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한국춤비평가협회가 유럽에서 활동 중인 춤비평가 토마스 한(Thomas Hahn)을 초청하여 “유럽의 춤 비평문화”를 살펴보는 비평학술모임을 개최했다. 2020년 6월 30일 오후 3시, 마로니에공원 좋은공연안내센터 다목적홀에서 열린 모임은 이종호 한국춤비평가협회 상임운영위원장의 사회로 진행됐다. 모임 현장에는 무용수, 안무가, 기획행정가, 연구자, 비평가 등 50여 명이 참석했으며 2시간 반 가량의 긴 시간에도 불구하고 청중들은 끝까지 자리를 함께했다.
한국춤비평가협회 2020 비평학술모임 현장 모습 ⓒ춤웹진 |
강연자 토마스 한은 독일에서 태어나 함부르크와 파리에서 프랑스어, 문학, 연극을 전공했다. 1990년부터 파리에 거주하며 20년 넘게 독일의 권위있는 월간 무용전문지 〈탄츠(Tanz)〉의 프랑스 통신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프랑스 월간 무용전문지 〈Danser〉의 후속 온라인 잡지인 〈Danser Canal Historique〉에서 편집위원을 맡고 있으며 파리시립극장(Théâtre de la Ville in Paris)과 같은 프랑스 극장의 무용 프로그램 작가로 일하고 있다. 그 외에도 프랑스·독일의 세노그라피 관련 잡지 기고, 무용 서적 집필, 무용 페스티벌의 작가·모더레이터·강사로 활동 중이며 파리 공연예술에 관한 프랑스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을 맡고 있다.
이날 포럼은 강연과 질의·응답 시간으로 진행됐다. 한 시간 가량 이어진 토마스 한의 강연에 는 유럽 춤비평의 역사에서부터 오늘날 춤비평이 처한 국면과 춤비평가의 의미, 유럽의 최신 춤 경향에 이르는 폭넓은 주제가 집약적으로 논의되었다. 특히 강연자는 춤비평의 현재를 “21세기 들어 인터넷으로 빠르게 옮겨간 비평은 경제적 요소도 이동했으며 소위 패스트푸드와 같이 글의 질적 변화도 가져왔다. 이런 상황에서 춤비평가가 무엇인지 말하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고 진단하면서 “결국 모든 것이 일의 질에 따라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비평의 질을 보존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또한 춤비평가의 지위를 “무용계에서의 인식된 정도만을 언급할 수 있을 뿐이다. 오늘날 가장 유명한 춤비평가들도 프리랜서들이며 춤비평가의 지위는 오직 완성된 작업과 역량에 대한 비공식적인 인정에 기초하여 존재한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춤비평가의 활동과 그에 따른 경제적 여건은 “무용이 사회의 현재, 미래의 상황과 얼마나 강하게 연결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면서 “안무가들이 사회에 적절한 질문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들이 관심을 끌 수 있는 적절한 언어를 찾는지 여부에 따라 상황은 바뀔 것이며, 물론 비평가들도 그것들에 대해 이야기할 적절한 언어를 찾아야 한다”고 전했다.
한편, 유럽의 최신 춤 경향으로 가상현실과 춤의 만남, 여성 안무가들의 에코페미니스트 작업을 소개했다. 이와 같은 사례는 사회 흐름과 관계한 춤의 모습을 들여다보고 이를 적확히 짚어내는 비평의 역할에 대해 재고하게 했다. 토마스 한의 “유럽의 춤 비평문화” 발제 전문은 〈춤웹진〉 7월호에서 확인할 수 있다.(http://koreadance.kr/board/board_view.php?view_id=271&board_name=plan)
한국춤비평가협회 2020 비평학술모임 강연자 토마스 한(Thomas Hahn) ⓒ춤웹진 |
강연에 이어 Q&A가 진행됐다. 청중들의 질의와 강연자의 응답 내용을 정리하여 공유한다.
- 한국 안무가들의 해외진출이 많다. 유럽에서는 과거와 달리 현재 한국 안무가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대체적으로 어떤가?
사실 한국 무용가들이 유럽에서 투어하는 경우가 아주 많은 상황은 아닌 것 같다. ‘2015-2016 한-불 상호교류의 해’를 기념한 국제교류 행사로 다양한 현대무용, 전통무용 공연이 있었는데 어떤 일인지 이후로는 중단되었다. 유럽의 비평가들은 대개 컨템퍼러리 언어로서 한국의 춤을 읽거나, 간혹 전통과 유기적 관계를 갖는 것으로 짚어내기도 한다. 하지만 한국의 문화는 아직 미국·일본·이스라엘에 비해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많은 유럽 비평가들이 한국 문화를 잘 모르기 때문에 한국 춤작품의 섬세한 부분까지 읽어내지 못하는 것 같고 컨템퍼러리 작품으로만 읽어내는 듯하다.
2008년 서울세계무용축제에서 4~5개 한국 현대무용단의 공연을 관람했다. 당시 일본·호주·영국·프랑스의 저널리스트들이 있었는데, 관람 후 한국 관계자가 한국춤에서 무엇이 특별한지 물어왔다. “실은 잘 모르겠다”고 대답하자 “숨을 쉬는 게 다른 것 같지 않느냐”고 재차 물어와서 “그런 것 같다”고 답했다. 외국 저널리스트들은 굉장히 섬세하고 깊은 한국만의 표현 방식을 읽어낼 만큼 한국 문화를 잘 알지 못한다. 한국춤, 한국문화에 대한 상세한 소개가 있었으면 한다.
- 한국 춤계에서 주목하고 있는 무용수나 안무가가 있다면?
안타깝게도 최근 젊은 안무가나 작은 프로덕션을 보기 어려웠던 상황이어서 답을 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안무가 안은미의 작업은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다. 한국뿐 아니라 전세계에 어떤 이야기를 내놓을지 관심이 있다.
- 한국과 마찬가지로 유럽에서도 춤비평가들이 지원사업 심사 활동에 참여하는가?
프랑스는 국가의 직접 지원사업, 시 또는 지방정부의 지원사업 등 복잡한 펀딩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새로운 작품을 만들 때 심사에 참여한 적이 꽤 있다. 심사는 20명 정도의 전문가들로 이뤄지는데, 주로 극장·페스티벌의 디렉터, 아티스트, 저널리스트 등으로 구성된다.
- 유럽 춤비평의 현황을 정확하게 알고 싶다. 발제문에서 독일 일간지 “〈디 벨트〉는 아직도 독일의 대형 연극이나 오페라에 대한 비평을 게재하지만 춤은 거의 없다”고 했는데, 현재 전문 비평가가 일간지에 쓰는 춤비평이 유럽에 존재하는지, 과거보다 줄어들었다면 얼마나 줄었는지 궁금하다. 예술분야 비평 가운데 춤이 실리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춤 예술의 특수성인가, 아니면 일간지에 실리기에 부적합한 다른 이유가 있는가?
정확한 통계를 모르겠지만 프랑스 경우 3~4개의 주요 일간지에 일주일에 3~4편 춤에 관한 기사가 실린다. 물론 시즌에 따라 게재량이 다른데 아비뇽페스티벌 때문에 여름시즌에 평문이 많이 게재된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나오는 춤 창작물에 비해 충분하지 않은 글들이 작성되고 있는 실정이다.
일간지 춤비평은 은퇴 비평가들을 대체하는 젊은 비평가들의 글로 게재되고 있으나 확실히 그 수는 줄어들고 있다. 국가 간의 물리적·정치적·심리적 경계가 두터워지면서 다른 나라와 문화에 대한 글이 적어진 것도 하나의 요인이다. 프랑스의 경우 춤비평이 상대적으로 많지만 독일이나 영국 등 현대무용에 대한 관심 자체가 프랑스보다 적기 때문에 춤비평도 적다. 어쨌든 프랑스도 전보다는 줄어든 상황이고 점점 더 줄어드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고 있다.
춤을 전달하고 있는 미디어를 잃어버리면 페스티벌과 기관의 관심이 낮아지게 될 것이고 결국 펀딩이 줄게 된다.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면 문화에 타격이 오고 춤에 관심이 줄어 더더욱 어려운 상황에 처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춤이 어떤 가치가 있을지,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더욱 고민해봐야 한다. 일간지에 춤비평을 기고했으나 더 이상 돈을 받고 글을 쓸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사라진다는 것은 단순히 글을 싣지 못한다는 것 이상이기 때문에 자리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중이다.
- 유럽에서는 춤을 해석/평가하는 춤비평가, 저널리스트, 블로거, 유튜버 간의 명확한 구분이 있거나 지위의 차이가 있다고 보는가?
프랑스에는 여러 예술장르의 웹사이트가 있고 그곳에 기고하는 작가들이 있는데 실제로 젊은 저널리스트와 비평가가 동등한 지위를 갖는다. 개인 블로거는 극장, 페스티벌과 관계를 맺어 작품 리뷰글을 작성하기도 한다. 저는 스스로 비평가보다는 저널리스트라고 스스로 생각한다.
- 좋은 비평글의 요소는 무엇인가? 비평에서 중요한 기준으로 삼고 있는 요소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글보다는 어떤 말을 쓸지 모르겠는, 미처 기대하지 못한 글을 쓰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작품을 열린 마음으로 작가가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듣고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대학 시절, 비평가였던 스승께서 하셨던 말씀인데 “부정적으로 평을 쓰면 결국 그 아티스트에게 ‘왜 내가 보고 싶은 것을 만들지 않았냐’는 말이 된다”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안무가의 관점을 이해하는 열린 태도이다.
- 춤비평가로서 개인적으로 가장 즐겁고 행복했던 경험이 있다면?
크게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누군가가 나의 작업이 흥미롭다면서 더 해주겠냐는 제안을 할 때였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떼아트르 드 라 빌에서 더 많은 집필을 요청해주었을 때 매우 기뻤다. 두 번째로는 새로운 나라, 문화를 접하고 여행하며 체험할 수 있는 점이다. 춤비평가로서 한국, 미국, 러시아 등을 방문하고 경험했던 일이 즐거웠다.
- 유럽의 춤페스티벌이 올해 모두 취소되었나? 극장에서 무용단 공연이 이뤄지는지도 궁금하다.
유럽의 페스티벌은 대부분 취소되었다. 프랑스는 지난주(6월4주)에 극장을 열어도 된다는 정부 방침이 있었는데, 일단 해외무용단은 입국하지 못하는 상황이고 프랑스단체들은 지금까지 외출이 자유롭지 않았고 리허설도 작업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당장 극장이 열렸다고 해서 공연을 올릴 수 없는 상태다. 올해 말부터 극장들이 작품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 코로나19 상황에서 랜선공연으로 해외 유수단체의 작품을 보는 즐거움이 없잖아 있기도 하다. 뉴노멀을 말하는 앞으로의 시대에서 무용이라는 장르가 프로시니엄 무대 위 현재적 방식 외에 미래의 무용을 전달하는 대체 방식이 있다면 무엇일까?
춤의 온라인 스트리밍에 관해 낙관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안무가가 미디어를 사용하는 것이 가능할까? 기술, 재료, 공간 등을 사용해서 새로움을 창조해내는 혁신적인 아티스트가 안무가이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연구하는 또 다른 분야가 될 것이다. 최근 이 분야에 대해 새롭게 공부하고 있다. 물론 스크린으로 보면 실제 질감을 느끼는 것에는 한계가 있지만 여전히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영역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 온라인 스트리밍에 대한 일반 관객들의 반응은 어떤가?
온라인 스트리밍을 관람한 관객들의 반응에 대해 확답을 내리기 이르다. 심각한 상황이 지속되면 더 활발해지겠지만 아직까지 본격적으로 온라인 공연의 시대가 열렸다고 보기엔 이른 것이다. 지금은 리서치 단계이다. 처음에는 무용수들이 집에서 연습하는 장면을 줌(zoom)의 분할 화면에서 공유했다가 점차 안무가들이 좀 더 예술적인 창작물을 온라인으로 선보이고 있지만 아직 실험하는 단계라고 본다.
- 혼돈의 시대, 무용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무용의 예술적 가치와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코로나 이후 경제적 타격과 이것으로 인한 연쇄 작용으로 무엇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이다. 예술이 사람과 자연, 물질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논의에 참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앞으로 펀딩이 줄어들 수 있는데 이럴 때일수록 예술, 특히 춤이 더 접근성을 높여 사회에 다가가야 한다. 앞으로 어떻게 진화할지 모르겠지만 춤의 가치는 유효하지 않겠는가.
김인아
한국춤비평가협회가 발행하는 월간 〈춤웹진〉에서 무용 전문기자로 활동 중이다. 창작과 수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가치에 주목하여 무용인 인터뷰를 포함해 춤 현장을 취재한 글을 쓴다. 현재 한예종에서 무용이론 강의를 병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