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저작권법은 문화 및 관련 산업의 향상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가장 바탕이 되는 법률에 해당한다. 그러나 음악이나 미술, 문학 등 다른 문화예술과 달리 무용은 무형성과 현장성의 특징을 갖는다. 이렇듯 고정되지 않는다는 특징 때문인지 무용과 관련된 권리행사의 사례는 적은 편이다. 특히 무용수의 경우 무형의 안무를 시각화하고 전달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법적으로 보호되는 자신의 권리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고 있다. 이에 본 칼럼에서는 저작권법상 무용수의 위치와 보호 범위 및 그 내용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다.
저작권법상 무용수의 지위
저작권법에 따라 보호되는 저작물은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이다. 안무가의 독창적인 사상 또는 감정을 무용수 또는 누군가의 움직임으로 표현할 수 있는 무용은 저작권법에 따라 보호되며, 구체적으로는 신체의 동작을 바탕으로 표현한다는 점에서 연극저작물의 한 종류에 해당한다.
이러한 저작물을 창작한 자를 ‘저작자’라하고 저작물을 연기, 무용, 연주 가창 그 밖의 예능적 방법으로 표현하거나 이와 유사한 방법으로 표현하는 자를 ‘실연자’라고 한다. 무용의 경우,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이 표현되는 무용을 창작한 안무가는 저작자에 해당하고, 안무가의 저작물을 무용과 움직임의 방법으로 표현한 무용수는 저작권법상 실연자에 해당한다.
저작자인 안무가에게는 저작물인 자신의 안무에 대한 저작권이 인정된다. 저작권은 저작자가 저작물에 대하여 가지는 인격적·정신적 이익을 보호하는 권리로서 공표권, 성명표시권 및 동일성유지권의 저작인격권과, 저작자가 저작물을 스스로 이용하거나 다른 사람이 이용할 수 있도록 허락함으로써 경제적 이익을 올릴 수 있는 복제권, 공연권, 공중송신권, 전시권, 배포권, 대여권, 2차적저작물작성권의 저작재산권을 갖는다.
한편 무용수는 저작자는 아니기 때문에 저작물에 대한 저작권을 가지지는 못한다. 다만 저작권법은 저작인접권으로서 저작권에 인접한, 저작권에 준하는 권리를 부여하고 저작권법으로 보호를 해주고 있다. 무용수와 같은 실연자의 경우 비록 무용이라는 저작물을 실제로 창작한 자는 아니지만, 저작물의 표현에 이바지함으로써 저작물의 가치와 완성도를 높이는 역할과 저작물을 일반 공중에게 전달하여 확산시키는 역할을 함으로써 문화의 향상과 발전에 기여하는 정도가 크기 때문에, 이와 같은 공헌을 고려하여 저작자에 준하여 보호하고 있는 것이다.
무용수의 인격권
이러한 실연자로서 무용수에게는 저작자에게 저작인격권과 저작재산권이 인정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격권과 재산권이 인정되는데, 우선 인격권으로는 성명표시권과 동일성유지권을 가진다.
성명표시권이란 무용수가 공연이나 무용이 담긴 방송 등 자신의 실연에 대하여 자신의 성명을 표시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이때 표시할 수 있는 권리는 자신의 성명을 표시할 것인지, 표시하지 않을 것인지, 표시한다면 어떠한 이름으로 표시할 것인지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포함한다. 따라서 무용수가 이름을 표시할 것을 요구하였는데 표시하지 않는 경우, 표시하지 말 것을 요구하였는데 표시한 경우, 자신의 이명을 표시할 것을 요구하였는데 실명을 표시한 경우 모두 무용수의 성명표시권을 침해한 경우에 해당한다.
다만 저작권법은 실연의 성질이나 그 이용의 목적 및 형태 등에 비추어 부득이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실연자의 성명을 표시하지 아니할 수 있음을 명시하여 성명표시권의 예외를 허용해주고 있다. 통상 여러 무용수들이 실연을 하는 공연의 경우 홍보물 등에 무용수 개개인의 이름을 모두 표기하기 어려울 때가 있으므로, 무용수 개개인의 이름 대신 무용단의 이름을 표기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다만 무용수 개개인의 이름을 표기하기 어려운 부득이한 사정이 없는 경우에는 위와 같은 예외가 허용되지 아니하므로, 여러 페이지로 구성될 수 있는 책자 등에서는 이름을 표기하여야 할 것이다.
동일성유지권이란 자신의 실연의 내용과 형식의 동일성을 유지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즉 무용수의 실연을 활용할 경우 무용수가 표현한 본래의 모습대로 활용하여야 하고 그러한 실연의 변경이나 삭제를 할 경우 실연자인 무용수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따라서 무용수의 허락 없이 실연의 내용을 임의로 축소하거나 일부를 삭제하는 경우는 동일성유지권의 침해가 된다.
다만 동일성유지권의 경우에도 실연의 성질이나 그 이용의 목적 및 형태 등에 비추어 부득이한 경우에는 예외가 허용된다. 예컨대 무용 공연의 홍보 영상을 제작할 때 무용수의 실연 전체를 보여주는 것은 부당하므로 일부 장면만을 사용하는 경우가 이러한 예외에 해당할 것이다.
한편 위와 같은 인격권은 일신전속적 성격을 가진다. 즉 특정한 주체인 무용수에게만 귀속하며, 무용수만이 누릴 수 있다. 따라서 무용수는 자신의 인격권을 다른 사람에게 양도 또는 대여하거나 이를 가지지 않겠다고 포기할 수 없다. 만일 무용수와 무용단 혹은 제작사 간의 출연계약서에 인격권을 양도하거나 포기한다는 내용의 조항이 있다면 인격권의 성질에 반하는 내용으로 그 효력이 없다. 다만 위와 같이 인격권을 처분하는 내용이 아니라면, 무용수가 인격권을 보유하고 있음을 전제로 하되 성명표시권이나 동일성유지권을 행사하지는 아니하겠다는 특약은 당사자 간의 약정으로 설정할 수 있다.
무용수의 재산권
실연자의 재산적 권리로는 저작권과 마찬가지로 복제권, 배포권, 대여권, 공연권, 방송권, 전송권이 인정된다. 이때 2차적 저작물 작성권이 저작자인 안무가에게는 인정되는 것과 달리, 실연자인 무용수에게는 인정되지 아니한다. 여기서 2차적 저작물 작성권이란 원저작물인 안무를 변형하거나 각색하는 등 안무를 다른 방법으로 새로이 작성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
만일 안무가가 창작한 무용을 무용수가 표현하였는데, 이러한 무용 장면을 안무가와 무용수의 동의를 받지 않고 제3자가 촬영한 경우를 상정해보자. 이와 같은 제3자의 행위는 원칙상 저작물인 안무와 실연인 무용을 녹화의 방법으로 유형물에 고정한 행위로서 안무가와 무용수의 복제권을 침해한 경우에 해당한다. (단 무용수가 안무가나 공연제작사에게 복제권을 양도하였거나 이용허락 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였다면, 안무가나 공연제작사의 동의를 받으면 된다.)
한편 안무가가 창작한 무용을 무용수가 표현하였는데 이러한 무용 장면을 제3자가 일부 변형하여 새로운 안무를 창작하여 공연한 경우, 이와 같은 제3자의 행위는 저작물인 안무와 실질적으로 유사하지만 다소 변형함으로써 새로운 창작물을 작성한 경우로서 저작권자인 안무가의 2차적 저작물 작성권을 침해한 경우에 해당한다. 그러나 실연자인 무용수에게는 2차적 저작물 작성권이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실연자의 권리가 침해된 경우에는 해당하지 아니한다.
복제권과 관련하여 무용수의 실연 전체를 동영상으로 복제하는 것이 아닌 한 순간을 사진으로 복제하는 것도 실연권의 침해가 될 수 있을까? 무용수의 실연은 신체의 움직임으로 표현이 되지만, 경우에 따라 실연의 한 장면만을 복제한 경우에도 실연권의 침해가 될 가능성이 있다.
조지 발란신이 안무를 창작한 발레 ‘호두까기 인형’의 장면을 촬영한 사진을 공연 사진집 출판사가 출판한 Horgan v. Macmillan, Inc. 사건에서, 1심법원은 사진만으로 발레 호두까기 인형의 안무를 창조할 수는 없으므로 저작권을 침해하지 않았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에 대하여 항소법원은 비록 안무의 연속적인 동작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어도 안무의 독창적 핵심이 묘사된 경우 저작권 침해가 될 수 있다고 보아 저작권 침해를 인정하였다.
국내에서는 이와 유사하게 1996년 현대백화점이 자신의 광고물에 백조의 호수 무용수의 사진을 사용한 사례가 있다. 해당 사건에서는 현대백화점이 무용수들의 허락 없이 무용수들의 초상을 활용하여 무용수의 초상권을 침해하였다는 점이 인정되었다(서울지방법원 제12민사부 1996. 11. 22. 판결 95가합114514 판결 참조). 만일 위 사건에서 안무가의 저작권과 무용수의 실연권 침해를 주장하였더라면, 그 침해가 인정될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다만 1996년 당시 저작재산권의 보호기간은 저작자 사망일로부터 50년이었다. 따라서 백조의 호수가 고전무용인 점을 고려하면 안무가가 사망한지 50년이 지난 때로 안무가에 대한 저작권 침해는 인정되지 않았을 것이나, 실연권은 실연한 때 발생하므로 무용수에 대한 실연권 침해는 인정될 수 있다).
포토그래퍼인 다니엘 나네스쿠(Daniel Nanescu)가 촬영하여 무료로 공유한 무용수의 사진(출처: https://www.splitshire.com/). 저작권자의 허락이 있어 사진저작물로서 이용이 가능하고, 무용 장면이 담겨있지만 안무가의 독창적인 표현이라고 볼 수 없는 일반적인 동작이 촬영된 사진에 대해서는 안무가의 저작권 내지 무용수의 저작인격권 침해를 주장하기 힘들 것이다. |
- 2편에서 계속 -
이예희
디케이엘파트너스 법률사무소 변호사.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각각 연극과 문학을 전공하고 변호사가 되었다. 현재 문화, 예술, 엔터테인먼트 등 콘텐츠 IP와 관련된 분야에서 법률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