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학생들의 감수성과 창의력 향상을 기치로 시작된 학교예술강사지원사업. 올해로 14년차를 맞았지만 여전히 완전한 안착을 이루지는 못했다. 현장에서 활동 중인 예술강사와 학교, 정부 및 기관의 정책을 대변하는 관계자는 물론 객관적인 시선으로 모두를 바라보는 문화기획자까지 한자리에 모였다. 서로 처지와 견해는 조금씩 다르지만 이 제도가 아직 완성형이 아니라 진화해야 할 현재진행형이라는 데는 의견을 모았다.
예술강사는 학교예술교육, 예술진흥, 예술인복지 등 다양한 차원의 필요성에 의해 탄생했다. 예술강사는 어떤 존재라고 생각하는가.
김태연: 예술강사는 누구인가, 과연 어떻게 정의를 내려야 국가, 정책, 학교, 강사의 다양한 입장에서 모두 통용될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해당 분야의 전문성을 가지고 학교의 정규 과정, 교육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교사와 상호 협력을 통해 교육과정을 이끌어 나가는 전문가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 정의와는 달리 학교에서 예술강사를 바라보는 데는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보조 역할을 한다는 인식이 아직까지 크지 않을까요?
문지영: 저는 ‘프리랜서 지식 감정 노동자’라고 정의하고 싶어요. (웃음) 진흥원에 소속은 되어 있지만, 실제 소속감을 느끼는 예술강사들은 극히 적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예술강사들은 일자리에 대한 불안 수위가 항상 높습니다. 12월이면 계약이 종료되는 비정규직이니까요. 그러나 세미나 같은 데 참가해보면 예술강사들의 교육자로서의 인성과 품성에 대한 공격 또한 많습니다. 하지만 ‘빵’이 먼저 해결되어야 하는 문제라고 봐요.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이런 경향과 구조적 문제를 공론화시키고자 합니다.
김옥희: 저는 예술강사 경력이 8년이 넘었는데, 과연 현재의 이런 모습을 꿈꾸면서 처음에 시작했을까 하는 회의감이 들어요. 한편으로는 예술강사로서 소통의 창구를 마련하고 살아가고 있다는 보람도 큽니다. 예술의 잠재적 소비자를 교육시킨다는 목적으로 학교에 들어갔는데 막상 들어가 보니 그보다 더 큰 문제들이 많았어요. 단순히 문화 향유자를 기르기 위해 갔는데 문화 리더이자 치유자도 되어야 했죠. 일반 교사들과는 다른 역할과 측면이 있었습니다. 그런 데서 오는 어려움과 보람이 공존합니다. 그러나 과연 내년에도 이 아이들을 또 만날 수 있을까, 꿈을 나눌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뿌듯함에 비해 크죠.
예술강사지원제도가 시작된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문화예술 분야 일자리 창출에 대한 문제의식이었다. 아직까지도 예술강사는 그저 일자리라는 개념이 강한가.
김태연: 시작 당시 단순히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의미보다 문화에 대한 잠재 수요자를 만들자는 취지가 컸습니다. 2000년 무렵 국악 분야에서 먼저 시작됐는데, 학생들이 국악에 대해 어느 정도 학습을 하고 지식이 늘어야 우리 문화에 대해 알 수 있다는 인식이 출발점이었습니다. 다른 분야 역시 그런 고민을 바탕으로 확대된 것입니다.
문지영: 예술가의 복지사업에서 출발했죠. 조금이나마 경제적인 도움을 주고자. 그러나 기간제 교사에 준하는 시간당 1만 4,000원이 강사료로 책정되어 실제 강사가 받을 수 있는 금액은 30만 원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과연 현실적인 부분에 보탬이 되는지 의문이 들었죠. 그러다 2005년도엔가 4만 원으로 오른 이후 현재까지 동결되어 있습니다. 이런 현실적인 부분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도 없다는 것이 강사로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에요.
김태연: 우리 사회가 일자리 창출에 큰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보니 이것이 사회적 일자리 예산으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문화예술 사업 분야에서 예술강사 사업이 중요하게 인식되면서 사업이 확대되고 예산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습니다.
김태황: 예산을 중심으로 보면 일자리 사업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용적인 면을 중심으로 보면 다른 문제의식이 있었습니다. 문화를 보는 시야를 기르기 위해서는 꾸준히 경험하고 노출되어야겠죠. 그러나 학교교육 안에서 아이들이 문화를 보는 눈을 기르고 선택해 소비할 수 있는 경험재가 없죠. 사업 초기에 이런 문제의식이 있었고, 이것을 토대로 발전한 것입니다.
문지영: 예술가들에게 ‘사회적 일자리’라는 단어가 주는 불편함이 있어요. 스스로 인정하고 싶지 않다고 할까요. 연 120만 원의 일자리도 일자리라 볼 수 있을까요? 이 질문을 문화부 어느 공무원에게 여쭤본 적이 있는데 “없는 것보다 낫지 않냐”라는 답이 돌아와서 그냥 웃고 말았었죠. 오히려 예술가의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부정적인 효과도 있습니다.
현재 가장 큰 위기 요소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문지영: 예술강사들의 불안감을 낮추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합니다. 정책의 혼선이 크다는 점이 아쉬워요. 현재 강사가 되려면 문화예술교육사 자격증을 개인이 따야 합니다. 그러나 자격증을 따도 고용이 보장되지 않아요. 비정규직이고 자리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연소득이 100~200만 원에 불과한 사람이 400~500만 원을 들여서 1급 자격증을 따야 합니다. 오히려 예술강사들은 자격증 구분이 필요 없다고도 말합니다. 2급 자격증만 있어도 강사로 활동이 가능합니다. 2017년이 되면 2급 자격증 취득자 수가 5만 명이 된다는데, 전 국민이 자격증 취득자가 되어야 하나요? 국가자격증인데도 불구하고 변별력이 전혀 없어요.
김옥희: 학교는 예술강사를 배치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입니다. 그럼에도 1급, 2급으로 나눕니다. 과연 어떤 차별점을 두고 나누는 것인지 모르겠어요. 실질적으로 학교에서 예술강사의 필요성을 통감하고 있는 상황도 아니고요. 정책적으로 학교 안에서 우리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모호하고요. 붙박이 수업을 하고 있는 현재의 상황 이상의 필요성을 고려해서 정책을 만들고 있는지 궁금해요.
문지영: 처음부터 전문성을 검증하기 힘들게 문화예술교육 과정이 짜여 있어요. 1급을 따건 2급을 따건 강사들이 체감하기에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학교교육 관계자 입장에서 예술강사를 바라보는 시선은 어떤가.
강민경: 장학사가 되기 전 교사로 재직할 때 실제 국악 분야 예술강사가 저희 반 수업을 진행한 적이 있었어요. 전 초등교육을 전공해서 국어는 물론 음악, 미술까지 총망라해서 배웠는데, 교육과정이 점차 확대돼 국악 비중이 커져 하루는 단소, 하루는 장구, 또 하루는 창 이런 식으로 연수를 받았죠. 아무래도 단시간 내에 전문성 있게 가르치기 어려웠는데 마침 예술강사가 와서 제가 힘들어하는 부분을 책임져준다니 굉장히 반가웠죠. 그러나 저의 기대와 달리 막상 그 예술강사는 수업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서 좀 실망스러운 부분도 있었어요. 지금 교사들은 예술강사사업 자체는 굉장히 반가워합니다. 내 수업 1시간을 대신해줄 수 있는 사람으로 보니까요. 하지만 이런 식으로 장기적으로 간다면 예술강사와 교사 모두에게 좋은 일은 아니죠. 실질적으로 예술강사와 교사 간에 교육과정에 대한 심도 있는 협의가 필요하고 사후 협의가 있어야 발전적으로 이끌 수 있겠죠.
문지영: 그래서 예술강사를 ‘산학협력교사’로 전환하는 것은 어떻겠냐는 제안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학교에 상주해 교사들과 시간을 같이 보낼 수 있어야 하니까요. 현재로서는 충분한 시간을 가지기 힘들어요. 한 학교에서 수업을 마치면 바로 다른 학교로 가야 하는 처지이다 보니까.
김태황: ‘프리랜서 지식 감정 노동자’라는 표현이 계속 뇌리에 남네요. 예술강사의 학교 내에서의 정체성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지금까지 말씀하신 것을 보면 학교, 강사, 진흥원 각자의 입장, 시선, 온도 차이는 있지만 예술강사의 역할이 강화되고 위상이 커져야 한다는 기본적인 생각은 같다고 봅니다.
강민경: 일반 교사들은 해마다 60시간 이상의 교육을 받아요. 안 받으면 불이익을 받죠. 예술강사들도 그만큼 연수를 받나요? 받으면 인사 기록에 누적되나요? 그런 지표가 있는지 궁금하네요.
김옥희: 학교교육에 필요한 기본 연수 140시간을 이수했느냐만 표기됩니다. 심화연수는 누적이 안 돼요.
김태연: 기본 3년간 140시간이라는 것만 표기되나요? 누적되지 않고?
문지영·김옥희: 네, 누적이 안 됩니다.
강민경: 제가 이런 질문을 한 이유는 학교 현장에서 예술강사에게 갖는 아쉬움도 있다는 의미예요. 학생에 대한 이해도나 전문성이 아무래도 떨어지죠. 교사들은 끊임없이 자기계발에 투자하는 데 비해 예술강사에게는 그런 면이 부족한 경우가 많아요. 예술을 포함한 학교교육에 대해 이해도를 높일 수 있는 지속적인 연수가 필요하고, 그 연수 결과를 경력에 포함시켜야 하지 않을까요. 단지 예술강사를 몇 년 했느냐의 문제가 경력의 전부가 아니죠. 전문성을 얼마나 갖췄느냐를 확인할 수 있는 지표도 필요해요.
예술강사에게 묻고 싶다. 교육자와 예술가라는 두 가지 측면이 결합된 직업인데 스스로 혼란은 없나
김태황: 저는 미술교사들과 20여 년 넘게 같이 작업해왔는데, 그들의 딜레마는 “나는 작가일 수 있을까”였어요. 예술교사로서의 정체성 이외의 것을 가질 수 없다는 불안감도 크더라고요. 지금 협업체계를 이야기하면서 학교에 들어가 상주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예술강사는 자신의 고유 영역을 지닌 사람들이 아닙니까. 막상 학교에 들어가면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이 사라지지 않을까요? 작가로서의 삶을 포기해야 하는 순간이 올 것 같아요.
문지영: 갈래가 둘로 나뉘어야죠. 현장 예술가가 교육자가 되거나, 창작현장 경험 없이 곧바로 교육자의 길로 들어서거나. 그래서 예술가 출신의 교육자는 동아리 활동 등에 투입되고, 교육자 출신은 기본 교과목 과정에 들어가자는 의견도 나왔었어요. 그러나 배치 과정에 어려움이 있더라고요. 지역별로 강사수와 학교수가 딱 맞아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요구되는 시수(1시간의 수업)도 다 달라요. 여러 가지가 맞물려서 두 방향이 세심하게 고려돼 적재적소에 매칭되지가 않습니다. 그래도 그 시스템도 고민해야 한다고 봐요.
김옥희: 이 두 갈래가 학교 안에서 양립될 수 있어야 정체성에 대한 고민도 가능하겠죠. 예술강사 스스로 창작을 하면서 자기 창구를 끊임없이 만들어야 하는데, 교육자로 강사 자리에 안착되니 어느덧 선생님처럼 수업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스스로 지루해지거나 불안감을 느끼기도 하죠. 작가로서 예술 활동을 하면서 그 내용들이 강사의 교육 프로그램에 자연스럽게 포함되어야 하는데 지금의 제도 안에서는 그럴 수가 없어요. 평가 점수, 시수가 좋은 사람을 선택하는 구조로 되어 있어서, 예술가가 ‘나를 얼마나 예술적으로 개발했느냐’에 대한 부분은 전혀 고려되지 않아요.
문지영: 현재 예술강사가 가져갈 수 있는 최대 시수가 476시수입니다. 모든 강사가 476시수를 가져가야 한다고 차라리 정해버리면 강사들이 선택할 수 있는 여지도 생기고 두 가지 갈래도 자연스럽게 생길 수 있겠죠. 현재 동아리 활동에 인정되는 시수가 100시수 정도로 낮고, 재량 수업은 300~400시수로 큽니다. 배정받은 시수에 따라 수입이 결정되니 당연히 시수가 큰 재량 수업을 하겠다고 달려들 수밖에 없죠. 강사도 직업이니 먹고살아야 하지 않겠어요?
김태황: 모든 예술강사가 476시수를 이수해야 한다면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은 사라지지 않을까요?
문지영: 네, 제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부분입니다. 오히려 476시수로 그 기준을 묶어두면 예술강사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겠죠. 나는 이 정도는 채울 수 있다, 몇 시수만 채우겠다, 이렇게요. 탄력적으로 시수를 운영할 수 있어요. 현재는 시수가 높은 수업에 배정받으려면 평가점수를 아주 잘 받아야 해요. 평가점수는 평가위원 점수, 담당교사, 학생의 강사 평가, 협조도 등으로 구성됩니다. 그러니 어떠한 사정이 있어도 학교에 비협조적인 모습을 보일 수 없어요. 한편, 예술강사가 학교 안에서 많은 활동을 하고 학교가 강사에게 느끼는 만족도가 100이라 해도 해당 학교가 교육청 예술강사 지원 대상 학교 선정에서 탈락되면 그 학교는 배제됩니다. 그러면 강사는 갈 학교가 없어지죠. 예술가로서 활동을 하고 자기계발을 해 학교 프로그램 안으로 가져올 여지가 없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평가별로 시수를 배정하지 않고 그냥 풀어두면 스스로 두 갈래 중 무언가를 선택할 수 있겠죠. 그래서 평가에 따른 시수로 나누지 말고 476으로 열어두고 예술강사 본인이 선택하게 하면 어떨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교육기관이나 학교의 입장에서 교사와 예술강사가 협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이나 제도적인 고민이 있나.
강민경: 큰 고민거리로 받아들이고는 있지만 현재까지 추진되는 것은 없습니다.
문지영: 학교 내에서 방법을 만들기 어렵다면 예술강사제도에 다른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요? 대학을 갓 졸업한 신진 예술강사가 있는 반면 경험과 관록이 풍부한 예술강사도 있어요. 그래서 ‘마스터 예술강사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어떨까 해요. 실제로 뉴욕에 가보니 마스터 강사 제도가 있었어요. 신진 예술강사를 적합한 학교와 프로그램에 매칭해주고, 수업 관련 프로그램 등을 함께 기획해주는 거죠. 이런 제도가 우리나라에도 도입된다면 현재 예술강사들에게는 새로운 비전도 될 수 있을 것 같고, 학교와 예술강사 간 시너지를 발휘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또 정부에서 1급 자격증 제도를 도입한다는데, 사실 현재로서는 1급과 2급 자격증 간 변별력이 전혀 없어요. 1급 자격증을 받은 사람에게 마스터 강사 자격을 주거나 하는 식으로 차이를 두면 좋겠죠.
김옥희: 이 제도가 생겨난 지 10년이 지났지만 학교나 선생님들 사이에서는 예술강사를 ‘내 수업 1시간 채워주는 사람’으로 보는 경향이 강해요. 그러다 보니 내가 이 생활을 10년 가까이 했는데, ‘고작 빈 수업 시간을 채워주는 것 외에 나의 가치가 없나’ 하는 우려와 고민이 당연히 생기죠. 협력을 하려면 협력해야 하는 대상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해요. 그러나 현재 수업 내용, 방향 등을 함께 논의하는 협력은 전무후무한 실정입니다. 몇 년 전에 학교 교사와 협력해서 진행하는 수업 공고가 나서 진행하려고 보니 막상 교사들은 업무가 과중한데 일을 더해야 하니 싫어하더라고요. 교사들도 우리 예술강사를 어떻게 더 잘 활용할 것인가 고민해야 해요. 이런 부분이 정책적으로 접근되지 않으면 예술강사는 쓸모없어집니다. 고작 작은 부분으로서만 존재하면 예술강사 스스로 자존감을 가지기 힘들어요. 학교 내에서의 애로사항은 이외에도 아주 많습니다.
김태황: 제가 그동안 많은 예술강사들을 인터뷰해봤는데, 아주 수위를 낮춰서 말씀해주신 것 같네요. (일동 웃음) 협력이라는 부분은 예술강사 혼자 고민해서 해결될 부분은 아니죠.
문지영: 사실 학교 내 예술교육의 질은 상당 부분 담당 선생님의 성향에 좌우되기도 해요. 연극 분야인 예술강사가 다행히 연극을 좋아하는 선생님을 만나면 아주 행운인 거죠. 그렇지 않으면 고난의 길인 거고. (웃음) 강사들은 수업 시간 이외에는 갈 데가 없어 복도에 서 있거나 화장실에 앉아 있어요. 그나마 자동차가 있으면 차 안에 있을 수도 있겠죠. 또 예술강사는 학교식당을 이용할 수도 없고, 그날그날 내 수업에 대해 기록하거나 아이들에 대해 적어둘 최소한의 공간도 없는 상태고요.
김태황: 이런 척박한 환경으로 인해 예술강사가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학교에서 그 정체성을 부여받는 것은 아닌가 하는 혼란이 오는 것 같아요. 예술강사에게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을 정하는 것과 별개로 환경에서 부여되는 것이 있잖아요. 지금 같은 상태라면 당연히 ‘나는 아르바이트구나’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지 않겠어요? 협력수업같이 쌍방 동등한 위치에서 접근해야 하는 일은 당연히 제약적일 수밖에요. 사실 이렇게 되면 가장 영향을 받는 것은 학생들일 텐데요.
문지영: 예술교육에 대한 사회 전반의 인식 자체에도 문제가 있어요. 학부형들이 예술수업을 반대하는 경우도 많아요. 공부해야 할 금쪽같은 시간에 웬 예술이냐고. 아무리 제도를 통해 자격증을 주고 시스템을 만들어도, 예술 분야에 대한 사회 전반의 이해가 수반되지 않으면 우리는 10년 뒤에도 똑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을 것 같네요.
강민경: 생각보다 예술강사의 환경이 정말 척박하네요….
학교와 강사 간 잘된 협력 사례는 없나.
강민경: 예술강사사업의 문제점을 이야기할 때, 서울시교육청에서 진행했던 ‘전문강사지원사업’과 비교해서 주로 이야기를 합니다. 그 사업은 학교에 예술성을 가진 강사를 투입한다는 취지였는데, 학교와 강사 모두가 만족한 사업이었어요. 학교가 직접 필요에 의해 예술강사와 계약을 맺었죠. 그러니 당연히 교사와 예술강사가 서로 사업과 교육에 대해 공유할 수밖에 없고요. 강사 스스로도 자존감을 가지고, 교사와 강사 사이의 만남이 전제되니 당연히 수업의 질도 좋아졌고.
김태황: 그런 방향으로 계속 갈 수는 없나요?
문지영: 강사 입장에서는 장단점이 있을 것 같네요. 빈익빈부익부랄까. 평가점수가 높은 스타 강사들의 인기는 늘고, 교육자나 예술가로서 역량은 뛰어나나 대외적이지 않은 사람들은 인기가 없어질 수도 있고요.
그 제도는 올해 왜 없어졌나.
강민경: 해당 사업에 42억 넘게 투입됐어요. 제가 배정받은 예산의 전부가 투입될 정도로 거대한 사업이었죠. 하지만 좋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현재 학교예술강사지원사업과 동일한 성격을 지녀 예산상의 이유로 중단됐어요.
김태연: 장학사님이 말씀하신 사업은 학교를 변화시키는 것에 포커스를 두었죠. 하지만 현재 학교예술강사지원사업의 장점도 아주 많아요. 현행 예술강사 사업이 잘되고 있는지 평가점수나 학교 만족도 등을 데이터베이스로 점검해보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잘하는 예술강사들도 있고, 협업이 잘되거나 학생들이 좋아하고, 학교도 그 부분으로 성과를 내고 안정적으로 이끌어가고 있어요. 물론 의미를 가지고 열심히 하는 그룹이 있는 반면, 교장이 하라는 것만 하는 소극적인 그룹도 있어요. 다만 장점보다는 단점이 크게 부각되고 회자되니 이 사업이 갖는 의미가 바깥과 잘 공유되지 않는 것 같아요.
문지영: 지금까지 했던 많은 이야기들이 상당 부분 예술강사를 시간이 지나도 ‘교육받아야 하는 대상’으로만 보는 것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합니다. 신진과 중진 예술강사를 차등할 수 있는 장치도 없고. 내가 어느 정도 공부를 하고 투자를 하고 교육 방법론을 가지고 있어도 이런 것을 전수하고 펼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야 하는데 현재 전무후무하죠. 그냥 1년차나 12년차나 다 똑같이 보는 거예요. 경력에 따라 트랙을 나눈다거나 잘 진행된 교육 프로그램을 맡았던 예술강사들이 스스로 쌓은 노하우를 나눌 수 있는 루트가 필요해요. 이런 시스템이 구축되지 않다 보니 아쉬운 대로 마스터 강사 도입 등을 진흥원에 제안하고 있어요.
예술강사의 역량 강화, 재교육에 대한 이야기로 발전되고 있다. 이를 감안해 나온 것이 국가가 공인한 문화예술교육사 자격증 제도다. 현재 효용에 대한 논란과 잡음이 많은 것으로 안다.
문지영: 정확하게 어디에 무엇을 어떻게 활용할지 목적이 확실하게 정해진 뒤에 제도가 만들어지면 좋겠어요. 그렇지 않으면 1급이건 2급이건 특급 자격증을 만든다고 한들 고용 기회 마련은 어려워요. 사실 문화예술교육사 자격증 제도에 대해 예술강사가 거는 기대가 거의 없다고 봐요. 개인의 경제적 부담이 큰 것에 비해 비전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고 할까요? 강사들이 자발적으로 문화예술교육사 1급을 따는 데 당위성을 느끼게 해야죠. 2급 자격증은 각 대학에서 받을 수 있고, 1급은 진흥원에서 수여하는데, 지금껏 받았던 연수와 무엇이 다를지 의문이 들어요. 이 자격증을 따기 위해 드는 돈이 대학원 학비랑 같고 아마도 취득까지 2년 정도 소요될 것으로 예상돼요. 차라리 대학원을 가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의견도 나오는데, 이런 고민을 낳게 하는 제도는 성공적이라 말하기 어렵죠.
김태황: 별 장점이 없다면 취득하지 않으면 되는 거 아닌가요?
문지영: 개인이 선택하면 된다? 강사는 ‘을’입니다. 자격증이 없으면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상당히 불안해하는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안 할 수가 없죠. 1급 자격증을 딸까, 대학원을 갈까, 유학을 갈까, 차라리 예술단체를 만들어 그냥 공모사업을 할까 등등 무엇을 해야 할지 지표가 부족해요.
사회자: 제도적인 측면에서 보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교가 문화예술교육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반드시 채용해야 한다는 제도적 장치도 없다. 이 문제가 예술강사 입장에서는 시급한 문제이지 않나? 제도에 거는 기대감이 생겨야 하는데, 지금 그런 것이 너무 부족한 것 같다.
김태연: 쉬운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2017년까지 학교에 예술강사 지원을 의무화하겠다는 정부 정책을 발표했지만 학교 의무교육을 결정하는 것은 학교와 교육청이지 강요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거든요. 사회적인 합의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의무화, 강제화하기 어려우니까요.
김태황: 청소년지도사도 1·2·3급으로 나눠져 있습니다. 여기는 자격증이 없으면 청소년 관련 기관에서 일을 할 수가 없어요. 거기는 반드시 1급을 가진 사람이 1명 이상은 있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더라고요.
문지영: 그래서 못 그만둬요. 뭔가 정책이 달라져서 이게 필요해지지 않을까 싶어서. 참 불안한 직업이에요. 해마다 재계약을 해야 하는 부담감이 있잖아요? 매년 올해 나갔던 학교가 내년에도 되게 해달라고 기도해요. 해마다 다른 학교에 가서 새로운 선생님들과 행정 관계자들을 만나야 한다는 스트레스도 엄청 커요. 적어도 한 학교에 3년은 나갈 수 있어야 지속적인 교육 효과도 볼 수 있을 텐데요.
제도와 관련해 전반적인 이슈가 다 나온 것 같다. 예술강사의 위상과 위치를 명확하게 해야 한다는 의견에는 일치를 본 것 같다. 앞으로 예술강사의 모습은 어때야 할까.
문지영: 이어령 선생님이 “눈이 고프고 마음이 고픈 시대다”라는 말을 하셨어요. 예술교육은 마음이 고픈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죠. 그런데 정작 남의 고픈 마음을 채워주는 역할을 하는 예술강사의 삶은 더 채워졌는가, 이런 부분에 대한 논의의 장이 더 커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소통의 문이 닫히지 않게 지속적인 관심과 논의가 필요해요.
강민경: 그렇게 되려면 예술강사사업의 본래 취지와 목적을 생각해 학교와 강사가 다같이 협력해야죠. 서로에 대해 이해하고 협력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해요. 현재 서로 문제점을 인식하고, 개선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으니 촉매제가 되지 않을까요? 이를 위해 가운데서 저나 재단, 진흥원 팀장님이 역할을 잘해야겠죠. (웃음)
김태황: 저는 제3자의 입장에서 말씀드릴게요. 교육을 공교육이라는 틀에 가두면 안 되며, 학교에서 만날 수 있는 예술 장르가 예술강사를 통하길 바랍니다. 예술강사가 학교 밖에서 일어나는 이 시대의 예술과 현상을 제대로 볼 수 있게 해주는 사람이어야겠죠. 그래야 예술강사가 학교에 지원되는 진짜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거예요. 기본적으로 예술가는 브레이크를 걸어주는 사람이잖아요? 학교 안에 들어와서 그런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장이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되려면 학교가 예술가의 지위와 역할을 스스로 인정해야겠죠. 처우의 문제도 당연히 개선될 거고요. 학교 시스템 안에 예술강사를 재단하는 방식은 아니기를 바랍니다. 자꾸 하향평준화하려는 움직임이 보이는데, 이건 아주 무서운 거예요.
김태연: 저 개인적인 생각으로 큰 전제는 공유하되 개별적인 부분은 열어둬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도를 만들어라, 이 시스템이 필요하다, 이런 주장이 많은데요, 이런 시스템 하나를 만들기 위해 너무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요. 또 결국 나오는 것은 재단되어진 정책에 불과하고요. 문제가 제기되는 핵심적인 부분, 그것에 대한 큰 전제가 필요한데 이런 것 없이 계속 제도만 나오니 정량적인 결과만 나오죠. 그래서 결국 모두가 만족스럽지 않은 게 아닌지…. 제도는 간소하고 간결해져야 하고, 개개인별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디테일한 접근을 가져가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김옥희: 예술강사로 활동하면서 회의감도 많았어요. 끊임없이 남의 평가를 통해 나를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 끔찍하기도 했고요. 이런 고민 가운데 남은 것이 오로지 ‘나는 학교 안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에 불과하다는 결론도 슬프고요. 10년 뒤에는 다를 것이라는 꿈을 꿀 수 있으면 좋겠네요. 학교 안으로 들어가려면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요. 학교 밖에서의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예술가 자신만의 무언가를 가지고 학교 안으로 들어가야죠. 아이들에게 학교 밖의 모습을 꿈꿀 수 있게 해줘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힘든 부분이 많아요. 지금의 평가 시스템 안에서는 예술강사들이 꿈꿀 수가 없어요. 때로는 생계 문제보다 이런 부분이 더 힘들기도 해요. 정착에 시간이 걸리더라도 꿈은 꿀 수 있어야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