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국립무용단이 창단 52년 만에 처음으로 외국인 안무가와 함께 장편 신작을 무대에 올렸다. 초청된 안무가는 핀란드의 테로 사리넨(Tero Saarinen). 파격적인 시도 만큼이나 많은 홍보와 생생한 현장 반응이 캐치되었다. 공연 후 작품의 완성도를 놓고 요란한 홍보를 빗대어 ‘화려한 실패’란 반응, 길지 않은 연습시간을 고려하면 그런데로 선전했다는 반응, 그 보다 더 후한 점수를 주어야 한다는 반응이 공존했다. 공연 기획과 제작에 참여한 아티스트와 비평가들을 중심으로 국립무용단의 새로운 시도에 대해 진단해 본다. (편집자주)
사회자 : 1962년 국립무용단 창단 이후 처음 시도 된 해외 안무가 협업 무대 안무자이신 테로 사리넨씨, 작품에 출연하신 무용수 송설씨 그리고 국립 무용단 책임PD이신 방지영씨와 함께 <회오리> 작품에 대한 전반적인 얘기와 참여하신 무용수들의 반응 및 향후 레퍼토리 활용 방안까지 짚어보고자 합니다.
김혜라(이하 김) : 작품 잘 봤습니다. 공연제작까지 어느 정도 기간이 소요되었습니까?
테로 사리넨(이하 테로) : 한국에서 막바지 작업기간은 두 달 남짓 되었습니다. 한 달 반 정도 까지는 매일 수업을 했고, 그 이후 시간에 작품을 마무리했습니다. 한국무용수들의 개성이 강해서 원래 생각했던 방향과는 다르게 작업이 이뤄졌습니다. 사실 전통무용 성격을 가진 단체와 첫 번째 외국인 안무가라는 점이 많은 위험 부담과 책임감을 갖게 했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다양한 요소들과 저의 색깔을 작품에서 합쳐보고자 안무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첫 날 무용수들을 만났을 때, 어떤 정신적인 악수라고 할까요? 무언가 알 수 없는 교감이 되는 것을 감지했습니다. 저는 어떤 일이 벌어질 것 같은 느낌이었기에 제 감을 믿고 두고 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연습 기간 중에 되도록 무용수들의 능력과 생각을 보고 들으려고 했습니다. 사실 저와 무용수들 사이에는 통역이 필요한데 대화 중간 중간에 말로 전달할 수 없는 부분까지도 잘 교감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김 : 테로 사리넨씨는 바체바 무용단, 네델란드 댄스시어터, 리옹 오페라 발레단 등 여러 나라에서 유수한 단체와 작업을 하셨습니다. 가깝게는 일본에서도 활동을 하셨는데 한국 무용수들만의 특별한 개성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테로 : 한국 전통춤이 개성이 있지만 아시아(일본) 전통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는 제가 별로 아는 것이 없어서 말을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한국에서 작업하면서 다른 나라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정신적인 교감을 느낀 것이 특별한 점입니다. 오랜 전통에 기인한 것도 같은데..... 무용수들 자체에서 오는 큰 울림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무용수들이 굉장히 아름다운 동작을 하면서도 그 안에 무언가 정제되지 않은 거친 원초적인 힘을 보이기도 했어요. 그리고 사실 저는 아시아에 대한 선입견이 다소 있었는데, 한국 사람들이 솔직하고 직설적인 부분이 많다는 것이 놀라운 점이었습니다. 마치 바로 대면하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핀란드와 비슷한 점이기도 하지요. 저는 정말 좋아요.
사실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 뭔가 말로 설명한다는 것이 위험하게 느껴집니다. 언어로 사용했을 때 이미 진부하거나 평범하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 우리가 다루고 있는 것은 비언어적이고 직관적인 것인데 이것을 언어적으로 표현하려고 했을 때 그 맛이 제한되거나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김 : 네 맞습니다. 이제는 작품에 대한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팜플렛에 보면 핀란드의 자연주의와 한국적 자연주의의 접점을 보여줄 것이라고 했습니다. 굉장히 추상적이면서 폭 넓게 들립니다. 테로씨가 말하는 ‘자연’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작품에서 표현되었는지 알고 싶습니다.
테로 : 저는 우리가 왜 춤을 추고 왜 움직이고 있는지, 그 힘으로 무엇을 보여주어야 할 것 인지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항상 자연에서 많은 영감을 받는데요. 핀란드에서 자라면서 바다나 숲이 가진 소리와 보여주는 움직임과 규모에서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빛에 대한 감수성도 발달했고 빛이 없는 상태의 감수성도 발달했습니다. 이러한 성장배경과 나라의 환경이 저의 정신적인 풍경을 이루는 받침이 되었습니다. 제가 무용수로 성장해서는 부토의 경험을 하면서 영향을 받았습니다. 존재의 자연스런 상태를 추구하면서 원초적이면서 강한, 투명하면서도 울리는 존재의 모습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자연주의 접점이라는 것은 저의 내부에 있는 것들과 한국 무용수들 춤의 원초적인 힘이나 제의적인 성격에서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통찰이 현재의 통로가 되어 이 작품의 길을 열어 준 것 같습니다. 우리 안의 있는 것들이 항상 예쁘지만 않듯이 흉하기도 한 것을 다뤄야 하며 아니 흉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것이 ‘자연’이며 작품에 보이고자 했습니다.
김 : 조금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작품에서 발견되는 주된 움직임 방식이 하체는 절제되어 닫힌듯 하였고 상체는 무언가 요동치는 일렁임으로 현란하게 보였습니다. 이러한 움직임을 어떻게 끌어내었는지 알고 싶습니다.
이중적인 것들이 만나 마찰을 일으키는 회오리
테로 : 말씀하신 부분이 제가 찾고 있는 움직임입니다. 제가 항상 찾고 있는 움직임은 아래로는 땅에 탄탄히 뿌리박고 있으면서도 위로는 상승하는 상태 입니다. 제가 처음에 이러한 움직임을 보여드렸더니 많은 분들이 한국적이라고 하셨습니다. 사실 저는 “이게 내 스타일이야”라고 생각했습니다.(웃음) 삶의 이중성, 음양, 흑백, 여성성과 남성성이 만나는 ‘마찰’에 관심이 있습니다.
김 : 안무자가 추구하는 생각이 작품을 통해 짐작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중적인 것들과의 충돌에서 발생하는 마찰이 생명력 있는 회오리를 생성시킨다는 안무자의 의도가 전체적인 작품에서 강력하게 다가오지는 않았다는 생각입니다. 작품의 전체구조가 시각적으론 질서 있는 퍼짐(수리적 계산)으로 발전 혹은 확산되는 느낌이 강해서일지는 모르겠습니다. 안무자가 추구하시는 깊은 사유를 느끼기에는 관객마다 해석적 차이가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테로 : 말씀하신 부분이 공감이 됩니다. 그 점에 대한 것은 제가 설명할 부분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해석적인 차이에서는 맞고 틀리고는 없다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관객이 느낀 결과물 형태가 그러했다면 다음번에 같은 분들과 작업을 연장하면 <회오리>는 질서가 파괴된 정신없는 작업이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번 작업에서는 무용수들의 마인드에도 구조적인 어떤 정형화된 틀이 있었던 것도 있습니다. 앞으로 이 작품이 어떻게 변하게 될 것인가도 궁금합니다.
사회 : 다음으로 공연에 참여하신 송설씨의 공연 소감을 듣고 싶네요.
송설(이하 송) : 어젯밤 공연(17일) 이후에 심리적으로 힘들었습니다. 의상이 제대로 활용이 안 된 것이 문제가 아니라 무대에서 제 모습 그대로가 보여서 여러 복잡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작품에서는 스스로 즉흥적인 요소를 잘 이뤄냈어야 했는데 저의 정형화된 사고와 습관 때문에 순간적으로 몰입하지 못하고 그저 동작을 수행한 느낌이 들어서 힘이 듭니다.
테로 : 이런 생각을 하신다는 자체가 퍼포머로서 송설씨는 건강한 정신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송설씨가 맡은 역할(회오리에 빠지면 안 되고 새로운 회오리를 만들어야 하는 역)이 전체 작품에서 중요한 위치였기에 어려웠을 것입니다. 이렇게 얘기를 해주시니 고맙고 이틀이나 남았으니 계속 조절해 가면 조금 더 완성된 작품이 될 것 같습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우리가 매번 만들어 가면 된다고 생각됩니다.
사회자 : 두 달 정도 국립무용수들이 테로 사리넨씨와 작업하면서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듣고 싶습니다.
온몸의 에너지를 쏟아 내는 경험
송 : 저희는 동작을 할 때 항상 갇혀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안무자가 무엇을 하라고 하면 수행하는 관계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번 테로씨와 작업을 하면서 우리 무용수들 끼리 얘기를 많이 했는데요. “우리한테 손가락이 있었니?”라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춤은 손가락을 잘 쓰질 않는데 우리 몸의 일부인 손가락의 쓰임새를 발견하게 된 것이 큰 성과인 것 같습니다. 단순한 것 같지만 유형화된 동작에 익숙해 있던 우리에게 다시 몸과 춤에 대한 생각을 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어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테로 : 그것이 손에 대한 것만이 아니라 생각이 커지면서 형식이나 다른 표현에 대해서 생각이 열리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면서도 전통을 헤치지 않는다는 것도 의미가 있고요.
송 : 또한 춤을 뜨겁게 추었다는 것도 좋은 경험입니다. 저희가 테로씨와 연습하면서 매 번 온 몸에 땀이 흠뻑 젖었습니다. 무용수들이 춤사위만으로 모든 것을 뱉어 내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테로 : 저는 그것이 춤의 근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무용수들이 춤에 대해서 굉장히 집중하시는 모습에 많이 배웠습니다. 특히 한국무용수들은 정신적인 부분과 깊이가 특별한 능력으로 생각됩니다. 제가 드린 움직임을 무용수들이 시적인 것으로 표현해 내곤 하셨습니다.
김 : 그렇다면 우리춤사위로 연습하면서는 느끼지 못했던 것이 이번 작업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였기에 자기안의 에너지가 발산되었다는 말씀이신지요.
송 : 방법적으로 이전과는 다른 것 같습니다. 보통 저희는 직업 무용수라서 안무자들이 주는 데로 외워서 습관적으로 하게 됩니다. 우리춤은 동작과 동작 연결 사이에 스토리가 들어가지 않는데 테로씨는 동작 사이에 상상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동작과 카운트에만 메이지 않게 해주었다고 할까요. 예를 들면, “지구와 인사하라” 같이 동작을 왜 하는지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기에 개개인이 나의 춤에 대한 생각을 하며 추었습니다.
테로 : 송설씨가 말씀하시는 연습방식에 동의합니다. 우리가 왜 춤을 추는지 춤 정신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철학적인 관점에서도 지금 시대에 춤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인류가 비현실적이고 비신체적으로 되어 가고 있습니다. 진짜인 것, 땅과 지구, 직관과 영감을 연결할 것을 생각하고 무용수들이 항상 그 원천과 빛을 가져와야 하는 존재들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 : 송설씨의 말씀 중 조금 이해가 안가는 부분입니다. 우리가 춤을 출 때 당연히 어떤 마음으로 추는지 알고 하지 않습니까? 더군다나 한국춤이야 말로 춤추는 나와 우주적 기운을 바탕으로 모든 디딤과 춤사위를 수행해 간다고 생각 합니다. 실제로 국립무용단에서 연습이나 공연 할 때에 전혀 이런 생각이나 과정이 반영되지 않는다는 것입니까?
방지영(이하 방) : 춤이론과 실제 현장에서 행해지는 방식에는 확실히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사회자 : 송설씨가 테로씨와 작업하며 춤춘다는 것의 새로운 의미를 발견했다고 했는데, 다른 무용수들도 전반적으로 그와 작업하면서 어떤 것을 느꼈는지 말해 주십시오.
송 : 저희 국립 단체의 특성상 서로 다른 무용수들이 다 친하게 지낼 수 없는 시스템입니다. 가족적인 분위기는 아닙니다.
방 : 직업무용수이니까요. 경쟁의식도 있고, 자신의 역할에만 충실해지다보니...
송 : 그런데 테로씨와 작업이후 출연하는 전체 무용수들이 두 번 같이 모여서 얘기를 했습니다. 같이 놀았습니다.(전체 웃음)
사회자 : 그렇다면 테로의 어떤 점 때문에 그런 변화가 생겼나요?
송 : 왜 만났는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특별히 이소정 누나가 아이를 낳고 작업에 참여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자기를 믿어주고 특히 잘 들어주는 것에 고맙다고 항상 얘기를 했어요. 작품 얘기를 하려고 모였다가 이런 소소한 마음속의 얘기를 했습니다. 사실 저희는 공연이 끝나고 뒤풀이를 마련해 줘도 잘 안가기도 했었거든요. 이상하죠?
사회 : 그렇다면 과거에도 외부 안무가와 작업을 했기도 했는데 왜 이번 테로씨와 작업 중에 무용단에 변화가 생겼는지요?
송 : 솔직하게 말하면, 과거 국내 안무가들이 오셨을 때는 형식적인 부분이 많았습니다. 서로가 정해진 곳까지만 하는 방식이죠. 그러니 아는 지인이 매번 공연마다 국립무용수들이 죽어있는 스텝만 할 뿐 어떤 그 이상의 에너지가 안 보인다고 하시더라구요. 맞습니다. 생각해보니 저희는 저희 것을 쏟아 내려고 하질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죠. 그런데 이번 테로씨와 작업하면서 춤꾼으로서 신체적 정신적 에너지를 온전히 뱉어 내는 것을 경험하게 해주었어요.
사회자 : 이전의 안무가와 다르게 테로씨는 왜 춰야 하는지 이유를 설명해 준 것 같습니다.
송 : 우리는 무대에서 ‘어떻게’ 나가야 하는지는 알지만, ‘왜’ 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듣고 춤추질 않았던 것 같습니다.
김 : 이러한 상황은 아직도 일부 안무가들이 무용수를 자신들의 작업에 참여하는 조력자로 생각한다는 것이죠. 무용수와 생각을 공유하며 그들에게 영감을 입히고 그들이 무대에서 살아 있을 때 더욱 안무가의 의도도 빛이 나는데 말입니다.
춤을 왜 춰야 하는지에 대한 원천적인 문제제기
송 : 테로씨와 작업은 다른 안무가와는 다르게 현대무용이라는 동작의 차이가 아니라 우리에게 원천적인 문제를 건드렸습니다. 이전에는 춤이 화려하거나 보이기 위한 것이었지 전달되는 방식이나 무엇을 위해 해야 하는지에 대한 안무가와 무용수간 교감과 소통이 부족했다는 생각입니다.
사회자 : 부끄럽지만 당연한 일인데 아직도 현장에서는 잘 이뤄지지 않고 있는 현실입니다.
테로 : 이어서 말씀드리면, 현대 사회에서 무용이 갖는 의미와 관련해서 안무가로서 책임감을 느낍니다. 무대에서 30여년 활동하면서 제가 줄 수 있는 것이 많고 무용수분들께 드리면서 그들이 성장하길 바라고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강한 연결이 한국 무용수들과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안무가로서 위치나 권위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무용수들과 같이 무용을 더 좋게 영향력 있게 만들고 싶습니다. 저는 이상주의자로 무용의 미래를 유지하고 싶습니다.
이리스 오티오(이하 이리스) : 테로 사리텐 컴퍼니의 분위기도 가족적입니다. 테로의 생각들이 무용수간 관계를 유지하게 해줍니다.
사회 : 이제는 제작이나 기획자 입장에서 이야기를 진행했으면 합니다. 처음에 외국인 안무자를 기획했던 동기와 지켜보면서 드는 생각들과 앞으로의 방향을 듣고 싶습니다.
새로운 기운으로 예술성 있는 작품을 성취하고자
방 : 이 프로그램은 안무가초청프로젝트로 테로씨 이전에 현대무용 하신 안성수 안무가와 작업이 처음이었고 테로씨가 두 번째입니다. 저희는 새로운 기운이 들어와서 신선한 작업과 작품을 성취해 내고 싶었습니다. 기획자의 입장에서 춤을 바라볼 때 오늘날 현대무용이 무엇인지 그 구분이 어디까지 필요한건지, 무용수들과 여러 채널을 통해 논의하면서 외국 안무가들과 작업을 해도 충분히 우리화 시켜서 할 수 있을 것 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사회자 : 이제는 프로덕션 입장에서 얘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앞으로 이 레퍼토리를 어떻게 활용할지 하는 문제 말입니다.
방 : 지금까지 국립무용단이 해외로 나간 작품은 국위를 선양하는 입장의 작품이었습니다. 우리가 과연 아티스트로서 해외에서 인정을 받고 있는지에 대한 논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국립무용단이 충분한 글로벌한 예술성을 갖추고 있다는 판단 하에 이러한 협업 시도를 한 것이며 다른 방식으로 우리의 역량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이번 해외 안무가 협업을 통해서 벌써 자연스럽게 외국과 소통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리스 : 이 <회오리> 작품을 해외에 적극적으로 보내실 계획이 있으십니까?
방 : 물론입니다. 국립 무용단은 해외에 나갈 때 오로지 <코리아 환타지>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레퍼토리를 선보이고자 하는 것입니다. 다른 얘기이기는 하지만 저희 무용수 들이 타악을 하는 것을 보면서 테로씨가 깜짝 놀라시는 거예요. 해외 무용수의 시각에서는 무용수들이 춤만 추는 것이 아니라 능력이 많다는 보는 거죠. 국립무용단으로서는 당연한 일인데.... 이러한 무용수들을 데리고 해외에 나가면 깜짝 놀랄것이라고 하면서, 서양친구들이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독특한 점이죠. 어떤 무용수는 춤추고 타악하고 소리까지 하니까요.
김 : 추후 구체적인 계획이 있으신지요? 이 작품을 레퍼토리화 시키실 건가요?
방 : 물론입니다. 내년 이맘때 즈음부터 작품을 보완하여 해외공연가는 것을 검토, 추진 하고자 합니다.
테로 : 비빙과 저희는 음악 작품을 같이 하면서 작품을 진행했기에 향후 작품이 다시 공연된다면 지속적인 참여를 통해서 더욱 변화되는 작품으로 완성될 것 같습니다.
김 : 비빙의 음악이 작품을 구성하는데 어떤 영향을 주었습니까?
테로 : 저는 원래 음악에서 영감을 많이 받습니다. 특히 비빙의 장영규 감독의 마인드가 열려있고 다양한 장르에 능력을 가지신 분입니다. 더불어 전통적인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새로운 것을 만들고자 합니다. 매일 매일 들을 때 마다 연주자에 따라 새롭게 음악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작품제작 시간이 많지 않아서 비빙이 원래 가지고 있었던 음악도 사용했고, <회오리>를 위해서 작업해 준 것도 같이 사용 했습니다. 그런데 할 때 마다 원래 작곡되었던 음악도 계속 모양이 바뀌고 있습니다. <회오리>가 온전한 정체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다시 재작업을 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저희 단체에서도 다시 재방문하여 마켓팅 부분부터 새롭게 하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방 : 저희는 <회오리> 공연 종료 후에 다시 다음 시즌 2014-2015 레퍼토리를 구성해야 합니다. 여러 가능성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리스 : 저희가 내년 상반기에 큰 공연이 있습니다. 미리 연락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김 : 다시 안무가에게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번 <회오리>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신 부분이 무엇이었나요?
여러 층의 회오리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길
테로 : 여러 층의 회오리 입니다. 무용수와의 첫 만남자체부터 회오리가 있었습니다. 저의 핀란드적인 사고와 오래된 한국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만나서 작업에 영향을 준 것도 회오리 입니다. 음악에서도 마찬가지로 전통과 현대적인 색채들이 핀란드 안무가와 만나서 작품 안에 여러 층의 회오리를 일으켰습니다. 국립무용단도 저와 같은 외국안무가를 초청한 것도 회오리의 상황이고, 제가 한국 사회에 들어와서 전통을 배우고 두 달여간 현대 한국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도 회오리의 상황이었는데 이 모든 것들이 작품에 영향을 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집중했던 부분은 무용수였습니다. 무용수라는 역할에 관심을 갖고 있고 결국은 제가 대하고 있는 사람에 대한 관심입니다. 저는 그래서 주최측이 정한 작품역할 캐스팅시기를 계속 미뤄왔습니다. 사람마다 느리게 배우다가 성장하는 분도 있기에 무용수들 능력을 지켜보고 싶었습니다.
김 : 오늘의 얘기를 종합해 보면, 작품에서 보다도 무용수들의 생각에 회오리를 일으킨 것이 성과라고 생각됩니다.
방 : 맞습니다. 공연이 잘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번 협업의 수확은 무용수들에게 파장이 있었다는 것이 고무적이라고 생각됩니다. 무용수들 사이에서 “왜 우리가 춤을 추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 해보게 된 것입니다.
사회자 : 우리가 국가기관에 속한 곳이라는 특성이 작용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습관적으로 여러 면에서 잊기 쉬운 습성이 있지요.
방 : 이는 무용수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기획자들의 문제도 있는 것이지요. 테로씨도 경함하셨듯이 국립무용단은 한쪽에서 연습하다 다른 쪽으로 가서는 공연하는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직업 단체입니다.
테로 : 국립무용단원들은 정신도 건강하고 능력도 많다고 생각 합니다. 물론 기관이지만 재미없다고 볼 것이 아니라, 각 기관에서도 보일 수 있는 흥미로운 부분들이 많기에 감독들이 저마다의 능력을 끌어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외부인 입장에서 국립극장을 봤을 때, 모든 분들이 같은 방향을 보고 일한다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보통 큰 기관은 부서 간 연결이 독립되어 떨어져 있는데 여기는 극장장님부터 예술감독 및 기획 팀들이 적극적인 관심이 보여줘서 저는 “아직 예술이 죽지 않았구나” 라는 희망적인 생각을 했습니다.
김 : 마지막으로 <회오리>작품에서 안무자가 기대한 만큼 발휘되었다고 생각하십니까?
<회오리>가 시간이 더할수록 성장하길
테로 : 핀란드는 춤 전통이 길지 않기에 처음 안무 제안을 받았을 때 오래된 한국의 전통을 배우고 싶었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많은 것을 배웠고 큰 선물을 가져가는 것 같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회오리>가 두 달이라는 짧은 시간에 비할 때 잘 만들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작품이 시간이 지나면서 변할 것이고 얼마나 성장하는지 보고 싶습니다.
사실은 이종호 선생님이 저희에게 회오리를 일으켜서 제가 이 자리에 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이 작품을 핀란드에서 공연하고 싶습니다.
사회자 : 제 생각에는 핀란드에서 <회오리> 작품과 한국의 전통적인 작품 두 개 정도를 먼저 선보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긴 좌담이었는데도 진솔한 말씀을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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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_ 국립무용단 <회오리>(2) 의상 디자이너 에리카 투르넨 인터뷰
무대 위의 회오리
송선민 에디터 seonmin.song@doosan.com
낯선 이방인의 생각을 투영한 현대 한국의 무용은 어떤 모습일까? 오는 4월 16일부터 19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하는 컨템퍼러리 한국 무용 작품 <회오리>에는 국립무용단 최초로 물빛 눈동자의 이방인이 참여한다. 핀란드 출신의 최정상급 안무가이자 무용가인 테로 사리넨과 무대 의상 디자이너 에리카 투르넨이 그들이다. 자연의 근원적 아름다움을 표현한 테로 사리넨의 춤에 에리카 트루넨은 신비로운 날개를 달았고, 그 결과 생경하고도 익숙한, 그야말로 모순적 이미지의 작품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바람을 거슬러 훨훨 날아가는 학처럼 고아하고 순수한 의상은 이번 작품에 대한 기대를 증폭시키는, 결정적 요소. 더블유 코리아와 만난 에리카 투르넨 역시 한국이라는 낯선 나라에서의 작품에 대한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에리카 투르넨 <회오리>의 안무를 담당한 테로 사리넨과 나는 14년 동안 호흡을 맞춰온 동료다. 그동안 그가 맡은 대부분의 작품에 참여했다. 테로는 이 작품이 내 스타일과 잘 맞을 것임을 잘 알고 있었고, 자연스레 내게 의상 디자인을 의뢰했다. 이후 일련의 작업에 참여하면서 ‘전생에 내가 한국인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회오리>의 한국 무용과 한복 특유의 아름다움에 빠져들었다.
이번 작품에서 받은 영감을 의상으로 옮기는 과정을 이야기해준다면?
먼저 이 작품의 안무가인 테로 사리넨의 생각을 듣는 데서 출발한다. 그는 내게 “해변가에 있는 두 사람, 서로를 갈망하면서도 외로운 커플, 각기 구름과 하늘을 생각하는 또 다른 커플, 언제나 외로운 사람 등의 캐릭터를 이야기했다. 그리고 작품에 사용되는 음악을 들으면서 의상이 어떻게 움직일지 상상하는 동시에 무용수들이 춤을 추는 모습을 오랫동안, 자세히 지켜보면서 하루 종일 스케치를 한다. 이렇게 그린 그림을 갖고 그와 생각을 나누며 디자인의 윤곽을 잡는다.
<회오리>에서 받은 영감을 디자인으로 옮기면서 가장 중요시한 점은 무엇이었나?
아침에 국립무용단의 댄서들이 워밍업을 하는 모습을 지켜봤는데 그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다. 그들의 집중력과 열정이 내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또한 그들은 마치 아름다운 비밀을 품고 있는 듯 보였다. 나는 나의 의상을 통해 그들의 아름다움 그 자체를 보호하고 싶었다. 내 의상 때문에 그 모습이 사라지거나 혼란스럽지 않도록.
당신이 디자인한 <회오리>의 의상을 보면 한복의 이미지가 중첩된다. 의도한 바인가?
이번 작품은 한국 무용과 전통 음악에 기반을 둔 만큼 의상 역시 한국적인 이미지가 드러날 수밖에 없다. 한국 전통 의상인 한복 특유의 독특한 허리선, 오간자와 실크 같은 소재, 부드러운 실루엣을 바탕으로 외국인의 관점에서 전통 의상을 디자인했다. 사실 이런 작업은 처음인지라 어떻게 나올지 걱정과 기대가 교차한다.
<회오리>의 의상 스케치를 살펴보니 구조적이고 3차원적인 형태가 유독 두드러진다. 이는 당신 작품의 특징인 것으로 알고 있다. 특히 비대칭의 터널 형태를 띠는 의상이 인상적인데 어떤 의도를 담고 있는지 궁금하다.
주름 장식으로 이루어진 터널과 레이어는 ‘회오리’를 상징한다. 무용수들이 움직이고 춤을 추면 회오리가 완성되는 것이다. 의상 속의 회오리는 닫고, 열 수 있으며 소리도 난다. 이 소리를 관객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의상 속에 작은 마이크를 설치할 생각이다.
춤을 위한 의상과 일상을 위한 의상은 그 존재의 이유가 전혀 다르다. 당신이 생각하는 무대 의상이란 어떤 의미인가.
무대 의상은 철학적이고 미학적인 이미지가 강하지만 실용성도 무시할 수 없다. 오히려 일상복보다 적어도 3배는 더 정교하고 완벽하게 완성되어야 한다. 격렬하게 팔과 다리를 뻗거나 점프를 하고, 여럿이 서로를 잡아당기기 때문이다. 동시에 무대 의상은 내게 무거운 책임감을 지우는 존재다. 클래식 발레 공연의 커튼이 열리는 순간 관객들은 화려하고 로맨틱한 의상을 보고 감탄하고 어린 소녀들은 이 모습을 보며 ‘공주가 춤을 춘다’라는 기억을 평생 간직하니 말이다. 또한 현대 무용은 관객에게 생각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내주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현대 무용의 의상은 관객들이 마음을 내려놓고 그 기회를 만끽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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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_ 국립무용단 <회오리>(3) 리뷰
음악 조명 약진, 경직된 군무의 아쉬움
방희망_춤비평가
국립무용단은 창단 52년 만에 처음으로 해외 안무자 초청 프로젝트를 진행하여 핀란드의 안무가 테로 사리넨과 함께 <회오리>(Vortex를 올렸다(4월 16일~19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이번 공연은 전통의 현대화라는 무거운 과제를 거듭 고민하며 그 고민의 한 매듭씩 발자국을 남기고 있는 국립무용단의 근래의 동향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회오리>라는 제목 자체가 작품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것인지는 판단을 유보해야겠지만, 테로 사리넨의 안무는 우리 고유의 ‘흥’(興, 일으키다)이라는 개념과 충돌됨이 없이 잘 어우러졌다고 생각한다. ‘흥’은 원래 고대 제의에서 희생(犧牲) 제물을 올리는 손잡이 달린 기물인데 사방에서 손잡이를 잡고 동시에 들어 올릴 때 붙이는 구령 또한 ‘흥’이 되었으며 여럿이 이것을 들고 빙빙 돌며 주술을 하고 신명과의 만남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일으키다, 일어난다’는 총체적인 의미가 파생되었다고 한다.
캐릭터가 특별히 부여되진 않았으나 군무의 움직임을 선도하는 송설, 이정윤, 김미애 등의 주역무용수들의 춤은 원시 제의에 참여한 제사장과도 같았고, 깊은 심연에서부터 시작된 파동이 조류를 일으켜 세계의 진화, 발전을 이끌어낸다는 작품의 내용전개를 보면, 그저 순간적인 감정의 들고남 정도로 오해받고 축소된 ‘흥’의 의미를 새롭게 되새기게 하는 동서양의 만남이 자못 흥미롭다.
영화 화면비 2.35:1을 연상시키는 가로로 긴 프레임의 무대는 새로운 미감을 선사했다. 가림막 자체를 반만 들어 올리고, 그 뒤로도 겹겹이 층을 두면서 공간을 위에서 눌러주어 깊고 고요한 바다 속, 수면 위 물결의 움직임 따라 빛이 스며드는 원시적인 공간을 구현해냈다. 이렇게 가로로 길게 만든 무대는 공중도약이 없는 우리 춤의 속성과도 맞아떨어졌지만, 단점을 상쇄하기 위한 대책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주제를 전달하기 위한 한 수로 보였다.
1부 ‘조류’의 첫 장면에서 조명은 무대 전면에 반원형으로 크게 펼쳐짐과 동시에 무대 안쪽 깊숙한 곳에서 좌우로 회전하며 등대의 서치라이트처럼 무용수 송설의 실루엣을 비추었다, 까만 프레임 속을 뚫고 객석을 골고루 훑고 지나는 빛은 지구의 심장 박동처럼 낮게 울리는 음악 속에서 깨어남의 몸짓을 통해 단시간에 몰입을 이끌어내었다.
인상적인 오프닝 후 밝아진 무대는 좌우와 안쪽에 2단의 공간을 둔 형태였고, 남녀 무용수들은 양쪽으로 갈라져 단 위에 앉아 있다가 군무에 점차 합류하면서 춤을 확장하였다. 군무에는 지침은 있었으나 통일은 필요치 않았다. 함께 움직이지만 각각의 시간차, 자율성은 보장되었다. 중심을 견고하게 두면서 외연을 확장하는 다양한 표현들 속에서 정중동, 동중정이 수없이 교차하여 그 상대적인 개념들이 결코 반대가 아니라 원래 한 몸이라는 것을 잘 드러냈다.
특히 김미애의 움직임은 독보적으로 탁월하였다. 쫙 펼쳐진 손바닥과 손가락이 움직일 때마다 거대한 자장(磁場)이 형성되는 듯 흡인력이 컸고, 뒤통수와 목, 어깨, 팔 뒤쪽, 척추를 타고 흐르는 몸의 뒷선까지도 음악의 흐름에 녹아들어 원래 안무가가 구상하였던 그 이상을 구현해낸 듯 보였다. 다만 상체, 특히 양팔을 확장하여 써서 기운이 뻗어나가는 모양새를 최대한 보여주려는 안무는 전통춤의 단전을 이용한 깊은 호흡, 하복부와 둔부의 무게 중심이 이루어지고 난 다음에 더욱 효과적으로 수행될 수 있을 듯 한데, 군무에서 일부는 동작만 따라가는 경직된 모습을 보여주어 아쉬웠다.
2부 ‘전승’에서는 각각 남녀 군무 앞에서 주도적 역할을 했던 수석무용수 이정윤과 김미애 의 듀엣이 최진욱, 인턴단원 중 이례적으로 캐스팅된 박혜지 커플과 대비를 이루었다. 검은색과 회청색의 의상 대비처럼 원숙함과 신선함의 각기 다른 매력을 가진 그들의 춤은 치열하게 엉기면서 복제되고 다시 분리됨을 반복하면서 지금도 시시각각 가장 작은 단위에서부터 가장 큰 단위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을 세포분열을 떠올리게 하였다. 이렇게 내부에서부터 가득 차오르는 동력은 분명 큰 움직임, 회오리를 만들어 내어 우리 모두를 어디론가 이끌고 갈 것이라는.
이어지는 마지막 3부 ‘회오리’에서는 다시 송설이 돌아와 움직임을 소리로 변환하여 내보낸다. 우리의 접이식 부채를 참고하여 만들었다는 의상은 양 허리춤에 여러 겹으로 접힌 날개를 달고 마이크를 부착하여 날개자락에 끼워진 손이 허공을 갈라 움직일 때마다 일어나는 바람소리까지도 음향이 되게 하였다. ‘나비효과’라는 단어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움직임이 바로 소리로 변환된다는 즉각적인 유동성, 움직임에 따라 달라지는 그 음향은 비정형적이며 언제나 새로운 것이라는 여백의 아름다움이 인상적이었다.
전체적으로 무대와 조명, 의상 디자인이 탄탄한 틀을 제공하는 속에 춤과 음악이 함께 흐름을 만들어내었던 참신한 공연이었다. 영화와 무용에서 오랫동안 작업해 와 연출의 상상력을 보장할 줄 아는 장영규의 음악은 비교적 가벼운 터치로 접근하면서 유연한 흐름을 여는데 한 몫 하였다. 그렇지만 1부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소리꾼의 구체적인 가사를 담은 목소리를 넣은 것은 차곡차곡 쌓아올려질 구조에 대한 기대감을 무너뜨린 다소 성급한 선택이었지 않나 싶다.
그간 국내 공연에서 가장 아쉬웠던 조명 디자인이야말로 이번 <회오리> 무대 미술의 최대 성과라고 본다. 색 조명을 쓸 때 가히 폭력적이라 할 만큼 원색의 셀로판지를 교차하여 갖다 붙이는 것에 그치곤 했었는데, 이번 공연에서는 투명감을 잃지 않으면서 점진적으로 색의 뉘앙스만 더하는 방식으로 품격을 높였다. 그리고 무대 곳곳에 치밀하게 계산하여 넣은 수십 개의 작은 조명들은 무용수들을 빛에 파묻히지 않게 보듬으면서 입체적으로 부각시키는 효과를 냈다.
앞서 언급한 가로로 긴 무대 프레임도 돋보였으나 무대에 비해 방사형으로 넓게 펼쳐진 해오름극장의 좌석을 고려하였다면 좌우의 단이 좀 더 안쪽으로 들어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D열에서 관람했음에도 무용수들이 우측 단으로 올라가는 순간 시야에서 사라지는 등 제한이 있어 섬세하게 계산된 미장센에 극장 좌석 구조가 맞지 않는 느낌이었다. 해오름극장의 A열 E열을 오픈하지 않거나 직사각형으로 배열된 좌석을 가진 극장에서 공연을 올려야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최대한 제공할 수 있을 것 같다.
테로 사리넨의 안무는 관념을 시각화하되 작품을 만드는 입장, 감상하는 입장 모두 상상력이 들어설 공간을 남겨두어 그 생각의 전이(轉移)가 끊임없이 일어나게 한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그의 안무 세계를 가리켜 ‘자연주의’라 일컫는 것은 이렇게 큰 틀만 공유하고 나머지는 공연 구성원의 자유로운 의지에 맡겨 채워나가는 여유로움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근래 변신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흥행으로 결론짓는 성과주의에 압박을 느끼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던 국립무용단의 행보에도 필요한 쉼표, 도약의 발판이 되는 공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