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지난 8월 21일 문화체육관광부 유인촌 장관과 무용계 인사들의 간담회가 국립현대미술관 대회의실에서 있었다. 지난해 11월에 이은 두 번째 간담회 자리였다. 3개 국립 무용단체의 예술감독과 무용 단체대표, 춤비평가 포함 20명과 문화부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2시간 예정된 간담회는 3시간을 꼬박 채워 끝났다.
간담회는 예술정책관이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추진 중이거나 내년 추진 예정인 주요 정책에 대해 설명하는 것으로 진행되었다. 무용진흥법, 국공립 예술단체를 중심으로 시행하는 연수단원 지원과 연계된 청년 교육단의 숫자를 300명에서 600명으로 확대, 국립청년예술단 신설, 지역대표예술단체 선정, 작품 유통지원 확대 등이 발표되었다.
간담회 전 테이블에는 문화부에서 국회에 제출 예정인 무용진흥법이 인쇄되어 놓여 있었다. 이 무용진흥법은 무용계의 숙원인 국립무용원(또 다른 명칭으로 국립댄스하우스, 국립무용센터 거론) 설립과 공교육 안에 무용이 공통예술과목으로 포함시키기 위해 (재)전문무용수지원센터가 주축이 되어 2022년(초안 작업 최해리 등, 자문 박인자·이해준·장광열 등 참여)에 만들어져 국회와 문화부에 제출된 것으로, 이번 문화부가 추진 중인 진흥법에는 무용전용극장 설립과 무용교육에 관한 내용은 빠져 있었다.
이와 관련 간담회 전 참석한 관계자에게 문의했더니 “국회 통과를 위해서는 다른 장르의 진흥법과 형평을 맞출 필요가 있고 우선 통과 후 필요한 것들을 보완해 나가면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국립극단의 전용극장으로 사용되었던 백성희 장민호 극장이 있었던 자리에 3개의 극장을 포함한 복합문화공간이 조성될 예정이라는 발언에 이어 유인촌 장관은 국립극장, 정동국립극장, 아르코예술극장 등 공공 극장에서 제작 극장으로서의 역할 확대에 대한 주문이 있었다며 명동예술극장을 연극 전용극장에서 벗어나 타 장르에도 문호를 개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역 대표 예술단체 선정은 지역 문예재단에서 운영하고 있는 문예회관 상주단체 운영과 의 연계를, 국제교류의 경우 한국국제교류진흥원과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업무 분담 조정 혹은 통폐합을 통한 거품을 걷어내는 실질적인 정책 운용 방안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간담회 도중 유 장관은 공공무용단체의 운영을 더욱 엄격하게 하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번 간담회를 계기로 변화하고 있는 세계 무용계의 흐름과 국내 춤 환경을 반영, 향후 문화부가 적극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는 정책이나 사업들을 제안해 본다.
무용예술을 통한 국가 이미지 고양
(대한민국 강강술래와 함께 하는 세계 평화 기원 나눔 춤 프로젝트)
지구촌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은 ‘강강술래’라는 나눔 춤을 갖고 있다. 아직도 전쟁 중인 나라가 있고, 폭력과 테러가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전 세계를 향해 전쟁과 폭력, 테러의 종식을 기원하는 한 판 춤을 전 세계 평화의 상징 공간인 유엔본부나 9 11 테러발발 장소인 뉴욕 쌍둥이 빌당 앞에서 펼치는 것이다.
타이틀은 ‘대한민국 강강술래와 함께 하는 세계 평화 기원 나눔 춤’ 정도면 어떨까? 뉴욕에는 전 세계에서 몰려든 다민족, 다인종의 지구인들이 많이 살고 있다. 흑과 백, 황색 피부색을 가진 지구인들 수십, 혹은 수백명이 치마와 저고리를 입고 댕기머리를 하고 다 함께 손을 잡고 선창과 후창을 하면서 평화를 기원하며 춤추는 이벤트는 분명 지구촌의 관심을 끌 것이다.
인종을 초월한 한 편의 Humanity 춤 난장은 전쟁의 위험이 오래 동안 상존하는 분단국가가 겪고 있는 대한민국의 실상을 알리고, 세계 평화를 위한 대한민국의 노력을 알리는 것 자체가 예술을 통한 대한민국의 국가 이미지를 고양시키는 일이 될 것이다.
K Dance 10년 프로젝트
문화부는 유 장관 부임 후 K팝의 열기를 순수예술로 연계시키는 계획을 추진하기 위해 국제문화홍보정책실를 선설했다.
그러나 해외홍보원을 통해 순수예술 단체의 해외공연을 추진하고 해외 단체와의 협업을 확대하고 교류를 추진하는 기존 민간에서 행하는 교류 사업을 지원하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다. 문화부의 국제교류 정책 운용은 보다 더 장기적이고, 전략적으로 추진될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이 만들어 놓은 최고의 공연예술 작품과 최고의 예술가들(전통예술 포함)이 세계 일급 공연장에서 공연과 워크숍을 펼치고, 관련된 강의와 영상 상영을 병행하는 프로그램을 일 년에 6개월 정도 전 세계를 연속 투어하는 프로그램을 10년 정도 계속해 펼친다면 대한민국의 국가 이미지가 고양되는 것은 물론이고 문화예술을 통한 경쟁력도 그 만큼 강해질 것이다. 주요 대학에 한국어 외에도 한국의 전통무용과 전통음악을 배우는 커리큘럼이 개설되도록 하는 노력을 병행한다면 금상첨화가 될 것이다.
무용예술 전용극장 확보를 위한 세 가지 방안
무용은 전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가장 열악한 순수예술 장르이다. 그래서 어느 나라나 다른 순수예술 장르에 비해 공적인 지원을 상대적으로 가장 많이 한다. 미국의 담배회사인 필립모리스사는 무용예술만을 지원하는 문화예술 지원정책을 펴기도 했다.
연간 3천 건이 넘는 무용공연을 펼치고 2백 건 이상의 해외 공연 팀의 내한공연이 이루어지는 대한민국의 춤 시장은 이미 포화상태이다. 전 세계 춤 시장에서 우리나라 무용의 위상은 대한민국 정부가 무용 전용극장 하나 만들어주지 못할 정도로 더 이상 방치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무용예술 전용극장을 새롭게 짓는 것은 시간도 많이 걸리고 예산도 많이 소요된다. 지금으로서는 무용예술 작품의 완성도가 가장 높은 공연장으로 검증받은 아르코예술극장을 무용전용극장으로 운영하는 방안이 최선이다. 지은 지 오래되어 어차피 리노베이션이 불가피한 상황인 점을 감안, 새롭게 리노베이션을 하면서 건물 전체를 국립무용센터(국립댄스하우스)로 운용하도록 조성한다면 문화부로서는 가장 현명한 무용예술 지원정책을 수행하는 것이 될 것이다.
다음으로, 새롭게 조성 예정인 서계동 부지의 복합문화공간에 들어서는 3개 극장 중 하나(500석 규모)를 무용전용극장으로 운용토록 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2개의 스튜디오를 포함해 리노베이션 예정인 국립정동극장을 무용 전용극장으로 운용토록 하는 방안이다.
다음으로, 서울특별시 외곽이나 혹은 수도권의 유휴시설이나 오래된 건물을 무용전용극장으로 개축하거나 새롭게 건축하는 것이다.
오슬로에 있는 노르웨이 국립댄스하우스 전경 |
3개의 극장과 홍콩 국립 댄스하우스가 들어설 홍콩 공연예술 콤플렉스.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건물의 오른편이 국립댄스하우스가 들어설 공간이다. 상주하게 될 무용컴퍼니의 전용 리허설룸을 포함 8개의 댄스 스튜디오와 무용 관련 공간이 조성되고 있다. |
통일을 위한 무용예술이 중심이 된 남북예술교류
동서독이 통일되기 전까지 두 나라는 600여 개에 이르는 문화예술 교류 프로그램을 시행했었다. 북쪽의 예술가들은 무용과 음악에 관한한 만만치 않은 실력을 보유하고 있다. 남북통일을 염두에 둔 예술교류로 적합한 장르가 무용과 음악이다.
특히 북쪽에는 일찍부터 전통악기 개량에 성공했고 무용음악에 능통한 작곡가들이 많다. 무용예술을 통한 남북 교류는 북쪽의 작곡가가 남쪽 무용공연의 음악을 작곡하거나 연주하는 등 작은 인적교류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한국에서 보존되고 있는 북쪽의 전통무용이나 음악(이북5도 무형문화재 등)을 북쪽의 악기로 연주하는 것도 한 방안이 될 것이다.
무용예술이 중심이 된 남북 예술교류는 통일부보다 민간이 주도하고 문화부가 적극 지원하는 것이 더욱 효율적일 수 있다.
예술가들을 위한 복지에서 예술을 통한 국민복지 실현으로 정책 변환
무용예술을 통한 사회적 가치 실현 정책 시행
- 무용이 중심인 예술교육 확대
- 휴양 프로그램 연계, 가족과 다문화 가정을 위한 권역별 예술캠프 확대 시행
- 고령화 사회, 장년층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무용 프로그램 지원
- 홈리스, 장애인, 치매환자 등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공공 무용프로그램 시행
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서 시행하고 있는 예술강사 파견 프로그램 중 가장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은 무용 장르이다. 축소되고 있는 예술 강사 제도를 다시 지원하고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추진하고 있는 꿈의 무용단과 올해 처음 시행한 음악과 무용이 중심이 된 예술캠프을 전국적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올해 8월 방학을 맞아 강원도에서 시행한 예술캠프를 휴양 프로그램으로 매칭, 가족과 함께 하는 예술캠프, 다문화 가정을 위한 예술캠프로 연계해 권역별로 전국 단위로 확대 시행하는 것도 한 방안이 될 것이다.
올해 7월 제주국제무용제 프로그램 중 '춤추는 상가리' 마을 무용캠프 중 한 장면 |
남성 무용수 병역특례 국립무용 단체 근무로 대체하는 정책 시행
국민들 사이에 예술인, 체육인, 과학기술인 등을 대상으로 한 병역 특례 혜택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들이 점점 더 확대되어 가고 있다. 러시아의 레드 아미 앙상블이나 중국의 국군무용단처럼 국군예술부대를 만드는 것이 힘들다면, 무용예술의 경우 뛰어난 재능을 지난 남성 무용가들의 군복무를 타이완이나 이스라엘 러시아처럼 국립 예술단체에서 하도록 하는 방안을 국방부와 협의할 필요가 있다.
군대를 안 가는 것이 아니라 군 복무를 하되 국립 예술단체에서 근무하면서 예술적 기량을 더욱 향상시키고 예술활동의 단절을 막을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예술계로서는 소수의 인원이 아닌 보다 더 많은 재능 있는 예술가들의 경력 단절을 막을 수 있는 이점이 있는 만큼 굳이 반대할 필요가 없다.
간담회 서두에 문화부에서 밝힌 대로 지역 문화재단들의 숫자가 100개를 훨씬 넘어 선 만큼 공연예술 활성화를 위한 창 제작 지원은 지역 문화재단에 맡기고 중앙 정부의 문화예술 지원청책의 틀은 새롭게 만들 필요가 있다.
전세계적으로 고령 인구가 늘어나면서 세계 여러 나라의 문화예술 정책은 몸을 매개로 하는 예술장르이자 창의적인 삶을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무용예술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정책을 개발하고 이를 적극 시행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문화관광부 역시 이 같은 선진 여러 나라의 정책 변화를 주시하고 우리나라의 실정에 맞는 탄력적인 정책 운용을 적극 시행할 필요가 있다.
장광열
1984년 이래 공연예술전문지 월간 〈객석〉 기자와 편집장으로 활동했다. 1995년 국제공연예술프로젝트를 설립 〈Kore-A-Moves〉 〈서울 제주국제즉흥춤축제〉 〈한국을빛내는해외무용스타초청공연〉 등 국제교류 프로그램을 정례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정책평가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국제교류 위원, 호암상 심사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춤비평가, 한국춤정책연구소장으로 춤 현장과 소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