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돌아 볼게요_#미투
#미투, 춤계 자정의 계기 되어야
이지현_춤비평가
“이제야 고백합니다.
피해자들의 용기 있는 발언을 시작으로 우리는 이제야 우리 안 폭력의 실체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권위에 순응한 우리 자신이었고, 위계 구조였으며, 침묵의 카르텔이었습니다. 실체를 알고 있으면서도, 또는 실체를 제대로 모른 채 침묵했고 방관했고 무지했던 점에 대해 피해자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성폭력 반대 연극인 행동’의 ‘성폭력 반대 연극인 행동’을 시작하며 글 중에서. 2018. 2. 22)
 지금 상황의 처참함을 토로하기 이전에 그간 나 역시 침묵의 카르텔 일원으로 사태에 침묵, 방관, 무지하지 않았던가를 반성하는 것으로부터 그리고 피해자들께 사과하고 감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려 한다.
 


 평창 동계올림픽 개폐막식에서 무대를 채웠던 벅찬 감흥을 주었던 많은 춤을 보면서, 무용수들이 개미처럼 보이는 그 넒은 무대를 열심히 뛰어다니는 성실한 춤들을 보면서 추운 날씨에 수많은 나날을 연습해 훌륭한 공연을 보여준 공연단에게 절로 박수가 나왔다. 이 무대를 보는 세계의 시선을 놀랠만한 충분히 멋진 장면들에 절로 뿌듯해지다가 갑자기, 많은 노력이 들어가는 긴 연습시간동안 혹시 저 안에서도 공연자들이 정당하지 않은 희생을 겪지나 않았을까하는 우려에 기쁜 마음이 곧 사라졌다.
 1월말부터 시작된 서지현 검사의 성폭력 폭로가 2월 중순을 지나면서 문화예술계로 확산되었고, 매일 피해자의 폭로에 의한 놀랄만한 새로운 사실이 이어지던 와중에 연극인을 중심으로 이어지던 미투는 무용인들도 나오기 시작하면서 가슴이 덜컹거렸다. 밀양이 발원지가 되다보니 춤꾼으로 명성이 높았던 하용부 밀양백중놀이 보유자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3건의 제보가 충격적으로 터져 나왔고, 사건은 오래전에 났지만 수원지검에서 10대 원생 성추행으로 징역 4년형을 받은 김모 무용학원 원장 사건, 한겨레에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이모 교수”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는 제보, “저명한 대학 무용과 교수”로부터 동성 간 성폭력을 당했다는 제보까지 무용계 사례들도 다양하고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무용계에서는 아직 이 사태가 덜 충격적인지 제보의 속도와 논의의 온도가 잘 올라가고 있지 않다. 수많은 입시부정, 금품수수, 교수 공연강요와 티켓강매, 그리고 몇 년 전엔 권위 있는 무용가의 동성 간 성폭력 고소사태까지 겪으며 권력형 비리와 충격적 성폭력을 숱하게 겪은 것이 오히려 감도를 떨어뜨린 것인지 아니면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간 것에 대한 ‘깊은 회의감’ 같은 것인지 어쨌든 무용계는 이 문제를 일반인들이 느끼는 것보다 훨씬 둔탁하게 느끼는 거 같다.
 하지만 제보된 건수만 보더라도 대부분의 권력형 폭력은 교육환경에 벌어진 가장 비윤리적이고 비인간적인 행태여서 더 심각했으며 약자의 영혼을 파괴시키고 당사자들은 무용을 그만두게 하면서 자신은 “유명 안무가가”가 되거나 “각종 상을 받고”, “모교에서 후배를 가르치는” 권력자가 되어 다시 약자를 착취하고 약자를 활용해 자신의 위신을 높이는 순환구조를 만들게 되는 식으로 잔인하다. 그리고 교육환경은 곧 공연 창작환경으로 이어지기에 무용계에서의 명성이나 성공은 힘으로 착취하는 구조를 갖지 않고는 거의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대다수가 처해있는 이런 창작구조와 생존구조가 그 안에서 열심히 예술하려는 순수한 마음을 시간이 지나면 ‘괴물’로 둔갑시키는 것이다.
 나 역시 매번 더 열심히 살고, 뭔가 더 나은 결과는 내고 싶은 욕망을 따라가려다 보면 그 길은 ‘갑’이 되는 길이고 이런 구조속의 ‘갑’은 ‘을’과 단짝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느낀다. ‘을’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갑’으로서 존재할 수 없는 상태와 그 상태가 마치 인생의 목표나 성공인 것처럼 오인되는 현실... 그 현실에서 보다 윤리적이고 인간다운 선택을 했을 때 당사자가 감당해야할 포기와 못난 사람이라는 자괴감의 양은 결코 만만치 않다. 무용과 재학시절 나의 교수님 시각으로 보면 나는 이해관계에도 약하고 아이들을 윽박지르면서 이끌지 못하는 무능력한 과대표였다. 학생과의 사이에서 착취의 중간 역할을 해야 교수가 편한데 난 그 역할을 게을리 했고 전혀 그 초점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아무리 예술이 하고 싶어도 그렇게 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교수가 된 사람들이 하는 것도 그다지 예술로 보이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그 판단으로 난 지금까지도 많은 현실적 손해와 어려움을 겪는다.
 한 개인이 이 단단한 생존의 구조와 맞서는 것은 쉽지 않다. 수많은 피해자의 눈물과 한숨, 포기와 자괴감이 쌓이고 쌓여 오늘의 #미투로 터져 나왔다는 사실을 알아야한다. 미투운동 덕분에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거대한 구조를 보게 되었고, 우리가 얼마나 ‘원로’와 ‘스타’와 ‘권위’ 앞에서 쉽게 깨질 수 있는지를 알게 되었으며, 우리가 함께 할 때 전체 구조를 변화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아가는 중이다. 우리가 이런 환경에서 그저 열심히 살기만 하면 누군가를 착취하고 누군가의 것을 뺏지 않으면 자신을 이룰 수 없는 무서운 ‘괴물’이 되는 길에서 #미투와 #위드유로 사람다움을 회복해 ‘예술인’이 될 가능성을 넓혀 나갈 수 있는 기회를 피해자 덕분에 갖게 된 것에 감사해야 한다.

 많은 것을 이룬 무용계의 원로와 스타와 권위자들은 그간 무용을 하고 싶어도 이 벽 앞에서 상처받고 떠나간 사람들의 눈물과 지금도 고통 받고 있는 피해자들에게 사죄할 것이 있다면 자진해서 사죄해야하고, 감사할 것이 있다면 감사해야 한다. 그리고 감사의 마음으로 앞으로 피해자 입장에서 그들을 위한 지지와 보호를 위한 현실적 대책을 마련하고 가해자를 밝혀내고 조사하는 일을 도와야 한다. ‘연극인 행동’의 4가지 행동목표(피해자 중심 행동, 가해자 연대 불가, 상담창구 마련, 언론의 2차 가해를 조절)를 참고해서 무용계 안에서도 이 사태를 껴안고 지속해갈 행동하는 기구가 필요하다.
 피해자들은 무용계의 기구가 만들어지기 전까지 문체부 성폭력 신고센터, 예술인 복지재단 신고상담센터, 컨텐츠 진흥원 공정상생센터 등 다양한 경로로 신고를 하는 게 좋다. 물론 지금은 #미투가 가장 빠르다. 약간의 고통이 따르더라도 용기를 낸다면 새로운 해결의 실마리가 생길 수 있다.


 가장 최근 25일에는 두 가지 중요한 일이 있었다. 한국연극배우협회이사장이 자신의 성추행 사실을 미리, 자진 고백(?)하는 새로운 기사가 있었고 또 하나는 관객들이 위드유 집회를 연 것이다. 가해자의 고백은 나름 여러 가지 계산을 하며 어떻게 대처할지를 고민하는 가운데 어쩌면 쉽게 끝날 거 같지 않은 이 사태에 나중에 당하느니 자진해서 인정하는 게 낫겠다는 셈이 선 것인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자진 고백 내지는 자진 신고는 반갑다. 진심을 담지 않고 연기처럼, 리허설처럼 해버린 사과에 두 번 질렸고, 발뺌하려는 수법이 통할 거 같다고 판단하고 일단 부정하는 미숙함에 어이없어졌지만, 아직도 그저 조용히 숨죽이고 있으면 나까지 오지는 않겠지 하고 있는 수많은 가해자들이 있다는 사실이 더 끔찍하기에 앞으로도 #가해자_미투가 이어졌으면 좋겠다. 진정으로 사과하고 피해자를 돕고 싶다면 가해자들이여 미투 하시라.
 2월 25일 대학로에서 #위드유 집회에서는, “피해자는 보호하고, 가해자는 처벌하고, 공연계는 각성하라”, “성범죄자는 관객의 박수를 받을 자격이 없다”, “성범죄자 무대 위 재활용은 관객이 거부한다” 등 피부에 와 닿는 구호를 외치며 공연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당연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 슬쩍 재활용되려던 방법은 앞으론 통하지 않게 생겼다. 여론과 비평계만 협조하면 가능했던 기억상실형 복귀는 더 이상 막아야 한다.
 청와대 국민소통광장(www.president.go.kr)에 일련의 성폭력사건에 대한 진상조사를 청원를 촉구하고 있다. 그것에 동참하는 것도 행동하는 방법이다.


 연극인 행동의 "성폭력 및 위계에 의한 모든 폭력에 반대한다. 그동안 연극 현장에서는 다양한 층위의 폭력이 있었고, 위계적 구조에 의해 더욱 강화됐다. 우리는 한국사회의 권위주의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문화가 무대뿐만 아니라, 창작 과정까지 고스란히 이어지는 것을 직시하고 성찰하지 못했다"에 이어, "그런 구조 속에서 성폭력은 은밀하면서도 직접적으로 이뤄졌고, 심지어 '관행'이라는 기만적인 표현으로 학습되고 묵인됐다. 연극 현장의 위계와 권력은 학교의 권위와 밀착되어 연극을 시작하는 학생들에게도 그 폭력이 연결되고 있다"(http://www.nocutnews.co.kr/news/4928868 인용)는 시선으로 무용계를 돌아보자.

 그리고 이 문장은 특히 마음에 든다. “아직 공개되지 않은 가해자도 많을 것입니다. 가해자가 속해 있거나 가해자를 보호하는 단체와는 어떤 행동도 함께 하지 않겠습니다. ‘성폭력 반대 연극인 행동’에 가해자가 포함되어 있을 경우에는 꼭 말씀해주세요. 절대로 함께 하지 않겠습니다.”
 법 보다 무서운 건 그들이 다시 예술계를 왜곡시키게 두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마음속에도 그런 마음을 두지 않는 것이다.

이지현
춤전문지의 공모를 통해 춤비평가로 등단했다. 2011년 한국춤비평가협회의 정회원이 되었으며, 최근 비평집 『춤에 대하여』를 출간했다. 현장 춤비평가로 왕성한 비평 작업과 함께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강사, 서울무용센터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8. 03.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