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해외춤기행_ 이탈리아 Teatro a Corte 축제
토리노의 성에서 즐기는 무용, 연극 그리고 서커스
이선아_안무가

 '떼아트로 아 코르트(Teatro a Corte)'는 매년 7월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열리는 축제다. 공식적인 횟수로는 올해 16회째이지만, 10년 전 예술감독이 베페 나벨로(Beppe Navello)로 바뀌면서 축제이름도 성격도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에 그 기준으로는 올해 10회를 맞이했다. 베페 나벨로는 토리노 주변에 있는 여러 개의 성을 중심으로 축제를 만들고 싶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성을 방문하고, 성 안에서 공연도 보고 피크닉도 즐기는 축제가 나벨로 감독이 바라는 축제의 콘셉트이다.

 

 



 올해 프로그램은 7월 7일부터 17일까지 2주간 총 6개국(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오스트리아, 영국, 이스라엘), 19개 단체의 참여로 이뤄졌다. 1주일간 머문 떼아트로 아 코르트는 지금껏 다녀본 축제 중 손에 꼽을 만큼 아름다운 축제였다. 추상적이고 컨셉츄얼한 작품보다는 온 가족이 다 함께 볼 수 있는 공연들로 구성된 프로그램. 공연 전에는 가이드와 함께 성 안을 둘러볼 수 있었던 시간. 공연 중간에는 축제측에서 나눠주는 도시락을 먹으며 성 주변을 산책하는 여유로움까지. 그야말로 축제였다. 축제가 진정 무엇인지, 공연을 보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고 아름다운 것인지 깨닫게 해준 고마운 축제다.
 토리노는 이탈리아 북서부 피에몬타주(Piemonte는 산 밑에 놓여 라는 의미)에 위치하고 있다. 스위스, 프랑스와 국경을 맞닿고 있어서인지 프랑스와는 비슷한 느낌이 있다. 사실 토리노 하면 떠오르는 것이 2006년 동계 올림픽 정도랄까. 토리노의 상징이 황소라는 것, 피아트(FIAT)자동차 공장과 라바짜(LAVAZZA) 커피가 설립된 곳 그리고 그곳의 아름다운 성들이 유네스코의 세계유산으로 잘 보존되어 있다는 것 등. 이번 토리노 방문을 통해 알게 된 것들이다.
 토리노를 중심으로 주변에 성, 궁전이 많은 이유는 바로 사보이(Savoy) 왕가 때문이다. 오늘날의 이탈리아 북부와 프랑스, 스위스의 영토 일부는 1416년부터 1860년까지 사보이 가문이 통치했던 사보이 공국(Ducato di Savoia)이었다. 그 후 1861년 이탈리아 왕국으로 통일되고, 1861년부터 1865년까지 토리노는 이탈리아의 수도였다. 떼아트로 아 코르트 축제는 토리노를 중심으로 주변의 6개의 도시에 있는 6개의 성에서 이뤄진다. 도시 알리에(Aglié)에 있는 알리에의 공작 성(ASTELLO DI AGLIE), 베나리아 레알(VENARIA REALE)의 베나리아 왕궁(REGGIA DI VENARIA REALE), 리볼리(RIVOLI)의 카스텔로 디 리볼리(CASTELLO DI RIVOLI), 토리노(TORINO)의 팔라초 마다마(PALAZZO MADAMA), 스투피니지(STUPINIGI)의 스투피니지의 사냥터궁(PALAZZINA DI CACCIA DI STUPINIGI) 그리고 라코니지(Racconigi)에 있는 라코니지 성(CASTELLO DI RACCONIGI)이 바로 공연장소다. 이중 베나리아 왕궁, 알리에의 공작 성, 스투피니지의 사냥터궁에서 본 공연들을 소개한다.



 안무가 암브라 세나토의 〈성에서의 산책〉

 베나리아 왕궁은 사보이 왕가의 저택 중 하나로 1997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보고 있다 보면 베르사유 궁전이 떠오르는데, 실제로 베나리아의 회랑은 베르사유 궁전의 거울의 방에서 모티브를 따와 만들어졌다고 한다. 정원 역시 정말 아름답다. 이 성은 카를로 엠마누엘 2세(Duke Charles Emmanuel II)가 토리노 북부 산지에서의 사냥 탐험을 위한 기지가 필요하다고 의뢰해, 1675년 아메데오 디 카스텔라몬테(Amedeo di Castellamonte)에 의해 지어졌다. 이 성의 이름은 '로얄 헌트'란 뜻이다.

 

 



 예술감독 나벨로는 안무가 암브라 세나토어(Ambra Senatore)에게 성 내부 공간을 활용한 작품을 안무해 줄 것을 제안했다. 이 공연은 무용수들이 장소를 옮겨가며 춤을 추고 관객은 무용수들의 이동에 따라 함께 이동했다. 무용수들이 자연스럽게 손을 흔들며(이쪽으로 오세요 하는) 관객을 유인하기도 하고, 유머스러운 제스쳐를 취하며 춤 공간과 객석 공간의 경계를 만들기도 했다.
 이 공연은 역사적인 건축물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작품이다. 예를 들어 공간 안에 2개의 조각상이 있다면 무용수 4명이 그 조각상과 연결되는 재치 있는 동작을 취해 마치 6개의 조각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듯한 상황을 연출하고 춤을 춘다. 같은 방식으로 공간을 옮겨가며 거대한 그림 앞에 서서 그림의 일부가 되기도 하고, 관객을 불러내어 무용수들과 함께 그림 앞에 서는 등 재밌고 따뜻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공간을 미리 탐색하고 만들어낸 장면 장면은 무용수들의 의상, 익살스러운 표정 그리고 제스쳐와 춤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었다. 관객은 무용수와 함께 성 내부를 둘러보며 그림, 조각상도 감상하고 춤까지 보는 일석이조의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이 작품은 9월 17, 18일 프랑스 샹보르(Chambord) 성에서 다시 공연될 예정이다.




 리얼 댄스(RE-AL Dances): 3개의 솔로


 알리에의 공작 성(CASTELLO DI AGLIE)은 사보이 왕가의 저택중 하나로 17-18세기 사이 지어졌으며, 1997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호수와 정원이 아름다운 성이다.
 예술감독 나벨로는 3명의 안무가 보자(Boza), 로페즈(Lopez), 마르티니(Martini)를 알리에의 공작 성에 초청해 장소특정적 공연 형식을 제안했다. 공연이 있기 전 안무가들은 공간을 먼저 체크하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 안무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 후 다시 성에 모여 공간설정, 연출 및 어떻게 함께 조화를 이룰지 서로 의견을 나눈 후 공연을 올렸다. 이들 작품들은 알리에의 공작 성으로부터 영감을 받고, 이 공간을 위해 만들어진 것들이다.

 

 



 이탈리아 출생의 안드레아 코스탄조 마르티니(Andrea Costanzo Martini)는 2006년 이스라엘 바체바 무용단, 스톡홀름에 있는 쿨베리 발레단에서 활동했다. 또한 오하드 나하린의 가가(gaga) 테크닉을 전수받아 가가 강사로도 활동 중이다.
 마르티니는 성안에 있는 아주 작은 극장을 선택해 춤을 췄다. 솔로만 가능할 만큼의 작은 무대 위 TV한대와 자신의 모습을 꼭 닮은 인형 하나를 놓고 춤을 추었다. 관객은 그의 모습을 세 가지 형태로(라이브로 춤추고 있는 그의 모습, TV속 영상의 모습, 인형) 지켜봐야 했다. 굉장히 유연한 몸과 테크닉 동작은 좋았지만, 기존에 있는 작품을 그대로 올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쉽게도 이탈리아 성 건축물과는 어떤 연관성도 찾아볼 수 없었다.
 스페인 출신의 이네스 보자는 스페인 센자 템포(Senza Tempo)무용단의 공동 창설자다. 올해로 25년 된 이 단체는 거리공연 위주의 단체로 유명하다. 오랫동안 이 단체에서 활동해온 이네 보자는 다양한 거리에서의 오랜 활동 경험을 통해 장소특정적 공연에 좋은 감각을 갖고 있다.
 리얼 댄스(RE-AL Dances) 프로그램의 첫 시작을 연 이네스 보자는 독특한 메이크업과 풍성한 드레스를 입고 영화 속 주인공처럼 등장했다. 그녀는 성 계단에서 시작해 사람들을 성 내부로 이동시켰다. 그녀의 길고 가느다란 팔의 움직임과 미스테리한 표정연기가 특별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마치 혼자 오랫동안 그 성안에서 살고 있는 여인처럼.
 로제르 로페즈 에스피노사(Roser Lopez Espinosa)는 스페인 출신의 무용가로 암스테르담의 MDT-씨어터스쿨(MTD–Theaterschool) 졸업 후, 유럽의 주요 페스티벌 및 이집트, 아르헨티나, 칠레, 캐나다, 일본 등에서 자신의 작품을 발표하며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네스 보자와 마찬가지로 성안의 공간 사용, 의상 그리고 음악을 잘 활용했다. 유럽 전통의상에서 영감을 받은 듯한 검은 유니폼을 입고, 긴 복도, 넓은 거실 같은 공간을 선택해 춤을 췄다. 바로크 음악에 맞춰 바닥을 구르고, 턴을 돌고, 점프를 하는 등 강한 느낌의 춤을 추면서도 전체적으로는 바로크 댄스 분위기가 있었다.



 레 콜포터의 컨템포러리 서커스 공연, 폴린과 쟌 라구의 2인무

 스투피니지의 사냥터궁(PALAZZINA DI CACCIA DI STUPINIGI)은 사보이 왕가의 왕궁 중 하나로 18세기 초 사냥을 위한 목적으로 지어졌다. 성의 이름 '스투피니지, 플라찌나 디 카씨아(Palazzina di Caccia)'는 '사냥 별장'이란 뜻이다. 스투피지 지역에 위치하고 있는 이 성 또한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있다. 스투피지의 사냥터궁에서는 2개의 프랑스 서커스 단체의 야외공연이 있었다.

 

 



 레 콜포터(Les Colporteurs)는 프랑스 컨템포러리 서커스를 대표하는 단체 중 하나로, 금속관으로 제작된 설치물 위에서 펼치는 2개의 작품 〈에보헤(Evohe)〉와 〈르 샤 듀 비올롱(Le Chas du violon)〉 2개 작품을 보여주었다. 마치 줄타기를 하듯 철봉 위를 걷거나 그 위에서 가능한 다양한 포즈를 취하며 아슬아슬한 묘기를 선보였다. 작품 〈에보헤〉는 연인 사이를, 그리고 〈르 샤 듀 비올롱〉은 모녀간에 벌어지는 해프닝을 연극적인 요소와 라이브 바이올린 연주를 하면서 서커스 기술을 선보여 많은 박수를 받았다. 공연을 보면서 눈길을 사로잡은 것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이 단체의 예술감독이었다. 공연을 보는 관객 중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 한 명이 있었는데, 공연을 관람하는 자세와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곧 그 분이 예술감독이란 것을 알았다. 하나의 공연이 끝나고 다른 공연을 위해 이동하면서 본 그의 다리가 상당히 불편해 보였다. 서커스 도중 사고를 당했다고 하는데, 아직도 서커스장에서 그의 열정을 쏟고 있는 모습에 만감이 교차했다.
 또 다른 공연은 폴린과 쟌 라구(Pauline Barboux & Jeanne Ragu)의 듀엣이었다. 두 여성이 함께 안무하고 출연한 이 작품은 서커스와 무용이 믹스된 느낌이다. 이들은 이전에 무중력 댄스 안무가로 유명한 키트수 드부아(Kitsou Dubois)와 함께 작업한 경험이 있다.

 

 



 〈매달린 순간(Instants de suspension)〉은 위에서 아래로 길게 늘어진 밧줄 위에 두 여자가 함께 매달려 있는 순간을 표현한 작품이다. 이 작품을 위해 특별 제작된 밧줄은 멀리서 보면 큰 하나의 밧줄처럼 보이고 가까이 보면 4개의 밧줄로 연결돼 있다. 한 명이 위로 올라가면 다른 한 명이 내려가고, 서로의 몸이 밧줄에 엉키고 풀리고를 반복하며 서로를 의지한다.
 이 작품은 3명의 남자 뮤지션이 탱고 음악을 라이브로 연주한다. 움직임 또한 탱고에서 영감을 받은 움직임들이 많이 보인다. 공연 전날 우연히 토리노 공항에서 이 뮤지션들과 같은 차를 타고 가면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백발머리에 연세가 꽤 많아 보이셨는데 “우리는 음악을 연주하고 우리 딸들은 춤을 출거야”라고 말씀하셨다. 모델처럼 예쁜 두 무용수 그리고 그들의 아버지가 딸들을 바라보며 반도네온과 클라리넷을 연주하시는 모습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2016. 09.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