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2017년 4월 1일 아침에 바라보는 한국의 춤 환경은 변동의 연속이다. 창작ㆍ교육 그리고 정책 운용 등등에서의 변화 조짐이 만만치 않다.
무용희망연대 ‘오롯’의 출범은 주목할 만하다. ‘바람직한 예술생태계를 위한 생각과 실천을 공유하는 무용인 네트워크’란 단체의 성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들은 특정한 개인이 주축이 된 것이 아니라 ‘공공’을 내세운다.
무용연대 ‘오롯’의 출발이 예술검열, 최순실-박근혜 국정농단 사태, 블랙리스트,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과 파면, 그리고 구속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춤계에 분출된, 춤계 내부에 도사린 부정과 부패, 잘못된 관행 등을 개선하자는 흐름의 연계선상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은 눈여겨 볼만하다.
그동안 정부정책에서부터 공공기관의 잘못된 행정, 그리고 춤계 내부의 그릇된 행태에 변변하게 대응하지 못했던 관행에 대해 앞으로 무용연대 ‘오롯’이 공식적으로 목소리를 내면서 필요한 사안들에 대해서는 이를 공론화 시킬지는 지켜볼 일이다. 곧 3월 18일 ‘춤, 상생을 꿈꾸다’를 내건 토론회로 공식적으로 첫 발걸음을 내디딘 무용희망연대 ‘오롯’의 활동이 춤계 적폐 청산을 통한 건강한 춤 문화 조성으로 이어질는지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된다는 말이다.
그러나 춤계에 오래 동안 산적한 적폐 청산이 비단 이들 만의 몫은 아닐 것이다. 예술검열, 김영란법 시행, 국정농단 사태, 급기야 현직 대통형의 탄핵과 구속 사태가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는 것은 어찌 보면 정의의 회복이자 실천이다.
한국 춤계의 고질적인 병폐와 잘못된 행태와 관행들이 대통령 구속이란 정국을 계기로 대수술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거세고 강하게 분출되고 있다. 아직 수면 위로의 부상을 목격하지 못하고 있는 일부 무용가와 그 주변인들도 적어도 달라지고 있는 분위기를 곳곳에서 감지하고는 있을 것이다. 이제는 대한민국의 춤계가 이에 화답할 때이다.
경성대학교 무용학과 폐과사태로 인한 혼돈은 다른 무엇보다 예술을 바라보는 정부와 대학 당국의 시각이 문제이다.
경성대학교는 3월 29일 “3월 28일 열린 대학 평의회에서 학과 폐과 해당 안건을 통과시켰다”며 무용학과 등 4개 학과의 폐과를 사실상 확정했다. 학교 측이 내세운 무용학과 폐지 이유는 “입학수요가 떨어졌고 4년 연속 학과 평가에서 최하위를 기록했다”는 것이다. 경성대 관계자는 "전공 선택 비율이 낮다는 것은 사회적 수요가 많지 않다는 것을 뜻할 수도 있다"며 "학교를 경영하는 입장에서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경성대학교 무용학과가 그동안 부산을 포함 영남 지역과 한국 춤계의 활성화에 끼친 기여도가 만만치 않다는 점에서 폐과 사태 소식을 접한 무용가들의 심경은 착잡할 수밖에 없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예술과 예술교육을 바라보는 교육부와 대학당국의 인식이다.
예술교육이 갖는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지구촌에 난무하는 폭력과 테러, 부정과 범죄를 방지하는 근본적인 치유책은 어쩌면 어릴 때부터 예술과 예술교육을 통한 정서 순화와 따뜻한 감성, 그리고 이를 통한 휴머니티의 형성에서 찾아야 한다.
예술교육이 갖는 순기능을 숫자로 판단하는 대학교육과 대학 경영은 반드시 시정되어야 한다. 기업경영의 잣대로 예술을 경영하는 것은 그 효용성 면에서도 잘못된 것이다. 당장의 손실보다는 그것이 갖는 부가가치를 더욱 중시하는 예술경영의 논리가 기업 경영의 논리를 앞서고 있는 새로운 흐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반면에 경성대 무용학과 폐과가 이번에 갑자기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지난해 불거진 점, 학과 평가에서 4년 연속 최하위를 받았다는 점은 경성대 무용학과에서 이 같은 사태에 대한 해결을 위한 노력이 미온적이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이제라도 경성대학교는 대학 운영의 중심을 기업경영의 논리가 아닌 대학의 본래 기능과 교육이 가져올 미래의 생산적인 가치를 반영한 쪽으로 잡아야 한다. 무용학과의 입학생 저조가 문제가 된다면 예술교육의 기회를 원천 봉쇄할 것이 아니라 정원감축 등을 통한 조정을 통해 보완하는 방안을 도출해야 한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를 비롯한 춤 교육 종사자들 역시 무용예술이 어떻게 사람의 인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지, 무용예술교육 현장에서 끊임없이 이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4월 1일을 전후로 바라본 대한민국의 춤 공연은 그야말로 변화무쌍하다. 제주도에서는 드물게 젊은 관객들을 겨냥한 프로포즈 이벤트를 곁들인 컨템포러리댄스 공연이 있었고, 부산에서는 부산국제즉흥춤축제가 10주년을 맞았다. 대구에서는 3개의 공공무용단이 연합공연을 가졌고, 안동에서는 지역적인 소재의 춤 작품이 상설 공연으로 무대에 올려 지고 있다. 광주에서는 광주시립발레단이 해외에서 활약하는 우리나라 안무가를 초청해 새 작품을 공연한다. 대전에서는 칼 오르프의 음악을 곁들인 컨템포러리댄스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
그런가하면 서울에서는 피나 바우쉬 무용단의 내한공연에서부터 국립발레단‧국립현대무용단‧국립무용단이 차례로 시즌 첫 공연을 국내외 안무가들의 작품으로 꾸몄다. 치열하게 창작 작업을 펼치고 있는 독립 안무가들과 상주예술단체들의 공연이 이어졌고, 서울무용센터에서는 재독 안무가의 국제 레지던시 작업도 조용히 펼쳐졌다. 춤 공연의 유형과 제작 방식 등에서의 다변화가 봄 시즌부터 전국적으로 보여 지고 있다.
LG아트센터, 아르코예술극장 대소극장, 대학로예술극장 대소극장, 국립국악원 국립극장, 서울무용센터, 서강대메리홀, 강동아트센터, 춤 전용극장인 창무춤터, M극장, 두리춤터를 비롯해 성균소극장, 그리고 갤러리와 스튜디오 시설 등등 이제 춤 공연장은 서울 전역 곳곳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대관료 지원, 레지던시 지원, 창작산실 등 창작활동 지원, 상주단체 지원, 문화소외지역 순회공연 등 커뮤니티를 위한 지원, 국제교류 지원, 예술축제 지원, 춤전문지 발간 지원, 기획형 행사 지원, 행정인력 지원 등등 한국의 무용가들과 단체들을 향한 우리나라의 지원정책은 정말 다양하다. 여기에 재단법인 예술경영지원센터와 전문무용수지원센터 등 별도의 기관 지원을 통한 것까지 합치면 그야말로 넘쳐난다.
이런 풍족한 여건에 대해 이제는 무용가들과 춤 단체들이, 비평가를 포함한 기획자들과 무용 행정가들이 화답할 때이다.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들고, 제대로 된 교육을 하고, 제대로 된 심의와 평가를 해야 한다. 예술가들의 창작작업에 대한 비평 작업 역시 제대로 해야 한다. 인지상정에 끌려 50점짜리 공연을 80점, 90점으로 둔갑시켜서는 안 된다. 전문성과 도덕성으로 무장된 사람들에 의한 프로페셔널리즘과 책임감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2017년 4월 1일, ‘건강한 춤문화를 위한, 正論’을 지향하는 <춤웹진> 4월호 발간일 아침에 한국 춤계의 밝고 어두운 현장을 지켜보면서, 건강한 춤문화, 춤사회의 정의 회복를 향한 주체는 결국 대한민국 춤계 종사자 스스로임을 다시 한 번 인식하게 된다.
장광열
1984년부터 공연예술전문지 〈객석〉 기자, 편집장으로 20여년 활동했다. 춤비평집 『변동과 전환』 , 『당신의 발에 입맞추고 싶습니다』 등의 저서가 있으며, 〈춤웹진〉 편집장, 서울국제즉흥춤축제 예술감독 등을 맡아 춤 현장과 소통하고 있다. 한예종 숙명여대 겸임교수로 후학들을 지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