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저 중국을 어찌할 것인가
급성장하는 중국의 공연예술, 바라만보는 한국
이종호_<춤웹진> 편집위원

 지난 18년 동안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를 해오면서 중국 무용가를 초청한 것은 한 번 뿐이었다. 10여 년 전 한국의 김희진, 일본의 시라카와 나오코와 함께 중국 광저우 출신의 롱윈나를 한 무대에 세워 한중일 여성 현대명무 3인전을 만들었을 때였다. 홍콩의 젊은 무용가들은 몇 차례 초청했지만 본토 무용가를 부른 것은 당시 뿐이었다.
 물론 그때도 어느 정도 수준을 갖춘 무용단이 전혀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창작 현대무용의 관점에서 보자면 꼭 불러오고 싶은 단체나 개인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게다가 중국과 중국인들에 대한 평소의 개인적 시각도 영향을 미쳤다. 외국에서 열리는 각종 문화예술 행사에 거의 얼굴을 내밀지 않는(그런 데서 만나는 아시아인은 대개가 홍콩이나 대만, 일본 사람들이었다), 어쩌다 한번 참가한다 해도 우루루 떼지어 몰려다니며 다른 나라 사람들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행사의 주목적인 세미나나 공연에는 아예 오지도 않고 관광과 쇼핑에만 열 올리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교류하고 싶은 생각이 들 리 없었다. 예의도 없고 타인에 대한 배려도 찾아보기 어려운, 요컨대 ‘글로벌 스탠다드’와는 영 거리가 먼 그들의 모습은 적어도 내게는 그저 좀 창피하고 거북스러운 이웃일 뿐이었다.

 

 

 

 그랬던 나에게 작년(2015년) 봄 프라하에서 만난 중국 공연예술사절단의 모습은 도무지 믿기지 않는, 경이로운 변모 그 자체였다. 열댓 명 규모인 그들은 체코 무용 플랫폼의 그 많은 공연을 꼬박꼬박 관람했으며 큰 소리로 떠들지도 않았다. 물론 밥을 먹을 때는 예외 없이 그들끼리 다녔고(이웃 나라 사람인 나하고는 몇 차례 함께했지만) 외국인들과 대화도 거의 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국제행사에 와서 귀찮은 심부름은 데리고 온 비서에게 다 시키고 자신은 거드름만 피우고 다니는 거만하거나 촌스러운 중국 관리의 이미지가 박혀 있던 내게는 참으로 놀라운 광경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전년에 있었던 동유럽 문화사절단의 중국방문에 대한 답례로 동유럽 몇 나라와 바르셀로나를 순방중이었는데 과거와 달리 대부분이 축제, 문화기업, 공연장에서 일하는 실무자들이었으며 절반가량이 영어를 구사했다. 일행 가운데는 중국 최고의 무용평론가인 우잔핑도 있었다. 거의 15년 만의 조우였다. 나는 그때 알게 된 몇 사람과 교류하기 시작했고, 덕분에 베이징이나 상하이는 물론 산시성처럼 먼 곳의 공연예술계 사정에 대해서도 좀 더 알게 되었다.
 그런데 사실 중국 현대무용의 변화를 감지하게 된 것은 이보다 조금 앞서 2014년 11월 광동현대무용축제에서였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현대무용축제라는 이 행사에는 과거에도 초청을 받았지만 다른 일정 때문에 가보지 못하다가 처음으로 참관하게 되었다. 거기 소개된 중국(본토)의 현대무용 작품들은 과거와는 확연히 달랐다. 오랫동안 들여다보지 않았던 중국 현대무용이 그 사이 대단한 진척을 이루었음을 실감했고, 그래서 2015년에도 가보았다. 이번에는 전반적인 작품 수준만이 아니라, 중국무용의 국제무대 진출을 염두에 둔 듯, 외국 프로그래머들도 대거 초청해 활발한 교류를 시도하는 모습이 목도되었다. 이는 물론 축제 책임자인 윌리 차오나 카렌 청의 개인적 의욕과 능력이기도 하지만 중국 현대무용계 전반의 활기찬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 아니겠는가. 머지않아 작품수준과 외국진출 양면에서 현저한 발전이 있을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최근에는 수도 베이징을 중심으로 새로운 현대무용축제들이 생겨나고 있다. 가장 유명한 두 현대무용축제(광동과 베이징)를 운영하는 카렌 정조차도 들어보지 못했다는 축제들이 여기저기 기치를 내걸고 있다. 이중 일부는 벌써부터 한국의 무용축제를 상대로 상호교류나 외국무용단 공동초청을 제안해오고 있다. 상하이에서는 현대무용마켓이 출범 준비중이며 올가을에는 무용전용극장이 문을 연다. 당나라 수도였던 천년고도 시안에도 작년말 무용과 연극을 중심으로 하는 현대문화예술축제가 창설됐다. 당국의 지시에 의해 만든 것이라 하니 중국 정부도 어떤 동기에서든 현대예술 발전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는 얘기가 아니겠는가.

 

 
 


 

 말할 필요도 없이 이미 중국은 우리에게 미국과 동급의 톱 프라이오리티(Top Priority) 국가이다. 중국의 일거수일투족에 민감할 수밖에 없고 당연히 우리 정부나 기업들도 열심히 대응책과 전략을 짜고 중장기 비전을 제시한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경제, 외교, 국방같은 ‘목전의 분야’ 얘기다. 문화예술 분야에선 정부든 민간이든 깊은 생각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한류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대중연예에서는 이것저것 정책이니 전략이니 하면서 사업을 벌이고 있지만 본격/정통 문화예술 부문에서는 이 무시무시하게 크고 있는 이웃 대국 중국을 어떻게 상대할 것인지, 어떻게 함께할 것인지에 대해 개략적 이론이나 단편적 경험담 이상으로는 나오는 게 별로 없는 것같다.
 이렇듯 커다란 논제 앞에서 무용 혹은 공연예술이라는 작디작은 구석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뭐 대단히 있을까마는 그래도 우리가 처한 상황과 지니고 있는 장단점 따위를 잘 생각해서 미래를 준비하지 않으면 안될 터이다. 어쨌거나 창작무용을 비롯해 현대 공연예술 전반에서 우리가 중국보다 앞서 있는 게 사실이라면 이 비교우위를 근거로 대중관계의 틀을 신중하면서도 적극적으로 짜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까지 우리 공연계가 간과했던 점 하나가 바로 창작력, 제작노하우, 국제교류 등 여러 측면에서의 우위를 바탕으로 중국과의 장기관계를 설정하려는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중국이란 나라가 워낙에 만만치 많은 상대이긴 하지만 영화와 드라마, 뮤지컬 등 상업문화의 진출과는 별도로(혹은 투 트랙으로) 정통 공연예술도 중장기전략에 입각한 진출/교류 방안을 짰어야 했다. 그러는 사이에 오페라, 발레, 연극, 현대무용 등 이른바 고급예술은 물론 뮤지컬과 서커스까지도 서양의 문화기업들이 중국에 납품하는 방식으로 실리를 취하고 있다. 중국인들이 아직 잘 모르는 서양의 공연 콘텐츠를 팔면서 속된 말로 ‘재미’를 보고 있는 것이다. 2000년대 초 홍콩아트센터의 고위 책임자는 “이런 표현은 좀 그렇지만...”하면서 말했었다. “아무리 중국이 급속발전을 한다 해도 적어도 앞으로 20년 동안은 우리의 놀이터(playground)로 남을 거야. 그들은 콘텐츠도 노하우도 없으니까. 결국은 제일 가깝고 일찌감치 서구화된 홍콩이 공급자가 될 거라는 얘기지.”
 홍콩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우리에겐 아직도 기회가 충분하다. 중국은 우리에게 시장이자 교류와 협력의 대상이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중국인들은 필요한 것을 얻고 나면 우리를 쫓아낼 것이라고. 한국에게서 배울 것 다 배우면 한국인은 찬밥이 될 것이라고. 물론 그럴 위험도 크다. 하지만 피할 순 없다. 한국이 아니더라도 그들은 미국이나 유럽으로부터 얼마든지 배우거나 사들일 수 있다. 지금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지 않은가. 오히려 지리적 역사적으로 가까운 우리가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으면서 단순한 판매나 전수의 차원을 넘어 장기적인 협력과 교류의 틀을 짜는 편이 훨씬 낫다.
 생각이 바뀐 탓일까. 늘 시끄럽기만 하던 중국말이 얼마 전부터 힘차게 들리기 시작했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중국의 시대’라면 우리 공연예술계도 적극적으로 응대하는 게 답이다.

2016. 03.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