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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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춤은 평범한 이들의 삶에서 항상 중요한 의미를 가졌다’ – 버지니아 케네디
‘사고하고, 느끼고, 움직일 수 있다면 당신은 춤을 출 수 있다’ – 닥터 파텔 1943
작년 이 자리에서 나는 미국과 영국 커뮤니티 댄스의 기원에 대해 이야기했다. 더 많은 공부와 경험, 성찰을 거치고 난 올해, 나는 나와 다른 이들의 관점 모두에서 이 방대하고 풍성한 주제에 대한 몇 가지 생각을 나누고자 한다.
나처럼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들이라도 ‘커뮤니티(community)’라는 단어에 작은 단어가 숨어있음(unity; 통합)을 바로 알아차리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유치해지는 걸 무릅쓰고 질문 하나를 던지고자 한다. 커뮤니티 댄스에 통합을 넣은 것이 누구인가? 그 답은 바로, 사람들이 넣었고, 지금도 넣는다는 것, 바로 우리가 넣는다는 것이다.
커뮤니티 댄스는 많은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영국 커뮤니티 댄스 재단(Foundation for Community Dance; FCD)장인 켄 바틀렛이 가장 좋아하는 표현을 빌리자면, 커뮤니티 댄스는 본질적으로 ‘모든 무용, 모든 댄서, 모든 춤추기’이다. 제약 없는 춤이다. 어디에서나, 모든 곳에서 벌어질 수 있고 누구나, 모든 사람들이 할 수 있다. 누가 하는지가 중요하다. 따라서 공공적일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개인적이다. 그리고 예술성도 갖출 수 있다.
물론 일반적으로 무용, 특히 커뮤니티 댄스에는 치료의 요소가 있다. 그것은 당연히 사람들의 정신적, 신체적 건강에 영향을 미치고 향상을 시킬 수 있다. 무용은 영국 정부가 끊임없이 증가하는 ‘비만’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시도하는 주요 노선 중 하나이다. FCD 잡지 ‘애니메이티드(Animated)’에 실린 몇 개의 기사는 춤의 장점과 함께 병원 및 케어센터에서 작업하는 무용인들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호주의 커뮤니티 댄스 활동에 국제적으로 초점을 맞추었던 2011년 가을의 사례들이었다. 안무가 리 워렌(Leigh Warren)은 아들레이드의 플린더스 메디컬센터에서 그의 무용단과 진행했던 메니코 마누버(Medico Manoeuvres), ‘기분전환 치료’ 프로젝트에 대한 글을 썼다. 무용수들은 관객인 환자들과 나름 비슷하게 잠옷을 입고 베개를 소품 삼아 여러 병실에 무용과 움직임을 조심스럽게 알려주었다. 워렌은 ‘우리의 공연은 신체 움직임과 정신의 연관성, 그리고 춤을 추거나 어떤 움직임을 볼 때 뇌의 시냅스 경로가 어떻게 변하는지에 대한 것이었다’고 말한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나는 신체의 움직임과 음악이 무용 안에서 결합됐을 때 자의식을 조금 버릴 수 있게 해준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이 점은 사람의 행동과 기분을 바꾸면서 웬빙의 느낌을 선사할 수 있게 된다.
다니엘 존스(Danielle Jones)는 잉글랜드 국립발레단에서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매주 실시하는 수업을 이끌고 있는 팀 멤버 중 하나이다. 그녀는 이 수업이 ‘무용단 레퍼토리의 영향을 받았고 우아함, 정결함, 표현, 집중력, 유연성 등 발레 테크닉의 기본적인 원칙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말한다. 로햄튼 대학 무용과 상임강사이자 그녀의 동료 사라 휴스턴(Sara Houston)은 발레단의 프로그램이 ‘병이 아니라 예술에 관한’ 프로그램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덧붙이기를, ‘예상치 못한 병에 직면했을 때, 자신감을 북돋아 주고, 자기 움직임의 가능성이나 사회적 교류, 소속감 등을 자극할 수 있는 춤은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 필수적이다.’ 효과가 있을까? 한 참가자는 ‘이렇게 춤을 추니 파킨슨이 내 인생 운전석에서 몰아내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게 예술일까? 이 질문은 특히 커뮤니티 댄스와도 연관되기 때문에 내게 흥미롭다. 런던의 더 타임즈에 있는 나의 편집자는 이 일간지의 수석 무용평론가이기도 한데, 최근 나와 그녀가 어떻게 이렇게 조화로운 팀을 이룰 수 있는지 정확히 꼬집었다. ‘당신은 과정에 관심이 있고, 나는 결과물에 관심이 있어요’.
과정과 결과의 균형은 커뮤니티 댄스를 만들거나 단순히 그것을 관람할 때 모두 고려할 만한 부분이다. 아까 언급한 말로 돌아가서, 왜 커뮤니티 댄스 행사가 예술적인 활동이 되지 못할 이유가 뭐가 있는가? 제인 데블린(Jayne Devlin)과 캐롤린 샨시(Caroline Schanche)는 콘웰의 캠본 레드루스 병원에 있는 뇌졸중 재활모임 사람들에게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다. ‘애니메이티드’ 같은 호에서 데블린은 이렇게 썼다. ‘우리는 우리의 움직임에 사람들이 순수하게 움직임을 위해 반응하고 또 동기부여가 될 수 있길 바랬다’. 환자 중 한 명의 말에 의하면 ‘움직임은 기분을 좋게 한다’. 이 대답을 가지고 생각해본다면, 이것이 예술인지 아닌지가 의미가 있을까? 중요한 것은 이것이 효과를 낸다는 것이다.
다른 문제를 또 언급하자면, 커뮤니티 댄스는 수행하는 사람들을 교육해야 할 강한 필요성을 느낀다는 점에서 무용교육과 분명 관련이 있다. 이것은 부분적으로 이 분야에서 일하는 무용인들이 높은 수준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적절한 훈련을 시키냐의 문제이다.
FCD는 ‘움직여 나아가기(Making a Move)’라는 이름으로 커뮤니티 댄스의 전문적인 프레임을 만들기 위한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2005년 3가지 질문과 함께 시작했다. ‘내가 하는 일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어떻게 할 것인가? 그리고 더 잘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도움이 될까?’ (이것은 예술분야의 누구에게라도 –아니면 살아있는 그 누구에게라도- 스스로 물으면 유용한 질문들이다) 이 질문들에 대해 FCD가 받은 대답들은 물론 굉장히 멋있었지만, 엄청난 도전을 눈앞에 두게 되었다. 커뮤니티 댄스 아티스트, 단체, FCD 직원들은 18개월 동안 매우 집중적인 토론을 거쳐 이 리서치를 기반으로 그 구조를 짰다. 그리고 이 구조를 통해 지역, 국가 단위에서 아티스트, 무용단, 예술 혹은 비예술 고용인, 지원단체들이 자기 프로젝트의 질과 인지도를 향상시키고, 함께 작업하는 공동체에게 더 많은 혜택을 가져다 줄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이 구조에 대한 FCD 홍보자료에서 인용하자면, 이것은 ‘트레이닝 코스나 ‘취직통로’라기보다는 일종의 등반 프레임으로 개개인이 언제든지 여기에 진입하고, 현재 위치를 확인하고, 여러 경로를 원하는 만큼, 원하는 대로 이리저리 거쳐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다’.
여기서 국가직무기준(National Occupational Standards)과 네비게이터(Navigator) 탄생했다.
2009년 4월에는 영국예술위원회가 20만 파운드의 예술지원금을 FCD에 수여하여 무용 트레이닝 및 인증 파트너십(Dance Training and Accreditation Partnership; DTAP)이라는 프로젝트의 사전 기간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 사전 기간은 2011년 4월까지 이어졌는데, 무용 리더십에 관한 국가직무기준(FCD의 주도로) 확립, 젊은이들의 무용계 활동에 대한 새로운 자격기준 구축(잉글랜드 청년무용Youth Dance England 주도), 공식교육체계 바깥에서 무용교육을 하는 아티스트와 교사 명부를 만들기 위한 리서치와 실행 등이 이루어졌다. FCD는 전문가 기준에 관해 아티스트들과의 자문기간을 완료하고 이것은 현재 창조문화기술(Creative and Cultural Skills; CCSkills)에 의해 무용 리더십에 관한 국가직무기준(NOS)으로 받아들여진 상태다.
이것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무용활동을 하는 프리랜서의 경우 이러한 기준에 따라 고용인들에게 자신의 능력을 보여줄 수 있다.
FCD의 멤버일 경우 행동강령이 있을 것이며, 이 기준들을 전문가 강령과 함께 활용하는 것이 가능하다. 또한 자신의 활동을 평가하는 데 사용하여, 자신이 어떤 기준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고 있으며 그 이유가 무언인지 스스로 평가할 수 있고, 다소 약한 부분들에 대해서는 조언을 구하거나 트레이닝, 리서치 등을 진행해 전문성 계발에 힘쓸 수 있다.
트레이닝을 제공하는 쪽이라면 직무기준에 따라 자신의 학습성과를 가늠해 보고 자신의 트레이닝 코스가 공략하고 있는 기준이 어떤 것인지를 볼 수 있다.
고용인일 경우에는, 참여적인 환경에서 작업하는 아티스트들에게 업무를 설명 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
전문성 계발에 있어서 FCD가 네비게이터를 고안한 것이 또 유용했다. ‘예술분야에 걸쳐 국가직무기준, 행동강령, 리서치, 전문성 계발에 관한 지식과, 전문적인 실천분야를 연결하는 전략적인 길잡이’로 표현된다. FCD 홈페이지에서 더 인용해보면, ‘예술가인 고용인, 정부, 영국 고학년 교사 등과 함께 일해가는 네비게이터는 파트너들이 예술가 지원에서 이미 보여준 성과의 가치를 더할 것이며, 예술분야에 걸쳐 참여적 예술가 집단의 목소리를 지지하고자 한다.
무용교육과 커뮤니티 댄스라는 주제에 대해서는 할 말이 조금 더 있다. 나는 런던 더 플레이스(The Place)의 창조 교육 및 학습 디렉터인 크리스 톰슨(Chris Thomson)의 글을 보게 되었다. ‘댄스 UK’라는 정보 및 지원단체에서 발간한 잡지에 작년에 실린 글이다. 그 글에서 크리스는 런피지컬(LearnPhysical) 인터랙티브라고 부르는 움직임 학습 프로그램을 사용하여 초등학교에서 ‘무용 사유자’를 양성하는 일에 대해 썼다. 프로그램의 목표는 창조적인 움직임을 매개로 개념들을 탐구하도록 하는 것이다. 교사들이 다(多)감각, 다(多)모델 교육법의 일부로 좀 더 확신을 가지고 무용과 움직임을 활용하는 능력을 키움으로써 가능하다. 이러한 교육법은 좀 더 장기적인 목표를 갖게 될 것이고, 창조적 움직임과 무용을 초등학교 공간 안에 자연스러운 일부로 도입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커뮤니티 댄스와 무용교육은 실제로 겹치는 부분들이 있으나 가끔은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특정하자면, 자신의 작업 지원금을 받기 위해서 아티스트나 무용단에게 커뮤니티 댄스 작업을 필수적으로 요구하는 국가 예술관련정책을 생각하고 있다. 정치적 계획에서 이것은 보통 ‘전부 체크해놓기’로 불린다. 모든 아티스트가 커뮤니티 작업을 하고 싶어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괜찮다. 마치 짓지도 않은 죄에 대해 옥살이를 하듯이, 해야 된다는 이유로 참여하는 것은 옳지 않다. 현명하지 못할뿐더러 불공평하다.
커뮤니티 댄스의 중요한 점은 사람 사이, 그리고 개인 내부의 참여이다. 이 지점에 예술, 혹은 예술성이 자리한다. 탁월함,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성과, 또 자신감과 관계형성과 관련이 있다. 믿음과 헌신, 그리고 연결된 에너지이다. 또한 자기표현, 나의 정체성, 그리고 나의 가능성을 알아가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
오스댄스 빅토리아(Ausdance Victoria)의 교육 및 트레이닝 매니저인 카트리나 랭크(Katrina Rank)는 무용과 커뮤니티 댄스가, ‘무용수가 말없이 지시를 받는 수신자가 아니라 개인적 욕구를 가진 온전한 인간이 되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접어들었다고 말한다.
좀 더 폭넓은 의미에서 영국에서 활동하는 독립무용가 버지니아 켈리(Virginia Kelly)의 말을 빌리자면 ‘춤은 우리를 움직이게 만드는 바로 그것을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한다. 풍요의 감정들을 유지한다’. 그녀는 또 이렇게 썼다. ‘각 세대가 갖는 무용에 대한 인식이 서로 다른 듯 보이나, 대개 인정하는 것보다 더 많은 공통점이 있다’.
내가 케네디의 글을 찾은 ‘애니메이티드’의 2004년 겨울호에는 무용과 나이 먹는 것에 대한 기사들이 많이 있었다. 켄 바틀렛이 그 호 편집 코너에 썼듯 ‘커뮤니티 댄스 아티스트로서 커리어를 유지하는 것은 대단한 업적이다. 성숙하고, 더 나이 많은 선배 아티스트로서 자기 자신, 자신의 예술, 자신이 사는 공동체에 대해 솔직함을 유지한다는 것은 더더욱 멋진 일이다’. 하지만 그는 묻는다. 사람들은 어떻게 자기 작업을 신선하게 유지하는가? 무엇이 그들을 계속 자극하는가?
그 호 잡지에 글을 쓴 사람들은 오늘 여기 이 회의에 참여한 사람들처럼 모두 각자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었다. 또, 여기 우리처럼, 고유의 작업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작업에 대해 생각하는 과제에 대해서는 모두가 그 대답이 퍽 다를 수 있지만, -커뮤니티 댄스에 관여한 아티스트들을 포함한- 아티스트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그리고 ‘가져야만’ 할 것은 바로 춤에 대한 열정이다.
이 열정은 타인에게 전달 될 수 있다. 마치 –유치함을 다시 무릅쓰고 말하자면- 올림픽 성화처럼 말이다. 이렇게 공유하는 열정의 영향으로 이 회의에서 다뤄지게 될 가능 목표들이 있을 것이다. 그 중 중요한 것은 아마도, 어떻게 해야 피부색, 문화적, 지리적 배경에 상관없이, 팔다리가 몇 개든, 휠체어를 쓰든 말든, 나이, 몸매, 사이즈, 원래 능력과 상관없이 참여하고 싶은 모든 사람들에게 무용이 기회를 줄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커뮤니티 댄스에서는 차이를 긍정할 수 있다. 내가 아는 남아시아 출신 무용수가 한 말처럼, 차이란 ‘긴장의 지점이 아니라 역동성의 지점으로 보아야 한다’.
영국 출신 애틱 댄스(Attick Dance)의 벤자민 덩크스(Benjamin Dunks)가 '애니메이티드'에서 잉글랜드 남서부 데본에서 세계무용의 날 프로젝트를 기획했던 일에 대해 기고한 글이 마음에 든다. 프로젝트는 10개 분야의 아티스트들을 한데 모아 '전통 춤'이라는 개념을 탐구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각 전통의 중요한 순간들을 공유하면서부터다. 그런 다음 모두가 각각의 신체적 증거들을 익혔다. 신체와 마음에 채택, 적용시켰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덩크스가 잘 요약했듯이 ‘스타일, 트레이닝, 경험, 지식의 불일치에 대한 내 걱정은 결국 의미없었다. 경험과 탐구, 그리고 자기계발에 다 목말라 하는 무용수들을 모아 그들이 책임져야 할 어떤 목표를 준다면 정말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나는 다음과 같은 말 -그리고 아이디어- 이 커뮤니티 댄스를 실천하고 거기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에게 채택, 적용될 수 있다고 본다. ‘경험과 탐구, 그리고 자기계발에 다 목말라 하는 무용수들을 모으면…’ …그들은 통합을 이루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