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현재 한국 사회에서 동남아시아 국가들 중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국가를 꼽으라고 한다면, 단연 베트남일 것이다. 1992년 수교 이후 한국과 베트남의 관계는 비약적으로 발전해 오고 있다. 1992년 국교를 재개한 이래 인적·물적 교류가 비약적으로 늘어나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사이가 되었다. 한국에서 베트남에 대한 관심은 우선 경제적인 측면을 들 수 있다. 베트남은 많은 한국인들에게 새로운 기회의 땅으로 받아들여지면서, 베트남은 미국, 중국(홍콩 포함)에 이어 우리나라의 제 3위 투자대상국임과 동시에 아세안 지역에서는 최대 투자대상국이 되었다. 불과 몇년 사이에 한국의 굴지의 대기업들은 물론 다양한 규모의 기업들은 베트남에 앞다투어 진출하여, 베트남 경제 발전에 핵심을 이루고 있다. 또 2-3년 전부터 동남아시아에서 한국인이 가장 많이 찾는 관광지 중 관광 대국인 태국의 방콕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는 곳이 바로 베트남의 다낭이다. 이와 함께 최근 2년간 베트남 거주 한국인의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데, 2019년 현재 공식적으로 17만3000여명 정도로 집계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대략 호찌민시 지역에만 약 15만 명 정도, 하노이시 지역에 약 10만 명 정도가 거주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반대로 베트남에서 한국을 바라보는 시선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경제적으로 한국은 2014년부터 베트남에서 단연 1위 투자국이다. 방송, 가요, 영화, 게임, 패션, 음식 등 모든 분야에 걸쳐 한국에 관한 열기가 뜨거운 가운데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한국어 배우기 열풍이 일고 있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한국어능력시험인 TOPIK 응시자 수의 폭발적인 증가이다. 2018년 한국어능력시험인 TOPIK을 치른 학생은 2만3939명으로 2017년 대비 무려 29%가 늘어났다. 또 한국에 거주하는 베트남인들의 수는 대략 15만명 정도로 결혼과 취업을 통해 들어오는 경우 이외에도 최근에는 한국으로 유학을 오는 학생들의 수가 급증하고 있는데, 이는 중국 유학생 다음을 차지한다.
이처럼 한국과 베트남은 최근 들어 급격하게 가까워지며 관심이 폭발하고 있다. 이에 호응하여 한국에서 베트남에 대한 다양한 연구와 보고서들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함에도 불구하고 현재 한국에서 베트남의 춤은 말할 것도 없고 대략적인 문화 예술에 관한 간략한 보고서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므로 아쉬운 대로 우선 간략하게나마 앞으로 몇 회에 걸쳐 베트남의 춤 인프라와 대략적인 춤계 현황에 관련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프랑스 식민지 시대 베트남 춤 극장들
베트남은 개발도상국이다. 이러한 경제 발전단계 나라들의 도시들이 흔히 그렇듯 베트남 역시 도시화에 따라 지속적으로 인구가 증가하면서 사회간접자본의 극심한 부족을 빚고 있다. 이는 베트남의 춤 인프라에서 바로 살펴볼 수 있다. 현재 베트남에서 춤 공연이 가능한 극장 중 그나마 제법 규모와 시설을 장소는 많지 않다. 먼저 이번 호에는 프랑스 식민지 시대 지어진 극장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식민지 시대 지어진 대표적인 극장으로는 하노이 오페라 하우스(Hanoi Opera House, 베트남어: Nhà hát lớn Hà Nội), 호치민 예술 극장(Municipal Theatre of Ho Chi Minh City, 베트남어: Nhà hát Thành phố Hồ Chí Minh) 그리고 하이퐁 오페라 하우스(Haiphong Opera House, 베트남어: Nhà hát lớn Hải Phòng)이다.
하노이 오페라 하우스 |
하노이 오페라 하우스 객석(좌), 거울의 방(우) |
우선 하노이 오페라 하우스는 프랑스 파리에 있는 팔레 가르니에(Palais Garnier)을 모방하여 지어진 건물이다. 팔레 가르니에가 그렇듯이 하노이 오페라 하우스는 기본적으로 호화롭고 화려한 것이 특징인 19세기 프랑스에서 유행하던 네오-바로크 양식을 채택하였다. 1901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1911년 완공된 본 극장은 프랑스 식민지 정부가 당시 하노이를 호치민시(당시 이름은 사이공)에서 프랑스 인도차이나 식민지(Indochine française)의 수도 정하면서 야심찬 계획 속에 1902년 개최한 하노이 국제 박람회(Exposition de Hanoi)와 관련이 있다.
전체적인 외관과 실내 장식 그리고 무대는 식민지 시대의 것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관객들이 마치 20세기 초 파리의 극장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하게 만든다. 부속 시설로는 도서관과 18개 분장실, 2개 연습실, 그리고 일반 접견실, VIP 접대를 위한 곳이었던 거울의 방(Mirror room)이 있다. 상주 단체로는 베트남 국립 오케스트라(Vietnam National Symphony Orchestra)와 국립 발레단(Vietnam National Ballet Company)가 있다. 본 극장은 오페라와 발레을 위해 만들어지긴 하였으나, 현재는 이들 이외에도 베트남 전통 춤과 베트남 현대춤 공연도 행하여 진다. 전체 좌석수는598석으로, 좌석은4가지로 분류하고 있는데, 각각의 가격은 2천백만동(한국돈 11만원), 1천육백만동(8만 3천원), 115만동(한국돈 6만원), 70만동(2만 6천원) 정도이다.
호치민 예술 극장(좌), 객석(우) |
한편 하노이 오페라 하우스에 대비되어 호치민시(사이공)에는 호치민 예술 극장이 있다. 이 극장은1900년 개관한 것으로, 하노이 오페라 하우스보다 더 먼저 지어진 극장이다. 이 극장 역시 프랑스의 유명한 건축물로 지금은 박물관으로 사용되는 프티 팔레(Petit Palais, 별궁)를 모방한 건물이다. 크기는 하노이 오페라 하우스에 비해 약간 작은 편으로 객석의 규모는 500석 정도이다. 상주 단체도 하노이의 경우와 비슷하게 호치민시 발레단과 오케스트라 그리고 오페라단(Ho Chi Minh City Ballet Symphony Orchestra and Opera)이 상주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오페라, 발레 그리고 베트남 현대무용 뿐 아니라 서커스도 종종 공연한다. 대략적인 티켓 가격은 좌석에 따라 1천육백만동(8만 3천원), 115만동(한국돈 6만원), 70만동(2만 6천원)이다.
하이퐁 오페라 하우스(좌), 객석(우) |
마지막으로 이들과 필적할 극장으로는 하이퐁시에 위치하고 있는 하이퐁 오페라 하우스이다. 1912년 개관한 이 극장은 400석 규모로 위의 두 극장보다 규모 면에서 작은 편이다. 본래 하이퐁시는 프랑스가 베트남을 식민지화 하면서 개발한 도시로 당시 많은 프랑스인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던 곳이다. 파이퐁은 중국과의 무역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던 도시로 베트남인, 유럽인과 중국인들의 잦은 왕래로 식민지 당시 자본이 넘쳐나면서 그곳에 거주하던 프랑스인들의 문화적인 수요에 의해 안비엔(An Bien) 시장 한 가운데 건설된 극장이다. 현재 이 극장에서 주로 하는 공연들은 중국 경극의 영향받은 베트남 전통 공연인 학뚜웅(Hát Tuồng), 베트남 민속극인 학째오(Hát chèo), 베트남식 오페라라고 할 수 있는 까이 르엉(Cải lương)과 같은 베트남 전통 혹은 전통에 기반한 창작 공연들이 주류를 이룬다.
당연히 이들 극장들은 식민지 시대 베트남인들을 위해서 지어진 건물들이 아니라 베트남에 거주하던 프랑스인들과 유럽인들을 위한 것으로, 이 당시 대부분의 공연 단체들은 베트남 공연단이 아니라 유럽의 발레단 혹은 오페라단이 투어 혹은 초청 형식으로 와서 공연하던 곳이다. 그러므로 이들 극장들은 당시 관객부터 공연자들까지 베트남인들과는 무관한 곳이었다. 그렇지만 오늘날 이들 극장들은 외국 초청 공연은 물론 베트남 전통 및 창작, 동양과 서양의 다양한 공연들이 무대에 올려지고 있으며, 베트남 물가를 고려하면 매우 비싼 티켓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관객들은 물론 베트남 관객들로 객석이 가득 차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서정록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이론과 교수. 태국 Mahidol 대학교 국제대학 강사, 국립대만대학교 초빙교수, 런던대학교 SOAS 연구원을 역임하였다. 한국춤 연구를 통해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 및 중앙아시아의 문화 교류에 대한 역사 연구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