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춤을 구성하는 일은 일반적으로 안무라 지칭된다. 그러면 나의 생각이나 내면의 흐름을 언어(말하기)로써 소개하는 일은 안무라 지칭될 수 있는가? 일반적으로 생각과 내면을 나타내는 것이 언어의 역할이긴 해도 그것을 굳이 안무라 부를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언어의 그런 역할을 안무의 견지에서 되짚어 보는 순간이 무용가에게서는 드물지 않을 것 같다. 내면, 즉 마음을 언어로 표출하면서 안무의 근원을 조명하는 작업을 제닌 더닝(Jeanine Durning)은 어느 무용가보다 집요하게 수행해왔다.
서울무용센터는 최근 제닌 더닝을 초빙해서 워크숍을 갖고 9월 22일에는 아티스트 토크 프로그램 ‘안무와 퍼포먼스의 근원: 몸과 언어’를 열었다. 이번 초빙은 서울무용센터의 해외 안무가 교환 프로그램에 따라 뉴욕의 무브먼트 리서치(https://movementresearch.org/)와 진행하는 프로그램의 일환이었다.
더닝은 뉴욕을 기반으로 미국과 유럽을 왕래하는 무용가다. 춤 창작자로 활동해오면서 그녀는 스스로 논스토핑(nonstopping)이라 이름붙인 춤 실행 방법을 2009년 고안한 후 2010년 〈inging〉(반복되는 현재진행)를 발표하여 35회 공연하였다 하며, 그 자매편인 〈To Being〉을 2015년에 발표하였다.(관련 동영상 사이트: 〈inging〉 https://vimeo.com/150299224, 〈To Being〉 https://vimeo.com/149948046) 〈inging〉에서 더닝은 근 1시간 말하기를 멈추지 않으며, 〈To Being〉에서 더닝을 포함 세 사람의 남녀는 움직임을 멈추지 않는다. 이번 아티스트 토크에서 더닝이 소개한 것도 두 발표작에 공통된 논스토핑이었다.
매우 의도적인 논스토핑에서 초점은 말하기와 움직임에 집중된다. 두 가지 활동 모두 두뇌 그리고 몸과 직결되기 때문에 실제로 상호 연동된다. 이 점을 더닝은 사고와 운동 그리고 말하기 사이에 영향을 교환하는 과정이 되풀이되고, 몸은 사고와 언어의 연결점이라고 설명한다.
이런 점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inging〉에서 더닝은 사전 대본 없는 말하기를 빠른 속도로 끊임없이 진행한다. 줄거리를 가진 이야기라면 대본 없이 몇 시간이라도 말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 아닐 테지만, 문장과 문장 그리고 단락 사이의 맥락이 희박한 뜬금없는 말하기는 그렇지 않다. 어쩌면 뒤죽박죽일 말하기는 실제로 하는 사람에게나 듣는 사람에게나 고역일 텐데, 그것을 고스란히 수행하는 화자와 청자 사이에 무언의 기류가 약속처럼 흐른다.
〈inging〉의 현장은 화자와 청자, 어느 한 쪽 없인 성립하지 않으며, 양쪽은 현장의 경험을 공유하기 마련이다. 뜬금없는 말을 생각할 틈도 없이 속사포처럼 즉흥적으로 쏟아내는 주체는 사고일까 몸일까, 아니면 그 양쪽 모두일까. 이런 점들을 종합하여 더닝은 화자(안무자)와 청자(관객) 간에 얼마간은 불안정한 수평적 관계가 형성되며, 소통 수단으로서 언어는 한계가 있고, 말하기는 자기감응적(自己感應的, proprioceptive)이어서 심신(心身) 분리론은 타파되어야 옳다는 점 등을 고취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더닝 자신은 〈inging〉가 마음(내면)의 안무작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런 뜻에서 더닝의 작업은 자필서명(自筆署名, autography)의 성격이 짙다. 결과적으로 더닝은 안무의 범주를 확장해서 접근해보도록 유도하는데, 지난 50여 년 사이 변신을 거듭한 안무 세계에서 더닝은 또 하나의 벽돌을 놓고 있다. 나에겐 그것이 상당한 존재 이유를 띤 벽돌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