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춤 전공 청소년을 위한…

〈춤웹진〉은 내일의 춤 현장에서 창의적 무용인으로 활동하기를 꿈꾸는 청소년들을 위해 청소년기부터 춤을 전공한 젊은 무용인들의 목소리를 소개한다. 청소년기가 예술의 세계를 자기 나름대로 시작하고 준비하는 시기이다시피, 청소년기에 접할 자극과 조언, 학습은 장래 활동에 바탕을 이룬다. 지금의 청소년들의 바로 윗세대로서 젊은 무용인들이 자신의 청소년기 체험과 갈등과 추억을 토대로 소망하는 바가 오늘 청소년들에게 소중한 참고가 되기를 기대한다. - 편집자


청소년기 때에만 할 수 있는 것을 존중하라

 

정서왕으로 한창 활동하는 20대
잘하는 것보다 좋은 작품, 춤을 하는 20대

 

나는 원래 스트리트 댄스를 했었다. 요즘은 스트리트 댄스를 하다가 순수무용을 전공하는 게 드문 일이 아니지만, 내가 중, 고등학교 때는 흔치는 않은 일이었다. 내 또래에서 배틀에 나가면 팝핀은 내가 제일 잘했었다. 그때 내 인생에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시작한 팝핀밖에 없었다. 학교가 끝나면 곧장 연습실로 넘어갔고,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 문 닫을 때까지 연습만 했다. 그렇게 인생에 팝핀이 전부였고 내 꿈도 세계에서 제일 잘 추는 팝핀 댄서였다. 흔들릴 여지도 없고 너무나 확고했다. 그러다 무용을 시작하게 된 건 스트리트 댄스를 하다가 예술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는 남자애들처럼, 실업계(특성화)고등학교에 가서 춤추는 것보다 예고에 다니면서 춤 추는 게 낫지 않겠냐는 예고 부장 선생님의 설득으로 무용을 시작하게 됐다.
 예고 입시를 치를 때가 아직도 생각난다. 무용을 해본 적이 없었던 나는 타이츠를 입고 팝핀을 했다. 지금 생각해도 끔찍하다. 물론 공연 컨셉 상으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입시를 타이츠에 팝핀이라니… 타이츠를 처음 입었을 때 머릿속에는 타이츠는 변태들이 입는 것, 개그맨들이 입는 것, 겨울에 추우면 껴입는 것이라는 선입견이 존재했고 굉장히 민망해했던 기억이 난다.
 예고에 들어가서 포인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정기적으로 개최하는 ‘예술제’ 연습부터 했다. 처음에 아무것도 모르고 현대무용을 배우고 춤추는 선배들을 봤을 때 드는 생각은 ‘멋있다’가 아니라 ‘행위예술인가? 뭐가 멋있는 거지? 왜 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앞섰다. 한 선배가 엄청 유명한 사람이라면서 어떤 콩쿠르 영상을 보여줬었는데 타이츠를 입고 춤추고 있었고 내 눈엔 변태가 팔과 다리를 휘두르는 것처럼 보였다. 전혀 멋져 보이지 않았고 팝핀을 했었던 나로서는 음악을 맞추는 것도 아니고 그냥 밋밋했고 구르다 일어났다만 반복하는 것 같았다. 첫 예술제는 ‘진짜 왜 하는 거지 이 춤을?’이라는 생각으로 시작해서 그냥 그렇게 끝이 났었던 것 같다. 회의감이 더 많이 들었고 수업도 잘 안 들어갔다. 그렇게 2학년 중순까지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그때는 무용하는 남자가 귀했고 말은 잘 안 듣지만 학원에 데려가려고 하는 선생님들이 많았다. 나는 피해 다녔고 결국 궁지에 몰려서 비 오는 날, 도망치듯 아무 무용학원이나 급히 들어갔다. 그곳에서 나에게 무용을 가르쳐 주셨던 선생님을 만나게 됐다. 처음 학원에 들어갔을 때 학원에 학생이 없었다. 그 선생님은 이제 그만 가르치려고 학생들을 안 받고 있었고 그 와중에 갑자기 내가 문을 열고 들어와서 당황하셨다. 그때 선생님은 “국밥이나 먹고 가”라고 하셨다. 어색하게 국밥을 먹고 집에 갔다.
 다음 날, 학교에 갔을 때 몇몇 선생님들과 선배들은 화가 나 있었고 나는 피신하러 전날 갔던 학원에 매일 찾아갔다. 가서 춤을 배우는 것도 아니고 그냥 말 그대로 피신 가듯이 가서 선생님을 앉혀놓고 아무 노래나 틀어놓고 12시 즈음 될 때까지 내가 추고 싶은 대로 춤을 췄다. 선생님이 기본이라도 배워 보자거나 무언가를 알려주려고 했지만 나는 그저 앉아 있었다. 무용은 또 배우기 싫었던 것 같다. 아니, ‘현대무용은 배우는 게 아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었었던 것 같다. 현대무용이라는 말을 곰곰이 생각했는데, 현대무용이면 ‘현대에 추는 춤을 말하는 거 아닌가?’, ‘어떻게 그런 춤에 기본이라는 게 있지?’라는 생각이 굉장히 컸던 것 같다.
 지금에 와서야 기본이라는 게 몸을 더 자유롭게 쓰기 위해서 훈련하면 좋은 것이라는 걸 알게 됐지만, 그땐 그랬다. 그때 나름의 내 해석으로는 현대무용이면 ‘현재 내가 느끼는 무용인 건가?’라는 생각도 했다. 그래서 매번 선생님을 앉혀놓고 ‘전 현대무용 할 테니까 앉아서 구경하세요’라고 했던 것 같다. 선생님과 투덕거리며 그렇게 춤을 췄다. 다행히 선생님도 굉장히 열려있는 분이셨다. 너무 열려 있어서 입시 때 팔을 어떻게 써야 하냐고 물으면 이렇게도 쓸 수 있고 저렇게도 쓸 수 있다고 해서 답답할 때도 있었지만…(맞는 말이긴 하지만)
 그렇게 현대무용을 추다 보니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뭘 가르치려 하면 ‘그건 왜 하는 건가요? 하면 어떤 것이 좋은 건가요?’라는 질문들을 많이 했다. 지금 내가 선생이기도 한 입장에서 생각해보니 진짜 가르치기 힘든 학생이었을 것 같다. 하여튼 그래서 나를 뒤에서 욕하거나 싫어하는 선생님들도 많았고 사적으로 안 좋은 일이 겹치면서 독기가 찰 대로 찼다. 학교에서 실기시험을 치면 노래 부르다가 내려온다거나 싫어할 짓들을 많이 했던 것 같다. 학교에 많은 사람들이 내 춤을 인정하지 않았다. 기능적으로 별로 훌륭하지 않았고 기본이 잘돼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를 가르쳐주신 선생님은 내 춤을 좋아하셨다. 나는 춤을 잘 춘다는 건 그때 느끼는 걸 최대한 꾸밈없이 잘 묻어내면 춤을 잘 추는 것이라 생각을 했다.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연애도 엄청나게 했었다. 사실 연애에 미쳐있었다. 매번 만날 때마다 최선을 다했다. 입시 때, 선생님이 적어도 지금은 연애를 좀 멈추던 하는 게 어떠냐고 물었다. 나는 지금의 연애와 대학가서의 사랑은 다르고 지금은 지금밖에 할 수 없다고 얘기했다. 난 그렇게 생각한다. 춤은 마음이 없이 몸만 움직인다면 그냥 동작일 뿐이다. 물론 개념적으로 접근해서 움직임만으로 보였으면 하는 공연들도 있을 것이고 그게 잘못됐다고 얘기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마음이 담긴 춤을 추고 싶다면 그때그때 마음을 포장 없이 솔직하게 담아내야 한다.
 고1 때 사랑은 고1 때에만 할 수 있고 고2 때 분위기 속에의 사랑은 그때만 할 수 있다. 춤도 마찬가지다. 그때의 마음은 그때만 있으니 현재의 마음을 잘 담아내서 춤을 췄으면 한다. 그리고 동작이 몸에 익지 않아 어눌하다면 어눌한 대로 춤이라고 스스로를 인정해줘라. 나도 어렸을 때 생각해보면 내가 뒤늦게 무용을 시작해서 잘 못 따라 하고 있으면 저 뒤에서 소극적으로 하는 듯 마는 듯했던 것 같다.
 대학을 졸업하고 비교 대상이 없어지니 이제야 보였다. 그냥 어깨가 올라가고 골반이 다 빠진 내 모습도 그때의 나라는 것을. 가끔 능숙해진 내가 매력이 없다. 잘하게 되면 좀 더 날 것의 담백함이 사라진다. 난 어눌할 때의 매력은 엄청나게 큰 매력이라 생각한다. 어눌함을 없애려 하지 말고 어눌함을 열심히 발산하고 자신의 그런 모습을 좋아했으면 좋겠다. 그래야 순간순간 솔직한 마음이 춤에 묻어나고 자신만의 춤이 춰진다.
 자신이 춤출 때든 연애를 할 때든 몰입하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잘할 수 있지?’ ‘지금 내가 어깨를 올리고 있나?’라는 생각들로 가득차서 마음이 들어갈 공간이 없다. 어눌한 상태에서 능숙해질 순 있어도 능숙하다가 어눌해질 순 없다. 어눌한 모습을 스스로 인정하고 그대로 좋아한다면 훨씬 많은 가능성이 열린다. 어깨가 올라가 있으면 또 다른 느낌과 길들이 보인다. 정말로 많이 하다 보면 알아서 능숙해진다. 어눌한 것을 별로라고 생각하고 고치는 데 집중하기보다 당장의 모습을 좋아하고 사랑해서 열심히 몰입하고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더 나이가 들고 능숙해진 내 모습이 보일 것이다.
 입시가 있기에 남들과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는 걸 안다. 나도 입시를 치를 때 교수님들이 그냥 기본기가 잘 돼 있고 잘 움직이는 사람을 제일 좋아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정말로 제일 좋은 건 어눌함을 인정하고 쌓아왔을 때 진짜 자기의 춤을 추는 것을 좋아하실 거라 생각한다. 한국무용이라는 건 자신의 호흡으로 춤을 추는 거고 발레는 자신의 해석이 들어가고 현대무용은 자신의 마음이나 어떤 것들을 담아내는, 자신의 춤을 추는 게 무용 아닐까?
 난 그냥 연애도 열심히 하고 방황한다면 방황도 열심히 하고 춤추고 싶을 땐 다 쏟아 부어서 열심히 추고 춤추기 싫을 땐 제대로 뭐 여행을 가든했으면 좋겠다. 내가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방황 열심히 하라고 했지?’ ‘어떻게 열심히 하지?’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그냥 그 순간들을 몰입하고 빠져있었으면 좋겠다. 계산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그냥 그 시간에 몰입하고 빠져서 살았으면 좋겠다. 알아서 춤에 묻어나올 것이다. 안무 또한 그 당시의 내가 작품에 담기는 거라 생각한다. 모든 예술이 그때의 내가 묻어 있는 거라 생각한다. 근데 순간순간에 잘 빠져서 살지 않았다면, 마음이 덜 쌓여왔다면 짙은 춤이 나오기 힘들지 않을까?
 클럽에 가고 싶고 빨리 술도 눈치 안 보고 마셨으면 좋겠고 어른이 돼서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생각을 아마 한 번씩은 할 거다. 다들 하는 얘기겠지만, 정말 교복 입을 일은 지금밖에 없고 몰래 술 마시다가 걸릴까 봐 마음 졸이는 일도 지금밖에 할 수 없고, 연애하며 돈이 부족하고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제한돼서 길을 방황하며 종일 걷기만 하는 때도 지금밖에 없을 거다. 엄청 매력적인 것들이다. 그때의 경험을 하고 있을 때 나오는 춤도 엄청 매력적일 것이다. 그 순간이 자유롭게 어른이 되고 경험하는 것들보다 훨씬 좋았고 매력 있었다. 그때를 진짜 제발 즐겼으면 좋겠다.
 어차피 나이 먹는다고 생각과 마음이 깊어지지 않는다. 나이 먹으면 생활이 자유로워지는 건 있지만 마음의 깊이는 위에 얘기한 것처럼 그때그때 몰입해서 열심히 마음 아파하고 하는 것들이 쌓여서 깊이를 만든 것 같다. 애인과 싸우거나 나이가 들며 경험을 하다 보면 상처받는 경험들도 생길 것이다. 그럴 때마다 두 가지 갈림길에 설 것이다. 상처 안 받으려고 마음을 사람들에게 안 쓸 것인지, 그래도 또 마음을 써볼 것인지. 사실 상처라는 건 베이거나 부닥치고 난 이후에 시간이 지나봐야 상처가 됐는지 안 됐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상처도 나 봐야 회복하는 법도 알고 다치지 않는 요령들도 생긴다.
 나 개인적으로 추천하고 싶은 건 그런 마음들도 상처받지 않기 위해 마음을 안 쓰는 선택을 하기보다, 마음이 소진할 때까지 바닥도 쳐보고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렇게 소진하며 쓸 때 또 두 갈래가 나온다. 부정적인 생각들로 빠져서 사고를 친다든지 아니면 그냥 마음 아파하고 그 마음에 빠져 있다가 다시 긍정적으로 마음을 일으켜 세울지. 마음도 단계가 있다. 연습과 준비가 안 돼 있는데 바로 크게 힘들면 일어날 힘이 없다. 일어날 마음의 힘을 길러서 매 순간 솔직하고 진정성 있는 마음들을 썼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나중에 막 일부러 본인에게 상처 내서 감정이나 정서를 느끼려고 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예술 하는 사람들이 제일 많이 하는 실수고 인생이 잘못하면 무너지는 선택이라 생각한다. 난 인생이 있어야 그 안에 예술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들 인생을 무너트리지 않고 맑고 밝게 그리고 진정성 있게 잘하는 데 집착하지 말고 좋은 춤 췄으면 한다. 그리고 잘하는데 집착해서 재미없고 힘든 시간 보내지 말고 좋은 춤, 좋은 시간들 보내서 좋은 추억 많이 쌓기를.


Yes, and?(좋아, 그리고?)

 

산책하고 춤추기만 하는
철없는 20대

 

입시 경쟁에 놓이다 보면 누군가와 비교하는 순간들을 많이 마주하게 됩니다. 누군가와 비교하면서 ‘나’를 우위에 둬야만 내가 원하는 위치에 가게 되니까요. 우리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지만 그 안에서 서로를 존중하면서 판단하지 않는 것을 익히는 것도 중요합니다. 누군가를 부정하지 않는 것이 곧 나를 부정하지 않는 첫 번째 일이 될 겁니다. 이상한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춤을 추고 있는 어린 시절의 나를 되돌아봤을 때 가장 들려주고 싶은 말입니다.
 제 얘기로 시작해 볼게요. 저는 키도 작고 성격도 소심해서 춤을 전공하는 또래 친구들을 만나면 의기소침해졌어요. 그리고 나는 쟤보다 무엇이 부족한지 나열하고 그 부분을 나아지게 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죠. 첫 입시장에서도 여러 명의 친구들과 한 방안에서 대기하고 있으면서 눈치를 보며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 분위기에 압도돼서 시험을 망치고 나왔어요. 그리고 재수생이 된 거죠. 조금 억울했어요. 왜냐하면 그동안 준비한 것들을 보여주지도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죠.
 그 때부터 생각했던 건 주변을 신경 쓰지 않고 내가 할 건 하고 나와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어요. 누구도 책임져 주지 않는구나. 그렇게 또 한해를 준비해서 입학하게 된 학교에서도 재수하면서의 저의 태도는 유지가 되었어요. ‘아무도 신경 쓰지 말고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건 보여줘야 한다.’ 그랬더니 생각한 대로 해내지 못하면 중압감과 부담감으로 회복되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스스로에게 화살이 향했어요. 크게 넘어지는 순간 회복력이 느려지더라구요. 인정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스스로를 깊게 끌어 내렸던 거예요. 그래서 상대방을 인정하면 내가 더 낮아지니까 인정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 록 느끼게 된 건 혼자 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겁니다.
 대화를 나눌 동료들과 선배들이 필요하고, 그것에서부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하게 됩니다. 내가 누구인지 나의 취향은 무엇인지. 나를 낮출 필요도 누군가를 낮춰 이야기 할 필요 없이 ‘Yes, and? 좋아, 그리고?’ 라는 질문을 통해 궁금해 하고 대답해 나가보길 권합니다.
 청소년기에도 책을 많이 읽으며 글을 써보고, 여행을 하며 경험을 많이 하고, 최선을 다해서 진심으로 춤추는 것만큼 스스로를 사랑하고 나를 보살펴 주세요.


더 나은 내일을 살아갈 나에게 하는 질문

 

청소년기에 춤을 전공한
직장인 20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게 맞는 걸까?’
 나의 청소년기를 되돌아보면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청소년기 이후인 지금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아 나아가고 있는 중이다.
 내가 춤에 처음 입문하게 된 과정은 친구 따라 무용학원에 갔다가 선생님 권유로 우연히 시작하게 되었다. 춤을 추면서 재미를 느꼈고 대학이라는 명확한 목표를 위해 입시에만 집중하면 되었던 시기였다.
 대학 입학 후, 나는 무용 이론·공연 기획이라는 막연한 목표만 있을 뿐 그것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 스스로 찾을 생각을 못 한 채 학교 전공과 교과과정에 집중하며 학부 시절을 보냈다. 그렇게 졸업을 앞두고 졸업 작품 오디션 도중 다리 부상을 입어 강제로 휴식 시간을 가지게 되었는데 이 시기를 통해 지금까지 해왔던 것들이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이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져보았고 그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아니’였다.
 앞서 말했듯 무용 이론과 공연 기획 쪽으로 공부와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실기 위주의 학교 교육과정에 집중하였던 나는 막상 내가 정말 배우고 싶었던 것에 대해 적극적으로 배우지 못했었다. 그래서 졸업 후 내가 정말로 하고 싶었던 공부를 위해 대학원에 진학하였다. 또한, 관련된 대외활동과 인턴 활동을 통해 경험을 쌓았고 방학 기간에는 해외문화교류 연수를 다녀오며 학문적 견문을 넓혔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꾸준히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이 있을지 찾아보며 나의 목표에 한 걸음씩 나아가는 중이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청소년기에 내가 하고 싶은 걸 적극적으로 찾았더라면 지금보다 나의 목표에 훨씬 더 가까이 다가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이 사실이다.
 나와 같은 아쉬움이 남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내가 생각한 청소년기에 하면 좋을 것들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첫째, 모든 것에 ‘틈’을 줄 것. 옛날 석탑을 만들 때 틈 없이 너무 빡빡하게 만들면 비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폭삭 무너지지만, 일정한 틈을 두고 만들면 오히려 더 견고해진다는 내용의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나는 사람도 마찬가지로 모든 것에 각자 개인만의 틈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틈은 누군가에게 사람 간의 관계에서의 틈일 수도 있고 다른 누군가에겐 일 또는 경력에서의 틈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 ‘틈’을 통해 누군가와의 관계를 되돌아보거나 지금까지의 해오던 일을 정리해보며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사람 간의 관계에서 틈이 없다면 서로에 대한 오해나 불만 등을 풀지 못하여 관계가 와해되고 일을 틈 없이 하다 보면 번-아웃이 오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조급해하지 말고 자신만의 ‘틈’을 통해 스스로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둘째, 나의 이야기를 ‘글로 표현’ 해볼 것. 나는 글쓰기에 익숙한 사람은 아니다. 특히 나에 대한 글쓰기는 아직도 어색하다. 하지만 글은 모든 것에 기초이며 문화예술이 행해지기 위한 시작점이다. 글이 영화가 되기도 하고 공연이 되기도 한다. 춤 활동을 하면서도 글쓰기는 필수이다. 예를 들면 시놉시스를 쓴다거나 지원서를 쓴다거나….
 꼭 어떤 것에 대해 논리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감정, 자신의 작품을 이야기하는 것인데도 글로 쓸 때 많은 어려움이 있다.
 책을 읽든, 공연을 보든, 별로 특별한 날이 아닌 날에도 나의 언어로 나의 글을 꾸밈없이 써보며 나의 이야기를 ‘글로 표현’해 보는 것은 내가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성을 다듬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솔직히, 청소년기에 하면 좋은 것들을 쓰자면 끝이 없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내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두 가지를 소개해보았다. 물론 모든 사람마다 각자의 가치관도 다르고, 하고 싶은 것도 다르기에 내가 소개한 내용이 도움이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 있겠지만 결국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꼭 자신에게 이 질문을 던져보라는 것이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게 맞는 걸까?’

2021. 6.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