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사각지대의 예술인, 법적 지위부터 살려야
어느 영화 작가의 사건 이후

본 기사는 춤웹진의 자체 취재를 중심으로 인터넷 보도 내용을
참조하여 작성되었음을 밝혀둔다. - 편집자
 


 32살의 전도유망한 영화 작가 최고은씨가 지난 1월 기아 상태로 숨진 채 발견됐다. “남는 밥과 김치가 있으면 문 좀 두들겨 달라”는 쪽지를 남겼다 해서 더욱 뼈아프게 전달됐던 최고은씨의 사연은 많은 이들에게 우리 예술계를 되돌아보게 하였다. 또 사건 직후부터 예술인의 사회 안전망 구축이 시급하다는 여론이 언론에서, 그리고 국회에서 있어 왔다.
 한 영화 작가의 죽음이 부른 파장은 길고도 깊다. 근원을 물어 가면, 이 사건은 ‘자신이 원해서 선택한 일을 하니 돈을 못 버는 것쯤은 스스로 감수해야 한다’는 사회적 통념이, 그리고 최소한의 사회 안전망인 4대 보험과 실업급여도 제공하지 않은 채 이 시대의 예술가들을 복지의 사각지대로 몰아넣는 정책 부실이 부른 미필적 고의에 속한다. 그간 예술인 복지를 위한 입법이 추진되었을 뿐 그것이 실현되지 않은 상태에서 미필적 고의가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복지 사각지대의 ‘소외된 이웃’,
  문화예술인은 대한민국 국민인가

 “해당 정부가 예술적 표현의 자유를 조장시켜주는 분위기뿐만 아니라 이러한 창조적 재능의 표출을 용이하게 해주는 물리적 요건을 조성하고 지속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야말로 필요하고도 적절한 것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예술가가 자신이 원할 경우에는 문화 활동에 적극적으로 종사하는 인간으로서 고려되고 따라서 그의 예술가적 직업의 특수한 여건을 고려하여 노동자의 지위에 관계되는 일체의 법적·사회적·경제적 이익을 누릴 수 있는 권리를 확인하고….”
 1980년 제21차 유네스코 총회에서 채택된 ‘문화예술인의 지위에 관한 권고(UNESCO Recomm-endation on the Artists)’의 일부다. 이와 대조적으로, 작년에 유네스코 가입 60주년을 맞은 우리나라에서는 젊은 예술인이 끼니를 거르고 아픈 몸을 건사하지 못해 요절한다.
 최고은씨 소식을 접한 국회 최문순 의원(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민주당)은 “2009년 예술인의 지위를 보장하고 창작활동을 적극 보장하는 내용을 담은 ‘예술인 복지법’ 제정(안)이 국회에 제출됐으나 법무부와 기획재정부, 노동부 등의 반대로 문방위 상임위에 계류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정부 부처의 반대로 법안이 통과되지 못하고 있는 사이, 대한민국은 최고은씨를 비롯 대중가수 이진원씨까지 벌써 두 명의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 이처럼 알려진 사건 말고도 얼마나 기막힌 사연들이 묻혀 왔겠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예술인 복지 정책에 관한 논의가 번번이 불발에 그쳐버리는 역사도 십 년을 내다보고 있다. 2004년 참여정부 시절, 이창동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은 ‘새예술정책’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예술인에 대한 사회적 예우 강화’를 과제로 제시하며 4대 보험과 예술인의 사회적 지위 등에 관한 내용을 공론화하려고 시도하였다. 그러나 장관 교체와 함께 논의는 수면 아래로 잠겼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 ‘100대 국정과제’에 문화예술인공제회를 포함시켰으나 예술인들의 공감을 얻지 못한 채 오히려 반감이 드세었다. 공제회란 일정액을 불입해 일시금이나 연금을 받는 제도인데, 안정적 수입이 있는 예술인들만을 위한 제도라는 지적이었다. 이후 별다른 대안이 제시되지 않은 상태였다가 2009년 문화체육관광부가 문화예술인공제사업 등 문화예술인 복지 관련 규정 강화를 내용으로 한 문화예술진흥법 개정안 입법을 추진했으나 다른 부처의 반대로 무산됐다. 같은 해 ‘예술인복지법’ 두 건이 각각 정병국 의원(한나라당)과 서갑원 의원(민주당)의 대표발의로 국회에 제출됐다. 이 두 건의 법안 역시 관련 부처의 반대 의견으로 2년째 국회에 계류 중이다.
 정부 부처는 도대체 무슨 이유로 예술인을 대상으로 하는 복지정책에 번번이 반대 의견을 피력하는 것일까? 최 의원에 따르면 “법무부는 ‘예술인’ 개념 정의에 대해 포괄적이라는 이유를 들어 ‘예술단체의 난립과 국가예산낭비’를 우려했다”며 “근로인정 문제에 대해서도 ‘고용관계가 없는 사람에 대한 근로자 지위인정은 법 적용의 혼란을 초래할 것’이라는 의견을 제출”했다고 말했다. 또한 “기획재정부는 법안 논의 과정에 예술인복지재단의 신설문제에 대해서 예술인이라는 특수성을 충분히 감안하지 않은 채 ‘타 업계종사자와의 형평성’을 문제 삼아 법안에서 이를 삭제할 것을 요청했고, 또 노동부는 공적지원을 매개로한 실업급여·퇴직급여에 대해서도 삭제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영화 수출을 자동차 수출에 비견하면서도, 신조어 ‘컬쳐노믹스culturenomics’를 수도 서울의 정책비전으로 홍보하면서도, 정부는 문화예술인들에게 법적 지위를 부여하기를 꺼린다. 문화는 ‘산업’의 지위를 차지했는데 그에 종사하는 ‘인력’은 법에서나 정책에서나 유령상태다. 법적지위를 획득하지 못했으므로, 복지정책에서 소외되는 건 정해진 귀결이다. 그 같은 상황으로 인해 대다수의 문화예술인들은 생계 위협을 감내하고 있다. 2009년 기준, 예술 활동으로 벌어들인 월평균 소득이 1백만원 미만이라고 답한 문화예술인은 66%에 달했다(문화관광부 예술인실태조사). 그 중 무려 37.4%는 수입이 ‘없다’로 나타났다.
 예술계의 여론 역시 사회 안전망 구축이 시급하다는 것이고, 춤계 입장도 그와 유사하다. 춤계의 한 중진 인사는 “예술이나 춤이 개인적 소관이 아니라 가치 있는 사회적 활동임을 인식하면서도 그 생계를 전적으로 개인의 소관으로 돌려 버리는 이중적 태도가 우리 사회에서는 강한데, 누가 봐도 매우 이기적 태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이런 이기적이면서 양면적인 태도를 반성하는 전제가 선행되어야 하겠고, 예술인과 무용인에게 시혜를 베푸는 자세가 아니라 그 소중한 가치를 함께 나누는 데 필요한 의무로서 예술인-무용인 복지 제도를 가급적 조속히 범사회적으로 추진해야 할 것이다”라고 지적하였다.



 │문화 선진국, 문화예술인 보호망 갖춰


 유럽 국가들은 문화예술인에 대한 다양한 복지정책과 사회보장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프랑스의 공연예술비정규직 실업급여제도인 ‘엥테르미탕(intermittent du spectacle)’은 그 대표적 사례로 잘 알려져 있다. 엥테르미탕은 예술가들의 작업이 프로젝트 단위로 이루어진다는 특성을 반영해 수급자격․기간․수입금액 등의 기준을 낮춘 특별실업보험체계이다. 영화·방송·음악·공연 등의 부문에서 일정 기간 계약을 맺고 단속적 기간제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기술자․배우․연주자 등을 대상으로 10개월간 최소 507시간을 일하면 이후 일자리가 없더라도 최장 8개월간 하루 최저 25.90유로(2006년 기준, 약 3만9천원)를 지급한다. 한국문화관광정책연구원이 발행한 <예술인 정책 체계화 방안 연구>(2006) 보고서에 따르면, 2005년 기준으로 프랑스의 예술 산업 종사자 30만 명 중 약 15만 명이 엥테르미탕의 지위를 인정받았고, 그중 약 10만 명이 이 제도의 혜택을 받았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활동하는 예술인은 예컨대 ‘예술인의 집’(시각예술)과 ‘작가사회보장협회’(AGESSA·작가)를 통해 정규직과 같은 조건의 지위를 누린다.
 독일은 문화예술인들을 위한 보험료의 절반을 정부와 저작권 사용자가 부담하는 ‘예술인 사회보험제도(KSK)’를 운영하고 있다. 이 제도로 예술인들은 연금, 의료보험 및 요양보호 서비스를 지원받는다. 특히 신인들은 특별 제한 없이 3년간 예술 창작 활동을 지원받을 수 있다.
 이와 같은 다른 문화 선진국들의 정책이 문화예술단체와 정치권에서 검토되고 있고 우리 실정에 어떻게 적용시킬지 고민이 시작되고 있다.



 │예술인 복지, 새 출발선

 이번 취재에서 익명을 요구한 어느 젊은 무용인은 “정부 정책이 전무한 것도 문제지만, 문화예술인들 스스로도 그 법적 권리를 인지하고 요구해야 할 것이다”고 공감을 표하면서도 조금 다른 시각에서 “‘예술인이란 무릇 돈과는 상관없이 자기 좋아 하는 일을 하는 집단’이라는 사회적 오해는 예술계 내부에서도 발견된다. 이는 교육과정에서도 빈번히 드러난다”고 하면서 예술계 내부에도 원인이 있을 것임을 환기하였다. 이 무용인은 사견임을 전제로 “지도교수 공연을 둘러싼 내부 관행이나 장학금 수혜자 선정 등의 관행으로 미루어 교육과정에서부터 권리와 책임 관계가 불투명한 마당에, 사회에 나가 정당한 처우와 권리를 당당히 주장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의견을 밝혔다. 잠자는 권리, 미약한 권리 의식에 편승하여 예술인 복지마저 잠자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2월 23일 아르코예술극장에서는 문화예술계 종사자들의 권익 개선과 복지 향상을 위한 ‘공연예술인 권익 공동대책위원회’(위원장 박동순·박장렬·이종일)가 출범했다. 서울연극협회와 한국무대감독협회, 한국소극장협회 등 11개 단체가 참여한 공대위는 이날 성명을 통해 “공연예술인들의 경력 인정 법제화, 공연예술인 복지를 위한 예술인 복지법 입법”을 촉구했다. 앞으로 영화계, 무용계와도 연대를 추진할 예정이다. 이 자리에서 연극인 출신 최종원 의원(민주당)은 “예술인 복지법안을 4월 국회에서 통과시키는 방안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같은 시기 국회에서는 박지원 원내대표(민주당)가 대표 연설에서 제2의 최고은씨가 없도록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4대보험 가입, 별도의 실업부조 등을 통해 창작활동을 할 수 있는 사회적 처우개선과 사회복지시스템을 구축해야 하고, 예술인복지법의 조속한 제정을 통해 문화예술인의 권익을 보호하고 창작활동을 권장 육성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리고 3월 4일에는 국회에서 예술인 복지 관련 토론회가 열렸고, 3월 10일에는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가 저소득 예술인들에 대한 복지지원을 골자로 하는 예술인복지법안에 대한 공청회를 열었다. 법안의 주요 내용은 예술인을 근로자로 간주해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있게 하고,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을 설립해 가입자에 대한 실업급여, 퇴직급여 등을 보장하는 것이다. 이 자리에서 참석자들은 다음과 같이 찬반 의견을 개진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연구위원은 “예술인 공제회의 설립 및 운영은 대선공약이자 국정과제였다”면서 “이를 통해 예술인들이 안정적인 노후를 고려해 낮은 수입일지라도 예술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고 주장한 반면, 고용노동부 고용서비스 정책관은 “근로자를 대상으로 보험을 적용하는데 예술인의 경우 전문직 등에 대해선 일괄적으로 검토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기획재정부 사회예산심의관은 “입법취지는 이해하나 예술인 공제회를 국민으로부터 걷는 재원으로 운영할 경우 문제가 된다”고 반대했다.
 이런 정황에서 예술인복지법안은 지난 3월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하고 다시 4월 국회로 넘겨졌다. 예술인복지법안이 의의가 크고 국회 입법이 마무리된다 하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예술인복지법안으로 가능한 것은 최소한의 사회복지이지만, 사회복지가 예술의 전부는 아니다. 또한 무용인들이 그러한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또 다른 대책이 요구될 것이다. 언젠가 그런 대책이 실현되어 춤계가 최소한의 여건을 마련한다면 지금보다는 춤 활동이 얼마간 수월해질 것을 예상할 수 있다. 이럴 경우 스스로 생계를 충족하며 창작 일선에 서야 한다는 과제가 ‘새롭게’ 제기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기 전에 최근의 국회 입법 추진 과정에서도 재확인되었듯이 이제까지 미비하고 흐릿했던 무용인과 예술인의 법적 지위부터 공고하게 마련하는 것은 사회의 책임임이 분명하다.



■ 어느 춤 예술인의 시각



 │결과를 위해 자기 주머니를 얼마나 털어야 하는 

아래 글은 최근의 최고은씨 사건에 대해 무용인이 기고한 것이다. 이 무용인은
30대 중반으로서 대학에서 현대무용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안무를 전공해서
소장 안무가로 활동하며 서울에서 거주하고 있다. - 편집자

 

  전 어제 통화 이전에는 한 번도 최고은씨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한 적이 없습니다. 아마도 이번 일에 대해 무관심해서가 아니라, 답답하기에 입도 마음도 닫혀버렸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일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다 한들 그 굳세고 높은 편견과 사고는 금세 이전의 자리로 중심을 잡을 테니까 말입니다. 결국 우리 사회 인식으로는 고은씨가 그저 가난하고 어쩌면 게으른 예술가로 생을 마감했다고 여길 것입니다.
 이 일이 결코 특별한 일이 아님을 예술가들의 일상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예술 학도들은 모든 것을 다 바쳐서 이 길에, 이 사회에 들어섰지만 우리 사회에는 ‘예술’이란 단어가 없는 것 같습니다. 예술이 있어도 그것은 ‘결과’에 치중되어 그 사이 일어나는 ‘과정’에 존재하는 예술가의 일상은 마치 ‘없는 일’, ‘존재 하지 않는 일’로 취급되고 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이른바 ‘유명세’를 타는 몇몇 예술가들을 제외한 수많은 예술가들은 수면 아래에서 배고픔과 빈곤보다는 더 슬프게 ‘예술가로서의 존재감’을 상실합니다.
 그 동안 자신의 믿음과 열정을 한 순간 우습게 포기해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과정이 결과를 낳습니다. 과정을 지킬 지지대가 필요합니다만, 결과를 낳기 위해 예술가들이 얼마나 자기 주머니를 털어야 하는지 우리는 그 끝을 알 수가 없습니다.
 고은씨가 주목 받는 신진예술가였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주목이 결코 실질적인 관심은 아니었기에, 그녀가 버틸 수 있는 지원이 이뤄졌다면 하는 아쉬움이 큽니다.
 주변을 돌아보세요. 재능있는 예술가들이 생업을 위해 생각보다 너무 많이, 너무 빨리 열정과 재능을 포기합니다. 제 친구들 중 몇몇은 비행기 삯을 마련해서 유럽으로 건너갔습니다. 그들이 유럽행을 선택한 이유에 저도 크게 공감합니다. 우리나라는 앞에 ‘가난’이 붙으면 ‘무능’과 동일시합니다. 그들은 가난한 예술가 즉 이 사회에 쓸모없는 존재로 사느니 차라리 가난해도 그저 ‘예술가’로 살 수 있는 나라를 선택해서 갔습니다. 그들은 여기에 못지않게 고생을 하며 자리를 잡아갔습니다. 자리를 잡을 수 있는 힘은 어쩌면 그저 ‘예술가로서의 인정’이 아닌가 합니다.
 한 친구는 프랑스에서 삽니다. 그녀는 그 곳에 처음 도착했을 때, 마사지사로 일했습니다. 그러면서 무용단 오디션을 준비하고, 레슨을 받고, 크고 작은 프로젝트 공연에 참가했습니다. 그녀가 활동한 지도 벌써 6년여인 것 같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예술가로서 등록하면 지난 공연과 앞으로 할 공연 사이에 쉬는 동안 그 이전 자신이 일했던 시간에 비례한 금액으로 생활비 지급을 해준다고 합니다. 연간 공연해야 할 기준 횟수가 있습니다. 그 횟수를 채우고 나면 나라에서 지급된 생활비로 자신에 대해 시간적 공간적 투자를 함으로서 예술가로서 지속적인 발전을 일굴 수 있을 겁니다.
 한국에는 그녀와 마찬가지로 생명력, 생활력이 있는 예술가가 참 많습니다. 어디서든, 어떤 상황에서든 그들이 원하는 바를 관철시킬 능력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바라봐주고 격려할 지지대가 없다면, 그 능력은 무의미합니다.
 춤 예술가들은 그저 ‘춤추며 살아갈 터’가 필요합니다. 춤․예술은 우리에게 쉼이 아니라 일이며, 일을 하면서 그만큼의 혹은 그것을 유지할 수 있는 지지와 터전이 필요합니다.
 제 꿈은 ‘한국이 낳은 안무가’입니다. 이 사회가 씨앗을 심고, 물을 주고, 거름을 주어 이곳에서 피어난 꽃이었으면 합니다. 그 아름다운 꽃을 보러 해외 예술가들이 우리에게 올 수 있었으면 합니다. 제 능력 바깥의 일일까요? 아니면 제 노력이면 가능한 일일까요?
 최고은씨에 대한 기사를 찾아보다가 저 역시 피가 마르는 것 같았습니다. 그저 고은씨가 하늘나라에서는 멋진 작가로 승승장구하길 바랍니다.

2011. 04.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