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그래서 우리춤사위처럼
맺고 푸는 과정은 역(易)의 운행과정으로 인생사의 매듭이자 고리이기도 합니다. 세시풍속도 그러합니다. 명절이란 지난 삶의 반성과 앞날의 밝은 전망이 교차하는 ‘날잡은 날’이고, 삶의 굴레가 맺고 풀리는 날입니다. 이렇게 하여 그날이 그날이 아니라 밋밋한 삶에 굴곡이 지어집니다.
맺고 푸는 것은 ‘감고 푸는 것’과도 통하여서 수렴과 확산입니다. 순환적 진화의 끝없는 ‘과정’(process)입니다. 한국 전통춤의 한 특성을 선묘(線描)적이라 한다지요. 특히 태극선의 선묘법이 그러합니다. 대부분의 민속춤 사위가 그러하고 승무의 감고 푸는 사위, 탈춤의 깨끼춤, 양사위, 겹사위, 곱사위, 농사 일춤의 몽두리사위 등이 다 그러합니다.
맺고 푸는 것은 동작으로선 엎어지고 제치는 것이기도 하고, 하나의 춤으로서는 전체 구성의 틀이 그러하기도 합니다. “내고 달아 맺고 푼다”라는 풍물의 구조나 문예작품의 ‘기승전결’(起承轉結 또는 발단, 전개, 절정, 대단원) 구조라든가 음악에서의 ‘기경결해’와도 통하지만, 앞부분의 ‘내고 달아’는 결국 ‘맺고 푸는’ 데에 품기울 뿐입니다. 대삼소삼(大三小三) 이라든가, 암가락 숫가락 사이의 배합 등도 맺고 푸는 묘미의 하나에 해당하지요. 맺고 풂은 때로는 긴장과 이완의 짙은 감정 곡선의 배합을 일컫기도 합니다.
경상도 굿거리 장단의 춤을 덧배기춤이라 하고, 그것의 중핵대목은 ‘배김새’ 사위에 있습니다. ‘배김새’ 춤사위는 지신밟기나 매구굿(埋鬼)과 관련이 깊어 ‘콱 배기듯’ 앞발을 들어 지신을 밟듯 강하게 디뎌 놓고 두 팔을 양 옆구리에 부딪쳐 튕겨나오듯 춤을 춥니다. 어르고 배기고 푸는 것은 배김새의 순차적인 진행입니다. 경상도 들놀음과 오광대의 말뚝이춤이나 양반춤이 그러하고, 동래학춤의 춤사위도 그러합니다. 이와 같은 떨배기의 배김새가락이 춤멋을 더해줍니다.
배김새는 ‘답지저앙’(踏地低昻)의 강력한 기운을 풀어냅니다.
땅에 발을 디디고 몸을 수그렸다 폈다 하는 동작으로, 천지인이 하나가 되어 하늘을 지향하고 빛을 받아들이는 디딤새의 동작입니다. 무릎을 굴신하여, 오금을 죽이고 도듬새를 놓는 그것은 우리춤의 중심동작이랍니다. 그 러한 하체동작을 관장하는 곳은 하단전이며, 생명에너지의 중심자리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는 원(原)단전에 해당하는 회음혈인데, 이는 생식과 배설 활동을 관장하는 자리입니다. 그러한 하단전과 회음혈이 신체활동의 중심이 되어 상체와 온몸의 운동을 불러일으키는 몸동작이 ‘답지저앙’입니다.
말하자면 하체동작을 토대로 해놓고 그 위에 상체동작을 얹어 몸짓을 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디딤새를 더욱 강렬하게 표현한 것이 ‘배김새’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디딤새의 모양은 ‘비정비팔(非丁非八)’입니다. 거기엔 흥청대는 듯하나 강인한 돌파력이 내장되어 있습니다.
한국 전통춤의 대부분이 종결부에 가서는 연풍대 동작으로 이어져 끝을 맺습니다. 이 동작은 한 발을 껑충 뛰어 내디디며 팔사위를 뿌리고는 앉아 맴을 돌면서 일어납니다. 풍물소고춤의 장기인 자반뒤집기를 연상해도 좋구요.
이는 좁게는 자전하면서 넓게는 공전하는 것이어서, 이 둘이 얽혀 있습니다. 이 또한 수렴과 확산의 ‘이중교호적인 얽힘’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앞의 수많은 직선과 곡선의 동작들은 마지막 연풍대가 감싸도는 큰 틀 속에 품기어 자유로운 정착감을 얻습니다. 이로써 유목적이면서 정착적인 세계로 진입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부단한 회전춤, 윤무(輪舞)이기에 끝마무리이면서도 끝나지 않아 기제(旣濟)이면서 미제(未濟)의 뜻을 아울러 품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또 다시 순환적 진화인 셈이지요. 신명인 기화신령의 세계는 이처럼 과거, 현재, 미래가 한 덩어리로 돌고 돌아 제자리에 와서는 또 새로운 것이 되어 떠납니다(無往不復). 원융적 세계이나 굴러 나아가는 이런 세계는 생성적 연기론의 순환적 진화의 세계입니다.
춤으로써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디는 새내기 춤꾼 여러분,
세상사, 맺고 풀고, 배기면서 돌아 다시 시작하는 연풍대처럼, 그래서 우리춤사위처럼, 몸굴려 순환적 세계에 이제 막 들어섰습니다.
-2020 신인춤제전 ‘젊고 푸른 춤꾼한마당에서’
채희완
현 한국춤비평가협회 회장. 부산대 명예교수, 〈(사)민족미학연구소〉 소장, 〈부마항쟁기념사업회〉 이사, 〈창작탈춤패 지기금지〉 대표를 맡고 있다. 저서로 『공동체의 춤 신명의 춤』, 『한국의 민중극』(엮음), 『탈춤』, 『한국춤의 정신은 무엇인가』(엮음), 『춤 탈 마당 몸 미학 공부집』(엮음), 『지극한 기운이 이곳에 이르렀으니』 등을 펴냈고, 그밖에 춤, 탈춤, 마당극, 민족미학에 관련된 논문과 춤 비평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