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1. 들어가며
최근에는 공연이 대중문화로 자리잡으면서 관객층이 넓어지고, 다양한 형태의 공연이 각지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공연 중 무대 장치로 인한 부상, 관객 간 충돌, 주최 측 안내 부족에 따른 혼란 등 예기치 못한 사고가 발생하는 일도 드물지 않습니다. 특히 공연 현장은 다수의 인원이 동시에 몰리는 장소인 만큼, 작은 부주의가 심각한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어 더욱 세심한 안전 관리가 요구됩니다.
그런데 실제 사고가 발생했을 때, 그 법적 책임은 누가 지게 될까요? 공연장 운영자, 공연 주최자, 혹은 장비 설치업체? 물론 사고가 있어서는 안되겠지만, 발생하는 순간 복잡한 법적인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이번 칼럼에서는 공연 중 사고가 발생했을 때 법적 책임이 누구에게 귀속되는지를 다루고, 관련 판례를 통해 실무상 주의해야 할 점을 짚어보고자 합니다.
2. 공연장의 안전관리의무가 누구한테 있을까?
1) 공연장 운영자의 안전관리의무
공연장 운영자는 공연 장소를 물리적으로 관리·운영하는 주체이고 관객이 안전하게 공연을 관람할 수 있도록 시설을 정비하고 위험요소를 사전에 제거할 책임이 있습니다. 공연법에 따르면 공연장 운영자는 공연법에 따라 화재나 그 밖의 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재해대처계획을 수립하고, 안전관리조직을 구성하며, 안전교육을 실시해야 하는 등 다양한 안전관리 의무를 부담하도록 되어 있습니다(공연법 제11조, 제11조의 3, 제11조의 4).
2) 공연 주최자의 안전관리의무
공연을 주최한 기획사나 단체 역시 공연 전반의 안전을 기획·운영하고, 관객의 질서 유지와 현장 대응 체계를 마련할 책임이 있습니다. 공연 중 관객이 몰려 넘어지거나, 안전 요원이 부족하여 혼란이 발생한 경우에는 주최자의 안전관리 소홀 책임이 문제될 수 있습니다. 이에 공연법에서는 공연장 이외의 장소에서 1천명 이상의 관람이 예상되는 공연을 하려는 자는 안전관리조직을 설치해야 하며, 안전총괄책임자 및 안전관리담당자를 두도록 하고 있고(공연법 시행령 제9조의 3), 공연과 관련하여 중대한 사고가 발생한 때에는 지체 없이 공연장의 사용중지 등 재해대처계획에 따라 필요한 재해예방조치를 취하고 특별자치시장·특별자치도지사·시장·군수·구청장에게 이를 보고하도록 하는 등 안전 관리의무를 부여하고 있습니다(공연법 제11조의 6).
이와 관련하여, 법원은 공연 연출자에 대하여 “연극이나 뮤지컬과 같은 공연에서 작품해석, 연기 등 예술적 사항뿐만 아니라, 기술적 사항을 총괄하여 공연제작을 통합·조정하는 총책임자로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공연 직전에 무대감독에게 공연의 지휘·감독권을 넘겨줄 때까지 공연제작에 대한 책임이 있으므로, 공연 중에 사고가 발생한 경우라도 연출자의 부적절한 결정으로 말미암아 사고가 발생하거나, 연출자로서의 통상적인 지휘·감독의무만 다해도 사고발생을 방지할 수 있는데 이를 방치함으로써 사고가 발생한 경우에는 그로 인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시한 바 있습니다 (대법원 2009. 2. 26. 선고 2007다24985 판결)
3) 공작물 설치·보존상 하자 책임
무대 장치, 조명, 음향기기 등 공연을 위한 설치물에서 문제가 발생한 경우, 이를 설치·관리한 자가 민법 제758조에 따른 공작물 설치·보존상 하자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이 때 공작물의 설치·보존상 하자란 공작물이 그 용도에 따라 통상 갖추어야 할 안전성을 갖추지 못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3. 공연장 운영자가 책임을 부담한 사례
공연장 운영자는 공연장 시설의 안전성을 확보할 의무가 있으며, 시설의 하자로 인한 사고 발생 시 책임을 부담합니다. 특히 공연장 내 시설물의 안전점검을 소홀히 하여 사고가 발생한 경우 손해배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2014년 경기도 성남시 판교 소재 광장에서 환풍구의 철제 덮개가 무너지면서 환풍구 위에서 공연을 보던 시민 다수가 사망 또는 상해를 입은 사안에서, 환풍구를 계획보다 부실하게 시공한 공사업체 관계자들이 업무상과실치사, 건축법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되었는데, 당시 법원은 환풍기가 도면대로만 시공되었더라면 참사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고, 사고 원인 규명이 필요함에도 위 업체 관계자들이 공사자료를 조직적으로 파기하는 등의 정황이 있었다는 점이 유죄판단의 근거가 되었습니다(수원지방법원 2016. 8. 26. 선고 2016노650 판결).
4. 공연 주최자가 책임을 부담한 사례
1) 음향 관련 사고
공연 주최자가 실내 공연장에서 갑자기 과도하게 높은 볼륨으로 오프닝 뮤직을 내보내 관람자에게 귀 신경이 파손되는 상해를 입힌 경우, 그로 인한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된 사례가 있습니다. 공연장이 실내인 경우 관람자들에게 불필요한 자극을 주지 않도록 오프닝 뮤직을 내보낼 때 처음에는 볼륨을 낮추어 음악을 틀다가 점차 볼륨을 높여 고음으로 진행하는 방법, 오프닝 뮤직을 알리는 안내방송을 실시하는 방법 등으로 보다 세심한 주의를 기울일 의무가 있다는 것입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07. 7. 24. 선고 2005가단282471 판결).
다만, 가수의 공연장은 상당한 정도의 소음 발생이 충분히 예견되는 장소이고, 이러한 공연에 참석하는 관객으로서는 당연히 그러한 정도의 소음을 예상하고 감내하겠다는 의사를 가지는 것이므로, 통상의 공연장에서의 소음과는 차별화될 정도의 큰 소음으로, 일반인이 예상하기 힘든 고도의 음향이 돌발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닌 이상 어느 정도의 소음은 수인한도 내에 포함된다는 판결도 있어 지나치게 큰 소음이 아닐 경우에는 면책될 수 있습니다(서울고등법원 2008. 5. 22. 선고 2007나78588 판결)
2) 특수효과 사용 관련 사고
뮤지컬 공연 중 극적 효과를 높이기 위하여 폭죽을 사용하면서 안전거리를 유지하지 않고 폭죽 발사대를 설치하는 등의 잘못으로 화재가 발생하여 공연장에 손해를 입힌 사안에서, 연출자에게 특수효과 부문 담당자 등에 대한 지휘·감독의무 위반을 이유로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되었습니다(대법원 2009. 2. 26. 선고 2007다24985 판결).
3) 공연장 외의 장소에서 발생하는 사고
공연 주최자는 공연장 외의 장소에서 공연을 진행할 경우, 해당 장소의 안전성을 확인하고 필요한 안전조치를 취해야 하는 바, 부산에 소재한 지역에서 콘서트가 개최되었는데 게스트로 출연한 공연자가 무대 PIT실로 들어가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하였고, 이로 인해 위 공연자가 큰 상해를 입은 사안에서, “사건 행사의 주최자는 이 사건 사고가 발생한 무대PIT실에 관계자 외에 출입할 수 없도록 통제하는 등 이 사건 행사 진행 시 발생할수 있는 각종 사고에 대비하여 적절한 안전시설 및 장치를 구비하는 등 이 사건 행사를 안전하게 주최할 주의의무가 있음에도 이를 게을리한 과실이 있고, 이 사건 사고는 피고의 위와 같은 과실에 의하여 발생하였다고 할 것이므로 공연자에게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단한 바 있습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17. 08. 30. 선고 2017나6190 판결).
4) 공연 준비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고
2018년 김천시에서는 오페라 공연을 주관하여 무대를 설치하였는데, 당시 공연의 조연출가가 무대세트를 붓으로 색칠하던 작업을 하던 중 승강 무대(리프트) 7미터 아래로 추락하여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위 사고에서 법원은 "공연장은 무대 중앙에 있는 리프트를 1층으로 내려서 장비 등을 실은 후 다시 3층에 있는 공연장 무대로 올리는 방법으로 장비를 운반하게 돼 있었는데, 이는 국내 다른 공연장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구조"라며 "이런 구조로 인해 리프트가 내려갈 경우 무대 위에서 작업을 하던 사람이 리프트 하강으로 발생한 개구부로 추락할 위험성이 매우 높고, 추락할 경우 치명적인 인명사고가 발생할 수 있음은 누구나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또한 사고 당시 공연장에는 리프트 하강에 따라 무대 위에 있는 작업자의 추락 사고를 방지할 수 있는 아무런 안전장치도 갖춰지지 않은 상태였고, 안전사고를 관리할 인원이 배치돼 있지도 않았으며, 리프트가 하강할 당시 누구도 무대 위에서 작업 중이던 조연출에게 리프트의 하강에 따른 추락 위험성에 대해 조연출이 인식해 스스로 위험을 회피할 수 있을 정도로 구체적으로 고지하거나 작업을 중단하게 하지도 않았다”는 등의 취지로 지적하면서 "김천시는 공연장 작업자의 안전을 보장하는 노력을 기울였어야 함에도 조치가 이뤄지지 않아 위 조연출이 사고로 사망에 이르게 됐다"는 이유로 약 6억원의 손해배상을 인정한 사례가 있습니다(서울고등법원 2021. 1. 14. 선고 2020나2014657 판결).
5. 관객에게도 과실이 있다면?
민법에 따르면 손해배상책임이 문제되는 사안에서 피해자에게 과실이 있는 경우, 손해배상액을 정함에 있어 피해자의 과실을 참작할 수 있고, 이는 공연장 사고에서도 동일하게 적용이 됩니다. 즉, 피해자에게 일부 과실이 있을 경우 위 공연장 운영자나 주최자 등의 책임이 일부 제한될 수 있는 것입니다.
앞서 살펴본 공연장 소음으로 인해 관객의 청력이 손상된 사례에서는 “피해자가 오프닝 뮤직의 비정상적인 소음으로 귀에 이상을 느끼고도 바로 자리를 떠나 안정을 취하거나 병원을 찾아가지 않은 점, 이상을 느끼고도 공연을 끝까지 관람함으로써 소음에 계속 노출된 점, 무대 스피커에 가까운 앞쪽 좌석에서 공연을 관람한 점, 위 피해자 이외에는 이 사건 공연 당시 귀의 이상으로 인하여 상해를 입은 사람이 나타나지 않은 점”등을 고려하여 공연 주최자의 책임이 50%로 제한되었습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07. 7. 24. 선고 2005가단282471 판결).
또한 앞서 살펴본 게스트 공연자의 추락사례에서는 “피해자로서는 이 사건 행사의 출연자로서 안전관리에 따라야 하는 의무가 있으나, 대기실에 도착한 사실을 관계자에게 알리지 않은 채 아무런 안내표시 없는 무대PIT실에 들어가 어두운 내부에서 부주의하게 이동한 과실이 있고, 이는 이 사건 사고의 발생 및 손해 확대에 기여하였다고 판단된다”는 이유로 피해자의 과실을 20%로 인정하기도 하였습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17. 08. 30. 선고 2017나6190 판결).
6. 맺음말
공연을 준비하고 올리는 과정에서 안전 문제는 뒷전으로 밀리기가 쉽습니다. 하지만 공연장이라는 공간은 수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곳이고, 한 번 사고가 발생하면 그 피해는 보통 인명피해로, 너무나 크고 돌이킬 수 없습니다.
이번 칼럼에서 살펴본 다양한 사례들처럼, 공연 중 발생하는 사고는 원인도 다양하고, 책임 소재도 운영자, 주최자, 설치업체 등 복잡하게 얽힐 수 있습니다. 또 피해자에게도 일부 책임이 인정되는 경우도 있어, 각 주체가 사전에 자신의 역할과 법적 책임을 정확히 인식하고 준비하는 것이 중요할 것 입니다.
공연 업계에 종사하는 분들이라면, 공연장 대관 시 안전 관련 조건을 꼼꼼히 검토하고, 외부 인력을 고용할 때 책임 분담을 명확히 계약서에 포함시키며, 현장 스태프 대상의 안전 교육도 소홀히 하지 않아야 합니다. 공연 규모나 예산의 크고 작음에 상관없이, 기본적인 안전 조치와 사고 대응 체계를 마련해두는 것만으로도 위험을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안전은 사고가 난 뒤에 되돌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닌 만큼, 공연을 만드는 모든 분들께서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갖고 움직이는 문화가 정착되기를 바래봅니다.
강민주
법무법인(유)동인 파트너 변호사. 한국춤비평가협회 고문변호사. 사법연수원 수료 후 IP, 엔터테인먼트 전문변호사로 활동해오고 있다. 각종 라이선스 계약, 공연 및 스폰서 계약 등을 자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