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1.
지난달 21일 ‘민간 춤소극장의 역할 및 전망 토론회’가 동숭동 예술가의집에서 열렸다. 춤소극장 엠극장 주최로 열린 이번 토론회의 개최 동기는 올해부터 민간 춤소극장의 운영에 관련한 공공 지원 사업이 갑자기 폐지된 데서 촉발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민간 춤소극장이 단 한 곳만 있어도 이런 주제의 토론회가 열릴 수 있겠지만, 그간 열린 적은 없는 줄로 안다. 서울에만 해도 민간 춤소극장이 다섯 곳 남짓인 현시점에서 굳이 공공 지원 사업의 예고 없는 폐지가 아니더라도 토론회를 가져볼 이유는 적지 않다.
지금 민간 춤소극장뿐 아니라 아르코극장과 대학로예술극장 등 서울에 댓 군데 공공 소극장에서도 춤 공연이 자주 열린다. 소극장이 우리 춤 공연 문화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구태여 통계치를 동원하지 않아도 절대적 중요성을 갖는다.
올해부터 민간 춤소극장의 운영에 관련한 공공 지원 사업이 폐지된 연유는 잘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갑작스레 내려진 결정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민간 춤소극장이 공공 지원금에만 의존해서 운영되는 것은 아니고, 큰 이득이 없을 것은 물론이며 적자가 나더라도 운영주 스스로 적자를 메우는 것이 현실정이다. 이에 비추어 지원금을 필요로 하는 극장에서 어느 정도의 지원금을 예상해서 연간 사업 또는 기획 계획을 추진해온 것은 지난 몇 해 사이의 관행이었다. 이런 터에 공공 지원 사업을 여론화 과정도 거치지 않은 채 갑자기 폐지하는 것은 우선 무슨 곡절인지 의아스러울 뿐더러 상식에도 벗어나는 일이다.
2.
이번 토론회에서는 두 편의 발제가 있었다. 필자의 ‘국내 춤소극장의 21세기형 경영전략을 꿈꾼다’에 이어 김태원의 ‘춤전용 소극장의 존재성과 그 미래 활동’이 발제된 후 서울 소재 4곳, 부산 소재 1곳의 춤소극장 운영자들 사이의 난상 토론이 펼쳐졌다.
먼저 두 발제의 요지부터 살펴본다. “서구에서 20세기 초까지 수십년간 소극장은 예술적이고 지적인 장소로서, 전문적이며 지적인 연극문화와 민중적 교육을 의도하는 연극문화를 추구하였다.
이에 비춰 우리 소극장 춤문화는 1) 특별한 춤예술적 발상과 춤 스타일의 다양성을 관객들에게 보여주는 것, 2) 보다 적극적으로 민주적인 교육적 가치를 함유하는 것의 두 가지 목표를 가져볼 필요가 있다.
대학 내의 공연 설비가 춤공연장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현시점에서 극장문화 지원책은 진취적인 고려나 극장 문화 전반에 대한 전체적인 디자인 없이 분배적 지원에 그쳤다. 민간 춤소극장에 대한 지원도 한 춤 단체에 대한 지원 정도에 그친 실정이다. 민간 운영자의 개인적 희생으로 적자를 채워가는 현 실정에서 운영자의 개인적 의지와 예술관이 크게 좌우한다.
향후 춤소극장을 위한 문화전략으로 1) 소극장의 특성화, 2) 특별 기획/이벤트, 3) 소극장들 사이 및 교육기관과의 프로그램 연계, 4) 공연 전후의 대화 모임을 매개로 한 지적 분위기의 조성, 5) 춤마니아 층을 위한 기능의 강화를 들 수 있다.”(김태원)
“소극장은 미적으로는 특정한 유형의 춤을 위해, 경제적으로는 저예산의 실험 인디 무용가들을 위해 특히 중요하다. 한국의 현대 무용사에서 공간사랑이 80년대에 춤 르네상스를 앞당기고 견인한 공로는 막중하다. 춤소극장에서 언제나 예술이 진행된다는 사실은 여러 면에서 중요하다.
국내외에서 원론적으로 전문 소극장이 1) 상업주의를 배격하고서 2) 예술을 추구하며 3) 혁신 마인드까지 갖추기를 기대한다. 예술 관객이 제한적인 춤 같은 장르일수록 소극장 운영에서 딜레마가 커지기 마련이다.
춤소극장이 현재의 딜레마를 타개하기 위한 대책으로, 1) 혁신 마인드를 갖추고 예술을 추구하면서 2) 원활한 유지 운영을 뒷받침할 경영 전략을 개발하는 것이 현단계 국내 춤소극장이 당면한 양대 핵심 현안이라 생각된다. 춤소극장 운영진은 경영 전략의 3대 기본 요소인 1) 중장기 목표(목적), 2) 실행 계획, 3) 가용(可用) 자원 배분의 측면에서 스스로 경영 진단을 행하고, 문명과 사회 여건을 고려해서 21세기형 경영전략을 세울 필요가 있다.”(김채현)
3.
민간 춤소극장의 역할은 춤 문화의 존속과 활성화 측면에서 다양하게 제시될 수 있다. 이런 전제 아래 난상 토론에서는 현재의 경영난을 어떻게 타개하고 있는지, 그에 대한 향후의 전망은 어떠한지 등이 주로 거론되었다. 그날 난상 토론 말미에 춤소극장 연합회 같은 협의체 구성이 제안되었다. 춤소극장의 협의체는 춤계에서 전혀 거론된 바 없는 것으로 기억되며 이번이 처음이어서 그 자체만으로도 이번 토론회는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된다.
난상 토론에 참여한 측은 포이동의 엠극장, 논현동의 성암아트홀, 명륜동의 성균소극장, 합정동의 얘기소극장 그리고 부산의 춤공간신의 운영자들이다. 토론에서 그들이 소개한 체험적 전망은 이렇게 정리된다.
- 지역의 다양한 문화 수요에 대응하는 기획을 지속할 예정이다.
- 장기 공연 기획으로 극장을 유지할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 자생력 있는 춤 공간으로서 내실을 갖도록 부심하고 있다.
- 소극장의 인큐베이터 역할에 절대적 가치를 두고 있다.
- 춤소극장 지원제도가 거의 매년 바뀌는 풍토는 심각한 문제다.
- 춤소극장이 자생할 수 있는 자체 방안이 가능한지 향후에도 토론 주제가 되기를 희망한다.
난상 토론에서 가장 자주 언급된 ‘운영상의 어려움’은 민간 춤소극장의 현상황을 대변하는 것으로 보인다. 민간 춤소극장에 상존하는 운영상의 어려움을 해소할 주체는 극장 운영주나 경영 주체이다. 또한 난상 토론에서도 민간 춤소극장에 항시적으로 잠재해 있는 경영난을 풀기 위해 극장 운영자들도 극장이 자생력을 길러야 한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하였다.
공론의 장에서는 민간 춤소극장이 춤 공연 문화에서 갖는 위상이 높다는 전제 아래 그 운영상의 어려움을 공공의 문제로 인식하고 어려움을 해소하는 데 있어 얼마간의 책임 의식으로 동참해야 할 것이다.
4.
민간 춤소극장의 역할과 전망을 묻는 이번 토론회는 비평가 김태원도 언급하듯이 우리 춤문화 지형도를 다시 생각하도록 한다. 소극장 춤의 가치가 절대적이다는 움직일 수 없는 사실 속에 이번 토론회의 결론도 들어 있다.
민간 춤소극장은 중대극장에 비해 경제적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저비용이 소요되고 특히 실험적이며 창작자 개인의 과도기적인 작품을 시도하고 개발하는 데 있어 강점으로 작용한다. 또한 특별한 춤예술적 발상과 춤 스타일의 다양성을 관객들에게 보여준다. 그리고 민간이라는 이점을 토대로 교육 및 예술적 대화 등 다양한 맞춤 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있다.
이러한 역할이 아무리 소중해도 민간 춤소극장으로서는 경영난에 대처해야 하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그간의 경험에 비춰 민간 춤소극장의 경영난은 다면적 처방으로 해소될 수밖에 없고, 그 대처 방안은 크게 공공 정책과 민간 춤소극장의 자구책으로 나누어 모색될 수 있다.
공공 정책으로 춤전용 소극장 지원책이 들어진다. 올해 이것이 갑자기 폐지되어 문제가 되고 있으나, 그 대체 사업이 이어져야 한다. 이런 전제에서 공공 지원책을 생각하면, 건물 임차료, 운영인건비, 대관료, 프로그램 지원책 등이 들어진다. 극장의 경영 목표나 상황을 고려하여 이들 지원책 가운데 한두 가지를 취사선택하도록 하는 방안, 그리고 공연 대관에 대해 대관료를 지원하되 연간 지원 회수를 제한하는 방안도 고려된다. 그
그간 공공 지원 사업 결정 내역을 보면 ‘극장 운영 성과에 어울리지 않는 지원’ 또는 ‘편파적 지원’ 같은 비판을 자초하는 결정도 있었다. 다시 말해 지원 사업에 못지않게 지원 결정 과정도 중요하다.
이번 토론회의 핵심은 민간 춤소극장이 자생할 수 있는 방안을 토론하는 일이었다. 이번 난상 토론에서는 이런 선까지 논의가 진전되지는 않았으나, 자생 방안을 극장 운영자들이 절실히 필요로 한다는 점은 확인되었다. 이는 어차피 수시로 이어져야 할 토론 과제로 보인다.
필자는 평소부터 우리 민간 춤소극장에서 경영 전략이 미흡하고 중장기 목표가 분명해야 한다고 판단해왔다. 말하자면 춤소극장 경영에서 첫 단추를 제대로 꿰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극장 운영 목적과도 직결되는 것이어서, 민간 춤소극장 운영주들이 관심을 기울여야 할 대목이다. 경영 세부 사항에서의 확신은 운영 목적에서 연유하기 때문이다.
우리 민간 춤소극장은 연륜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다. 연륜이 어떠하든 경영은 철두철미하지 않고 초보적 단계에 있다는 것이 필자의 진단이다. 역설적으로는, 이런 점에서 민간 춤소극장은 앞으로 발전의 여지가 매우 크다고 생각되고, 그것은 극장 나름대로 세울 경영 전략에 따라 좌우될 것이다.
지금 연극계에는 탈(脫)대학로 기류가 밀려들고 있다. 연극계는 예술 전용 극장을 대학로처럼 한 지역에 밀집시키고 보니 연극 ‘예술’이 오염되고 결국은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에 휩쓸려 나가는 폐단을 목도하는 중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전문 춤소극장들은 서울에서도 주택가에 분산되어 그럴 위험은 덜 한 것이 사실이다. 뜻하지 않은 이런 다행스러움이 춤계의 다행스러움으로 이어지려면, 춤계나 춤소극장 운영주나 무엇보다 ‘공공의 시각’에서 민간 춤소극장의 발전책을 도출해야 할 것으로 본다.
이번 토론회에서 거론된 민간춤소극장 협의체 역시 이런 시각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