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개신교 목회자들이 이중직(이른바 투잡)을 택하는 동기는 경제 즉 생계 문제 해결에만 있지는 않다. 〈춤웹진〉 지난 호에 소개된 그 사실을 다시 상기해보자. 소형 교회 목회자들의 조사에서 ‘교회에 의존하지 않고 소신껏 목회할 수 있음’(23.2%), ‘믿지 않는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선교적 교회사역을 감당하기 위함’(12.4%), ‘재능과 전문성을 살릴 수 있음’(8.8%), ‘새로운 형태의 목회를 할 수 있음’(6.3%), ‘평신도의 삶을 이해할 수 있음’(3.9%) 등의 기타 응답들의 비율이 오히려 경제 문제 해결 때문(45.2%)이라는 응답 비율을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개신교에서 이중직의 실태 조사가 종종 이뤄지는 것은 교단의 규율과 교회의 실제 경제 상황이 충돌하면서 그 규율의 수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져왔기 때문이다. 반면에 춤계나 예술계에서는 그러한 규율이 있을 리 없고 개개 구성원이 생계를 위해 투잡을 선택하는 것 또한 구성원 각자의 자율적 사항이기 때문에 투잡이 공론화될 가능성마저 매우 낮다.
국내에서 공무원과 사립학교 교원, 공익복무요원 등은 원칙적으로 투잡이 금지되어 있다. 반면에 연예계에서는 투잡이란 용어가 보편적으로 쓰일 정도이고, 연예인들 거의 전부가 투잡을 하고 있다는 주장마저 있다. 유명 기타리스트가 고깃집을 운영하는 것은 잘 알려진 일인데, 그렇지 않아도 1인 소속사의 개인일 경우 자신이 대표이사를 겸하거나 아이돌 그룹 리더가 대표이사를 겸하는 경우까지 연예계에서는 투잡으로 인식하고 있다. 멀티 엔터테이너인 경우 예명과 본명을 섞어 쓰는 경우가 많다. 가수, 배우로 활동할 때는 예명을, 방송인으로 활동할 때는 본명을 쓰는 경우가 흔하다. 연예계의 경우 투잡의 범위는 생각보다 넓다. 왜냐하면 예를 들어 춤계에서 민간 단체 대표를 겸하는 경우를 두고 투잡이라 보는 인식은 희박하기 때문이고, 다른 예술 장르에서도 그런 인식이 희박하기는 비슷할 것 같다.
과문의 탓인지 몰라도, 춤계의 투잡 실태를 조사한 사례는 없었던 것으로 안다. 이런 때문에 무용인들이 투잡을 택하는 동기를 가늠할 수 있는 기준은 사실상 없다. 그럼에도 춤계 현장에서 투잡이 늘어나는 것을 감지하게 되므로 생계형 투잡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짐작하게 되는 것이다. 지난 40여년 동안 신자유주의 체제가 갈수록 공고해지는 배경은 이러한 짐작을 더욱 뒷받침한다. 사실 투잡에 해당하는 사이드잡을 자신의 본업으로 여기기보다는 여차하면 떠날 현장으로 여기기 때문에 투잡은 공론화되기도 어려웠다. 다만, 투잡을 언젠가 벗어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은 투잡을 견뎌내도록 하는 힘이 될 것이다. 게다가 달갑지 않은 현상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기를 회피하는 심리로 인해 투잡 문제가 은폐되는 경향도 있을 것이다. 이런 사정에서 비단 춤계뿐만 아니라 예술계의 투잡 현상이 방치되면서 사태는 더 깊어가는 것으로 판단된다. 문제를 진단하고 어렵더라도 대책을 찾아가는 적극성이 요청된다 하겠다.
앞서 언급된 해당 조사에서 목회자들이 택하는 이중직 업종은 가장 높은 비율의 단순 노무직(22.3%)부터 자영업(15.9%), 택배·물류(15%)를 비롯하여 학원강사 및 과외, 카페·음식점 종사, 교사, 일반 사무직, 의사·변호사·교수 등 전문직, 농림어업, 목공·도배, 다단계 판매, 그리고 가장 낮은 비율의 편의점 등 판매업(3.2%)과 출판·편집(3.2%) 순으로 나타났다.
그러면 춤계의 투잡 직종은 어떠할까? 주변 무용인들의 의견을 모아보면 춤계에서 생계형 투잡으로 택해지는 직종은 대체로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강사(필라테스, 요가, 방과후 예술학교, 생활예술, 입시, 연기지도), 치료사, 모델, 카페·음식점 종사, 택배원, 대리운전, 단순노무직, 보험모집인, 조사원, 인터넷 사이트 운영 등이다. 무용인이 지닌 전문성이 투잡 선택에서 발휘되는 것은 물론이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상당한 비율을 점할 것으로 보인다.
어느 카페
그는 초등학교 시기에 연기 세계에 관심이 매우 컸었다. 그래서 부모님과 상의하여 연기학원에 등록하고 학교의 방과 후 활동에도 참여하였다. 그러던 중에 연기에 도움이 될 활동으로서 어머니의 권유로 발레를 익히게 되었다. 그때가 중2 말이었다. 학원에서는 발레 교습만으로는 수입이 적으니까 한국무용을 하도록 강요하였다. 한국무용을 익히게 되면 자신의 작품을 가져야 하고 그에 따른 음악과 무대의상 비용을 추가로 부담해야 하였다. 이를 감수하고 4년 가량 학원을 다녔지만, 대학 입시가 임박하여 학원 측이 작품 등의 비용을 더 요구했던 때문에 결국 학원과는 결별하였다. 겨울철에 1달 동안 심지어 학교 마당에서 혼자 실기 시험에 대비하다가 손뼈가 부러지는 등 우여곡절 끝에 대학 무용학과에 한국무용 전공으로 진학하였다. 무용학과 진학 시에 집안과의 갈등은 전혀 없었다.
재학 시에 교수 공연에 무료로 출연하는 게 관행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생활이 자기주도적이지 않았다는 자각을 갖게 되고 또 장래가 불안하다는 심증을 굳히게 되어 아르바이트에 뛰어들었다. 공연을 지속하더라도 자기만의 자금을 확보해야 한다는 마음이 크게 작용하였던 것이다. 고깃집, 치킨집, 주류 판촉 등의 아르바이트를 경험하면서 돈을 버는 구조를 터득하곤 하였다.
대학 2년 때 현역 복무하였고, 군 복무 중에 수령한 봉급을 한푼도 쓰지 않고 모았다. 제대 후 복학과 동시에 아르바이트를 계속하였다. 복학하고 보니 전공 실기 강의가 줄어드는 등 학과의 활동도 전과 같지 않았다. 학교에서 혼자서 연습을 하고 있으려니 선배의 권유로 외부의 현대무용 단체 공연에 출연하게 되었다. 이들 공연에 출연하면서 현대무용 테크닉도 더 익히게 되는 효과도 있었다. 2022년도에는 4안무가의 6작품에 출연하였다.
그가 카페를 열은 것은 3년 전 일이다. 대학 시절 아르바이트와 군 복무를 통해 모은 자금에다 집안 친지들이 모아준 것을 보태어 카페 창업 자금을 마련하였다. 카페는 동생과 동업 형태로 주택가 통학길에서 창업하게 되었다. 마침 부모님 소유의 건물에 월세를 내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3년 동안 운영하면서 가게 운영 노하우는 쌓이는 반면에 공연 연습 시간에 맞추기 어렵고 아르바이트 인력을 구하는 일도 점차 힘들어지고 있다.
그는 2022년도에 6작품에 출연하면서 주당 5일간 하루 공연 연습에 3, 4시간씩 참여하였다. 이런 사정에서 단체 공연 연습은 심야에 할 수밖에 없었고, 아침 7시였던 카페 오픈 시간도 오전 11시로 조정되어야 하였다. 예고 없이 문을 열지 않거나 닫는 것이 카페 영업에는 치명적일 것이다. 공연을 위한 시간과 카페 영업을 위한 시간이 서로 방해하지 않는 것이 절대 중요할 테지만, 그는 이것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고 둘 가운데 하나는 포기해야 하지 않는가 하는 갈등을 안고 있다. 곧 군 복무를 마치는 동생이 카페 운영에 동참할 예정이어서 숨통은 상당히 트일 듯한데, 다만 동생은 학교 복학을 앞두고 있다.
김채현
춤인문학습원장.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명예교수. <춤웹진> 편집장.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 『뿌리깊은 나무 샘이깊은 물』(1)을 비롯 다수의 논문, 공저,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국립무용단 60년사>(2022년 간행, 국립무용단)의 편집장으로서 편집을 총괄 진행하고 필진으로 참여하였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으며 한국저작권위원회, 국립극장 자료관, 국립도서관 등에 영상 복제본, 팸플릿 등 일부 자료를 기증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