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최근 몇 년간 법인화 움직임과 단체별 프로젝트가 꾸준히 진행됐음에도 국공립무용단은 여전히 침체기라는 평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공연 횟수와는 별도로 주목할 만한 작품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민간무용단에 비해 상대적으로 나은 환경을 제공받는 국공립무용단은 그에 상응하는 예술적 성과를 낼 의무가 있다. 그럼에도 질적 성취에서의 계속된 실패는 결국 현재 국공립무용단 운영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보여준다.
<춤웹진>은 지난 호에서 주요 국공립무용단의 현황과 운영 실태를 대략적으로 살펴보았다. 무용단 구성의 두 축은 예술감독과 단원이지만, 해당 자료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바로 노조의 존재다. 실제로 예술노조의 설립 이후 국공립무용단 내 갈등은 심화됐고, 예술감독은 노조와 대립하다 임기를 다 보내는 경우가 많아졌다. 특히 세종문화회관 소속의 서울시립예술단이 노조 문제로 내홍을 겪은 이후 각 예술단체들도 비슷한 과정을 되풀이하고 있어 문화예술계의 우려를 낳고 있다. 이에 따라 노조 문제는 차후 국공립무용단의 효과적인 운영에 있어서 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할 과제로 떠올랐다.
예술단 논란의 중심에 선 노동조합
그동안 노조는 주로 오디션과 근무평가와 관련해 무용단 측과 잡음을 빚어왔다. 최근 벌어진 일련의 논란도 무용단 운영에 대한 노조의 불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근무평정 거부 사태로 지역 문화계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광주시립예술단은 올초 산하 예술단체 예술감독 공개 모집 당시부터 제기된 의혹을 이유로 전면파업까지 강행하며 논란을 자초하고 있다. 광주시는 모집에서 무용단 예술감독을 비롯해 합창단과 국악관현악단 지휘자 등 3개 단체의 합격자를 발표했지만 이 과정에서 특정인 내정설이 불거져 잡음의 빌미를 제공했다.
또 예술감독과 단원들의 정기평정과 임금 문제는 법정공방까지 이어지며 파업과 공연 거부라는 집단행동을 야기했다. 이에 이영민 광주 문화예술회관장은 “노조가 자신들의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해 파업하는 것은 시민의 문화 향유권을 박탈하는 행위다”라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박광석 문화예술진흥과장도 “정기평정 실시에는 아무 문제가 없으며 단원들의 참여 여부와 관계없이 예정대로 평정을 실시하겠다”라고 밝혔다. 이에 노조 측은 이런 일방적인 통보야말로 밀어붙이기식 평가라고 반발해 분란은 당분간 사그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한편 최근 급격히 위축된 예술감독의 위상을 재확인시킨 것은 인천시립무용단 사태였다. 지난해 1월 손인영 예술감독의 취임 후 얼마 되지 않아 단원들과의 갈등이 시작됐다. 인간적 교감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기존 운영방식과 작품 방향에 변화를 주려던 손 감독의 행보는 단원들이 불만을 품게 했다. 여기에 감독의 말실수까지 더해져 감정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평행선을 달리던 양측은 결국 노조가 ‘감독 해임’을 내세우며 단체행동을 요구하며 최악으로 치달았다.
이에 인천시는 두 차례 운영위원회를 열고 손 감독의 업무정지를 의결했다. 당초 ‘해촉’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지만, 법적 분쟁의 가능성을 막고 노조와의 오랜 갈등을 일단락짓기 위한 궁여지책의 성격이 짙었다. 하지만 이는 손 감독의 권한을 대폭 축소시킨 결정으로 사실상 해촉과 다름없는 처분에 가까웠다. 향후 무용단 운영 계획에 대해 이재연 인천문화예술회관 관장은 “인천시립무용단은 예술감독의 업무 공백을 메울 기획연출자를 물색해 선임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당한 권리 주장 vs 지나친 철밥통 의식
이 사태는 표면적으로는 예술감독과 노조의 힘겨루기 양상이었지만, 내부적으로는 예술감독을 견제하는 노조의 성격과 그 영향력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였다. 또한 이는 비단 광주나 인천시립무용단만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많은 국공립예술단도 겪을 수 있는 문제라는 점에서 지역 예술인들의 주목을 받았다. 이번 사태를 지켜본 한 무용가는 “시시비비를 떠나 양측의 갈등이 원만하게 해소되지 않고 일방의 결정으로 과격하게 봉합되는 상황이 안타깝다”며 유감의 뜻을 나타냈다.
갈수록 거세지는 노조의 단체행동에 대한 시선은 다소 엇갈린다. 예술노조가 출현하기 전, 예술감독 또는 상급 행정기관의 힘이 압도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던 때는 단원들의 권익을 대변할 수 있는 길은 많지 않았다. 여러 논란이 있긴 하지만 무용단원들의 정당한 권리 주장을 위해 많은 이들이 노조 활동의 필요성을 ‘원론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예술성과 공공성을 함께 발현해야 하는 국공립무용단의 특성상 권리 주장과 의무 수행은 필연적으로 충돌을 일으킨다. 노조 소속 단원들이 갈수록 예술가로서의 의무보다 공무원으로서의 권리만 주장한다는 비판이 그것이다. 이른바 예술노조의 ‘철밥통’ 논란이다. 광주시의 한 관계자는 이번 사태와 관련해 “시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시립예술단의 파업에 시민이 과연 동의하겠는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예술단의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노조의 역할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는 지적이다.
서울시무용단, 대전시립무용단, 창원시립무용단에서 예술감독을 맡았던 한상근 한남대 겸임교수는 “지역과 단체에 따라 무용단의 문제는 다 다르기 때문에 항상 어느 일방의 잘못이라고 단언하긴 어렵다”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노조의 주장대로 무능한 예술감독이 있을 수도 있고, 실제로 노조가 철밥통 의식에 사로잡힌 경우도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한 교수는 “노조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이 시대의 예술감독에게는 ‘소통 능력’이 중요한 자질이 된 것은 틀림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순조로운 소통을 바탕으로 어느 한 무용단에서든 운영 관리상의 좋은 선례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다면 다른 단체에서도 그것을 기준으로 따라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날 것”이라고 조언했다.
연극계, 해외 예술계의 노조 사례
지난 2010년 창립 60주년을 맞은 국립극장은 내내 시끄러웠다. 당시 국립극단과 국립무용단, 국립창극단, 국립국악관현악단의 4개 단체로 이뤄졌던 국립극장 측이 단체협약 해지를 통보했다. 이 과정에서 국립극단 단원 24명은 전원 해고 통지를 받았다. 국립무용단 등 나머지 3개 단체 단원들에게는 10년간 없었던 오디션 일정이 잡혔다.
국립극장 예술노조와의 갈등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법인화 이후 재구성될 국립극장의 단원을 뽑기 위한 평가 심사 절차로 오디션이 추진됐고, 전국공공서비스노조 국립극장 지부의 ‘불법 오디션 반대 결의’로 이어지면서 극장과 노조 측의 갈등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노조 측은 극장 측의 일방적인 오디션 제도 도입에 반대하며 이를 거부했다. 국립관현악단의 이재원 지회장은 당시 “기존에 시행되고 있는 작품별 상시평가제도가 있고, 그 오디션은 사전에 논의된 바도 없으며 합리적 기준도 제시돼 있지 않았다”며 반대의 명분을 밝혔고, “단원들 간의 연봉 차등 적용이나 극장의 입장에 반대하는 단원에 대한 강등과 해고의 명목으로 만들어진 오디션일 뿐”이라고 날선 비판의 목소리를 낸 바 있다.
국립극장 노조의 파업으로 2010년 국립극장은 세 차례의 공연지연과 취소 파행을 낳기도 했다. 단체협약 교섭에서 노사간 쟁점에 대한 이견으로 노조가 부분파업을 벌였던 것이다. 대표적으로 국립무용단의 <솔(soul), 해바라기> 공연 취소 해프닝이 있었다. 이처럼 긴 갈등을 이어오던 국립극장 노사는 1년이 지난 2011년에서야 협상을 타결했다.
아직까지 한국에서의 문화예술 노동조합 활동은 상생의 돌파구를 찾지 못한 까닭에 대체로 부정적으로 비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예술도 하나의 노동 행위라는 사회적 합의가 커뮤니티의 안팎에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에 대한 해외의 선례를 참고해보는 것도 바람직할 것이다.
뉴욕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오스트리아의 비엔나 오케스트라, 독일의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등은 노동조합 활동으로 권익과 예술의 공공성을 확보하면서도 세계적인 예술단체로 성장해온 대표적인 단체들이다. 또 이 단체들의 공통점은 예술가의 노동을 인정하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나라와 도시에 있다는 점이다. 예술인의 권익 보호를 위한 투쟁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 예술에 대한 사회적 인식에 근거한다는 것이다.
프랑스에서 가장 큰 노동조합연합인 CGT(프랑스 노동 총연맹)에 속한 공연예술노동조합인 ‘FNSAC(문화활동 공연노동조합)’는 그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지난 2003년 3만 명 이상의 FNSAC 소속 예술가들은 실업보험 혜택을 축소하는 계획(엥테르미탕 개정안)에 대한 항의로 파업을 선언했다. 이때 파리 대부분의 공연장과 영화관의 공연과 상영이 취소됐다. 이 여파로 제57회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과 엑상프로방스 오페라 축제도 취소된 것은 너무나 유명한 일화다. 당시 프랑스인의 64%는 프랑스 여름축제가 모두 희생되더라도 이 파업은 정당하다고 답했고, 제도의 현행 유지를 옹호하는 응답도 80% 가까이 나왔다. 예술가들의 복지가 프랑스 국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