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선생님께서 처음 무용평론을 시작하셨을 당시, 우리나라 무용계를 주름잡았던 무용인들을 향한 선생님의 지독한 평은 나를 비롯한 많은 무용인들에게 자극을 주었다. 어떤 이들은 분노했고 어떤 이들은 상처를 받았으며, 또 어떤 이들은 무용에 무지한 평이라며 무시하기도 했다.
우리의 춤에 대해 항상 비판적이셨던 선생님은 무용가들에게 불편한 존재이기만 했고 한동안 그렇게 좁혀지지 않을 것 같았던 선생님과의 거리가 지속됐었다. 그러던 언젠가 내 춤에 대해 처음으로 긍정적인 시선을 담은 선생님의 평을 읽었던 순간이 기억난다.
내 춤 세계를 담은 인터뷰 기사를 읽으신 후 그 동안 갖고 있던 나에 대한 편견을 버리셨다고 하더라. 그 동안 선생님의 혹평에 최대한 무반응으로 대응해오던 나였는데, 그때만큼은 꽤나 기뻤다. 나를 이 시대의 진정한 무용가라 평하신 선생님의 글은 내 춤 세계에 많은 힘을 실어주었고 나 역시 닫혔던 마음을 조금씩 열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이순열 선생님은 내가 제일 존경하고 신뢰하는 평론가가 되셨다.
어느 날 우연히 선생님 댁을 방문했을 때 선생님의 너무나 의외적인 모습에 놀랐던 기억이 난다. 날카로운 글로 무용계를 차갑게 칼질하던 선생님은 너무나 가정적이고 다정다감한 남편이었다. 지극히 서구적인 사람으로만 보였던 선생님은 누구보다 우리의 전통을 잘 알고 사랑하시던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선생님과의 인연이 시작되었고 지금껏 예술가와 평론가로서 서로 의지하고 힘을 주며 함께 우리나라 무용계를 지켜왔다.
돌이켜보면 당시 우리 무용계를 향한 선생님의 차갑고 날카로운 비평들은 무용가들이 스스로 돌아보고 성장할 수 있도록 많은 자극을 주었고 그로 인해 우리 무용계가 이만큼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문학이나 음악, 미술 등의 다른 예술분야와는 달리 이론적 정립이 미약했던 우리 무용계를 향해 던진 선생님의 지독한 비평들은 사실 무용가들을 자극하여 반성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든 희망적 메시지라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