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시작하여 올해로 9회째를 맞은 피지컬 씨어터 페스티벌이 6월3일부터 12일 동안 서울 일원에서 개최되었다. 올해 행사의 부제는 ‘몸, 움직이다’. ‘움직임’과 ‘신체’라는 표현방식에 좀 더 집중하여 무대 언어의 재발견을 꾀하고 작가주의적 작품의 개발이 기획의도이다. 리뷰를 곁들인 현장 스케치와 함께 축제 프로듀서를 인터뷰했다. (편집자 주)
(1) 현장 스케치 리뷰
수작 부재, 몸을 통한 소통의 가능성 보여
방희망_춤비평가
제9회 피지컬 씨어터 페스티벌은 프로그램을 크게 A,B,C,D로 범주화했다.
Approach 창작 개발 프로그램은 피지컬 씨어터 사무국에서 직접 제작에 나선 첫 작품으로 <벽난로가에서의 꿈>을 올렸고, Base 공식 초청작으로는 사다리움직임연구소의 <크리스토퍼 논란 클럽>과 모다트의 <혀의 기억>을 담았다. Challenge에 해당하는 신작 개발 프로그램은 관객 심사의 대상으로서, 여기서 선정된 팀에 상금과 내년도 축제 참가 기회를 부여하게 되는데 총 4개 단체가 15분~20분 정도 길이의 작품을 올렸다. 한편, Dance in Asia Community는 동명의 홍콩, 일본, 대만 안무가들의 모임이 먼저 존재하던 것을 이번에 한국의 안무가도 참여하면서 페스티벌 안의 프로그램으로 가져온 것이다.
작품이 공연된 순서대로 살펴보자. 페스티벌의 개막작이라고 할 수 있는 사다리움직임연구소의 <크리스토퍼 논란 클럽>(6월3-4일, 대학로예술극장 3관)은 영화 <다크 나이트>, <인셉션>을 만든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며 작품의 바탕도 그 영화들에서 가져왔다. 마이너 감성인 줄 알았지만 어느새 메이저가 된 놀란 감독의 영화를 다루었기 때문에 이미 영화 속 이미지와 코드를 익숙하게 알고 있는 관객들에겐 그것들이 몸의, 무대의 현장감 있는 언어로 치환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 영화에선 기가 막힌 컴퓨터 그래픽과 편집 기술을 통해 상상력을 한계 없이 펼쳐 보이지만 그것도 원래는 이렇게 아날로그, 맨몸의 언어에서 출발했을 것이라는 점을 새삼 일깨운다. 하지만 9명이나 되는 배우들의 움직임이 산만하고 자잘하게 보이는 것은 개선해야할 점으로 생각되는데, 짧고 단편적인 동작으로 영화 속 장면들을 대체했을 뿐 전체를 꿰어내는 상징적이고 굵은 움직임이 보이지 않았고, 과감히 버려야 할 동작들을 정리하지 않은 때문인 것 같다.
두 번째 초청작인 모다트의 <혀의 기억>(6월5-6일, 대학로예술극장 3관)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차세대예술가 육성사업에서 지원받아 올해 2월에 문화서울역284 RTO 공연장에서 올린 바 있는 작품이다. 안무가 양길호는 연극을 시작으로 한국무용을 전공하고 유럽의 현대무용단에서 4년간 활동하였다고 이력을 소개하고 있다.
초반에는 가냘픈 인상의 무용수 김수진의 흔들리고 쓰러질 듯한 독무를 통해 공포스럽고 절망적인 상황을 홀로 견뎌 나가는 가족의 중심으로서의 여인, 어머니의 이미지를 만들고 뒤이어 등장한 남성 무용수 세 명(이형우, 박성율, 양길호)의 거친 움직임을 통해 작게는 한 가족, 확대하면 한국의 바람 잘 날 없는 상황을 그렸다. 공연 중간과 마지막에 무대 앞 조명 앞으로 네 사람이 모여 같이 가족사진을 찍는 것처럼 연출한 장면이 두 번 나왔는데, 비슷한 듯 다르게 연출한 두 장면 사이 안무의 눈에 띄는 변화를 통해 고통스러운 과거, 반목에서 벗어나 화해하자는 메시지를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제목 ‘혀의 기억’은 스크린에 반복 투사된 불분명한 정체의 붉은 덩어리 이미지에서 겨우 연관성을 찾아낼 수 있었을 뿐이었다는 것이 아쉽다.
6월 7일부터 8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3관에서 이틀간 올려진 경쟁프로그램은 허윤경의 <직시(하는 것의 어려움)>, 슈퍼비 댄스 시어터의 <나 누구랑 얘기하니?!>, 박성율의 <사물의 본질>, 무브즈 컬렉터스의 <세레모니: 누구를 위하여> 총 네 작품이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창작과 전문사에 재학 중인 허윤경의 <직시(하는 것의 어려움)>는 소통에 있어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시선의 중요함과 역설적으로 그러하기에 ‘눈을 어디에다 두어야 할지 모르겠는 불안정함’을 그리고 싶었다고 한다.
그 불안정함은 선글라스를 착용한 두 명의 여성 무용수(허윤경, 서윤영)가 테이핑으로 구획을 지은 무대 위 공간에서 자신의 위치를 가늠하고 차지하는데 많은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형상화했다. 그리고 과장되게 활달한 움직임은 아니었지만 마치 측량기사가 초점을 맞추기 위해 위치를 바꾸어가며 여러 번 실험을 하는 것처럼, 기본에 충실하면서 자신의 몸이 지닌 가능성을 최대한 저울질 해보는 것 같은 성실한 시도를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선글라스를 착용한 것은 시선의 ‘방향’을 강조할 수는 있어도 맨눈이 담을 수 있는 표정을 제거했다는 점에서 주제를 보다 풍부하게 표현할 가능성을 차단한 것은 아닌지 다시 질문하고 싶다.
슈퍼비(superB) 댄스 시어터의 <나 누구랑 얘기하니?!>는 두 명의 여성과 두 명의 남성무용수에게 각각 다른 원색의 티셔츠와 특화된 동작을 부여함으로써 짧은 시간에 캐릭터를 명확하게 만들고 소통에 대한 결핍과 욕구, 어려움을 쉽게 공감하게 이끈다는 장점이 있었다. 흔한 소재이지만 제대로 훈련받은 듯 발성과 대사 연기도 안정감이 있었고 창작주체의 밀도 높은 고민과 열의, 완성도가 진부함을 털어내었다. 한편 일상적인 동작에서 추출하여 발전시킨 움직임은 전문무용수가 아닌 보통 사람들도 연습을 통해 따라할 수 있는 장점을 지녀서, 양식화된 작품으로서 무대 위에 머물기보다는 무대에서 내려와 학교, 회사 등 제대로 된 소통이 필요한 공동체에 교육적인 매체로 보급되었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갖게 했다.
박성율의 <사물의 본질>은 이제는 너무나 흔한 삶의 공간인 아파트 내부에서 일어나는 모든 종류의 소리(이를테면 전기밥솥의 인공지능 안내멘트나 전기포트의 물 끓이는 소리 등)를 리서치, 리듬화 하고 아무 연관 없이 떨어져있는 듯 했던 사물들이 내 일상의 환경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였다는 것을 인식하고자 했다.
여기서 무용수는 사물과 사물 사이를 연결하고 인간과 사물의 조화로운 어울림을 시도하는 역할로 필요하고, 호리호리한 신체를 가진 박성율의 부드럽고 절제된 움직임은 빈 공간을 적절히 채우며 그 목적에 부합했다. 문제는 앞서 공식초청작인 모다트의 <혀의 기억>과 완전히 동일한 출연진이 만든 작품이었다는 점인데, 어쨌든 스무 명 가량의 관객심사를 통해 상금과 내년도 축제 참가의 기회가 주어지는 작품으로 이 <사물의 본질>이 선정되었다.
무브즈 컬렉터스(Moves Collectors)의 <세레모니: 누구를 위하여>는 운동경기 속 세레모니, 또는 일상에서 자식이나 친구를 위하여 행하는 세레모니 등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취하고 있는 행위들이 실은 무의식을 가장한 의식적인 행위가 아닌지 질문을 던지고자 했다.
그러나 초반부 행위의 의미를 찾아내고자 했던 시도는 무대 위에서 눈길을 끌 만한 장면으로 만들어지지 못해 그다지 효과적으로 드러나지 못했고 후반부에 청재킷 차림으로 통일된 떠들썩한 스트릿 댄스에 묻혀버렸다. 공연 끄트머리에 세월호 사고와 관련지어 성마르게 주제를 연결하려 했던 것 또한 본 공연의 내용이 산만했던 탓에 즉흥적으로 연결한 듯 느껴져 아쉬움을 남겼다.
한편 한성대입구역 근처에 있는 소규모의 극장 봄에서 열린 Dance in Asia Community 프로그램(6월6-8일)에는 대만, 일본, 한국 안무가의 작품 네 개가 펼쳐졌다. 대만의 Century Contemporary Dance Company가 제작한 <Blocks><Myself>, 일본의 Off-Nibroll이 제작한 <A Flower>는 안무가는 각기 다르지만 두 명의 여성 무용수를 공유하여 협업으로 진행된 형태이고, 한국에서는 조형준이 <정(井)>이라는 작품을 내놓았다.
Shao-ching Hung이 안무한 <Blocks>는 콘크리트와 소음으로 숨통이 막혀 가는 도시인의 감수성을 펼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소요하는데 회색재킷을 입은 무용수는 무대를 수없이 반복하여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며 뛰어다니고 넘어지면서 재킷을 벗고 공황 상태에 가까운 도시인의 내면을 표현했다. 안무는 주제에 대한 동어반복으로 무용수를 필요이상 방전시키는 소모적인 느낌이었다. 후반부 도시 근교의 푸른 자연이 스크린에 비춰지며 세계적으로 장례식장에서 헌화하는 풍경에 착안하여 개개인이 소중한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꽃에 대한 이야기를 들춘 <A Flower>와 자연스럽게 컨셉을 연결한 것은 대만과 일본 안무가 간 협업이 짐작되는 부분이었다. Off-Nibroll이 안무가 Mikuni Yanaihara와 영상 감독 Keisuke Takahasi가 만든 그룹이기에 여기서는 하얀 액자를 바닥에 늘어놓았다가 필요할 때 약속된 위치로 들어 올려 스크린을 전사하면 태블릿 PC 같은 효과를 내는 퍼포먼스가 약간 특이했을 뿐, 두 무용수는 상당히 정적인 느낌으로 미디어 퍼포먼스에 묻혔다.
인터미션 후 진행된 조형준의 <정(井)>은 한정된 공간에서도 내면과 몸에 어떻게 집중하느냐에 따라 오히려 감각이 얼마든지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정사각형의 스티로폼 수십여 개를 배열하는 것으로 한자의 네 귀퉁이 모양을 연상시키도록 만들었다(한자 정井은 사통팔달의 의미도 가지고 있다). 영화 <그레이트 뷰티>에도 삽입된 곡 ‘My Heart’s in the highlands’(가사와 분위기가 안무에 배가되는 탁월한 선택이었다)을 두 번 재생하는데 고도의 근력이 필요한, 요가를 연상시키는 동작으로 구성된 안무는 귀마개를 하고 볼륨을 의도적으로 낮추었을 때와 귀마개를 빼고 볼륨을 높였을 때 똑같이 반복되지만 그 스케일과 적극성의 수위가 달라지면서 안무가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 오랜 시간의 수련이 필요한, 고요하되 힘 있고 균형 잡힌 아름다움이 담겨진 안무가 인상적이었다.
Chien-Yu Hsu가 안무한 <Myself>는 여성 혼자 자취하는 방을 배경으로 일상을 발랄하게 가꾸어가는 것을 춤으로 보여준다. 미용과 건강을 챙기기 위해 날마다 반복적으로 하는 행위들은 물론이고 수많은 옷들과 행거 역시 춤의 소재와 대상이 된다. 그런 친근함으로써 춤을 어떤 양식과 틀을 가진 거창한 것이 아니라, 자신과의 놀이를 조금 더 적극적으로 하는 행위라고 재규정하는 것이 이 작품이 목적한 바라고 보인다.
<벽난로가에서의 꿈>(6월12-13일, 서강대 메리홀 소극장)은 페스티벌을 마무리하면서 앞으로의 방향을 제시하는 기획의도가 담긴 작품이었다. 극단 여행자 소속의 두 배우 김도완(전 국립현대무용단 단원)과 박미영이 창작의 주체가 되어 까미유 끌로델과 그녀 주변 인물들의 다양한 모습을 그려낸다. 인물의 일생을 다루기 때문에 여러 장면 전환과 배역이 필요하지만 소품을 최소화하고, 두 배우가 각각 남녀 인물들로 효과적으로 변신했다. 이 작품에서 주목할 점은 조각가의 입장에서 조각(소조)을 하는 동작을 구체적으로 관찰, 탐구했을 뿐만 아니라 배우의 신체가 극중에서 즉각적으로 조각 작품의 포즈로 변환되는 장면을 통해 잘 훈련된 신체가 정적인 장면에서 가질 수 있는 표현의 가능성을 다시금 확인시켰다는 데 있겠다. 다만, 이번 작품에서는 까미유 끌로델의 작품만 대상으로 했지만 레퍼토리화를 염두에 두고 다듬는 과정에서 로댕의 것과는 구조적, 해부학적으로 어떻게 비슷하며 다른지 등도 다룰 수 있다면 더욱 흥미로운 작품이 될 것 같다.
피지컬 씨어터라는 성격에 걸맞다고 보기 어려운 기존 춤 공연과 다를 바 없어 보이는 작품들도 다수 있었고, 대학로예술극장 3관에서 선보였던 공연들 중에선 비교적 협소한 무대임에도 불구하고 출연자들의 움직임이 공간에 파묻히고 작게 느껴졌던 경우도 많았다. 촉박한 일정 운영으로 극장상황에 적응하여 안무를 다시 짜기 어려웠던 점도 있었겠으나 객석의 관객들에게 안무가 제대로 보여지기 위해서는 동작이 어느 정도로 명확하게 맺고 끊어지며 연결되어야 하는지, 또 어느 정도로 확장과 축소를 거듭해야 하는지에 대한 경험 미숙이 더 큰 원인이라 보였다.
강렬한 색깔로 톡 튀며 파격적인 실험을 추구한 작품은 없었지만 몸 언어가 지닌 소통의 가능성을 꾸준히 찾아가려는 작업의 자취들을 몇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어려운 가운데 조용하고 꾸준하게 이어온 피지컬 씨어터 페스티벌의 행보를 응원하며 앞으로도 여기서 우리에게 몸의 언어가 지닌 소통의 가능성을 충분히 공감시켜줄 신선하고 멋진 작품을 만날 수 있게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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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인터뷰_ 피지컬 페스티벌 프로듀서 배정아
지원팀의 3분의 2가 무용
2주간의 피지컬 씨어터 페스티벌 일정이 끝난 뒤 6월 17일 대학로 학림다방에서 이 페스티벌을 1회부터 기획하고 진행해온 프로듀서 배정아씨를 만났다.
방희망 피지컬 페스티벌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배정아 대학 때 극회활동을 아주 열심히 했고 우연히 극단에 기획 쪽으로 들어가게 된 이후로 계속 홍보, 마케팅 일을 해왔다. 연극 쪽에서 아주 열심히 했고 잘 하고, 잘 안다고 생각하다가 서울의 축제들을 6개월 단위로 쭉 다루게 되었고 그 뒤 외국에 나가서 공연들을 보면서 반성을 많이 하게 되었다. 좋다 나쁘다를 판단하려면 그 전에 공연을 많이 보고 알아야겠다 싶어서였는데 텍스트 기반의 연극만 다루다가 무용은 접해보지 못한 다른 세계였기 때문이다. 몸으로 뭔가를 표현하려는 시도들은 있어 왔는데 준비기간이 길어야 하고 앙상블도 중요하고, 들이는 노력에 비해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적고 관객 입장에서도 보고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기회가 적다보니 그런 만남의 장이 있었으면 좋겠다, 하나만 올리는 것보다는 묶어서 올리는 게 좋겠다 싶어 기획하게 되었다.
피지컬 씨어터로 잡게 된 것은 무용을 좋아하지만 잘 모르는 입장에서 기존에 이미 있어온 무용 페스티벌을 또 비슷하게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아무래도 연극을 베이스로 해왔기 때문에 배우들의 입장에서 몸을 적극적으로 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자는 취지에서였다.
서울문화재단에서 지원받게 된 과정과 작품 선정과정이 궁금하다.
1회는 그냥 시작했고 2회 때부터 서울문화재단에 신청하여 지원을 받아왔다. 중간에 한두 번 정도는 서울문화재단이 아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쪽에서 지원받은 것으로 기억한다. 올해 지원금은 2500만원이다. 신청지원서를 받고 그 지원서 안에서 극적인 요소가 있는 작품 위주로 찾아서 고른다. 초반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3~4년 전부터 무용팀들의 지원이 많아졌다. 2월말 3월초 쯤 서울문화재단 지원결정을 받고 공고를 냈는데 지원한 40여 개 팀 중에 30개 정도는 무용팀이었다. 연극 쪽에서는 잘 지원하지 않더라.
이번 페스티벌에서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었다면? 직접 제작한 어프로치 작품 <벽난로가에서의 꿈>에 대해 자세히 얘기해 달라.
연장선상에 있는 얘기인데, 지원작들이 다양하지 않다보니 직접 제작해야겠다는 생각을 점차 갖게 되었다. 원래 긴 시간을 두고 준비했어야 하는데 기간이 짧아서 완성도는 부족했지만 공동창작에 의미를 두고 시작했다. 조건이 촉박하다보니 많은 사람을 동원할 수 없어 일단 신체극에 관심있는 지원자를 찾았는데, 극단 여행자의 배우 두 분이 의욕적으로 하겠다고 나섰다. 그 조건에 맞는 작품을 찾다가 까미유 끌로델의 이야기를 해보면 어떻겠는가 제안이 나오고 다행히 배우들도 하고 싶은 주제라고 해서 영화나 책 등을 참고하여 드라마를 짜고 대사를 넣게 되었다. 김도완 씨도 전 국립현대무용단 단원이었고 박미영 씨도 한국무용을 공부했었다고 한다. 짧은 기간 준비했기에 완성도에 대한 아쉬움이 있고 배우들도 앞으로 작품을 더 다듬어 계속 공연하고 싶어 한다.
<혀의 기억>과 <사물의 본질>의 출연자가 완전히 겹쳤다. 알고 있었던 것인가?
처음 지원서를 받았을 때는 적어낸 이름이 달라서 알 수 없었다. 많은 지원팀 가운데 이름을 하나하나 대조해서 거른다는 것도 어렵다. 나중에 공연장에 와서야 알았는데, <혀의 기억> 같은 경우 경쟁작이 아니고 공식참가작으로 초청한 것이며 제작지원금이라기 보단 소정의 사례비 개념으로 비용이 들어갔고 신작개발프로그램인 <사물의 본질>은 지원금이 나가지 않는 항목이다. 어차피 프로그램도 다르고 안무자도 다르고 출연무용수들만 겹치기 때문에 크게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챌린지 프로그램에서 <사물의 본질>과 <나 누구랑 얘기하니?!>가 박빙이었는데 처음부터 우리 평가와는 상관없이 관객평가로만 선정하자고 했었기 때문에 <사물의 본질>이 올라가게 되었다. <나 누구랑 얘기하니?!>는 너무 쉽다는 의견도 있었고.
댄스 인 아시아 커뮤니티는 어떻게 초청하게 되었는가.
이전에는 외국팀은 직접 만나기도 하고 그쪽에서 자료를 보내주기도 해서 프로그램을 구성했었는데, 이번에는 소개받은 경우이다. 그 커뮤니티가 원래 대만, 홍콩, 일본 세 나라가 같은 작품을 들고 나라별로 돌아가면서 1년에 세 번 페스티벌을 여는 형식이고 극장을 기반으로 한다. 아무래도 단체가 극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작품을 올리기 용이해서 가능한 것 같다. 작년에 여기서 한국을 끼워보자는 얘기가 나왔다는데 한국의 경우는 안무가를 섭외하게 된 것이다. 섭외를 하려면 기획자나 극장을 섭외했어야 하는데 그래서인지 중간에 소통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막상 안무가가 기획을 하고 진행하기엔 어려움이 많아 고민하던 차에 우리와 연결이 되었다.
우리 입장에서도 페스티벌의 성격이 그냥 무용제와는 달라야 해서 해야 되는 것인지 많은 고민을 했지만 일단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도 중요할 것 같아서, 메인 프로그램이 아닌 별도의 꼭지처럼 넣었다. 신체극에 집중하려면 전형적인 춤 공연은 넣지 않는 게 맞겠지만 네트워크를 잡아나간다는 개념으로 했다.
그렇다면 초청된 외국팀들이 공연하고 난 반응은 어떤가. 앞으로 지속적인 교류가 이뤄질 가능성은? 혹시 외국에 유사한 페스티벌과 교류는 없는가?
평가는 차후에 진지하게 해봐야 알겠지만, 아까도 얘기했듯이 원래 극장 베이스여야 하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최소한의 극장만 제공하게 되었다. 그분들에게 숙식이나 교통 등 별도의 경비를 챙겨드린 것이 하나도 없었다. 주최하는 나라에서 극장만 제공하는 방식으로 하는 것을 양해하고 다 같이 네트워크를 형성하자는 게 주된 목적이기 때문이다. 경비 문제로 인해 좋은 극장을 제공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온 것이고, 우리로서도 관객이 들지 안 들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무작정 큰 극장을 빌릴 수 없었다. 대만에서는 기획자도 왔었는데, 어땠는지는 얘기를 들어봐야 알 것 같다. 아직까지 외국의 비슷한 페스티벌과 교류는 없다.
지금까지 페스티벌을 진행해 오면서 어려운 점은 어떤 것인지 그 외 하고 싶은 얘기들이 궁금하다.
신체극을 하는 팀들이 많아야 그 중에 좋은 작품들을 고를 텐데 그렇지 않다보니 좋은 작품 올리기가 어렵다. 페스티벌 초창기에 ‘나는 배우다!’라는 부제를 넣었다가 뺀 것은 그렇게 하다 보니 참여에 제한이 있어서였는데 의외로 무용수는 무용수대로, 배우는 배우대로 자신의 직업에 선을 긋고 경계를 넘지 못하는 것 같다. 지원금 2,500만원이 제대로라면 공연 한 편에 들어가야 할 규모인데 여러 작품을 꾸리는데 들어가려니 사실 극장 빌리는 데만도 빠듯하다. 대학로예술극장 3관은 대관료가 시간 단위여서 이거저거 다 계산해도 그나마 다른 극장보다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었는데 그 극장이 없어진다고 해서 걱정이다.
홍보 마케팅 하는 입장에서는, 예술가들이 관객들과의 소통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재미있게 만드는 지점을 고민했으면 좋겠다. ‘예술’이라는 이유로 자기만의 진지한 작품을 만들고 관객이 보러 오지 않는다고 불평할 게 아니라 위로받고 싶고 즐겁고 싶은 관객의 욕구도 인정해야 한다고 본다. 이 페스티벌을 진행해오면서 왜 이런 걸 굳이 해야 하느냐는 욕도 많이 들었지만 다른 사람들이 하지 않기 때문에 내가 하는 것이다. 나도 무용을 처음 접할 때는 진입장벽이 높다고 느꼈지만, 막상 관심을 갖고 보기 시작하면 몸으로 하는 여러 가지 시도에서 충분히 재미를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일단은 관객들이 많이 보았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