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1인 기업을 권장하는 세상이다. 차고에서 땀 흘리며 PC를 개발한 그 사람처럼, 1인 기업은 능동적 상상력과 헌신이 기업 창조의 생명력임을 말한다. 춤으로 1인 기업을 운영하는 사례로 대개 무용학원을 든다. 경향 각지에서 무용학원을 통해 입신한 사람도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춤으로 자기 직업을 다르게 창조한다면, 어떤 모델이 들어질까.
탭 댄서 마이클 플래틀리(‘로드 오브 댄스’의 안무 출연 주역), 1999년에 연봉 8300만 달러(약 1천억원)를 기록하여 기네스북에 오른 사람으로 그 다음해에도 마찬가지였다. 이 일화는 너무 너무 먼 당신의 일이기에 제대로 실감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그의 공연을 연예인 차원으로 치부하면 더 실감나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대학에서 배운 춤을 기반으로 연간 매출 100억원 기업을 경영한다면 실감이 날까. 우리 국내에 실제 그런 기업이 있다.
이 기업의 취업 인원은 100명 남짓이다. 춤 기업이라 해도 공연이 중심인 것은 아니고, 흔히 연상하듯 춤 테크닉을 교습하는 곳은 더 더욱 아니다. 이미 주어진 춤을 그대로 전수하는 차원을 넘어 춤을 응용하는 전혀 새로운 유형의 ‘춤 기업’이라는 점에서 ‘BnR’이 개척한 길, 상상한 길은 많은 이들에게 시금석이 되리라 믿어진다.
‘BnR’의 김정연 대표는 이제 갓 30대에 들어섰으니 2000년대 전반기에 대학에서 현대무용을 전공하였다. 대학 재학 시기에 그 역시 친구들과 일자리나 장래를 고민하는 학생이었다. 이때 착안한 것이 피겨 스케이팅 트레이닝에 춤을 접목하는 것이었고 해외 연수를 직접 경험하였다. 이 기업의 모태는 피겨 스쿨이며, 회사 홈페이지 역시 그 내용 위주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BnR’은 김연아의 이전 에이전시인 IB스포츠의 공식 협력 업체이며, 국내 최고 피겨 전문 업체를 지향할 것을 밝히고 있다. 회사 홈페이지의 내용만으로는 이 기업의 비결 그리고 춤의 잠재력을 파악하기 힘들겠기에 여기에 소개한다.
지금 이 기업은 피겨 지상훈련을 비롯하여 특수 의상 제작, 홈케어 프로그램 그리고 춤 교육 관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2012년 총매출액은 100억원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BnR’도 처음에는 무용학원에서 시작하였다. 2007년부터 광주에서 대학 동기들과 스타 무용학원을 운영하면서 시장을 다각도로 분석한 결과 피겨 스쿨과 특수 의상 업체를 겸하기로 결정한다. 그 이면에서는 고객 일관 관리라는 경영 전략이 크게 작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벤처 투자를 받아 회사를 서울로 이전해서 새 체제를 구축하였다. 현재의 4가지 분야로 운영되는 것은 올해로 3년차이다. 후문에 의하면, 벤처 투자 분도 대부분 상환했다고 한다.
‘BnR’에서 주력은 피겨 스쿨일 테지만, 다른 분야의 비중도 만만치 않은 것 같다. 홈페이지가 소개하는 피겨 스쿨 소개 내용에서는 그 잠재력이 읽히지 않는다. 이 기업에서 제작하는 의상은 춤과 피겨 스케이팅의 특수 의상들이며, 뮤지컬과 드라마의 의상들도 더러 주문 제작한다. 설명에 따르면, 여기서 제작하는 춤과 피겨 의상만도 연간 2천벌에 달한다. 여러 디자이너가 상시 디자인을 개발하고 박음질은 국내 외주로 처리한다. 전국의 무용학원을 대상으로 마케팅을 전담하는 의상 마케터가 지역별로 활동하고 있어 관심을 끈다. 아마도 특수 의상 제작이 피겨 스쿨을 능가하는 규모로 성장할 것 같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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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겨 스쿨은 피겨에 필요한 지상 훈련을 제공한다. 김연아 신드롬의 영향이기도 하겠지만 피겨 인구가 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고, 피겨 스쿨로서는 국내 유일이다. 소개에 따르면 상체표현법, 연기법, 근력 컨디셔닝, 폴 하니스 트레이닝으로 구성되는 교육 과정이다. 이와 같은 교육 과정이 이전엔 국내에 없었으므로 해외 전지 훈련이 관행이었고 사정이 허락하는 사람만 피겨에 입문할 수밖에 없었다. ‘BnR’은 이러한 관행을 바꾸는 동시에 특히 상체표현법과 연기법을 춤으로 해결함으로써 춤 전공자의 전문성을 충분히 살리는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지상 훈련은 피겨 스케이터라면 누구라도 선수 생활 동안에는 일상적으로 수행해야 할 만큼 중요한 과정이다. 피겨 스쿨 과정은 예술 부문과 기술 과정으로 나눠지며, 1:1의 이른바 코칭 방식으로 진행된다. 피겨 스쿨 본사의 상주 인력이 개별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댄서와 트레이너가 전국 각지의 링크에서 개별 지도한다고 한다.
이 기업에서 더불어 주목할 사업은 홈케어 프로그램이다. 단적으로 ‘맞춤 춤 배송(配送)’이라 이름 붙여도 무방할 이 프로그램은 무용학도와 무용가들이 적극 고려해도 좋을 새 직종이라 여겨진다.
‘BnR’의 홈케어 프로그램은 쉽게 말해 남녀 세대 불문하고 춤과 운동에 익숙지 않거나 거부감이 있는 사람들이 춤으로써 운동을 가까이하고 건강한 삶을 누리는 데 목표를 둔다. 웨이트 머신이나 판에 박은 반복 훈련을 탈피해서 춤을 활용함으로써 운동을 자연스런 활동으로 체질화시키는 방법은 일단 독특하다 하겠다. 춤교육에 필요한 바나 플로어도 트레이너가 직접 준비하므로 소비자의 거추장스러움이나 부담을 최소화한다. 무용학원이나 센터에서 일반적으로 행해지는 춤 수련과는 달리 이 프로그램은 개인 가정이나 사무실 등 개개인의 사정에 맞춰 특정 공간에서 개별적으로 진행되므로 맞춤형 개인 춤교육이라 하겠다. 프로그램이 익숙해진 개인이 장소를 이 회사의 스튜디오로 옮겨 수련하는 경우도 있다. 더불어 소비자의 모발과 건강 체크 및 식단 관리를 병행하여 프로그램의 효율성을 높인다고 한다. 이 프로그램에서 춤 전문인의 역량은 필수적이며, 무용학도와 무용가들이 개성 있는 1인 기업으로 무궁무진하게 개발할 여지가 있을 것이다.
‘BnR’에서 무용학원 사업은 비중이 커지 않은 듯하다. 그러나 회사에는 춤 스튜디오가 2개 있고, 춤 교육이 행해지고 있다. 물론, 이들 스튜디오는 홈케어 프로그램 소비자가 가정이나 사무실에서의 트레이닝의 연장 공간으로 활용된다. 이 회사는 중고생을 대상으로 무용수 선발 장학 사업을 펼치고 있다. 말하자면 사회 환원의 일환일 것이고, 김 대표가 무용학도 출신인 만큼 춤 교육에 관한 새로운 기대감도 읽혀진다. 소개에 따르면, 이 스튜디오에서 유료 수강생은 8명이되 전액 장학생이 15명이다. 장학생들에게 매일 2시간씩 춤 교육을 제공하면서 신체 및 예술성 관리를 병행한다. 장학생 선발을 각 교육청의 추천 협조를 얻어 진행하였다 하는데, 그만큼 공신력도 있을 것이다. 유료 수강생보다 장학생이 곱절 이상이니 사회 환원 프로그램임이 뚜렷해 보인다.
이 기업은 무용학원, 문화센터들과 마찬가지로 춤의 사회 저변을 넓히는 역할을 하고 있다. 더욱 결정적으로는, 춤을 필요로 하되 춤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분야를 춤의 영역으로 이끌어 들였다. 게다가 지금 100명 남짓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앞으로 그 수가 늘 것 같아 고무적이지 않은가. 만약에 ‘BnR’이 없고 이전처럼 무용학원에 안주했더라면, 지금 100명 남짓의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과연 제공할 수 있었을까. 바로 여기서 춤 생태계를 위해 바람직한 엄청난 확장성이 발견된다. 비슷한 맥락에서, 김정연 대표가 진단한 바대로, 국내에서 올리는 라이선스 뮤지컬은 규모는 클지 모르겠으나 일례로 의상만 보아도 국내 경제 유발 효과는 크지 않은 듯하다. ‘BnR’의 특수 의상들은 자체 개발 제작하므로 부가 가치가 크지만, 이에 비해 라이선스 뮤지컬의 의상은 저작권이 해외에 있으므로 아무래도 부가 가치가 낮기 마련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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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을 무대와 춤판 중심으로 생각하는 사고는 곧으나 유연성이 낮다. 춤 생태계를 위해 그다지 바람직스런 사고는 아니라 하겠다. 많은 이들이 이런 지적을 하건만, 춤이 춤 바깥으로 뻗어나갈 돌파구는 쉽사리 열리지 않는 것은 왜일까. ‘BnR’을 보면 새 돌파구가 다채롭게 연상되며, 이 회사는 무용학도와 무용인이 벤치 마킹해볼 대상이기에 족하리라. 연간 1천여 무용학도가 배출되되 무용학과가 줄어드는 현실에서 이 같은 성공 사례를 접하다 보면, 언젠가 다시 무용학과가 더 늘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춤이 위축되고 무용학과가 줄어든다는 수세적(守勢的) 사고를 한시바삐 딛고 훨씬 능동적으로 미래를 꿈꿔야겠다. |
춤만이 해낼 수 있는 것이 무용인의 엄청난 자산인 것은 물론이다. 심지어 의상 분야에서도 무용인만의 감수성을 필요로 하는 의상이 적지 않을 것이다. ‘BnR’에서 사극 드라마의 의상을 제작해내는 현상 역시 이를 뒷받침한다. 자신의 기업을 창조하려면 유연한 시각으로 사고의 폭을 넓히는 것이 첫째 과제일 것이고, 춤 유관 분야를 개척하는 노력은 그다음 과제일 것이다. 대학은 물론 청소년기에서부터 폭넓은 사고와 다면(多面)의 심화 학습을 권고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블루 오션은 우리 가까이 있다. 남들이 이뤄놓은 것을 보고나면 블루 오션이 우리 가까이 있은 줄 그제야 알아차리기 일쑤다. 세상이 모르는 블루 오션이 아마 지금도 독자들 곁에서 잠자고 있을 것이다. 흑룡의 해에 위축된 창업 상상력부터 살아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