는 판타지 장르를 무용에 도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영 심심하고 진부한 전개로 그 제목을 무색하게 했다.
 이번 작품 <토너먼트>는 국립무용단의 전작인 <단>과 <묵향>에서 이미 그 낌새를 노출했던 문제점들을 개선하지 못한 채 그대로 떠안아 증폭시켰다는 점에서, 향후 국립무용단의 지향점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중요한 분수령이라 생각한다. 

 

 



 <단>으로부터는 국악과 서양 음악을 교차하여 사용함으로써 전통춤과 현대무용을 동시에 펼쳐보겠다는 컨셉트를 물려받았는데, 사실 <단>에서 어둡고 무거운 <트리스탄과 이졸데> 전주곡은 시나위로 달구어진 춤의 화력을 번번이 꺼뜨리는데 일조했기 때문에 이번 작품의 음악 선곡도 크게 우려할 수밖에 없었다.  

 <토너먼트>에서도 중간계를 묘사하는데 깔린 파가니니 등의 바이올린 곡들은 거의 하체의 움직임조차 없는 콜로라투라 여왕의 신경질적이고 날카로운 성격을 해설하는데 소비되느라 그 아래 캐릭터들의 다양성을 희생시키고 말았다. 인간계의 배경 음악이었던 국악 타악이 악기 운용과 장단에 웅숭한 변화를 주어 그래도 율려 있는 동작 구사를 어느 정도 보장해주었던 것에 비해, 무용수들과 대화할 생각 따윈 없다는 듯 일방통행으로 날아다니는 초절기교의 바이올린 곡은 그 선곡의 가치를 납득시키지 못하였다.
 한편 아까운 무용수들을 피규어에 불과하도록 조종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생명력 없는 연출은 <묵향>에서도 느꼈던 문제점이다. 특히 무대를 시각적으로 명확하게 디자인 하겠다는 강박이 우선되다보니, 컨셉트의 질서 속에 춤이 갇혀 질식당하는 분위기였다.
 이분법 구조는 접근이 쉽고 대비 효과가 빠르게 나타난다는 점에서 쉽게 차용하는 만큼 한편으로 독(毒)이 된다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인간계와 중간계, 장기와 체스, 남자와 여자, 동양과 서양, 파랑과 빨강 등등의 도식은 일견 쉽고 친절해보였지만 부자연스러울 정도의 줄 세우기로 도배를 하는 바람에 오히려 진부한 이분법들의 총집합이 되어 재미가 없었다.
 물론 그런 아이디어들이 연출의 단초가 될 수는 있다. 하지만 2차, 3차로 변용(變容)을 거듭하여 공연을 하는 입장이나 감상하는 입장 모두의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도록 발전해야 하는데, 컨셉트를 명확히 하겠다는 욕심이 지나쳐 자신이 만든 틀에 억지로 꿰맞추느라 상상력의 날개를 잘라버린 셈이었으니 그리스 신화의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윤성주가 안무한 인간계의 경우, 발을 구르고 팔을 꺾고 당기며 튕기는 전통춤의 메소드가 비교적 선명하게 살아있었고, 안무가 스스로 장기로 삼는 호쾌한 스타일과 맞아 떨어지는 느낌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체격과 기량 면에서 우수한 국립무용단의 남성 무용수들이 잘 소화해내 준 데에 상당부분 빚지고 있다. 초반 캐릭터들이 제시된 이후로는 안무의 변주가 이렇다 할 만큼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처음의 감흥을 이어가지 못했다.  

 안성수의 중간계 부분은, 안타깝지만 총체적 난국이었다는 평가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연속된 빠른 악절에서 마디마다 음표마다 동작을 모두 매칭시키려는 과욕은 군무에 일대 혼란을 불러온 듯 했다. 회전 후 정지 상태에 균형을 잡지 못하고 휘청거리는 모습도 여러 번 목격해야 했고, 음악의 분위기상 무용수들의 포즈가 날렵한 예각을 잡아줘야 하는 지점에서도 무너지기 일쑤였다. 지나치게 긴장한 탓인지 아니면 의욕을 잃은 것인지 단원들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객석에서 무대를 바라봤을 때는 허공에 펼쳐진 팔들도, 치렁한 옷자락들도 움직임이 정리되지 않아 그 선들이 지저분하기 이를 데 없었다. 꼭 수적으로 많은 동작을 수행 해내야만 안무와 테크닉이 훌륭하고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 아님은 동서양 어떤 춤에도 공히 적용되는 사항일 게다. 더구나 복잡하게 설계된 안무일수록 의상을 최소화하여 춤의 선을 드러내는데 주력해야 하는데, 머리에 과한 장식을 얹고 하반신을 더욱 짧아 보이게 만든 의상은 회전의 속도와 동작의 탄력을 떨어뜨릴 만큼 거추장스러웠다. 정지한 조형물에 입히더라도 결코 아름답지 않은 이번 의상은 90년대 패션계에 아방가르드를 표방하며 나왔던, 이제는 분명히 ‘무리수’였다 말할 수 있는 철 지난 것들이었다. 

 



 인간계와 중간계가 번갈아 교차되었으나 ‘대결’이라 부를 만한 긴장감과 밀도는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평행선을 달렸다. 이질적인 두 세계가 맞붙어 화학 작용을 일으키기엔 한 쪽은 자기 영역 내에서 기운을 다 소진했고, 다른 한 쪽은 눈치만 보고 있었다.  

 이번 <토너먼트>를 보면서 국립무용단이 그토록 부정하며 ‘개혁’하고자 하는 전통춤의 정체성, 그마저도 없었더라면, 괴상하게 얽힌 현대무용 안무로써 스스로 지닌 기량조차도 바닥 나 보이게 만드는 마당에 어디 가서 국립무용단이라 할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국립무용단은 흥행성에 주력한다는 이유로 가장 기본이 되는 춤을 외면한 채 겉꾸밈에만 치중할 때가 아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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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뷰3



기본을 놓친 허망한 실험

장광열_춤비평가


 춤 작품을 평가하는 요소들은 수없이 많다. 시간, 공간, 에너지, 의상, 음악, 무대, 무용수 등 많은 것들을 안무가는 결정하고 선택하고 버리고 조합해야 한다.
 오늘날 공연예술 작품은 협업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춤 역시 예외가 아니다. 의상ㆍ조명 디자이너와 음악가, 그리고 무대미술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 전체적인 조율은 안무가의 몫이다. 작품에 대한 정확한 안무가의 비전이 정립되어 있지 않으면 협업자들에게 끌려 다닐 수도 있기 때문에 안무가의 판단은 작품의 기준을 잡는데 매우 중요하다. 많은 작가들과의 협업인 경우 안무가의 정확한 결정은 작품의 승패를 가리는데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국립무용단의 <토너먼트>는 두 명의 안무가(윤성주, 안성수)에게 한 개의 작품을 함께 만들라고 주문했다. 오래 동안 호흡을 맞추어 온, 서로에 대해 잘 아는 안무가들이라 하더라도 한 목소리를 내는 것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다. 국립무용단은 춤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안무가에 대한 선택에서부터 모험을 감행했다. 그리고 그 선택은 흥행을 내세운 실험을 위해 가장 기본이 되는, 춤이 상실된 미완성의 절름발이 작품을 남겼다. 

 



 <토너먼트>(9월 17-20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평자 17일 공연관람)는 과잉의 연속이었다.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들어와 있고, 가장 기본적인 것들이 정리되지 않은 채 무대를 난무했다.  

 전통과 현대라는 컨셉트에서 비롯된 의상(디자인 정민선)과 음악(음악감독 박재록, 국악구성 류인상)은 춤과 유기적으로 화합하지 못했다. 한국춤 전공 안무자가 만든 춤이 나오면 북장단이 음악으로 깔리고, 현대춤 전공 안무자가 만든 춤이 나오면 바이올린 음악이 나오게 되는 구도를 여러번 반복하는 시도는 무용수들의 몸과 표정을 오히려 경직시켰다.
 몸을 매개로 하는 춤 공연은 스토리를 그대로 드러내기는 어렵지만 이미지들의 연결로 드라마를 의미하게 하기 때문에 그 자체로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대본(정구호)이 있다고 하더라도 관객들에게 비쳐진 <토너먼트>는 스토리를 배제한 테크니컬 한 것을 요구하는 작품이었다.
 안무가들로서는 무용수들의 움직임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안무가들이 몸짓 언어를 차용하려고 애쓴 것에 비해 객석에서는 온 힘을 다해 춤추는 무용수들의 춤이 제대로 보여지지 않았다. 바닥으로 투사된 장기와 체스 등 다소 현란한 영상과 의상의 잘못된 만남도 여기에 일조했다.
 춤은 몸 언어로도 그 아름다움이 충분히 전달될 수 있다. <토너먼트>는 현대를 표현하기 위하여 과잉되고 화려하게 치장한 의상과 전통을 표현하기 위한 정체불명의 의상이 무용수들의 움직임을 방해했다. 그리고 그 화려한 의상마저도 빛에 의해 묻혀버렸다.
 화려한 의상과 난삽한 빛, 반복되는 음악으로 인해 결국 몸짓은 온데간데없고 관객들은 무대의 억지를 참아내며 불편한 객석을 차지하고 있어야 했다. 

 

 



 춤 공연에서는 안무의 중요한 요소인 시간, 공간, 에너지의 변화 중 어떤 것 하나 만이라도 집중하여 작품을 만든다면 기본적으로 볼거리가 된다. 움직임의 느리고 빠른 정도 또는 멈추거나 움직이는 사이를 적절하게 안배해도 관객들의 시선은 그쪽으로 가게 된다. 그러나 <토너먼트>에서는 시종일관 음악의 빠르기에 몸짓을 맞추다보니 음악과 거의 똑같은 빠르기로 춤을 추게 되어 지루함은 배가되고 불편함은 극에 달했다. 쉼 없이 음악이 나오는 것도 관객을 혼란스럽게 하는데 그 음악에 춤까지 멈추지 않고 추게 되니 그 상황을 지켜보는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고통이었다.  

 예술에서의 공간감은 중요한 작품의 핵심이다. 영화의 줌인과 줌 아웃, 가까이서 찍은 사진과 멀리서 찍은 사진이 상당히 다른 뉘앙스와 감정을 전달하는 것과 같은 논리이다. <토너먼트>에서는 무용수들이 줌인 된 상황, 즉 한 사람에게 집중하거나 한 무리에게 집중하게 하는 상황이 거의 연출되지 않았다. 솔로 춤의 경우 조명으로 줌인시켜 주었다면 댄서들의 존재감이 살아나면서 드라마도 자연스럽게 살아났을 것이다.
 강한 에너지와 부드러운 에너지는 결국 감정의 기복을 의미한다. 감정이 배제된 무용수들을 만들어 낸 것은 <토너먼트>의 가장 큰 실수이다. 오늘날 ‘감성’은 전 세계적으로 예술의 지향점이다. 기계적이고 테크니컬한 예술은 이미 그 추동성을 잃었으며 외국의 수많은 예술작품들은 감성을 어떻게 표현할지에 대해 고민 중이다. 관객들의 환호를 받는 컨템포러리 댄스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국립극장이 내세운 “판타지를 소재로 두 안무가의 서로 다른 스타일의 춤의 대결 형식“, 두 안무가가 내세운 ”16명 무용수 개개인의 독창성과 기량이 드러나도록 하는데 중점 두었다“ ”한국무용의 동작소가 접목된 현대무용을 보여주고자 한다“는 작업방향은 결국 가장 기본이 되는 ‘춤’의 부실로 결정적인 타격을 받았다.  

 흥행성도 좋고 대중성도 좋고 새로운 실험도 좋지만, 분명한 것은 국립무용단의 그것은 완성도 높은 예술작품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준비되지 않은, 서로 간에 융합되지 못하는 제작진의 미진한 소통과 국립극장의 어설픈 실험은 이제는 그 방향 설정을 달리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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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 취재_ 국립무용단 <토너먼트> 관객 반응




아름다운 춤의 전쟁 vs 반복되는 형식의 지루함

이보휘_<춤웹진> 수습기자


 2014-2015 국립극장 레퍼토리 시즌 개막작으로 국립무용단의 신작 <토너먼트>(Tournament)가 9월 17일부터 20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무대에 올랐다. 예술감독 윤성주와 안무가 안성수가 공동안무자로 작업에 참여했고, 안성수는 2007년 안무가페스티벌의 <틀>, 2013년 <단>(壇) 이후 이번이 국립무용단과는 세 번째 작업이다.
 <토너먼트>는 인간계와 중간계라는 두 왕국에 왕(여왕)과 무사, 병사 등 여러 계급이 존재하여, 이들이 춤을 무기로 삼아 전투를 벌인다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하고 있으며, 체스 vs 장기, 파가니니를 메인으로 하는 익숙한 클래식 음악 선율 vs 한국 전통 타악기들의 소리, 여성 vs 남성의 춤, 솔로 vs 군무, 레드 vs 블루의 컬러 대비 등 다양한 반대 요소를 통해 대결 구도를 드러낸다.
 또한 <토너먼트>는 공연 전부터 트렌드에 민감한 젊은 관객을 겨냥한 작품이며, ‘불꽃 튀는 춤의 전쟁’이라는 홍보 문구로 관심을 모았다. 

 

 



 9월 17일 첫 막이 올랐고, 그 반응은 상이하게 엇갈렸다. 일부 관객은 “화려하고 아름다운 공연이었고, 그 배틀마저 흥미로웠다”고 하는 반면 일부 관객은 “똑같은 형식이 반복되어 무척 지루했다”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김정은 기자는 ‘한국무용이 동시대와 어떻게 교감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작품’이며, ‘젊은 관객들에게 한국무용 입문작으로 적당한 작품’이라고 기록했다. humanities1이라는 아이디의 한 블로거는 '춤뿐만 아니라 조명과 의상이 단순한 듯 하면서도 화려하여 시각적 즐거움'을 주고, '판타지적인 이야기선과 대결(배틀) 형식이 주는 흥미로움도 있었다‘고 관람 소감을 밝혔다.
 반면 세계일보 송은아 기자는 '전체적으로 인간·중간계의 춤을 나열하듯 차례로 늘어놓다 보니 두 세력이 격돌하며 만들어내는 생동하는 에너지가 부족해 보인다'라고 하면서 '대결 이라는 새로운 형식을 좀 더 입체적이고 과감하게 운용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적었다.
 아이디가 mystory4u인 한 블로거는 ‘무용에 관한 지식이 없는 사람이 즐기기에는 좀 무리가 있는 공연’이라고 하면서 ‘일부러 리뷰를 쓰기 위해 검색을 해보았는데 작품 안에 그런 심오한 뜻이 있는지 몰랐다’라고 적었고, 티켓 예매 사이트인 인터파크에서 아이디 yidong**은 ‘올해 세 번째로 보는 국립무용단의 공연이어서 우리 춤에 대해서 조금 익숙해 졌으나 관심을 가지고 몰입하기에는 아직 이해가 어렵다.’고 관람 후기를 적었다.
 공연 후 현장에서 만난, 현재 한국무용을 가르치고 있는 강사라고 밝힌 강은주(가명, 28세)씨는 “너무 똑같은 형식이 반복되어서 지겹고, 두 안무가의 움직임이 너무 조화롭지 못했다”고 소감을 말했고, 전문무용수 김은지(가명, 27세)씨는 “무용수의 캐릭터가 잘 드러나지 않고, 모든 것을 움직임만으로 표현하려고 해서 지루했다. 연출적인 부분이 좀 더 풍부했으면 훨씬 좋은 작품이 되었을 것 같은데 아쉽다”라고 말했다. 공연 기획자 김지혜(가명, 28세)씨는 “많은 기대를 갖게 한 홍보였는데 공연은 그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같은 관객들의 상반된 반응으로 공연 관람 후기가 정작 공연보다 더 흥미진진한 배틀 구도를 만들어내고 있는 듯하다. 

 

 



 춤 전문가들의 의견도 들어보았다.  

 춤비평가 김혜라는 "판타지한 이미지가 과하여 두 안무가의 장점이 오히려 부각되지 못했다. 컨템포러리한 한국춤을 만들려는 국립무용단의 시도는 의미가 있으나, 설득력 있는 결과물로 검증해 내지 못했다"라고 평했으며, 춤비평가 권옥희는 “춤으로 다른 영역을, 혹은 의상으로 춤의 영역을 넘보았으나, 의상에 갇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패한 작품이다”라고 평했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고 주문한 한 춤 비평가는 “합작이라고 하는 것은 둘이 합쳐 제3의 작품이 나와야 하는 것인데 그렇지 못했고, 의상이 너무 환상적이고 화려해서 안무가 묻혔다. 초연에서 바로 좋은 작품을 만든다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계속 수정, 보완해간다면 더 나은 작품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2014. 10.
사진제공_국립무용단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