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필자가 아프리카 춤기행을 결심한 것은 나이가 들수록 가보기가 더 힘들어지는 곳이라는 생각이었기에 무리를 해서 뒤늦게나마 일정을 잡게 되었다. 물론 가족들은 펄쩍 뛰며 만류를 했지만 ‘이제 못가면 더 힘든 여정’이라고 고집을 피워 떠나게 되었다. 칠십대에 아프리카 휴양여행도 아니고 사바나 대평원(탄자니아는 세렝게티)을 그것도 배낭여행으로 탐사를 떠난다는 것은 목숨 걸고 가는 것처럼 ‘살아만 돌아오라’는 가족들의 염려를 새기며 도전하게 되었다.
일생을 춤의 민속학적 연구로 전국의 민속현장을 다녔고 이어 아시아권의 타민족의 춤들을 비교민속학적으로 접근을 하다가 전 세계의 민족문화와 춤을 문화인류학적으로 확인하고자 하는 학자적 소망을 지울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프리카의 허브 이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를 거쳐 케냐 나이로비로 가는 여정
2017년 1월 5일 인천공항 4시 C코너에서 여행사가 모객한 아프리카 배낭여행팀 15명이 모였다. 나머지 8명은 다음 비행기로 출발하여 나이로비에서 합류한다고 하였다.
7시15분에 이륙하여 베이징공항 2터미널에 9시에 도착했다. 공항 밖에 나오니 무료셔틀버스가 대기하고 있어 탔는데 한참 만에 북경 3공항에 도착했다.
다시 아디스아바바행 이티오피아 항공사를 찾아 4층에 가는데도 시간이 많이 걸렸다. 밤12시30분(한국시각 1시30분)에 탑승하여 기나긴 11시간에 걸친 비행 끝에 이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 국제공항에 현지시각 6시30분(한국시각 12시30분)에 여명이 밝아오는 끝없는 지평선의 일출을 바라보며 도착하였다, 인류 조상의 발생지이자 ‘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란시스(猿人, Australopithecus Afarensis, '루시'라는 별명)’라는 학명을 지닌 350만년 전의 초기인류의 발굴지(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440만년 전의 ‘아르디피테쿠스 라미두스’(Ardipithecus ramidus, 약칭: Ardi)가 그 후에 발굴되었음)에 도착한 것이다.
드디어 케냐 나이로비 항공기를 10시에 탑승하고 나이로비공항에 12시에 도착하였다. 호텔까지 털털거리는 셔틀버스 4대에 나눠 타고 가는데 에어컨도 없고 매연이 풍기는 공항로가 교통체증까지 겹쳐 시내로 진입하는데 엄청나게 많은 차들과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어 아수라장 같아 정신이 나갈 지경이었다.
겨우 선라이즈 호텔에 3시 도착하였다. 집에서 1월5일 2시에 출발하여 31시간 만에 첫 숙소에 도착한 것이다. 긴 여정으로 생긴 피곤함으로 첫날밤에 깊은 잠에 빠졌다.
여기서 잠깐, 여행사의 배낭여행의 특징은 여느 패키지여행과 달리 ‘가이드’가 모든 여정에 똑같은 관광코스를 데리고 다니며 설명하고 안내하는 것이 아니라 ‘길잡이’라 하여 항공, 숙소, 긴 이동수단만 책임지고 현지에 도착해서 여러 관광지에 대한 정보만 안내하고 개별 또는 그룹지어 각자 비용으로 다니도록 하는 것이다. 식사는 조식만 호텔식이고 점심과 저녁은 각자 맛집을 찾아다니든지 호텔에서 밥솥으로 해먹던지 포트로 라면을 끓여 먹든지 하는 것이었다. 숙박은 호텔에서 하룻밤을 잔 다음부터는 큰 가방을 맡겨놓고 이때부터 배낭여행으로 유적지와 관광지로 떠나 며칠씩 텐트, 산장, 호텔 등을 거쳐 다녀와 다시 큰 가방을 맡긴 호텔에 투숙하고 다음날부터 다른 나라나 먼 지방으로 아주 떠나는 방식으로 여정을 진행하는 것이기에 ‘배낭여행’이라 하였다. 비용은 적게 내고 현지에서 각자가 비용 지불을 하는 것이어서 번거롭고 불편하지만 전체적인 비용이 비교적 적은 편이며 목적성을 지닌 여행객들은 본인이 원하는 여행지를 찾아다니며 보람을 찾는 것이 특징이다.
마사이 국립공원 가는 길-그레이트 리프트 밸리
1월7일 6시 기상과 조식을 마치고 7시 반 출발로 간단한 복장에 사파리 탐사 장비만 가볍게 배낭에 메고 큰 가방은 호텔에 맡기고 출발하였다. 셔틀버스 4대에 나누어 출발하여 두 시간쯤 달려 산언덕을 넘자 광활한 아프리카 대평원(Great Rift Valley, 아프리카 대지구대)이 눈 아래에 전개되었다. 전망 좋은 휴게소 겸 관광상품점에서 잠시 광활한 대평원을 감상하여 기념촬영도 하며 기념품도 구경하였다.
그레이트 리프트 밸리(Great Rift Valley)는 2500만년 전에 아프리카남북으로 솟은 일종의 융기된 두 개의 산맥으로 이스라엘에서 남아프리카까지 9600km(폭 35~60km)나 된다.
워낙 고도가 높은 나이로비(1700m)에서 출발하여, 전망대(해발 2140m)에서 내려다 본 아래 멀리 보이는 산들도 모두 한라산 보다 높다.
그런데 2시간쯤 지나자 비포장길이 나타났다. 이제부터는 문명의 혜택을 점차 찾아보기 힘든 원시의 평원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온 듯 민가도 드문드문하고 소나 염소를 키우는 집들과 사람들이 간간히 보일 뿐이다. 운전기사가 털털거리며 흙먼지만 일으키며 요동치는 승차감을 빗대어 '아프리카 마사지'라고 하며 길 가장자리 물길로 형성된 경사지고 패인 곳을 일부러 지그재그로 달리니, 로울링으로 심하게 흔들리는 차량으로 이렇게 두 시간을 진동마사지로 달렸다.
이제부터는 드문드문 움집처럼 지어놓고 소, 염소 등을 기르는 원주민들 외에는 문명의 이기를 발견할 수 없는 평원으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아직 사바나국립공원에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길목에는 벌써 얼룩말, 임팔라, 기린, 톰슨가젤, 원숭이, 멧돼지 등이 먼저 우리를 맞이하였다. 동물들이 있는 곳에서는 셔틀버스를 멈춰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드디어 오후4시, 8시간 반 만에 목적지인 마사이마라국립공원 캠프장에 도착했다. 텐트 배정을 마치고 여정을 풀었다. 대형텐트에는 침대 2대에 화장실 샤워장까지 갖추었다. 두꺼운 천막으로 방갈로처럼 만든 숙소를 수십 개를 드문드문 별장처럼 설치하고 조경도 해놔 생각보다는 운치가 있어 보였다. 식당에 모여 잠시 차 한 잔씩 나누고 국립공원 사파리로 출발하였다.
드넓은 사바나평원으로 나가는 셔틀버스가 따로 있는 줄 알았는데 우리가 타고 온 셔틀버스의 지붕을 들추니 오픈카처럼 지붕 뚜껑이 위로 들쳐져 모두 고개를 내밀 수 있게 되었다.
먼저 눈에 띄는 동물이 누우 떼였다. TV에서 보던 만큼 엄청 많은 수는 아니지만 그래도 많았다. 이어서 자그마한 몸매로 하얀 배에 진한 옆줄 무늬가 귀여운 톰슨가젤 떼들이 다가왔다. 계속해서 큰 키를 뽐내는 기린들이 한가로이 새끼 기린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모습과 나무 위의 잎을 따먹는 모습을 보다가 얼룩말들이 눈에 확 들어왔다.
치타 한마리가 언덕 위에 비스듬히 누워 우리 일행들을 느긋하게 쳐다보고 있다. 마치 우리를 사냥감처럼 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도 생각해봤다.
대평원에 자유롭게 사는 저 야생동물들의 평화로움에 가슴이 뭉클해지는 감정을 억제할 수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 거북이 한마리가 부지런히 어디를 가는 중인 모습과 석양이 짙어지는 나뭇가지 끝에 수리 한 마리가 다른 새나 작은 동물들을 주시하는 장면, 공작새 무리들이 길가에 무리지어 있는 모습, 해가 지는 들녘에 마지막 풀을 뜯는 초식동물들을 바라보면서 바삐만 살아온 인생이 덧없이 느껴지는 순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돌아오는 길도 평원이지만 물길 생긴 곳마다 셔틀버스는 롤러코스트를 타는 기분을 계속 느끼게 하는 것이 내 생전 가장 긴 놀이기구를 탄 기분이었다.
마사이마라 국립공원의 사파리 탐사
2017년 1월8일 7시 아침식사 후 다시 사파리 탐사에 나섰다. 과연 오늘은 어떤 동물들을 찾아볼 수 있을까? 또다시 굴곡진 울퉁불퉁 길을 지나 야생동물들의 서식지와 자연생태적인 삶의 모습을 탐험하듯 숲속과 광활한 벌판 구석구석을 주시하며 우리 사파리팀 운전기사의 예지력으로 찾아 나선 것이다. 4개 셔틀버스에서는 워키토키가 수시로 기사들끼리 정보를 주고받으며 동물들의 위치를 공유하고 있어 생각보다 잘 찾아내었다.
우선 군집해 있는 누우, 톰슨가젤, 임팔라 등은 벌판 구석구석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어 쉽게 발견하였다. 이어 눈에 잘 띠는 기린, 얼룩말, 멧돼지 등도 어렵지 않게 초원벌판과 구릉과 협곡 숲에서도 찿아냈다. 그러나 육식동물들을 찾기란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제 유일하게 치타 한 마리를 봤을 뿐이었는데 과연 오늘을 얼마나 찾아볼 수 있을까 노심초사하였다. 드디어 표범 두 마리를 풀섶에서 찾았다. 얼룩무늬 선명한 표범의 위용과 느긋한 자태를 뽐내듯 오히려 사파리차량들을 쳐다보면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이어서 한 무리의 코끼리, 버팔로(아프리카 물소) 등을 보다가 탄자니아 국경지대에 다다랐다. 허망할 정도로 국경수비대도 없고 비자발급도 없고 국경선도 없고 시멘트 말뚝 하나가 전부였다.
12시 점심은 탄자니아쪽으로 조금 더 나아가 딱 한그루밖에 없는 아카시아 그늘아래 자리를 몇 장 깔고 인스턴트 식품으로 먹었다. 내용은 샌드위치, 빵, 쥬스, 닭다리, 과자 한 봉지, 바나나 한 개가 전부였다. 특히 닭다리는 우리나라 통닭조각과 같아 맛있게 먹었다.
점심 후 마라강으로 차를 몰아갔다. TV에서 아프리카동물 프로그램에서 빠지지 않고 누우떼의 이동경로와 악어 떼에 생존을 걸고 건너는 장면을 보여주는 바로 그곳이다. 지금은 이동철이 아니라 조용하지만 하마들과 악어가 물속과 물가에 떼를 지어 조용히 뭉쳐있었다.
마라강가에서는 총기를 소지한 수비대의 호위를 받으며 거닐고 다시 사파리버스에 승차하여 동물탐사를 나섰다. 대개 3일 동안 탐사를 하는데 일행은 오늘 하루에 사바나 세렝게티 대평원에서 동물 빅 파이브(vic5)라 하는 사자, 코뿔소, 아프리카 물소(버팔로), 코끼리, 표범까지 다 만난 것은 보기 드문 행운이라고 하였다. 빅5를 만난 기쁨으로 일행은 마사이족 마을로 향했다.
마사이족의 점핑춤-‘아두무(adumu)’
사실 본인은 마사이족들의 춤과 노래를 보고 듣는 것을 이번 아프리카 춤기행의 최대의 목표로 삼고 험난한 여정을 뚫고 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그런데 오후 날씨가 갑자기 나빠지며 비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마을을 찾아갔지만 바람이 불고 을씨년스럽게 변하자 마사이족 사람들이 손님을 맞이하고 마사이춤을 보여주는 것이 너무 형식에 치우치고 제대로 보여주지 않는 것 같아 속이 좀 상했다. 하지만 촌장의 소개로 200명의 마을주민들이 모여 살며 마사이 점핑댄스와 라운드댄스를 보여주고 불 피우는 법을 시범을 보이겠다고 하자, 곧바로 뒤에 늘어선 마사이 남성들이 붉은 ‘슈카(shuka, 망토)’를 걸치고 준비하고 있었다.
마사이의 차림새는 유별나게 붉은 색깔이다. 청년 전사 ‘모란(Moran)’은 창과 방패를 들고 다니며, 중년과 장로들은 허리에 ‘오랄렘’이라는 쌍날단도를 차고 오른손에 무기의 일종으로 골프클럽처럼 생긴 ‘아리칸’(Arikan, 스와힐리어는 오링가)라는 나무방망이(흑단(黑檀)나무)를 들고, 왼손에는 ‘은구디’라고 하는 소치는 막대기를 가지고 있었다.
아프리카 음악과 성악의 특징은 카톨릭 미사의 교송(交誦)처럼 응창(應唱, 리더 대 그룹)이나 교창(交唱, antiphoarius, antiphonal singing, 그룹 대 그룹) 등 응답 형식을 들 수 있다. 이들은 모두 아프리카 음악의 구조가 짧은 모티프 내지는 구(句)의 반복과 변주로 되어있는 데 바탕을 두고 있다. 마사이춤은 반주악기 없이 음창형식으로 이루어졌다.
춤 진행은 (1) 제자리 굴신춤으로부터 시작한다. 일렬로 늘어선 마사이 장년들이 선창소리에 다같이 코러스로 단전에서 목으로 뿜어내듯이 구음소리로 ‘익-웨웨! 익-웨워!’하며 무릎굴신에 따라 온몸을 상하로 흔들기 시작한다. 상체의 움직임은 요즘 젊은이들이 잘하는 웨이브 동작과 같이 업(up)동작에서 가슴을 폈다가 다운(down)동작에서 가슴을 오므리며 목을 냈다가 들이는 상하웨이브를 한다.
(2) 줄을 따라 왼쪽 원으로 돌기를 한다. 선두를 따라 1열로 겹걸음(two step walking)으로 뛰듯이 걷는다. 한발 내딛은 다음 다시 뛰어 내딛고 다른 발로 내딛고 다시 뛰어 딛고 겹걸음으로 하되 뒷발은 살짝 뒤로 드는 자세이다.
(3) 다시 제자리 굴신춤을 춘다. 이는 점핑춤을 추기 위한 준비과정으로 춤을 춘다.
(4) 한 사람씩 점핑춤을 추기 시작하자 번갈아가며 앞으로 나와 뛰다가 둘이 뛰기도 한 다음 관객들도 함께 참여하여 점핑춤을 추게 한다.
(5) 마사이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마친다. 이어서 땅바닥에 오랄렘(쌍날칼)을 깔고 그 위에 나무를 올려놓고 둥근 나무막대를 손바닥으로 비벼 돌리어 열을 발생시켜 불을 지피는 시범을 보여주고 마사이 가옥들을 구경시키고 물건판매도 하였다.
텐트촌에서의 마사이 남녀들의 모닥불 춤판
이어서 일행은 셔틀버스를 타고 텐트촌으로 귀환하여 7시 저녁식사 후 모닥불에 바비큐를 구우며(15달러 추가비용) 맥주파티를 하며 캠핑의 여흥을 즐기려 했는데 저녁 무렵 비가 와서 바비큐를 미리 구워 주는 바람에 굽는 즐거움은 느끼지 못했다. 저녁식사 후에는 비가 그쳐 모닥불 주위에 모여 맥주를 마시며 즐기고 있는데 갑자기 텐트촌에서 야생동물 침범을 막기 위해 불침번을 서는 마사이족 남자 6명이 붉은 슈카(shuka)를 입고 나타나 노래와 점핑춤을 신명나게 추는 바람에 낮에 마사이마을에서의 아쉬움을 씻을 수가 있었다.
한사람이 선창하고 전원이 박자를 맞추어 뱃소리로 '위- 윅 윅'하는 화음소리가 심장고동을 용솟음치게 하였다. 일렬로 서서 앞을 향해 무릎굴신춤을 추고 점차 고조되자 한사람씩 도약하는 점핑춤 ‘아두무(adumu)‘를 서로 뽐내듯이 솟구쳤다. 이어서 모닥불 주위를 서서히 돌면서 한걸음 내닫고 다시 같은 발을 살짝 뛰듯이 내딛는 겹걸음법(two step)으로 돌았다. 젊은 중년과 장년층이라 전사의 후예다운 용맹함과 마사이 부족의 자긍심을 가지고 추었다. 그리고 일행들을 한사람씩 손을 내밀어 관객들을 불러내 다함께 춤을 추어 분위기가 한껏 고조되었다.
마사이춤을 좀 더 분석해보면 춤의 리듬이 한국춤의 리듬처럼 2분박4박 형식이거나 3소박4박 형식을 지닌 것이 신기했다. 그런데 이번엔 젊은 여인들 5,6명이 갑자기 또 나타나 현란한 힙춤을 추기 시작하여 어안이 벙벙했다. 검정옷을 입고 아프리카춤을 추는 모습이 전문가 수준이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나이로비대학 졸업생들로 이곳 캠프장의 카페와 식당에 취업하기 위한 인턴사원으로 일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들은 현대식교육에 힙합문화에 익숙하고 케냐 전통춤에도 능통하여 그들의 가요와 힙합이 접목된 걸그룹 들의 춤과 노래가 핸드폰에 저장되어 그걸 스피커에 연결하여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데 대부분의 춤동작이 힙 댄스형의 춤사위가 바탕을 이루고 있었다. 박으로 만든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상체는 거의 움직이지 않고 하체와 힙만 흔드는 기법으로 머리에 인 물동이는 떨어지지 않고 추는 것이 일품이었다.
요란하고 현란하게 흔들어대는 힙댄스와 섹시한 춤판에 흠뻑 빠져들었다. 이번 춤기행은 마사이 빌리지에서 추는 춤을 보려 불원천리 달려왔는데 소원을 여기서 풀게 되어 보람을 느꼈으며 비록 천막집이었지만 달콤한 잠을 잘 수 있었다.
용인대학교 무용학과 교수로 25년간 재직 예술대학원장을 역임하다 정년퇴임 종신 명예교수이다. 한국무용사학회와 한국동양예술학회, 한국공연문화학회 회장을 역임했고, 경기도와 서울시문화재위원을 거쳐 현재 이북오도청 문화재위원이다. 1985년 객석 예술평론상을 수상, 무용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