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근자에 호주 근로자 4명 중 1명이 물가와 금리 상승 등으로 야근과 투잡, 일터 복귀를 선택할 만큼 가계 예산이 심각한 상황이라 보도된 바 있다. 올해 기준 국민소득 6만 5천 달러(한국 3만 3천 달러)로 세계 10위권인 나라의 일이라는데 잘 믿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 상황이 앞으로 얼마나 이어질지 미지수이긴 하지만 상징하는 바는 커 보인다. 경제 선진국들에서도 신자유주의의 쓰나미가 세상을 뒤덮고 있다는 것. 이런 추세 속에서 투잡의 장단점이나 유의사항을 자상하게 소개하는 해외 구직 사이트도 드물지 않다.
최근 국내 어느 재벌 그룹에서 계열사들의 근무 실태를 자체 조사해보니 아르바이트 등 부업이 기본이라고 할 정도였다는 보도도 있다. 일부 직원들은 일과 중에 버젓이 부업을 하다가 적발되었고 심지어 배달업체의 라이더로 근무한 경우도 있었다는 것이다. 역시 잘 믿어지지 않을 일이다. 어느 취업 전문 포털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해당 포털에서 N잡을 찾는 40대 이상 중장년층이 지난해 대비 216%나 폭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N잡을 구하는 사람 가운데 61%는 본업을 갖고 있으며, N잡 동기는 금리 및 물가 인상으로 인한 지출증가(54%), 본업 소득 감소(26%), 경기 침체로 인한 불안감(19%)이 소개되었다. 2020년 또 다른 취업 포털의 조사에서는 직장인의 84%가 투잡 의사가 있고 40대 이상에서도 76%였다.
단적으로, 전세계적으로 투잡이 만연하는 추세이다. 이 같은 세상에서 문화예술인들은 더 궁지로 몰릴 법이어서 투잡이 확산되는 정도가 가속화될 것은 분명하다. 2020년의 조사에서 일반인들이 투잡을 택하는 동기로서 추가 수입 확보(생계 유지와 보충, 해고 대비, 노후 보장을 위한 자산 확보)가 85%였다. 문화예술계의 일반적인 투잡 선택 동기도 이와 그다지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데, 다만 무용인의 연간 평균 예술활동 개인 수입이 근래에도 634만원(2021년 기준) 정도임을 고려하면 투잡이 생계 수단으로 주업(무용 활동)을 대신한 것은 오래 전의 일이었다.
앞서 개신교 소형 교회 목회자들의 투잡 동기로서 경제 문제 해결(45%)보다 소신껏 목회를 할 수 있음 등의 비율이 더 높았음이 소개된 바 있다. 무용인의 경우도 자신의 재능과 전문성을 살리거나 다른 직종에 대한 관심 등의 동기에서 투잡에 나서는 경우가 없지 않을 것이다. 이 같은 투잡을 일단 즐거운 투잡이라 일컬을 수 있겠다. 춤이라는 본업의 연장선상에 있든 본업과 무관하든 간에 즐거운 투잡에서는 직무 수행자의 자기주도성이 높을 것이고 금전적 수입에 얽매이는 정도는 낮을 것으로 생각된다. 즐거운 투잡이므로 정신적 압박감보다 정신 체력을 다지는 효과마저 기대할 법하다.
이처럼 투잡을 경제적 측면에서만 파악하는 것은 오류일 수 있으므로, 투잡의 개념을 정리해볼 필요성이 제기된다. 투잡이란 무엇인가? 단기적이며 일시적인 알바를 투잡으로 분류할 수 없겠지만 그런 알바들이 반복 지속될 경우 투잡으로 분류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 투잡은 자신의 재능과 전문성을 살리거나 다른 직종에 대한 관심 등에서 행하는 즐거운 투잡과 경제적 문제 해결을 위한 투잡으로 나눠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운운하는 투잡은 거의 모두 후자 쪽이다. 그러므로 투잡은 본업 이외에 추가로 시간을 들여 일정 기간 이상 거의 정기적으로 종사해야 하는 직무로서, 일반적으로는, 생계에 상당 정도 이상의(심지어는 절대적인) 도움을 주는 부수적 직무(부업) 정도로 정리되지 않을까 한다.
투잡 가운데서도 본업과 연관된 것들은 긍정시될지도 모르겠다. 대표적으로 춤이라는 본업과 연관성이 높아 즐거운 투잡으로 여겨지곤 하는 예술 강사 직무는 사실 현장의 속사정을 들어보면 그렇지 않다는 사례가 흔하다. 경험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밝히는 것은 투잡 직무를 정기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탓에 공연과 연습에 큰 지장을 초래한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초보자들을 가르쳐야 한다든가 주목을 끄는 동작을 개발하여 수험 준비 수강생에게 주입해야 하는 경우 등등, 본업의 예술 작업 마인드와도 갈등을 빚기 일쑤이다.
전설의 발레리나로 1910년대, 20년대에 세계를 수놓았던 안나 파블로바 하면 무엇보다 그의 〈빈사의 백조〉(1907년 초연)를 떠올릴 만큼 안나 파블로바가 곧 〈빈사의 백조〉였다. 근래에까지 지난 100년 동안 얼마나 많은 발레리나가 그 〈빈사의 백조〉를 흠모하며 추었던가. 안나 파블로바에게 〈빈사의 백조〉를 안무해주었던 장본인은 미셸 포킨이었다. 포킨은 19세기말 러시아 황실발레학교 출신으로 세상이 20세기로 바뀌자마자 발레의 혁신을 제기하였고 27살이던 해에 〈빈사의 백조〉 〈레 실피드〉를 안무하였다. 1909년 발레뤼스가 파리에서 창단될 때부터 가담하여 몇해 동안 〈셰헤라자데〉 〈불새〉 〈페트루시카〉 〈장미의 정〉 같은 수작을 내놓고 발레뤼스를 떠났다. 그러다 우여곡절 끝에 1919년부터 포킨은 미국에 정착하게 되는데, 그는 뉴욕의 어느 맨션에서 발레학교를 열었다.
이 학교에서 그는 노라 케이, 제롬 로빈스 같은 걸출한 무용가들을 양성하여 결과적으로 발레 불모지이던 미국에 발레 씨앗을 뿌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 중에 자기 단체를 만들고 메트로폴리탄오페라 등지에서 순회하고 간혹 신작 발레를 내놓긴 했지만 지난 시절의 창작력에는 훨씬 미치지 못하였다. 한 마디로 창작이 빈약했던 포킨의 그 미국 시절을 두고 혹자는 베토벤이 작곡 활동 대신 피아노 레슨을 제공했던 격이라 하였다. 발레의 여건이 매우 미비하던 당시 미국 상황에 빗댄 말이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창작 작업에 전념하지 못할 정도로 가르치는 일이 창작을 가로막은 포킨의 곤란했던 상황을 시사하는 말이기도 하다. 즉, 본업과 관련성이 있는 투잡일지라도 본업을 저해하는 속성을 부인하기가 어렵다.
김채현
춤인문학습원장.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명예교수. <춤웹진> 편집장.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 『뿌리깊은 나무 샘이깊은 물』(1)을 비롯 다수의 논문, 공저,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국립무용단 60년사>(2022년 간행, 국립무용단)의 편집장으로서 편집을 총괄 진행하고 필진으로 참여하였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으며 한국저작권위원회, 국립극장 자료관, 국립도서관 등에 영상 복제본, 팸플릿 등 일부 자료를 기증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