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축제로 가득한 5월, 지난 23일부터 31일까지 국제현대무용제(MODAFE)가 아르코예술극장 및 대학로예술극장에서 열렸다. 올해로 33회째를 맞은 모다페는 ‘본능을 깨우는 춤’(Arouse your instinct with dance)이라는 주제로 7개국 19개 단체의 작품 20여편을 8일간 펼쳐보였다. 모다페의 개․폐막작은 L-E-V무용단 샤론 에얄(Sharon Eyal)과 가히 베하르(Gai Behar) 안무의 <HOUSE>와 키부츠 현대무용단 라미 베에르(Rami Be'er) 안무의 <If At All>. 두 단체 모두 이스라엘의 무용단으로 축제의 시작과 끝을 한 나라의 무용단체에게 일임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김현남 모다페 조직위원장은 “한때 현대무용은 원초적인 춤의 본능을 넘어서 오브제나 영상 등 다른 것에 의지해 현대 무용 작품을 해석하는 경향을 보여 왔다. 그러나 최근의 현대무용은 다시 ‘춤’ 본연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면서 “이번 모다페에서는 ‘본능을 깨우는 춤’이라는 주제에 맞게 춤과 몸에 주목한 작품, 전세계 현대무용계를 이끌고 있는 이스라엘 현대무용을 소개하고자 했다”고 전했다.
2013년에 창단한 L-E-V무용단의 <HOUSE>는 지난해 미국 제이콥스 필로우(Jacob`s Pillow Dance Festival)에서 호평을 받았던 작품이다. 나체에 가까운 살색 의상의 남녀 무용수들이 강한 비트의 테크노 음악에 맞춰 사납도록 격렬하고, 놀랍도록 유연한 몸짓을 구사했다. 정교하게 훈련된 몸으로 관능을 넘어 외설마저 서슴지 않는 도발적인 움직임을 선보이며 65분간 쉬지 않고 관객을 압도했다. 키부츠 현대무용단의 <If At All>은 17명의 무용수들이 펼치는 강렬하고 역동적인 몸짓, 무대를 종횡무진 가르며 능수능란하게 분할하는 그룹의 움직임, 추상성을 강조한 일련의 컨템포러리 댄스와 달리 감정 표현과 내러티브가 가미된 극적 구성이 돋보였다. 뉴욕타임즈는 "베에어는 분절된 동작들보다는 몸 전체를 사용하는 일반적인 현대무용 어휘를 선호하며, 무용단은 이 전방위적 어휘에 고도로 숙련돼 있다… 안무로 드라마적인 목적을 성취한다"고 평한 바 있다.
올해 모다페에서는 개․폐막작 이외에 3개의 해외 작품을 초청했다. 핀란드 안무가 밀라 비르타넨(Milla Virtanen)의 <It's All Over Now, Baby Blue>은 춤, 신체극, 애니메이션을 결합해 무겁고 뒤틀린 초현실주의의 이미지를 연출했고, 헝가리 안무가 페렝크 페헤르(Ferenc Fehér)의 <Tao Te>는 남자 2인 무용수의 대칭화된 구도로 노자의 '도'를 이야기했다. 빛과 소리가 희미한 무대를 발걸음 소리로 가득 채운 일본 안무가 코타 키하라(Kota Kihara)의 <foot, foot step sound and step>은 사색적인 감성이 잘 드러난 작품이었다. 국내 안무가 가운데에서는 김경신과 영국의 프레디 오포쿠 아데의 협업과 GROUND ZERO Project 전혁진의 작품이 좋은 반응을 얻었다. 김경신과 오포쿠 아데의 <Unplugged Bodies(Phase 1)>는 오로지 몸과 움직임에 집중하여 두 사람의 완벽한 호흡으로 노련하고 담백하게 풀어냈다. 날렵하고 절도있는 몸짓으로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조화로운 결합을 그린 전혁진 안무의 <Digilog>는 안무의 완성도를 갖추면서도 대중성을 놓치지 않는 작품이었다.
춤비평가 김예림은 올해의 모다페를 ‘pure dance의 재조명’으로 정리했다. 그는 “최근 컨템포러리댄스의 세계적인 추세가 다원예술, 커뮤니티댄스, 개념무용 등으로 쏠리고 있지만 그것만이 컨템포러리는 아니다. 이번 모다페는 순수하게 몸 움직임에 집중하면서도 동시대성을 갖춘 작품들을 관객들에게 보여주려는, 또 그런 것을 향수하는 관객들에게 향유의 기회를 제공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전했다. 한편으로 “춤의 신체성에 집중한 작업이 안무의 완성도와 예술성을 갖추지 못했을 경우, 혹은 지난 레퍼토리가 답습적으로 재현됐을 경우에는 지금의 시각으로는 매우 진부한 작품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면서 ‘양날의 검’과 같은 모다페의 기획의도에 우려의 목소리도 덧붙였다. 1980년 창립과 함께 한국현대무용제로 출발해 2002년부터 ‘모다페’라는 명칭으로 재출범하며 2000년대 초중반에는 에미오 그레코, 야스민 고더, 제롬 벨, 피핑 톰, 자비에 르 로이 등 실험적이고 참신한 해외 무용단 및 안무가들을 소개했던 모다페. 당시 춤 애호가들의 열광적인 반응과 국내 무용계에 끼친 적지 않은 파장을 다시 한번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 10여년 전 주목받았던 혁신적인 프로그래밍이 굳이 아니더라도, ‘첨단’, ‘새로운’, ‘이전에 없었던’과 같은 수식어를 붙이며 강박적으로 트렌드에 편승하려는 것이 아니더라도, 진보가 아닌 진부함이 묻어나는 작품들은 국내 최장 현대춤 축제인 ‘모다페’의 명성과 걸맞지 않다. ‘신체성’의 재발견과 재구성, 혹은 몸을 찾아 회귀하는 움직임에서도 언제나 그랬듯 대전제는 작품의 완성도와 예술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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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_ MODAFE 국내팀 : 성경희, 김경신+프레디 오포쿠 아데, 한선천, 황수현, 이준욱, 박근태 다양한 소재, 서로 다른 맛깔
방희망_춤비평가
5월 24일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올려진 성경희의 <One Way>는 아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영화를 모티브로 인생의 ‘오직 한 길’에 대한 물음을 담고자 한 작품이다. 조명이 밝아지면 무대 오른편에 간단히 만든 창문이 있고 그 앞에 선 여인과 뒤에서 비치는 실루엣을 통해 누구나 삶의 어떤 순간 만나게 되는 내면의 부름, 그에 대한 응답으로 자아 찾기에 나서게 됨을 짐작하게 된다. 김혜진, 신미나, 이재희 세 명의 여성 무용수는 서로가 원래 한 존재임을 의상을 통해 표현했다. 두 사람은 검은 바탕에 각각 녹색과 붉은 색의 감이 덧대어진 조끼와 짧은 바지를 착용했고 나머지 한 사람은 검은 색, 붉은 색, 녹색이 뒤섞인 무늬의 치마를 착용하여 통일감을 준 것이다. 세 사람은 정육면체 의자 하나를 무대를 가로지르며 굴리면서 격렬히 힘겨루기를 한다. 앉자면 셋 다 겨우 엉덩이를 걸칠 수는 있는 의자이지만 투쟁은 지속된다. 아마도 상반된 여러 요소가 끊임없이 흔들어 평정을 찾기 어려운 우리의 내면을 그리고 싶었을 것이다. 바닥에 여러 단계로 깔리던 직사각형의 조명은 마침내 창문 옆 벽에 세로로 멈추면서 제목처럼 마침내 하나의 길, 출구를 찾게 되었음을 알린다. 알기 쉬운 제목과 선명한 주제가 엿보였지만 공연의 내용전개가 상투적이었던 것이 아쉽다. 이를테면 드라마의 다음 장면이 무엇이 될지 충분히 예측 가능한 것처럼 진부한 면이 있었다.
25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는 김경신과 영국의 프레디 오포쿠 아데가 공동작업한 <Unplugged Bodies(Phase 1)>이 첫 작품으로 올랐다. 한때 미국의 MTV Unplugged 공연 이 어쿠스틱 사운드로 가수들의 꾸밈없는 목소리를 돋보이게 만들어 신선한 충격을 주었고, 만화가 천계영이 <Unplugged Boy>라는 작품으로 큰 인기를 끌었던 것처럼, ‘Unplugged’라는 단어에는 ‘꾸밈없고 자유로운 날것’의 감성이 들어있다. 막이 오르면 누워있는 오포쿠 아데의 양 발을, 서 있는 김경신이 번갈아 툭툭 차며 자극한다. 간격이 리드미컬하게 점점 빨라진 끝에 오포쿠 아데가 일어난 뒤에는 다분히 접촉 즉흥춤의 경향이 보이는 장면들이 전개된다. 처음에는 감각이라는 것을 아예 ‘인지’하지 못하다가 상대방이 몸을 뗐다 붙였다 할 때마다 점차 그 자극을 따라가며 반응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든 새로운 감각을 다시 상대방에게 전이시키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우리가 몸을 통해 관계를 맺고 이어나간다는 것이 얼마나 근사한 일인지 보여주려는 듯하다. 감각의 전이가 신체의 어디서 일어날 수 있는지 끈질기게 탐색하고 도중에는 작품의 말미까지 상징적으로 반복되는 동작들-오리들을 흉내낸 것처럼 고개를 앞뒤로 끄덕임, 수평으로 들어 올린 양 팔을 고개와 비슷하게 반복적으로 앞뒤로 움직임, 이 때 두 사람은 같은 동작을 하면서 한쪽은 이끌고 한쪽은 따라가는 식으로 엄마오리와 아기오리인 양 유머러스한 장면을 연출해낸다-이 제시된다. 간혹 두 남성 파트너를 상반된 외모를 가진 사람으로 구성하여 아웅다웅하는 재미를 제공하는 영화들이 있다.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김경신과 오포쿠 아데의 조합도 그런 측면이 있어서 정감어린 파트너십에 대한 여운이 남는다.
이어진 무대는 <댄싱 9> 출연으로 대중의 인기와 관심을 모았던 한선천. 그의 작품 <Turning Point>는 누구나 현실에 밀려 가슴 속에 묻어두었을 꿈을 꺼내어 돌아보는 그 순간을 그렸다. 검은 색으로 드레시한 실루엣을 드리운 의상을 입고 바닥에 누워서부터 시작된 그의 춤은 그동안 익히 알려져 왔던 대로 무게중심이 단단히 잡혀 있으면서 순간적인 빠른 움직임에도 균형이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을 만큼 힘의 배분이 뛰어났고, 아주 깔끔하고 세련된 선을 구사하며 물 흐르듯 아름다운 무대를 만들어냈다. 서정적인 내면을 관조하고 그려내는 한선천만의 스타일은 일찍 완성된 듯 하나 자칫 다채로운 색깔을 담을 가능성이 줄어드는 것은 아닐지 우려를 하게 된다.
27일에는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세 편의 작품이 무대에 올랐다. 황수현의 <소설화하는 몸>은 무대라는 특정 공간에 놓인 몸이 허구적 이미지로 만들어지는 상황을 그리고자 했다 한다. 다분히 만화로부터 빌려온 감성을 느낄 수 있었는데, 하얀 천이 깔린 무대에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편 방향으로 세 무용수가 번갈아 과장된 동작으로 걸어가다 멈추는데 멈추면서 암전이 되고 조명이 들어오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데 앞서 끝난 지점에 변화를 주어 다른 포즈로 끝내면서 조명이 꺼지는 방식이다. 어렸을 때 공책이나 수첩 귀퉁이에 팩맨(Pac-Man) 캐릭터를 입모양과 위치가 조금씩 변화하도록 그려 넣어 종이를 넘기면서 정지된 그림이 잠깐이나마 살아 움직이게 만든 즐거운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워낙에 매순간 음악에 맞춰 동작을 꾹꾹 채워 넣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던 춤꾼들에겐, 이렇게 한 컷 한 컷 떼어놓고 보았을 때 작기만 한 동작들이 모여 춤과 의미를 이루어낸다는 것을 다시 짚어보는 계기가 될 수도 있겠다. 한편, 종이뭉치를 무수히 만들어 무대 양옆에서 던지면서 마치 팝콘이 튀듯 연출함으로써 무대 위 무용수들이 만들어내는 프레임이 그저 이미지로써 가볍게 소비된다는 것을 풍자하였다. 거기에 무용수들이 정지된 상태에서 스탶들이 올라와 무대 위를 치우거나 조정을 가하는 장면을 넣음으로써 주제 의식을 전달하였다.
이준욱과 DODOMOOV 댄스 시어터의 <No Response>는 어두운 무대의 한 가운데만 일렬로 조명을 밝힌 뒤 여성무용수가 강렬한 비트 속에 안면근육을 격렬히 움직이고 몸을 떨며 뒤에서부터 앞으로 나오게 했는데 패션쇼의 런웨이를 연상시키는 연출이었다. 7명의 남녀 무용수들은 비관적인 표정으로 끊임없이 입을 열어 움직이며 분절적인 움직임으로 각기 옆 사람에게 다가가지만, 그들의 목소리가 나지 않는 것처럼 사람들도 오래 엉키지 못하고 스쳐 지나간다. 사실 그들의 시선도 사람을 직접 응시하기 보다는 각자 다른 방향으로 허공을 향해 있다. 호주 원주민의 전통 악기 디저리두의 원시적인 음률 속에 “누가 대답 좀 해줘” 같은 소리가 웅얼거림으로 섞이지만 허공으로 집요하게 뻗어나가며 무언가를 찾으며 잡아당기는 손짓들은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천장에서 여러 겹의 장치가 내려오며 그들을 짓누르며 몰아세워 마침내 벼랑 끝에서 떨어지고 만다는 결말은 쓸쓸함을 남긴다.
박근태가 안무한 <Man’s Diary>는 아마도 안무가 자신의 7년간 사랑의 기억을 기반으로 한 점이 돋보였다. 그 자신의 내레이션으로 일기를 읽듯 몇 년 몇 월 며칠 이런 상황이 있었다는 것이 제시되면, 당시에는 알 수 없었거나 겉으로 표현하지 못했던 감정의 결들이 유머러스한 춤으로 드러난다. 떨림과 희열 혹은 창피하여 하이킥하고 싶은 순간 등. 많은 사람들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표현들에 객석에선 빠르게 웃음이 나왔다. 라벨의 ‘볼레로’가 깔리며 펼쳐진 후반부에서는 흡입력있는 춤이 매력적이었다. 무릎을 반복적으로 굽히거나 팔을 뻗는 동작들에서 언뜻 베자르 안무의 <볼레로>도 연상되었지만, 그보다는 택견의 품밟기의 응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외에도 복싱의 기본자세, 체조에서 본 듯한 공중회전 등 스포티하고 활력있는 동작들이 곳곳에 응용되어 섞여있었기 때문이다. 현대무용단 ‘자유’의 6명 무용수들은 상당한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군무를 한 호흡의 일체감으로 소화해냈다. 탄탄한 기량도 훌륭했지만 무대 위에 존재하는 이유를 완벽히 이해하고 있다는 영리한 눈빛과 단단한 팀웍이 춤을 한결 ‘살아있는’ 것으로 만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