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2016 병신년(丙申年) 새해를 맞았습니다. 해가 바뀔 때마다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희망하거나 계획하곤 합니다.
새해 춤계는 우선 양보다는 질이 담보되는 한해가 되기를 희망해 봅니다. 지나치게 넘쳐나는 공연 보다 예술적인 완성도가 높거나 새로운 실험이 엿보이는, 의미 있는 공연들이 많아지길 기대해 봅니다.
해외공연의 경우도 무조건 나가고 보자는 것이 아니라 공인된 공연장에서, 양질의 관객들 앞에서, 어떤 반향을 가져오는, 그런 진출로 이어지길 소망해 봅니다. 축제나 지원기관, 기획사 모두 이제는 양보다는 영양가 있는 국제교류에 대해 생각해야 할 시점입니다.
유망한 무용가들은 여기저기서 부른다고 무조건 달려가지 말고, 무대를 두려워하며 진중하게, 단 한편의 작품을 공연하더라도 혼신을 다한 창작의 산물을 보여주길 기대합니다.
지도급 무용가와 무용 관계자들, 특히 국민들의 세금, 공공지원금을 받아 행사를 하는 책임자들은 공공성을 담보하는데 더욱 정성을 들여야 할 것입니다. 국·시립무용단은 물론이고 한국을 대표하는 국제 무용축제들, 공연장과 함께 제작비를 안정되게 지원받고 있는 상주예술단체들은 특히 더 그렇습니다. 양질의 공연들을 더 많은 관객들과 공유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윤리의식의 무장도 필요해 보입니다. 공공 지원금의 유용, 교수임용과 입시에서의 비리, 병역면제와 직업무용단 입단을 둘러싼 금품수수, 고액의 레슨비 등 비도덕적인 무용계의 관행은 반드시 근절되어야 합니다.
단원 고령화 문제, 검증된 오디션을 통한 철저한 프로페셔널리즘의 재무장과 예술감독의 임기보장 및 선임 절차의 투명성 확보도 공공무용단들이 새해 해결해야할 과제들입니다.
인력지원에 제작비 지원까지 받고 있는 춤 전용극장의 제 역할 회복도 중요합니다. 공간 운영 책임자들의 인맥 안에서 안주하는 기획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춤계 활성화에 기여하고 부가가치를 높여주는 공연들로 채워나가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공연예술센터의 제 기능 회복도 춤문화의 정착과 발전을 위해 반드시 선결되어야 할 사안입니다.
돌이켜 보면 2015년 한국의 춤계는 ‘메르스’ ‘예술검열’ ‘패닉’ 이란 공연예술계 공통의 키워드에서 비켜갈 수 없었고, ‘외화내빈’ ‘도덕성’ ‘공공무용단’ ‘공연중독’이란 키워드가 함께 한 한해였습니다.
직업 발레단들은 메르스 여파로 예약된 수백 장의 티켓이 취소되었고, 국제적인 무용축제와 크고 작은 공연들도 적지 않은 타격을 입었습니다. 공연은 많은데 정작 좋은 작품을 만나기가 힘들었고, 비평가들과 기획자들 사이에서는 “공연을 보러가기가 싫다” “공연장에 가기가 두렵다”는 자조 섞인 말이 흘러나오기도 했습니다.
국립무용단의 예술감독 공백이 6개월 이상 이어지면서 해를 넘겼고, 이미 고령화 문제가 심각한 공공무용단이 노조를 중심으로 다시 ‘정년연장’ 운운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우려가 더 커지기도 했습니다.
한해를 보내는 한국의 춤계와 공연예술계 현장은 우울했습니다. 새해를 걱정하는 이야기도 많았습니다. 그들 중에는 “도대체 2016년 공연계획을 세울 수가 없다”며 흥분했습니다. 극장대관에서부터 공공 지원금까지 불투명한 상태가 계속되었기 때문입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2016년 지원사업 신청을 12월 29일에야 공고했고, 그것도 축제형식의 전국행사만 해당되는 것이었습니다. 일반 지원사업은 해가 바뀌고 보름이 지났는 데도 아직 공고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서울문화재단의 경우도 12월 29일이 되어서야 지원사업 설명회를 가졌습니다. 6개의 극장을 운영하고 있는 한국공연예술센터는 2016년 대관 신청을 2015년 12월 21일이 되어서야 공고했습니다. 심의까지 마치려면 공연장 대관의 경우 빨라야 2016년 1월말이 되어야 그 결과를 알 수 있고, 공공 지원금의 경우는 2월이 되어야 지원 여부를 알 수 있습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경우는 지원신청을 시작하는 시점이 언제가 될지 기약도 할 수 없습니다. 예년보다 모두 2개월 이상 늦어진 것입니다. 한 마디로 한국의 지원정책과 예술행정은 무방비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돈만 준다고 해서 예술지원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지원정책의 성공은 그 내용 못지않게 타이밍이 중요합니다. 오랜만에 활성화 되고 있는 춤계의 국제교류가 치명타를 입을 가능성이 높아진 만큼 무용가들과 춤 기획자들의 한숨은 오랫동안 이어질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6년 한국의 춤계는 몇 가지 희망적인 기대가 있습니다.
2015년에 수준급의 작품을 보여준 김보라 김보람 김재덕 김설진 이윤정 권령은 유회웅 등 젊은 안무가와 고블린파티, 다크서클즈컨템포러리발레, 쌍방 등 몇몇 단체들의 약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국립발레단과 국립현대무용단, (재) 전문무용수지원센터의 예산 증액과 2014년 우베 숄츠, 글렌 테틀리의 대표작과 2015년 존 크랑코의 <말괄량이 길들이기>에 이은 국립발레단의 마르시아 하이데 안무 <잠자는 숲속의 미녀> 레퍼토리 확보, 무용예술의 사회화와 관련 국제장애인무용축제의 태동과 무용교육원이 주최하는 커뮤니티댄스 지도자 과정의 개설, 파리의 떼아뜨르 드 라빌과 렌의 뮤제 드 라 당스 라빌 그리고 LG아트센터가 6월에 서울과 파리에서 공동으로 개최 예정인 열린 개념의 무용경연대회 ‘댄스 엘라지’ 도 춤계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입니다.
서울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서울무용센터의 본격적인 출발도 창작 공간과 국제교류의 전진기지 확보란 점에서 큰 기대를 갖게 합니다.
아르코예술극장을 무용 중심극장으로 운영한다는 정부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고 있고, 가장 중요한 춤 공연장인 한국공연예술센터와 지원정책을 총괄하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제 기능을 못하고 있지만, 무용가들의 창작의지와 예술가로서의 자부심과 자존감이 이 위기들을 극복해 나갈 것입니다.
국제 춤 시장에서 우리나라 안무가와 무용수들의 달라진 위상도 대한민국 춤 작품의 해외시장 진출에 호재로 작용할 것입니다.
더불어 저널리즘과 크리티시즘의 분발도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