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무용인을 비롯 예술인의 투잡에 근본 해결책이 있을까. 있을 리가 만무하다. 오히려 사회 전체가 투잡 상황에 빠져들고 있으며, 그럴수록 예술인의 투잡을 해소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는 것이 현실정이다. 투잡에 나설 수밖에 없는 현상황을 완화하는 차선책을 고안해낼 필요성은 더더욱 커지고 있다. 국내에서는 어떤 대책들을 세우고 있을까.
지난해 국회에서는 '조세특례제한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발의되어 기업 매출액의 0.5% 한도 내에서 예술기부금의 10%를 추가로 세액 공제하는 내용을 담았다. 과거부터 기업이나 개인의 일반적 기부금에 대해 세액 공제 혜택이 주어져 왔는데, 이에 더하여 예술기부금이면 10%를 더 세액 공제한다는 뜻이겠다. 말하자면 정부는 정부대로 세수 감소를 감내하고 기업은 기업대로 기부를 더함으로써 정부-기업이 문화예술인을 지원하는 데 손을 잡는다는 취지가 읽혀진다.
이런 세액 공제가 예술인 투잡을 얼마나 완화할지 효과는 미지수이다. 다만, 18대 국회(2008~12년) 당시의 연구에 따르면 예술기부금 세액공제를 시행하면 기부 증가 예상액은 292억원(기업의 몫), 세수 감소 예상액은 71억원(정부의 몫)으로 추정되었다. 아무튼 예술기부금 세액 공제 시행으로 예술계에 300억원 정도의 기부금, 즉 지원금이 추가로 투입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로 미루어 세액 공제가 예술인 투잡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이처럼 정책의 사각지대를 뚫고 모색하다 보면 투잡을 완화할 묘안이 다양하게 도출되지 않을까 한다. 관련하여, 프랑스의 메세나법이 시사하는 바가 매우 커서 조금 살펴보도록 하겠다.
메세나(Mecenat)는, 알다시피, 고대 로마 시대 문화예술 후원자 마이케나스(G. Maecenas)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 활동을 뜻한다. 국내에서도 1994년 한국기업메세나협의회가 설립되어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아마도 메세나협의회와 예술인 간의 미담을 더러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프랑스 메세나법은 2003년에 제정되었고, 당시 문화부장관 장-자크 아야공(J-J. Aillagon) 이름을 따 아야공법이라고도 한다. 이 법은 세제상의 인센티브를 강화해서 개인과 기업의 메세나 활동 촉진하는 데 방점을 찍었다. 그 인센티브란, 개인과 법인이 기부할 경우 기부 수혜 단체로부터 한도 내 일정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하되 결정적으로는 기업 매출의 0.5% 한도 내에서 기부 금액의 60%를 세금에서 감면해주는 조치이다. 우리 국회 발의안의 10%와는 큰 차이가 난다. 아야공법을 시행한 결과 10년 동안 프랑스 내 메세나 후원금 총액이 3배(약 1조3천억원에서 약 4조원)로 늘어나서 메세나법의 효력이 입증되었다. 명쾌한 일이다.
한국메세나협의회의 국내 기업의 문화예술지원 현황조사는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 총액이 2019년 2080억원, 2021년 1800억원이라 소개하고 있다(https://www.mecenat.or.kr/ko/research/). 앞서 소개되었듯이 지금부터 10여 년 전에 예술기부금에 대해 10%를 더 세액 공제한다면 기부금이 3백억원 정도 더 늘어날 것이 추정되었다. 2010년경 기준이므로 지금 시세로는 훨씬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고, 뿐만 아니라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기부금이 더욱 늘어날 것도 전망해보게 된다.
2020년도에 국내 예술인의 연 가구총수입 평균치가 4천만원이었고, 이 가운데 예술활동 수입은 7백만원이었다(2021 예술인 실태조사보고서). 이를 토대로 예술인 한 사람마다 연간 3천만원의 기금이 주어지면 투잡이 웬만큼 해소될 것 같다는 판단이 든다. 1억원으로써 3인의 투잡이 해소되고 1000억원이면 3천명의 투잡이 해소된다. 설령 그만한 기부금이 조성된다고 하더라도 기부금이 모두 개개인의 투잡을 해소하는 데 쓰이리라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고, 투잡을 완화하는 데 얼마나 기여할지도 물론 따져봐야 할이다. 게다가 여러 분야로 나눠지는 예술에서 공연예술 분야에 대해 그러한 기부금이 얼마나 분배될까 하는 의문도 든다. 몸으로써 활동하고 집단의 연습과 공연에도 참여해야 하는 공연예술의 특성상 분배에서 우선 순위가 강조될 만하다.
이렇든 저렇든 여기서 돌이켜보아야 할 점은 투잡 해소에 초점을 맞추어 국고 지원, 기부금 지원 사업이 개발된 전례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대표적으로 신자유주의로 인해 사회 상황이 급격히 변동됨으로써 예술계에서도 투잡은 수면 아래에서 예술의 발목을 잡는 사회 현상으로 부각되고 있다. 예술계에서 투잡은 과거에도 있었고 예술인이 스스로 좋아하는 것을 하는 데 대한 대가라는 그런 인식(어떤 면에서는 매우 낭만적인 인식)이 여전할지 모른다. 지금도 이런 인식을 견지한다면 사회의 변동(신자유주의 부각,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팽창 등)과 순수예술의 위축을 도외시하는 소치에 불과할 것이고 심지어는 무책임해 보인다. 이제는 정책과 기금을 다루는 쪽에서 투잡 해소라는 매우 분명한 목적 의식에서 이 문제에 정책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마침 지난 4월 경기도 의회가 ‘경기도 예술인 기회소득 지급 조례안’을 심의중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예술인 기회소득이란 경기도 내 거주 예술활동 증명 유효자 가운데 개인소득이 중위소득 120% 이하인 인원에게 두 차례에 걸쳐 지급하는 연 150만원을 말한다. 현직 경기도지사가 지난 선거에서 공약한 바를 실천에 옮기는 제도라 한다. 이 제도로 경기도 내 약 1만1000여명의 예술인들이 혜택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올해 본예산에 담긴 예술인 기회소득은 도비 66억원으로서, 여기에 시·군비 66억원이 더해진다. 경기도와 각 시·군이 힘을 모으는 뜻이 뚜렷해 보인다. 우선은 턱없이 적은 금액이겠지만, 아마도 국내 최초 예술인 기회소득 제도의 도입이란 측면에서 의미심장해 보인다.
국내에서는 2014년 문화예술후원법이 제정되었다. 이 법의 제9조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문화예술후원을 장려하기 위하여 문화예술후원자 및 문화예술후원매개단체에 대하여 조세특례제한법, 지방세특례제한법, 그 밖의 조세 관계 법률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국세 및 지방세를 감면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지난해 발의된 '조세특례제한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아직 국회에 계류중인지 아니면 그대로 처리되었는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리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문화관광연구원, 한국메세나협의회의 사이트에서 기부, 투잡, 메세나와 같은 키워드로 검색해보면 해당 조사 연구 결과는 검색되지 않는다. 이 사실은 해당 키워드로 대변되는 현상·정책·방안에 대해 관심이 낮다는 것을 방증한다.
프랑스에서 기업 후원 가운데 약 26%가 문화 분야를 후원하고 있으며, 문화 분야를 후원하는 그룹의 75%가 중소기업으로 조사되었다고 한다. 아름다운재단의 2015년 기업 사회공헌 조사에 따르면 국내 기업의 기부금 중 문화예술이 차지하는 비율은 고작 4.4%에 불과하며, 2009년 이후 10년 동안 기부처 순위에서 최하위를 기록했다고 한다. 국내 기업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의 인식 수준도 이와 대동소이하지 않을까. 이런 속에서 무엇보다도 정책 기관이나 협의회와 같은 기구가 관심을 진작하고 대책을 세우는 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 예술계에서 투잡의 해소는 창작 지원금 증액 정도의 조치로 완화될 일도 아니다. 아무튼 오늘날 예술계의 투잡은 사회 구조에 의해 심화되는 범사회적 현상이다. 그런 때문에, 정부나 기업의 새로운 인식 내지 적극적인 대책을 강조하는 것은 전혀 무리가 아니다.
김채현
춤인문학습원장.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명예교수. <춤웹진> 편집장.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 『뿌리깊은 나무 샘이깊은 물』(1)을 비롯 다수의 논문, 공저,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국립무용단 60년사>(2022년 간행, 국립무용단)의 편집장으로서 편집을 총괄 진행하고 필진으로 참여하였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으며 한국저작권위원회, 국립극장 자료관, 국립도서관 등에 영상 복제본, 팸플릿 등 일부 자료를 기증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