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한 케이블 채널에서 방송된 춤 프로그램이 국내 춤계 뿐만 아니라 공연예술계 전반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춤계 또한 춤의 대중화라는 대명제에 동의하고 지원하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방송을 통한 춤 대중화의 긍정적, 부정적 측면을 다각도로 논의해볼 시점이다. (편집자 주)
2013년 7월 20일부터 10월 5일까지 방영된 Mnet 채널의 <댄싱9>은 기존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 이상으로 대중의 관심을 모았다. 발레, 현대무용, 한국무용, 댄스스포츠, 비보이 등 장르를 망라하여 선발된 댄서들이 두 팀으로 나뉘어 팀별 대항으로 우승팀과 MVP를 뽑는 프로였다. 회를 거듭할수록 시청률이 상승하면서 댄서들의 힘 있는 몸짓과 춤에 대한 열정 또한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대중들은 다양한 춤장르의 협업 무대와 댄서들의 매력에 빠져들었고 그 인기는 공연장으로 이어져 <댄싱9>에 참여한 댄서들의 <EDx2><댄싱9 갈라쇼><춤이 말하다><D4U>공연이 매회 매진을 거듭하였다. 그야말로 춤계에서는 그동안 전무했던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공연의 표면적인 흥행 결과로 대중화를 논하는 것은 때 이른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수십 년 동안 춤계가 대중화를 위해 안팎으로 고민한 시간을 순식간에 전복할 정도로 방송매체가 대중에게 현대춤에 대한 관심을 갖게 작용한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문화 콘텐츠가 국가 경쟁력으로까지 평가받는 그야말로 문화의 시대에 방송의 영향력이 춤에 대한 종래의 관심과 경향을 바꾸려는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다.
춤계 전반에 팽배해 있는 대중매체를 통한 순수춤의 왜곡이라는 우려가 단순한 비난을 넘어 대안을 제시하는 건전한 비판이 되기 위해서라도, 선입견과 편견을 넘어선 진지하고 본격적인 토론의 장을 만들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춤 관계자들과 <댄싱 9> 시청자들의 의견을 들어보았다.
'대중화'에 대한 명확한 인식의 필요성
춤계에서는 대체적으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한 원로 안무가는 인터뷰에서 “대중매체를 통해 순수무용이 나아갈 길은 찾을 수 없다. 대중화라는 말을 잘 생각해 봐야 한다. 진정한 대중화는 그들에게 춤을 통해 내 모습을 바로 보게 하는 다가감이다. 춤에는 인생사의 진솔한 얘기가 있어야 하는 것인데, 조명 쇼에서 2~3분 동안 자신을 보일 수 있는가? 후진국에서나 할 수 있는 쇼 같은 공연문화가 퍼지는 대중화가 어떤 의미가 있는가?”라며 춤의 진면목을 훼손시키는 행위는 지양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장승헌(전문 무용수 지원센터 상임이사)은 방송매체의 특성에 대한 정확한 판단이 필요하다며 “대중화란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가는 것이 아니다. 대중가요 같은 음악에 맞춰 가볍고 즐겁게 춤추는 것이 현대춤이라고 대중을 오도할 수 있는 것이 TV 매체의 ‘친숙함’이라는 속성이다. 방송을 통한 대중화라면 순수 예술작품의 방영 빈도를 높여주는 보급용으로 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 공연예술의 가치와 몸의 진정성이 쉽게 소비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 상임이사는 이같은 기획 프로그램이 출연자들의 의식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도 우려했다. 그는 “적어도 10년 이상 춤을 전공한 친구들이 아이돌 스타들에게 안무를 지도받는 것도 못마땅하지만, 더 큰 문제는 한 순간 TV 매체 시스템에 중독되고 박수와 환호에 노출되어 그것이 대중과 소통되었다고 착각하는 것이 더 위험하다”며 극장에 와서 소리 지르는 대중들은 팬클럽 같은 일시적 현상일 뿐 현대춤이 대중화되어 가는 것으로 볼 수는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종호(유네스코 국제무용협회 한국본부 회장)도 대중화와 상업화에 대한 균형 잡힌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순수예술의 대중적 확산을 위해 지난 몇 십 년 동안 예술계가 얼마나 ‘눈높이’라는 표현을 들먹였는지 생각해보라. 돌이켜보면 대중에 영합하려고 예술이 스스로 격을 떨어뜨린 것이지, 대중의 눈높이를 끌어올리려는 노력은 거의 없었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이 회장은 이어 “순수춤, 좁게는 현대춤의 대중적 확산을 위해 춤계는 이미 1980년대 이정희의 <봄날 문 밖에서 춤>에서부터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의 <힙합의 진화>, <춤추는 도시>에 이르기까지 각종 기획을 통해 나름대로 노력해왔다. 물론 그런 소박한 시도로 단박에 대중과의 소통을 기대할 수는 없지만 반대로 <댄싱9>같은 상업적 기획을 통해 순수예술이 대중의 품으로 파고들리라 믿는다면 정말 순진한 생각이다. 이런 프로그램의 득실이 무엇인가에 대해 출연자들을 포함한 춤계 전반의 명확한 현실인식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무엇보다도 거대자본을 가진 주최 기업이 순수예술의 확산과 기업이윤을 동시에 실현할 수 있는 비전과 전략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한 이런 프로그램은 단지 예술가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그럴 마음과 능력이 없으면 문화예술 들먹이지 말고 차라리 상업용이라고 입장을 분명히 하라“고 그는 덧붙였다.
아마도 이런 우려와 걱정들은 당연한 것이다. 예술이라는 것이 고뇌의 산물이고 그 가치를 예술가가 깨워주어야 한다는 것은 상식일 것이다. 그러나 춤꾼들이 상업화에 휩쓸려 중심을 잡지 못하고 인기만을 지나치게 의식한다면 그 본질이 손상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예술가라면 누구라도 쉽게 공감하는 사실이다.
춤이 이렇게 재미있구나... 선입견을 허무는 전환점
이에 반해, 김신아(아트 프로듀서)는 매체가 제공한 대중화의 기회라 생각한다며, “<댄싱 9>은 춤이 지루하고 형이상학적이기만 하다는 선입견을 허물었다는데 의미가 있다. 적어도 이 방송은 대중에게 춤이 흥미롭다는 것을 인식시켜 주었다. 공연예술은 사람들과 나누며 교감하는 것이지 예술이란 이름으로 포장해 얼음공주처럼 집안에 가둬두는 것이 아니다. 물론 <댄싱9>에서 춤이 이벤트성과 재주넘기가 된 면도 있었지만, 중고생에서부터 다양한 연령의 시청자들을 2~3분 안에 춤으로 설득해냈다”며 예술의 대중화란 관객과의 소통이며 이러한 움직임들이 춤 장르를 알리는 기회가 될 것임을 강조하였다.
또한 그는 출연자에 대해서도 다른 시각으로 봐주기 바란다며, “극장에서 춤추는 것은 150석에서 많게는 600석 공간에서 박수 받는 안전한 게임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출연자들이 개인적으로 무엇을 희망했건, 10초 안에 시청자의 관심을 끌지 못하면 채널이 돌아가는 방송에서 불특정 다수 시청자들로부터 주목받았다는 것만으로도 박수 받을 만하다. 더군다나 그들이 3분여 동안 자신의 안무작을 했을 때는 예술적인 강점도 발견됐다. 짧은 공연에 자신들의 목소리가 담겼으며 전혀 우습거나 가볍지 않았다. 충분히 진지했으며 순간 아름답기도 했다. 그들을 개인적인 차원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대중매체가 춤에 주목했다는 사실이 갖는 시의성에 무게를 두어야 한다. 상업성으로 폄하할 수도 있지만, 연극에서 뮤지컬이나 영화, 드라마로 진출하면서 확보한 사회적 인지도를 연극으로 끌어와 장르 발전에 순영향을 미치는 것을 대중과의 타협이라고 치부하지 않는다. 따라서 관객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성립하는 공연예술의 사회적 소통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각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춤도 매체를 통해 이슈화되고 대중의 다양한 취향을 고려하지 않으면 소외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이다.
다양한 춤 영역을 구축할 수 있는 계기
안무가 박호빈(댄스시어터 까두 대표)은 춤계에서 공연자 입장에서 노력하는 만큼 관객의 선호도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작품에 임하는지 반문하며, “<댄싱9>을 통해 오히려 춤꾼들이 폭넓게 자신들의 방향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만난 것 같다. 예술적 자기 영역을 구축할 것인지, 대중과 더욱 적극적으로 만나는 길을 선택할 것인지 말이다. 또한 순수춤 인식에 대한 춤계의 우려는 이해하지만 막상 대중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방송춤에만 익숙해 있던 시청자들이 발레와 현대춤에 대한 신선한 관심을 갖고 공연장으로 찾아올 계기를 제공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방송이 시청률을 올리기 위한 여러 쇼적 측면도 있지만, 대중들이 환호하는 ‘무엇’을 우리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방송에서도 춤의 필요성을 느낀 것이며 우리도 관대한 시각으로 변화하는 흐름을 지켜볼 것을 당부했다.
박호빈의 말처럼 <댄싱9>을 시청한 한 시민은 춤계의 우려를 의아해 했다. “대중가요가 한류를 일으키는 것이 성악계와 클래식 음악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순수성과 상업성이라 것은 예술의 숙명 같은 것인데 춤도 타 분야처럼 선택할 기회가 넓어지면 좋은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제 겨우 첫 시즌을 끝낸 방송 프로를 진단하면서 춤의 예술성과 상업성 전반을 거론하는 것은 일면 소모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우려와 기대의 저변에는 공통적으로 춤이 더욱 대중과 가깝게 소통하기를, 그리고 동시에 춤의 예술적 진면목이 높이 평가받기를 기대하는 간절함이 깔려 있다.
예술적 고민이 결여된, 상업적 기획에 치우친 무대
전체적으로 정리해 보면 예술의 순수성과 정신적 가치에 대한 춤계의 주장이 대중들에게는 무용인들의 재래식 유토피아를 지키기 위한 변명으로 들릴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공연문화의 다양한 접근방법에는 관대해야 하지만, 순수예술과 방송이 추구하는 춤의 목표는 분명히 다르다. 때론 난해하고 재미없을 때도 있지만 그동안 춤계가 고군분투하며 만들어온 무대를 가볍게 여기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적어도 극장무대에서는 방송에서 조명 받았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그 예로 <D4U>공연의 애매모호했던 방향성을 들 수 있다. 김명규, 이루다, 하휘동, 한선천이 <댄싱9>에서 했던 레퍼토리를 바탕으로, 렉처 형식을 빌려 즉흥적으로 얘기하며 관객을 적극적으로 참여시켰다. 갈라 형식으로 자신들의 주전공 분야를 선보였고, 방송에서와 동일하게 장르를 섞어 무대의 기능을 활용할 수 있는 최선의 범위에서 볼거리를 제공하였다.
그러나 방송 카메라 워크와는 다른 무대에서 그들의 협업이 방송의 열기를 이어가기에는 신선함도 떨어지고 장르의 시너지 효과도 부족했다. 이미 여러 차례 반복된 방송 레퍼토리에 관객이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고민들은 <댄싱9>에 출연했던 춤꾼들의 인터뷰에서도 드러났다. 방송 초반에 몇몇 친구들은 자신들이 소외받는 순수춤을 알리는 전도사가 되겠다고 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의 꿈은 이뤄졌다. 자신들의 이름을 건 공연장에서 피켓을 들고 환호하는 관객들, 사인을 받기 위해 관객들이 줄을 선 모습 등 예전 춤 공연장에서는 보기 힘든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그들중 일부는 어느 아이돌 부럽지 않는 스타가 되어 광고, 모델, 뮤직비디오, 가요프로 출연까지 바쁜 일상을 보낸다고 한다. 현대판 마리 탈리오니가 부활한 것인가? 반면에 그들이 순수예술의 홍보대사로 그 책임과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가? 라고 반문해 본다면 과연 어떤 대답이 돌아올까?
공연의 목적이 관객과의 소통이라 할지라도 무대로 돌아왔을 때는 남다른 자신들만의 내면의 모습이 보여야 한다. 이들의 무대에는 ‘흥’만 있었을 뿐, ‘흥’으로 승화되는 과정과 배경을 드러내는 예술적 고민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번 공연의 예술감독을 맡았던 이정희는 1980년대 한국 현대춤의 포스트 모던 선두주자로 <살푸리> 시리즈를 비롯, 시대정신을 반영한 의미 있는 작품을 다수 남겼던 예술가이다. 춤의 내공이 깊은 만큼 아쉬움도 적지 않았다. 흥미와 예술성을 동시에 지향하는 관객과의 소통에 주력했다지만 적어도 비틀즈나 마이클 잭슨 정도는 되어야 이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자조해 본다.
예술이 당대의 인기와 흥미에만 목적을 두어선 안 될 것이다. 마치 미술계에서 높이 인정받는 추상화가 대다수 대중에게는 어린아이 낙서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작품의 예술적 가치가 없어지는 것은 단언컨대 아니다. 오히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모두가 아는 격언처럼 시대를 거듭하면서 그 가치가 빛나고 예술적 자산으로 인류문화에 기여하지 않는가?
한 시민은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에 대한 얘기를 재미있는 비유를 통해서 담아냈다. “우리가 자주 인스턴트 식품을 먹기는 하지만 우리 몸은 자연스럽게 자연식 식단을 찾게 되어 있다. 예술도 우리 몸이 그러하듯 자연스럽게 진정한 가치를 찾아 즉각적인 흥미는 없어도 깊은 맛을 내는 쪽으로 되돌아오는 시점이 있을 것이다.” 곱씹어 볼 만한 말이다.
한편으로 예술과 문화는 그 시대상을 반영하고 그것은 또한 우리가 매일 노출되는 현재의 생활과 기술에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생각해 본다면, 이러한 방송의 영향력과 또 순수예술의 대중화에 대한 기여 가능성도 다르게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춤의 대중화와 공연예술의 활성화에 활용할 수 있는 부분을 잘 모색해서 방송의 역기능을 최소화하고 그 순기능을 살릴 수 있는 방향에 대한 모색 역시 중요하다.
춤과 댄서 모두에게 돌파구가 마련되어야...
장승헌 이사는 “<댄싱9> 시즌 2가 준비중이라는데, 방송을 폐지하라고 할 수도 없고... 시즌 1에서 세 분의 심사위원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였다. 한국예술종합학교는 실용무용학과도 아니고 기초예술을 책임지는 대표적인 교육기관이다. 어떤 생각을 가지고 참여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심사위원들의 의식 있는 발언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전문가들로 자문단을 구성해서 의견을 나누는 것과 출발점이 다른 장르적 특성을 고려해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겠다. 연예계나 방송에서는 더 좋은 스타가 나오면 그전의 스타는 쉽게 잊히는 생리를 잘 알지 않느냐. 이들 잊혀진 스타의 진로에 대해서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춤은 댄서의 예술인데 우리 춤꾼들에게 어떤 돌파구가 필요한 것 같다. 하나의 대안으로, 콩쿠르에 입상하면 국ㆍ시립단원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준다거나 무용수들의 경력이 단절되지 않게 국군 예술부대 창설에 힘을 모아 그들이 열심히 할 수 있는 구조를 모색해야 할 것이다. 지금은 병역면제 이슈가 위축되어 있지만 이러한 혜택의 영향으로 남자 무용수들의 기량이 한 단계 발전했다. 해외에서 우리 무용수들의 위상이 얼마나 올라갔는가?”라며 춤꾼들이 방송이 아닌 춤을 지속할 수 있게 동기부여가 되는 자구책을 춤계 원로와 교육계에서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박호빈 대표는 “유럽의 유명한 안무가들이 브레이크댄스, 힙합, 팝핀 등 대중춤을 배우고 무대로 올리는 작업을 거치는 경우가 많다. 동시대 자신들의 언어라고 보는 관점이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가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심사위원의 전문적인 평가에서 배우는 점이 많다. 우리도 적극적으로 현장 전문가들이 심사에 참여하고 장르별 특성과 지식을 전달하면서 상생하길 바란다”며 오히려 춤꾼들과 춤계도 순수라는 틀에 갇히기 보단 다양한 움직임을 소화해 내는 능력을 갖추는 계기로 삼자고 말하고 있다.
이에 반해 이종호 회장은 “순수냐 대중이냐를 구분하거나 차별하자는 게 아니다. 오늘날같은 장르혼합과 경계넘기의 시대에 누가 촌스럽게 그런 걸 문제 삼겠는가. 다만 대중춤을 통해 예술춤까지 풍요롭게 만들어 나아가겠다는 의식과 안목, 일종의 사명감, 그리고 구체적인 방법론을 주최측이 지니고 있느냐가 문제인데, 주최 기업의 평소 의식수준을 볼 때 그 부분이 매우 미덥지 않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비난'이 아닌 대안을 가진 '비판'으로 상생의 길을 찾길...
이런 대안 제시와 적극적 개입의 사례는 사극에서 그 경험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10여 년 전부터 TV 드라마에선 선풍적인 사극 열풍이 불었고 지금은 다시 부활한 역사 시험이 한동안 수능에서 선택과목으로 전환되면서 특히 사극의 폐해에 대한 논란이 거듭돼 왔던 때가 기억난다. 그때 많은 역사학자들은 왜곡된 역사관을 갖게 된다며 사극의 폐해에 대해 역설했고 방송 관계자는 이것은 드라마일 뿐이라며 흥미성을 배제한 사극은 다큐멘터리에서 찾으면 된다고 맞섰다.
이런 토론을 통해 정통사극이라는 장르는 복색, 언어 등 세부적인 부분까지 고증에 공을 들여, 좀더 역사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게 되었고 소위 '퓨전 사극'이라는 영역이 창조되면서 소재를 역사에 두고 있지만 이것은 그야말로 ’드라마‘구나 하고 느낄 수 있는 요소를 가미하여 재미를 주는 것을 보게 된다.
춤계에서도 지금의 <댄싱9>을 기점으로 시즌을 거듭하며 확산될 춤의 대중화가 인기영합주의로 예술혼이 저해 받는 역기능을 최대한 조절하면서 춤의 깊이와 멋을 알릴 수 있는 훌륭한 도구로 발전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관심을 보여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시즌 2에서는 춤 관계자들(마스터, 심사위원)이 보다 적극적으로 긍정적인 면을 발굴하기 위해 더 고민하고 자문하여 발전시킬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스마트폰과 IT 기술 발전에 힘입어 손 안에서 뮤지컬과 오페라를 감상하는 시대이다. 순수예술에 대한 관심만 높일 수 있다면 그간의 대중화 노력이 결실을 볼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춤계도 무조건 외면하거나 무조건 환호하기보다는 대안을 제시하고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상생의 길을 모색하는 ‘비판문화’가 활성화되길 기대한다.
일시적인 현상인지, 더욱 순수예술로 확장시켜 전문화되어 갈지, 혹은 더욱 상업적이고 인스턴트화되어 어느 날 사라질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