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한-러 문화예술 교류 30년을 바라보면서
교류(交流)에서 공감(共感)으로
장광열_<춤웹진> 편집장
 1988년에 열린 서울올림픽은 볼쇼이발레단과 볼쇼이오페라단 등 미수교 국가였던 러시아의 고급예술이 한국에 소개되는 역사적인 전기를 마련했다. 그로부터 30년 동안 한국과 러시아는 무용 연극 음악 미술 문학 등 여러 예술 장르에서 다양한 국제교류를 지속해 왔다.
 2017년 한국의 춤계에서는 러시아와 관련된 네 개의 의미 있는 공연이 있었다. 현대무용단 모던테이블이 모스크바에서 열린 체홉국제연극제에 공식 초청받아 6월 21일부터 23일까지 〈다크니스 품바〉를 공연했고, 6월 24일과 25일에는 국립발레단이 대한민국발레축제 폐막공연으로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스파르타쿠스〉 전막 공연을 가졌다. 8월 5일부터 23일까지는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 아이스발레단이 내한, 대구 부산 울산 인천 서울 등 8개 도시에서 〈백조의 호수〉와 〈잠자는 숲속의 미녀〉를 공연했다. 그리고 11월 1일부터 5일까지 국립발레단은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리나〉를 전막 발레 작품으로 공연한다.
 이들 네 개의 공연은 무용예술 부문에서의 한국과 러시아의 그동안의 교류 양상과 앞으로의 교류 방향을 모두 가늠해 볼 수 있는 것들이다.
 현대무용단인 모던테이블의 러시아 공연은 정부가 주도하는 문화행사의 일환으로 열린 것이 아니다. 체홉국제연극제의 예술감독이 베이징국제무용제에 참가한 이들 단체의 해외 투어 공연을 보고 초청을 결정했다. 〈다크니스 품바〉는 모쏘벳 극장(Mossovet Theater)에서 열린 세 차례 공연 모두 관객들의 기립박수를 받으며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러시아의 유명 페스티벌에 공식 초청을 받을 만한 한국의 작품이 해외 시장에서 발견되어졌고, 러시아 예술감독의 예상이 적중 관객들의 호평을 얻어낸, 곧 시장 논리에 의한 대한민국 예술단체의 성공한 러시아 진출의 한 사례이다. 

 


 국립발레단의 〈스파르타쿠스〉는 러시아를 대표하는 볼쇼이발레단의 간판 레퍼토리이자 오래 동안 이 발레단의 예술감독이었던 유리 그리가로비치의 안무 작품이다. 국립발레단은 그를 안무가로 초청 2001년에 이 작품을 초연한 이래 지금까지 모두 여섯 차례에 걸쳐 정기공연의 레퍼토리로 꾸준히 무대에 올리고 있다. 이 작품은 러시아 노보시비르스크발레단 무용수들과의 합동 공연 등 한국과 러시아 무용수들의 교류로 이루어졌고 러시아 발레 예술가의 지속적 한국 방문이 이루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러시아의 거장 안무가가 자신의 애장품을 대한민국 발레단의 공연 작품으로 선듯 내놓을 수 있었던 것은 이전부터 있어 왔던 한국 예술가들과의 개인적인 교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상트 페테르부르크 아이스발레단 내한 공연은 올해가 20년을 맞았다. 20년 동안 매해 한국을 찾아 온 이 발레단의 한국방문 공연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점, 서울 뿐 아니라 대한민국 각 지역에서 골고루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온 가족들이 함께 즐기는 공연이란 점에서 의미가 있다.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러시아에 대한 친밀감을 형성하는 것과 함께 발레강국으로서의 러시아의 국가 이미지를 고양시키는데 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리나〉는 문학 작품으로서 뿐만 아니라 영화 발레 등으로 만들어진 작품들이 계속 공연됨으로써 한국민들에게는 러시아의 문화와 예술을 오롯이 만나는 기회가 되고 있다. 2005년에 러시아 보리스 에이프만발레단의 〈안나 카레리나〉를 공연했던 적이 있었던 국립발레단은 또 다른 스타일로 만들어진 동명의 최신 작품을 평창동계올림픽 개최를 기념해 오는 11월 서울과 내년 2월 강원도 에서 공연한다. 
 러시아 대문호의 원작을 바탕으로 2014년에 비엔나에서 초연한 최신 작품(안무 Christina Spuck)을 대한민국의 국립발레단이 발 빠르게 공연한다는 것은 곧 한국과 러시아의 문화적인 이미지를 함께 고양시키는 작업이며, 이 역시 한-러 문화예술 교류인 셈이다. 

 


 이밖에 지난해 러시아를 대표하는 마린스키발레단의 주역 무용수로 성장한 김기민이 무용의 오스카상인 브노아 드 라 당스를 수상했고, 세계 4대 발레 콩쿠르로 인정받고 있는 모스크바 국제발레콩쿠르에서 한국 무용수들이 대거 입상한 것 등은 그동안 유능한 러시아 발레 지도자들과 한국 발레계와의 교류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기폭제가 되었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리나〉를 소재로 만든 두 개의 발레 작품과 볼쇼이발레단의 간판 작품을 레퍼토리로 보유한 대한민국 국립발레단은 러시아의 문화예술을 세계 여러 나라에 알리고, 또 앞으로도 알릴 수 있는 가능성을 여전히 보유하고 있다. ‘사람’과 ‘예술유산’을 통한 교류가 부가가치를 높이고 있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한국과 러시아의 공연예술을 중심으로 한 국제교류는 그동안 꾸준히 진행되어 왔지만 1회성, 산발적, 행사성, 특정 지역 편중, 주민 참여형 프로그램 및 아티스트 간 협업 부재, 전문인력 부족 등의 문제점을 안고 있다. 
 향후 한국과 러시아의 문화예술교류는 좋은 상품이 잘 팔리고, 만들어진 상품을 더 많은 곳으로 유통시켜 생산성을 높이는, 시장경제의 논리를 바탕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또한 세계 예술계의 새로운 흐름을 간파하고 향후 다가올 미래의 변화를 예측, 적절히 대응하는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특히 양국 정부가 개입하는 정책적인 것들의 경우 소박하고 단순한 것보다는, 과시형의 요란스런 것 보다는, 실질적이고 상호간 부가가치가 높은 것들이 추진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필요하다면 두 나라 정부는 전략적 파트너십을 더욱 공고히 할 필요가 있다. 두 나라가 처한 환경과 미래의 변화 예측까지 포함한 교류 정책 입안은 한-러 문화예술계의 경쟁력을 국내외에서 배가시킬 수 있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교류의 생산성 향상과 “교류”의 차원을 넘어 “공감(共感)”으로까지 진화되는 단계는 교류 30년을 기점으로 향후 한-러 문화예술 교류의 중심에서 논의되어야 할 중요한 과제이다. 
장광열
1984년부터 공연예술전문지 〈객석〉 기자, 편집장으로 20여년 활동했다.  춤비평집  『변동과 전환』 , 『당신의 발에 입맞추고 싶습니다』 등의  저서가 있으며, 〈춤웹진〉 편집장, 서울국제즉흥춤축제 예술감독 등을 맡아 춤 현장과 소통하고 있다. 한예종 숙명여대 겸임교수로 후학들을 지도하고 있다.
2017. 11.
사진제공_모던테이블, 국립발레단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