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해외춤기행_ 스리랑카의 불교문화와 전통춤(1)
의식적이며 가면 많이 사용하는 것이 특징
이병옥_용인대 명예교수
 2018년 1월3일 9시35분. 스라랑카의 불교문화유산을 탐사하고 대표적인 캔디안댄스(Kandyan Dance)와 전통춤들을 살피기 위해 먼 길을 떠났다. 이번 배낭여행도 만만치 않아 하루를 넘기는 여정으로 6시간 만에 도착한 태국 방콕에서 환승하기 위해 9시간을 더 지체했다. 다시 스리랑카 콜롬보 반다라나이케 국제공항(Bandaranaike International Airport)에 3시간 후 한 밤중(00:10, 한국시간 03:40)에 도착하여 1박을 하고 다음날 전용버스로 6시간에 걸쳐 아누라다푸라에 도착(19:30)하였다.



 스리랑카의 첫 왕국, 아누라다푸라의 이수루무니아 사원 불교유적과 춤유산

 1월5일 아침 일정대로 아누라다푸라(Anuradhapura) 불교유적답사에 나섰다. 신성도시(神聖, Sacred City)인 아누라다푸라는 BC 5세기~AD 8세기 신할리족(Sinhalese族, 인도 아리안계) 왕국의 수도로 ‘깨달음의 나무(tree of enlightenment)’인 보리수(Sri Ma Bodhi) 주변에 건설되었다. 1,300년 간 실론(Ceylon, 지금의 스리랑카)의 정치적·종교적 수도였으나, 933년경에 인도로부터 타밀족(Tamil族, 인도 드라비다계)이 침입함으로써 황폐해졌다. 그 후 많은 탑(Dagoba, stupa, 파고다, 塔婆)과 사원(寺院)터, 석조 연못 등 유적들은 한동안 정글 숲에 묻혀 있었으나 19세기에 복구되어 1982년 UNESCO 세계유산에 등재되어 세계의 관광객들이 모여든다.
 첫 탐방 유적은 스리랑카 최초의 사원 이수루무니아 바위사원(Isurumuniya rock temple)이었다. 연못 뒤의 바위 앞뒤에 건립한 사원과 코끼리와 불상의 부조상과 보기 드문 와불(臥佛)과 스님상들이 있다. 와불상(臥佛像)과 열반상(涅槃像)의 차이는 발가락을 모은 모습으로 구분하는데 오른쪽 발가락이 약간 위로 올라간 것은 열반상이고 나란히 된 것은 와불상이다. 이곳 이수루무니아 박물관(Isurumuniya museum)사원박물관에서 눈에 띄는 것은 화강암 조각 솜씨가 뛰어난 ‘연인상(Lovers)'이다.



 


 ‘춤추는 난쟁이’ 바마나(Vamana) 신화와 스리랑카 부조상의 특징

 항상 춤추는 조각상이나 벽화가 있는지를 눈여겨 찾던 중 반갑게도 ‘춤추는 난장이(Dancing Dwarfs)’ 조각상들이 눈에 확 들어왔다. 박물관에 전시된 것으로 봐서는 파괴 또는 폐허화된 힌두사원의 잔해인 것 같았다. 비록 난장이 모습으로 보이지만 힌두신 비슈누(Vishnu)의 다섯 번째 화신(avata)이었다. 무릎을 굽힌 스리랑카의 전통춤 자세에다 양팔을 들고 어깨를 치켜든 기본춤사위와 눈을 크게 뜬 모습까지도 캔디안댄스(Kandyan Dance)와 유사하다. 또한 압사라(Apsara)는 ’춤추는 여신‘ 또는 ’천상의 무희‘라는 뜻으로, 캄보디아 앙코르 와트 회랑 벽면에 새겨진 군상인데 스리랑카에서도 엿보인다. 다만 탑면의 높이 제한에 따라 한쪽으로 쪼그려 앉은 조각상이자만 상하체를 편 자세로 살펴보면 압사라의 춤사위를 알 수 있다. 춤추는 난장이 남녀상은 하반신이 동물하체처럼도 생겨 반인반수상과 같기도 하다.

 

 
 난쟁이 바마나(Vamana)에 대한 힌두경 리랑카전 바마나 푸라나(Purana)의 기록에 의하면 비슈누(Vishnu)의 다섯 번째 아바타(avata)로 최초로 인간으로 육화(肉化)한 화신(化身)이라 한다. 그리고 난쟁이 바라마는 늘 나무 우산을 들고 다니는데, 자비로운 발리 왕의 궁전을 찾아가 세 걸음만큼의 땅을 줄 것을 요청한다. 이에 마하발리는 왕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승낙한다. 그러자 곧바로 바라마는 자신의 본 모습(비슈누)을 내보이며 거대한 발걸음으로 첫 걸음으로 천상 세계에서 지상 세계까지 건너고, 두 번째 걸음으로 지상 세계에서 지하 세계를 성큼 넘어섰다. 그러자 약속을 거둘 수 없게 된 마하발리는 세 번째 걸음 자리에 자신의 머리를 내밀었다. 바마라는 마하발리에게 겸손함에 대한 대가로 영생불사의 권능을 주었으며 해마다 마하발리가 왕국을 찾아오는 걸 허락하였다고 한다.
 다음 그림들과 조각상은 난쟁이 바마나(Vamana) 힌두신화의 내용이다. 그림들은 대체로 마하발리왕에게 세 걸음 땅을 요청하는 형상, 수락 후 비슈누 신으로 현신(現身)하여 천상에서 지상과 지하세계로 한걸음 하는 형상과 발리 왕이 머리 조아리는 형상 등으로 나타난다. 도상무용학적으로 볼 때 동양춤에서는 볼 수 없는 발레나 현대무용의 쳐든 특이한 발춤사위로 보인다. 그러나 스리랑카의 불교사찰에서 보이는 난쟁이들은 사원이나 탑의 기단석(基壇石) 등에 주로 보이는데, 본체를 받쳐주는 역할이거나 억눌린 모습이나 귀여운 난쟁이들의 모습 등으로 표현되고 있으며, 심지어는 악마들로 가둬놓거나 짓누른 모습(Kelaniya 사원, 콜롬보)으로도 표현하고 있다. 이는 인도의 힌두교와 신화가 스리랑카에 전래되었다가 불교문화가 정착하여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힌두신의 존재는 미약해지고 악마신이나 단순한 난쟁이로 변화되어 춤추는 난쟁이 형상으로 표현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천상의 무희’ 압사라춤의 의미와 지역 특징

 박물관에 전시된 부조상 압사라(apsara)는 ‘천상의 무희’라는 뜻으로 인도신화에는 젊고 우아한 초자연적인 여성으로 특히 춤 예술이 뛰어나 신들의 궁전에서 간다바스(Gandharvas)가 만든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며 신들과 남자들을 즐겁게 하는 천사로 알려져 있다. 압사라춤으로 꽃을 피운 나라는 캄보디아이다. 사원에는 수많은 압사라 부조상이 있으며 황실 발레라고도 하며 천상의 춤을 추는 신성한 사람들로 여겨져 왕궁에서 살았다고 한다. 압사라 춤은 손동작이 다양하고 화려하여 습득하기 어려운 춤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스리랑카의 압사라는 힌두문화의 쇠락과 함께 미미할 수밖에 없었고 불교문화에 융해되어 버렸다. 따라서 스리랑카의 압사라 유물 역시 아누라다푸라의 이수루무니아 박물관(Isurumuniya museum)의 전시품에서나 겨우 흔적을 볼 수 있을 정도였다.

 

 


 반인반수(半人半獸)춤 킨나라(kinnaras)의 의미

 춤과 관련한 또 하나의 부조상 유물은 킨나라(kinnaras)로 불교 신화와 힌두교 신화에는 전형적인 연인, 천상의 음악가, 반인반마(半人半馬)이며, 동남아시아(특히 태국)에서 자비로운 반인반조(半人半鳥)로 인간의 안녕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특히 여성은 춤, 노래 및 시로 유명하며 여성의 아름다움, 은혜 및 성취를 상징한다. 하지만 힌두문화의 전래보다 불교문화가 꽃피운 스리랑카에서의 힌두신화와 종교적 색채는 엷어지고 미약한 흔적만이 박물관에 소장된 모습이었다.

 

 


 아누라다푸라의 다양한 사원(Temple, Vihara)과 탑(Dagoba)들

 이어서 두 번째로 찾은 곳은 새하얀 루반벨리사야 다고바(Ruvanvelisaya Dagoba)였다. 눈부시고 거대한 '위대한 탑(Great Stupa)'이라 일컫는 탑으로 높이가 무려 91m에 달하는 이 탑은 반원 모양의 탑신 위에 우리 석탑의 상륜에 해당하는 부분이 하늘 높이 솟아 있고, 탑 주변은 불교에서 평화와 정의를 상징하는 코끼리 1900마리를 조각한 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세 번째로 아바야기리 비하라(Abhayagiri Vihara) 및 다고바(Dagoba)를 찾았다. 아누라다푸라에서 가장 큰 사원이고 대규모 사원으로서는 두 번째로 오래된 사원이다. 승원의 교육기관으로 한때는 5천 명 이상이 거주했다고 한다. 비하라(vihara)란 승려들의 수련을 하는 참선공간으로 돌침대와 대중들에게 설법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뜻한다. 스리랑카 국민 70%가 불교를 믿는데 사원이나 불탑이나 보리수에는 흰옷 입은 이들이 꽃을 올리고 기도하는 것이 일상처럼 보였다. 끝으로 찾아간 곳은 제타바나 다고바(Jetavana Dagoba)였다. 마하비라하(Maha vihara)의 명에 따라 120m 높이로 건축되어졌다. 그 규모는 그 당시 세계에서 이집트의 피라미드 2개 다음으로 높은 건축물이었으나 지금은 83m 정도로 낮아졌다.

 

 


 두 번째 수도 폴론나루와(Polonnaruwa)의 불교문화유산

 첫 번째 수도 불교사원 답사를 마친 일행들은 전용차량으로 두 번째 수도 폴론나루와(Polonnaruwa)로 이동하였다. 스리랑카 싱할라 왕조는 기원전 377년부터 아누라다푸라(Anuradhapura)에서 약 1,400년간 풍요를 누렸다. 그러나 9세기에 인도 타밀에 촐라 왕조(Chola Dynasty)가 들어서면서부터 힌두세력의 침략이 잦아지고 11세기에 접어들어 동쪽으로 약 80km 떨어진 폴론나루와(Polonnaruwa,1153~1186)로 두 번째 수도를 옮겨 180년간을 유지했다. 12세기에 파라크라마바후(Parakramabahu) 1세가 만든 전원도시(garden-city)의 놀라운 고대도시는 1982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파라크라마바후 1세는 3중벽으로 된 성곽 안에 굉장한 전원도시를 건설하여 궁전과 성지들을 그의 치세 기간에 만들었다.

 

 


 스리랑카의 전통춤 유형

 스리랑카의 전통춤(Natum)을 개괄적으로 분류해보면 오랜 세월 왕실에서 춤과 음악으로 사랑을 받으며 전승해온 고전춤(classic dance), 민간에서 수확과 생활을 표현하는 민속춤(folk dance), 주로 가면을 쓰고 치병의식으로 추어왔던 의식춤(ritual dance)으로 장르를 구별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고전춤은 크게 3가지 주요 지역 스타일이 있다. ① 캔디안 댄스(Kandyan dance, Uda Rata Natum), ② 파하타 라타 댄스(Pahatha Rata Natum, Low Country Dance), ③ 사바라가무와 댄스(Sabaragamuwa Natum)가 전승되고 있다.

 

 
 ① 캔디안 댄스(Kandyan dance, Uda Rata Natum)

 캔디안 댄스가 스리랑카춤의 대표적인 춤으로 알려진 것은 세 번째 왕국이었던 캔디지방에서 오랜 동안 왕실을 중심으로 현재까지 오롯이 전승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스리랑카의 중부 고원지대(hill Country)인 캔디지역에 고유하고 다양한 춤 형식들을 포괄하고 있으며 다른 지역까지 널리 전파되어 있기도 하다.
 캔디안 댄스의 기원은 캔디안 지역에서 여전히 행해지는 스리랑카 ‘악마의 춤(Devil Dance, Kohomba-kankariya)’라고 불리는 의식춤 형식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전설에 따르면 악귀의 저주병(Divi Dosa, 표범의 저주)에 괴로워 병약해진 판두바사디바(Panduvasadeva) 왕을 치료하기 위해 샨크라(Śakra, 帝釋天) 신의 요청으로 세 명의 샤먼이 인도에서 스리랑카 섬에 왔다. 왕이 악귀가 몸에 실려 매일같이 악몽으로 고통 받고 있다고 말하자, 샤먼들이 코홈바 카나리야(Kohomba kankariya)를 연행하자 악령이 사라졌다. 그 후 많은 원주민들이 이 춤을 추기 시작했는데 의식춤 형식의 세련미를 갖추고 체계화되어 나중에 ‘우다라타 나툼(Udarata natum)’ 즉 Kandyan dance’ 형식으로 발전하게 되었으나 주로 남성들만이 참여하였다. 오늘날 Kandyan dance는 종교적인 화려한 행렬과 사원의식 및 모든 축제 행사에서 연행되고 있다.

 ② 파하타 라타 댄스(Pahatha Rata Natum, Low Country Dance, Ruhunu Natum)

 파하타 라타 댄스(Pahatha Rata Natum)은 지역을 구별하는 명칭으로 신할리족(Sinhalese)의 남부 평원의 저지대(Low Country)춤이다. 이는 ‘악마의 춤(devol madu, devil dance)’이라고도 불리며 악마나 신비한 존재의 퇴마의식(exorcism ritual)과 관련이 깊다. 춤의 내용은 조류, 악마, 파충류 등 다양한 18개의 가면을 착용하고 인체에서 여러 질병을 쫓아내기 위해 연행하기에 ‘다하 아타 사니야(Daha Ata Sanniya) 또는 ’사니 야쿠마(Sanni yakuma, 질병 퇴치, 영적 구제의 뜻)’로 부른다. 이 의식은 환자에게 질병을 옮길 것으로 생각되는 악마를 부르며, 인간들을 괴롭히지 않도록 악귀를 몰아내는 내용으로 밤새도록 연행하는 것으로 마을에서 가장 즐거운 행사 중 하나이다. 흔들리는 손놀림, 넓고 각진 발놀림, 독특한 드럼 리듬과 의상은 루후누(Ruhunu) 댄스의 특징 중 일부이다.

 
 

 ③ 사바라가무와 댄스(Sabaragamuwa Natum)

 사바라가무와(Sabaragamuwa)춤은 라트나푸라(Ratnapura)와 켈라리(Kegalle)지역에서 전승되며, 초기에는 초기에 캔디안 왕국에 속한 지방이었다. 캔디안 댄스 형식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았지만 저지대(Low Country)춤 양식도 흡수하게 되어 캔디안 댄스와는 약간의 차이점이 있다. 사바라가무와 전통에는 현지 사람들이 존경하는 샤먼(Saman)신의 숭배와 관련이 있으며, 독특한 의상, 노래, 드럼 비트 및 드럼 스타일이 있다. 춤사위도 손이 머리 위로 결코 들어올려지지 않지만 대신 팔이 몸에 비스듬히 뒤로 젖혀지는 특징이 있다. 또한 반주악기인 다우라(daula)도 양쪽에서 같은 소리를 내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스리랑카의 전통춤은 대체로 무릎이 반쯤 구부러져 바깥쪽으로 벌려진 포즈이며, 팔은 가슴과 나란히 팔꿈치에서 구부러진 모양으로 매우 의식적이며 가면을 많이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인 특징이다.


 
이병옥
용인대학교 무용학과 교수로 25년간 재직 예술대학원장을 역임하다 정년퇴임 종신 명예교수이다. 한국무용사학회와 한국동양예술학회, 한국공연문화학회 회장을 역임했고, 경기도와 서울시문화재위원을 거쳐 현재 이북오도청 문화재위원이다. 1985년 객석 예술평론상을 수상, 무용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2018. 02.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