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국립현대무용단 〈스텝업〉
창대한 뜻, 미비한 결과
김혜라_춤비평가

한 해 소비되는 일회용 컵이 무려 260만개라고 한다. 이러한 일회용 컵처럼 일회성으로 일부 춤공연이 버려진다. 한 해 창작되는 수많은 공연들이 하루나 이틀 그나마 국공립 단체들도 삼사일을 넘기지 못하고 공연을 내리는 현실의 기저에는 재정, 관객, 문화환경 등 여러 복합적인 문제가 있다. 이와 같은 현장의 문제로 흩어지거나 빛을 보지 못한 공연을 다시 발굴하겠다는 기획이 있어 주목할 만하다. 바로 국립 현대 무용단의 픽업스테이지인 〈스텝업〉 프로그램이다. 이 작업이 기존 공공단체 창작지원 프로그램과의 차별점은 새 작품이 아닌 ‘이미 발표된 작품’을 다듬어 제목 그대로 한 단계 Step up 시켜 보겠다는, 성장시켜 보겠다는 의도이다. 재활용이 일회용 컵에게 새로운 역할을 주듯이, 이 프로그램 또한 한국 춤계의 ‘레파토리 구축’이라는 명제와 나아가 ‘국내외 유통’까지 염두 한 시의 적절한 기획이다.
 그렇다면 선택된 작품들이 해외까지 겨냥할 레파토리 가능성을 담고 있는가? 초연작을 보지 못해 어느 정도 변화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대답은 긍정적이지 않다. 〈스텝업〉(9,6-9.자유소극장)에 참여한 안무가들의 의도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문제는 안무가의 의도가 작품에 어떻게 반영 되었나이다. 공연은 배효섭의 〈백지에 가 닿기까지〉, 이은경의 〈말, 같지 않은 말〉 그리고 정철인의 〈Og〉 세 작품으로 구성되었고, 모두 호기심을 가질 만한 출발이었다.

 

 



 배효섭은 〈백지에 가 닿기까지〉에서 백지 같이 순수하게 춤췄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타성에 젖은 몸을 재고(再考)한다. 조립한 프로시니엄 무대에서 기계적으로 춤추는 듀엣은 일방적으로 요구되는 관객의 시선에 소비되는 자신들의 몸과 정서를 대변하고 있다. 무대 틀이 겹겹이 축소되며 반복되는 무미건조한 움직임은 더 이상 자신의 춤이 아닌 노동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기존의 무대는 사라지고 접신 한듯 한 인물로 신명을 내세운다. 여기에서부터 작품의 상관관계는 아주 싱거운 결말을 보이고 만다. 춤꾼으로 살아온 고민이 역력한 출발이 참으로 단순하게 흥으로의 회귀, 백색무대의 구현이란 말인가.

 

 



 이은경의 〈말, 같지 않은 말〉은 신체에 영향을 끼친 생각들, 이 어휘들이 자신의 몸을 규정하는 과정을 상기한다. 언어와 신체방식의 상관관계를 되짚어 오히려 움직임을 작동시킨 말에 질문하는 것이다. 이은경의 발랄한 전개방식과 자유분방한 스트릿(street) 에너지가 인상적이었다. 반면 안무가가 오랜 시간 작업한 춤단체의 성격이 많이 묻어나와 이은경식의 개성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좀 더 지켜볼만한 작업이다.

 

 



 마지막으로 정철인의 〈Og〉작품도 안무가로서 고된 고민이 추출된 주제적 접근이었다. 안무가는 힘의 원리에만 집중하여 네 명의 댄서들과 구심력, 낙하, 무중력 같은 물리적 역학관계를 댄서들과 구현하려 애를 쓴 점이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이 작품 역시 후반부에 진부한 아크로바틱 움직임으로 표류하는 점이 아쉬웠다.

 작년 12월에 안무공모를 시작, 배효섭, 이은경, 정철민이 선정된 국립현대 무용단의 〈스텝업〉 프로젝트는 4개월여의 작품개발 시간이 있었다. 충분하지는 않았더라도 총 9개월이니 어느 정도 적합한 시간과 재정 그리고 환경이 지원되었다. 따라서 선정된 안무가들은 작품을 재 숙고 할 기반이 확보된 셈이며 이 작업에 동참한 감독과 스태프, 전문 심사단원들 역시 공동의 책임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작품 모두 후반부에 갈수록 집중력은 떨어지고 에둘러 마무리된 인상이었다. 어느 정도 국립현대무용단 제작진들이 작품에 관여했는지 모르겠지만 가능한 여러 의견을 수렴하지 않았나 짐작된다. 만약 국립현대 제작진이 안무가들에게 외부적 조건만 제공하였다면 이 기획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것이 되고, 작품 진행과정에 적극 참여하였다면 이는 더 큰 문제를 노출시킨 것이다. 왜냐하면 안무가의 개인적인 고민이 성장 단계를 거쳐 객관적으로 공감되는 지점으로 뚫고 나오도록 제작진은 도와야 했기 때문이다. 우려되는 점은 국립이라는 고립된 섬에서 그들끼리만 소통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된다. 제작진과 안무가들은 문제의 요인이 무엇인지 면밀하게 분석해야 할 것이라 사료된다.
 3년간의 유럽 생활 경험과 춤현장을 돌아다니며 느낀 유럽과 한국과의 다른 점은 춤 레파토리의 활용도라 할 수 있다. 간단한 예로, 몽펠리에 축제 감독인 쟝 폴 몬타나리(Jean-Paul Montanari)는 23세에 춤계에 입문한 엠마누엘 갓(Emamuel Gat)을 9년여 동안 축제 무대에 기회를 주고 지원함으로써 현재는 파리오페라발레단 공연 수행을 비롯하여 지명도 있는 안무가로 성장시켰다. 또한 짧은 한 여름시즌 동안임에도 불구하고 한 작품을 세 나라의 굵직한 페스티벌과 프랑스의 작은 공공 극장에서도 접할 수 있었다. 모든 작품이 처음부터 완벽할 수 없다. 그러나 일단 선택된 작품들은 레지던스와 연계된 성장지원과 함께 상연할 기회를 많이 부여받는다. 결과적으로 지속적인 지원이 미숙한 작품을 성숙하게 하여 단단한 창작물로 재탄생하게 돕는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 작품은 레파토리로 정착하여 더욱 활발하게 유통되는 것이다.
 반면에, 이미 해외에서 자신의 레파토리를 구축하여 각종 페스티벌과 공연장에서 환영받고 있는 한국 안무가들의 활동은 춤계에 매우 고무적인 상황이다. “한국은 좋은 춤꾼은 많아도 경쟁력을 갖춘 안무가가 없다”는 말은 옛말이다. 따라서 이들의 뒤를 이어갈 차세대 양성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는 이 기획의 무게감과 국립현대 단체라는 의무감이 결코 가볍지 않다. 예술감독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기획을 앞세우기 보다는 지속적인 프로그램으로 연계시켜 작품이 다듬어지는 통로가 돼야 할 것이다. 우리 모두가 처음부터 완벽한 공연을 기대하기 보다는 많은 공연기회와 그 사이 현장과의 소통과 전문가의 보완을 통해 세계적으로도 유통 가능한 공연이 만들어 질 수 있는 풍토를 조성해야 한다고 본다. 이번 국립현대무용단의 픽업스테이지는 그 가능성이 충분한 프로그램이다.

김혜라
『현대 춤 공간의 형태지각(Gestalt) 분석과 해석적 지평 가능성』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평가위원으로 활동했다. 2012년 한국춤비평가협회를 통해 비평가로 등단, <춤웹진>에 정기적으로 춤비평을 기고하고 있다.
2018. 10.
사진제공_황승택/국립현대무용단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