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언제였던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때, 나는 런던에서 스코틀랜드의 에딘버러로 가는 기차를 타려고 하고 있었다. 정거장 안에서 현지인으로 보이는 반듯한 모습의 남자가 지나가길래 그에게 물었다.
“이 기차는 에딘버러 행입니까?”
“I hope so.”
나는 순간, 상대방의 대답에 당황해 하며 기차에 올랐다. “I hope so”를 “그렇기를 바랍니다”내지 “그렇기를 바래”라는 뜻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기차 안에서 보니 그 남자가 같은 객실에 천연덕스럽게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작은 배신감을 느꼈고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 하찮은 경험으로 인해,‘영국인은 참 이상한 사람들이구나’또는 좀 좋게 쳐‘영국인의 화법이란 참 특이하구나’하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우연한 기회에 이 에피소드를 이순열 선생에게 말씀드렸더니, “그 경우는 ‘I hope so’를 ‘그럴 걸’ 정도로 해석해야 한다”고 하신다. 그 얘기를 듣고, 내가 수십 년 간, 쓸데없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그 한 마디가 내게 ‘외국어의 우리말 번역은 우선 씨가 먹히고 자연스러워야함’을 새삼 깨닫게 해주었다.
이것은 남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길 작은 예이지만, 선생은 영어에 대해 놀라운 지식을 갖고 계신다. 춤비평가 전에 음악평론가를 하셔, 클래식 음악에도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해박하시다. 하지만 영어, 음악만이 아니라 세상의 수많은 지식과 별의 별 일들을 알고 계신다.
2010년 늦가을.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한국춤비평가협회 회원들과 그곳 무용 관계자들이 세미나를 할 때였다. 선생이 서두에 인사말을 하셨는데, 유럽인도 잘 모르는 유럽 왕가의 복잡한 계보 중에서 그 지방과 얽힌 가계를 언급하며 춤 이야기를 하시니 독일 사람들이 놀라는 기색이 역력했다.
나는 나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 어느 요절한 한국인 천재 영문학자-셰익스피어 훨씬 이전의 중세영어(Beowulf)에 정통했던, 세계적으로 권위자였던-의 얘기며,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초대 국방장관을 지낸 신성모 씨의 영국유학 시절 얘기며, 한국에 와 있었던 영문학자 레이너(George Rainer) 교수의 중국에서의 해군 수병 생활 같은 희한하고 흥미진진한 얘기들을 선생으로부터 들었다.
남의 얘기를 경청해 주는 것이 큰 보시라 하지만, 내용 없는 이야기나 정확하지 않은 지식을 장시간 듣는 것보다 더한 고문이 세상에 없다. 그런데 선생의 얘기는 소설처럼 재미있거나 듣는 대로 지식이 되는 즐거움과 유익함이 있다.
또, 선생은 여러 사람 앞에서 강연을 할 때, 어떤 대목에서는 실감나게 연기를 하신다. 사람들은 보통 말로써 유머를 구사하는데, 선생에게는 약간 능청스러운(?) 연기로 청중을 웃기는 독특함이 있다. 분명 배우생활은 하신 적이 없으신 것 같은데. 나는 선생을 포함하여 선생이 들려주신 얘기의 주인공들을 떠올리며“시시처처(時時處處)에 천재(天才)와 기인(奇人)이 있기 마련이구나”하는 생각을 한다.
얼마 전 선생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나에게 무슨 전화 걸 일이 있으실까?’ 의아해 하며 휴대전화를 들고 있는데, “평소 문자 메시지 같은 것은 잘 챙겨 보지 않으니, 이만주 씨네 집안에 큰 일이 있었음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대학로에서 한 번 만납시다”하며 인사를 차리신다.
정해진 날, 대학로 중국집, ‘만리성’에서 만나니 점심으로 청요리를 사 주신다. 위에서 사설(辭說)을 길게 늘어놓았으나, 사실 나로서는 선생을 알게 된 지도 얼마 되지 않았고, 같은 한국춤비평가협회 회원이라는 것 외에는 특별한 친교도 없었으니 모든 것이 황송할 따름이었다.
그리곤 그날, 또 많은 이야기들을 들었다. 영어에 hopefully나 understandably와 같은, 문장 전체를 수식하는 부사가 있다는 것 하며, 존 스타인벡의 노벨문학상 수상연설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나는 캘리포니아 여행 중, 렌터카를 몰고 스타인벡이 유년시절을 보냈던 살리나스(Salinas)의 시골집과 기념관을 방문했었고, 물어물어 인근 공동묘지에 있는 그의 묘를 찾았던 일이 있었던지라 감회가 새로웠다.
점심 반주로 이과두주를 한 병 시켰는데, 특별 행사 중이라고 한 병을 더 주었다. 선생은 술을 안 드시니, 나 혼자 대취했다. 함께 마로니에 공원을 걸어 나오는데 흥미로운 시간이 끝난다는 생각에 헤어지기가 못내 아쉬웠다. 모두가 인정하는 대로 지난여름은 몹시도 더웠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폭염의 세상이 봄처럼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그것이 59도의 고량주, 술 기운에 마취가 되었던 탓이었는지, 그렇지 않으면 다른 이유에서였던지는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