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국내 첫 무용평론집 발간 30년에 붙여
춤 예술의 입체적 기록과 그 역사화
김태원_춤비평가

 지난 5월 30일은 우리 무용사에서 첫 춤 평론집이 발간된 지 30년이 되는 날이었다. 그 첫 춤평론집은 2007년에 작고한 고(故) 김영태 선생의 『갈색 몸매들 아름다운 우산들』(지문사, 1985)로 이 평론집의 출판기념회는 그 책의 발간 한 달 후인 6월 29일 대학로 학림카페(현 학림다방)에서 있었다. 이 출판기념회는 그와 가까웠던 무용가 국수호·박명숙과 같은 이들이 마련한 것으로 단출하면서도, 그러나 화사한 분위기 속에서 치러졌었다.
 나는 당시 재미 실험 안무가 홍신자와 그녀의 무용단 래핑스톤의 내한 공연이 호암아트홀 개관기념으로 치러졌기 때문에 그 공연 팜플렛에 그녀의 춤 세계에 대한 글을 쓴 탓에, 또 김영태 선생과 개인적 인연도 있고 해서(선생은 내가 1978년 초 미국으로 가기 전 공간사랑에서 나의 연출로 올렸던 <버드베드>란 공연을 보러 온 적이 있었다) 그 자리에 참석했었다.
 이 책 이전에 몇 권의 춤 관련 서적이 출간된 적이 있다. 일제강점기하 좌파 문학평론가이기도 한 최승희의 오빠 최승일이 1936년도에 편한 『최승희 자서전』(이문당), 한국무용가이면서 국내에서 무용사 강의를 했던 조원경의 『무용예술』(해문사, 1962), 그리고 신무용가 조택원의 자서전 『가사호접』(서문당, 1974) 등이 그것들인데 『최승희 자서전』은 순수 개인 자서전이라기보다는 최승희의 춤예술을 옹호하기 위해 당시 여러 지성인들(국내와 일본)의 글을 모아 간행한 것이고, 『무용예술』은 기초적인 무용이론과 우리 무용사(특히 신무용사)에 대한 일종의 개론적 무용사 입문서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가사호접』은 개인의 춤 활동에 대한 기억과 자신의 춤예술관을 섞어 넣은 문자 그대로의 자서전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최초 무용평론집은 김영태의 『갈색 몸매들 아름다운 우산들』

 그런 점에서 볼 때, 김영태 선생의 『갈색 몸매들 아름다운 우산들』은 최초의 순수 춤평론집이라 하겠다.(고 조동화 선생은 조원경의 책을 평론집으로 보긴 했지만, 그 지적은 맞지 않다.)
 물론 1985년에 출간되었다고 해서 저자의 춤에 대한 글쓰기가 1985년 그즈음에 시작된 것은 아니다. 책 속에서 저자는 1960년대 말부터 춤을 보기 시작했다 했고, 1970년대 중반 이후 춤 공연들, 대표적으로 자신의 친우이자 시인이었던 마종기의 모친인 현대무용가 박외선의 공연(<대지의 무리들>과 <고별>)들에 대한 평(1975), 이정희·김기인의 춤이 포함되어 있는 컨템포러리 77(4회째) 공연평 및 프랑스 사일런스발레단 공연평(1977), 또 피나 바우쉬 부퍼탈무용단의 첫 내한 공연평(1979)을 비롯해서 1980년대 초반 공간사랑 등에서 보았던 여러 신인들―박명숙·김경옥·한상근·김명수 등―에 대한 짧은 공연평들이 실려 있다. 이 중의 글들 중 다수는 발표 지면과 연도 미상이어서 관심 있는 이들은 그 평이 쓰여진 매체와 시기 등을 따로 확인하여야 한다.
 김영태 선생의 첫 평론집에서 볼 수 있듯 그렇게 한 권의 춤평론집은 대개 춤인물평과 작품평이 주종(主種)을 이룬다. 따라서 일반적 의미에 있어서 춤평론은 어떻게 대상을 흥미 있게, 또 인상적으로 묘사하며, 적절히 평가하는 데 포인트가 있다 하겠다.(김영태 선생의 촘촘한 현재시제형 서술과 시적 수사를 섞은 글쓰기는 당시에 춤평론 작업에 대한 색다른 흥미를 불러 일으켰다.)
 그래서 그것이 발전되고 심화된 경우 한 권의 무용가 평전(critical biography)이 만들어지게 된다. 이것은 한 사람 평론가의 상당한 공력(功力)과 시간을 요하기 때문에 한 평론가가 여러 사람에 대한 평전을 쓰기가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평론가는 자기 나름의 시각에 의해, 사려 깊게 선정한 한 사람(무용가)에 대해서 쓰고, 아주 많아야 2~3인에 그친다. 우리의 경우 작고한 정병호 교수의 최승희에 대한 평전 『춤추는 최승희―세계를 휘어잡은 조선여자』(뿌리 깊은 나무, 초간 1995)가 그 대표적 예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 춤비평 문화에서는 순수 작품평이나 인물평 못지 않게 큰 영역을 점하고 있는 것이 이른바 시론·시평이라 할 수 있는 영역이다. 춤평론가들의 동시대의 춤문화와 예술에 대한 여러 생각들을 자유롭게 담은 입론(立論) 형식의 이 글들은 춤평론가가 가진 계몽적 시각과 합치되면서 적어도 1990년대 말까지 우리 춤계의 발전과 향방에 많은 영향을 미쳐 왔다.
 작고한 강이문의 국무론이나 민족무용론, 박용구의 무용극론, 채희완의 신명론, 김태원의 후기현대무용론과 소극장춤론, 김채현의 과학적 무용론, 그리고 최근 성기숙의 근대춤론과 같은 것들이 그것들로서 어쩌면 이 같은 여러 춤담론의 생성은 우리 춤평론의 지적 생산성을 높여 주고 있는 부분들이라 할 수 있다. 그런 탓에 나의 춤평론집의 내용과 편집은 그 같은 부분들을 조합, 비교적 일관되게 담으려 하고 있다. 그 내용상의 편집 서열은 다음과 같은데, 향후 춤평론집을 내려는 이들은 참조했으면 한다.

1. 춤시론, 혹은 비평적 관점에서 동시대의 춤문화의 예술에 대한 미적·제도적 논의
 (자주 연도별 총평 형식을 곁들여 평론집이 발간되는 시기의 춤예술적 특성을 비평적으로 요약하고 분석함.)
2. 순차적인 춤리뷰 모음
3. 주요 춤작가론과 춤행사(춤단체 활동)에 부친 팜플렛 글
4. 비평적 관점에서 주목하는 무용인들과 인터뷰, 때론 서평
5. 참고자료
 (*이 중 두 번째·세 번째 항목은 순서가 바뀔 수 있음.)

 여기서 특별히 짧게 언급하고 싶은 것은 두 가지다. 첫째는 한 권의 춤평론집에는 시론·시평이 갖는 중요도나 무게만큼 그것을 뒷받침해 줄 구체적인 춤리뷰나 안무가론이 동일한 비중으로, 혹은 그보다 좀 많은 양으로 들어 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고(통칭 춤작가론으로 칭해지는 안무가론이 한 춤평론집의 중핵이기 때문에), 두 번째는 우리 춤문화 속에서 소홀히 간주되고 있는 팜플렛 글이나 특정 무용인과의 인터뷰는 자칫 주례사 비평의 일종으로 폄하될 수도 있으나, 춤의 공연들이나 그 주체인 무용가들의 활동이 여타의 예술들과 다른 특별한 시간적 제약(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일종의 1차적인 무용사의 자료로서 큰 중요성을 띤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종합적 관점을 담은 한 권의 평론서는 한 춤평론가 활동의 다채로운 면모를 보여주면서 어쩌면 리뷰나 인물평 위주의 평론 활동이 가지게 되는 지적 소모성(知的 消耗性)을 줄이고, 춤예술의 입체적 기록과 그 역사화(歷史化)를 도모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
 통상적인 좁은 의미에서 춤평론은 춤공연과 무용가에 대한 인상과 심미적 분석을 담은 여러 글들을 뜻한다.(서구에서 춤평론은 주로 이 부분을 지칭한다.) 그러나 보다 확장된 의미에서 춤평론은 그것을 넘어가게 된다. 즉 동시대의 춤에 대한 특별한 심미적 이론, 춤과 여타 문화와의 상호 교합, 그 제도와 교육에 대한 관찰, 춤예술을 대하는 대중의 태도 등, 그 주제는 다양하게 넓혀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한 사람 춤평론가 활동의 최종의, 지적 결과물인 한 권의 춤평론집은 무대 위의 공연물이 보여주고 함유하고 있는 것과 병행해서 ‘또 다른 문화적 가치’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춤예술과 문화는 이 같은 지적 활동의 영역에 더 깊은 주의를 기울이면서, 그 방향으로 좀 더 움직여 가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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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는 지난 6월 중순 12번째 개인 춤평론집인 『춤문화의 변화와 비평』(현대미학사)을 발간하고, 6월 25일 대학로 모차르트 카페에서 출간기념회와 함께 참석한 이들과 대화 모임을 가졌다.

2015. 08.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