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국내춤기행_ 동해안 별신굿〈울산 신암편⓶〉
어촌마을을 뜨겁고 풍성하게 달군 풍어축제 -신암별신굿
이병옥_춤비평가

 어촌마을이라 민박이 딱 하나가 있는데 주인마저 별신굿 식당에서 봉사하는 관계로 숙소를 사용할 수가 없어 할 수 없이 멀리 나가 숙소를 잡았다. 난방이 시원찮아 썰렁한 밤을 지새우고 나와 다시 굿판 이튿날을 맞이했다. 10시가 되어 시작하는데 팥죽 새참을 주어 맛있게 먹으며 굿 촬영을 시작했다.
 둘째 날 일정표의 첫거리가 어제 저녁에 연행하여 오늘도 다소 변경이 생겨 <부인거리>, <천왕거리>, <손님거리>, <대왕거리>, <대신거리>, <황제거리>로 진행하였다. 그리고 셋째 날은 <군웅거리>, <심청거리>, <천왕거리>, <심청거리>, 넷째날은 <걸립거리>, <용왕거리>, <장수거리>, <월래거리>, <꽃・등・뱃노래>, <거리굿>으로 신암별신굿의 끝을 맺는다.
 지난 호에도 언급했듯이 동해안별신굿의 각 굿거리마다 연행구조는 기본구조와 변형구조로 되어 있다. 따라서 이후에 펼쳐진 굿거리에서도 변형구조인 <손님거리>, <심청거리>, <걸립거리>, <용왕거리>, <장수거리>, <거리굿> 외에는 기본구조로 연행한다. 그러므로 기본구조의 춤은 무녀들의 개인차는 있지만 춤 형식은 대동소이하여 종합적으로 춤형식과 춤사위를 정리하면서 살펴보았다.
 9시 40분(110분간)에 되자 양중들이 모여 하루의 굿을 시작하는 드렁갱이로 굿판의 신명을 북돋았다. 10시가 되자 <부인거리>에 김정숙 무녀와 김정희 양중이 굿을 연행하였다.
 <부인거리>는 각 가정에 효부와 열녀가 나오기를 기원하는 굿거리로, 연행구조는 동해안별신굿의 대표적인 기본구조 6단계로 진행하였다. 즉 ①푸너리장단의 푸너리춤(부채와 수건춤), ②청보장단에 청보무가와 청보춤, ③“우여차! 00님네 놀고 씨고 가잔다!”로 거무장단에 거무춤3장(‘느진거무춤’(중모리형), ‘거무춤’(굿거리형), ‘당거무춤’(자진모리형)), ④어포(명태포)를 들고 모름채 장단에 토구름춤과 어포춤, ⑤축원무가와 팔도민요, 가요, ⑥사자풀이채(장단)에 술잔과 신칼을 들고 수부사자무가로 끝을 맺는다.
 11시 30분(103분간) 손영만 남무(경북 빗내농악 보유자)와 김용택 양중(동해안별신굿 보유자)이 <천왕거리>를 연행하였다. <천왕거리>는 골매기 천왕신(성황신, 서낭신)을 모시는 굿거리로 동해안별신굿의 연행구조에서 변형구조라고 하지만 뒤에 이어지는 무극(巫劇) 때문이다. 이 무극을 <원님놀이>, <천왕곤반>, <도리강관원놀이> 등으로 불리지만 이 거리를 생략하는 경우는 기본구조와 다름없다. 동해한별신굿에서도 지역에 따라 생략하는 마을이 있고 사정상 생략하는 경우도 있다. 이번 신암마을에서는 두 번에 <천왕거리>를 연행하였는데, 다음날인 23일에도 <천왕거리>를 김동연무녀와 김종희 양중이 연행하였다. 이것은 손영만 무당이 굿당 밖의 천왕대를 들고 굿을 연행하지 않아 김동연 무녀가 천왕신을 모시는 거리를 포함하여 <천왕거리>를 다시 연행한 것이다.



 <손님거리>의 손님대춤

 <손님거리>는 손님신, 즉 천연두신(天然痘神)을 위한 거리이다. 손님신을 높여서 마마손님 혹은 마마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우두법이 일반화되기 전에는 천연두가 가장 무서운 전염병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게 된 것이다. 무속의 신은 인간에게 존경받을 만한 일을 해서 신으로 모셔진 것도 있지만, 인간에게 너무 위협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그 화를 면하기 위해 인간들이 두려워하면서 신으로 모시기도 하는데, 손님신이 그 경우이다.
 13시 13분(150분간) 김영희 무녀(1941년생, 보유자)와 김정희 양증이 <손님거리>를 하였다. 김영희 무녀는 동해안별신굿 보유자이며 현재 보존회장으로 고령에다 척추 불편에도 불구하고 이번 별신굿판에서 오로지 한 석(席, 거리)을 연행하는 유일한 굿거리이기에 좀 더 소상히 정리해 보았다.
 대체로 무녀들은 맡은 굿거리를 시작할 때 이미 머리장식과 치마저고리를 갖춰 입고 굿판에 등장한다. 김영희 무녀 역시 단정하게 달비(덧 씌운 가발), 빨간 댕기, 흰 머리띠로 머리장식을 하고 치마저고리에 보자기를 들고 등장하였다. 그리고 보자기를 풀어 남색 쾌자와 연두색 가슴 띠를 꺼내 주민들 앞에서 쾌자와 가슴 띠를 착용한다. 젊은 무녀들은 본인이 직접 가슴 앞에서 한가닥 매듭으로 늘어뜨린 다음 뒤로 돌려 등 뒤에서 매듭이 쾌자 끝까지 길게 늘어지게 한다. 김영희 무녀의 가슴 띠는 조무들이 착용시켜드렸다.





 김영희 무녀가 등장하여 “젊은 새댁이 굿 한석 하러 나왔습니다.”라고 반어법으로 말문을 트니 굿당 안은 웃음바다가 되면서 굿판분위기를 일시에 압도하였다. 이어서 동해안별신굿을 하는 조상내력과 신안별신굿의 그간 경력 등을 이야기하고 손님굿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고 “손님네 한번 모셔봅시다” 하고 청신으로 푸너리장단에 손님대춤을 추기 시작하였다.
 ①양중들이 푸너리장단을 연주하자 김영희무녀는 굿당을 향해 뒤로 돌아 먼저 오른손의 부채를 펴 들었다가 허리 뒤로 여미고 이어서 왼손에 잡은 손님대를 쳐들어 앞쪽으로 올렸다. ②부채와 손님대를 함께 쳐들고 마을 이장보고 굿당을 향해 절을 하라고 지시하니 절을 한다. ③손님대와 부채를 좌우로 흔든 다음 손님대를 어깨에 얹고 부채는 편 채 옆구리에 낀다. ④ 손님대와 부채를 들고 좌우로 흔든다. ⑤손님대와 부채를 들고 왼쪽으로 한 바퀴 돈다. ⑥돌면서 주민을 향할 때는 부채를 허리 뒤에 여미고 굿당을 향할 때는 부채를 쳐든다. ⑦ 손님상차림 앞에서 좌우로 흔들고 ⑧ 오른쪽으로 한 바퀴 돈다, ⑨ 손님대를 들고 흔들면서 부채는 허리 뒤에 여미고 왼쪽으로 돈다. ⑩ 부채를 들고 흔들면 손님대는 어깨에 얹는다. ⑪ 굿당을 향해 좌우로 흔들다가 손님대를 들고 흔들 때는 부채는 뒤로 여미고 부채를 들고 흔들 때는 손님대는 어개에 얹는다. ⑫ 부채를 접어 손님대 위에 X자로 걸치고 왼쪽으로 한 바퀴 돈다. ⑬굿당을 향해 손님대를 오른손에 옮겨 부채와 함께 오른손에 겹쳐든다. ⑭ 굿당을 향해 부채와 손님대를 부르르 떤다. ⑮굿당을 향해 몸통을 떤 다음 다시 손님대와 부채를 떨면서 좌우로 흔든다, ⑯다시 손님대를 왼손에 옮겨 어개에 얹고 부채를 펴들고 왼쪽으로 돈다. ⑰ 한바퀴 더 돌아 주민들을 향해 절을 한다. ⑱ 다시 굿당을 향해 돌아 절을 하고 푸너리춤을 마친다.





 간략하게 춘 푸너리 손님대춤이지만 불편한 몸으로도 춤의 격식을 갖추었다. 이어서 손님을 모시는 내력을 이야기와 무가로 손님굿 서사무가를 제마수장단에 맞춰 92분 동안을 불렀다.
 손님거리는 전국적으로 널리 분포되어 있으며 대부분 축원무가로 불리는 경우가 훨씬 많지만 동해안별신굿에서 불리는 손님거리 무가는 서사무가이다. 김영희 무녀가 구연한 내용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중국에 있던 손님신 쉰 세 분이 조선이 살기 좋다는 소문을 듣고는 들어오다가 쉰 분은 되돌아가고 세 분만 압록강을 건너게 되었다. 그러나 사공은 각시손님이 하룻밤 자신의 수청을 들어준다면 건네주겠다고 하였다. 이 말에 화가 난 손님네들은 사공을 죽이고 그의 집으로 가서 아들들도 하나씩 차례대로 천연두에 걸려 죽게 만들었다. 마지막 아들 하나가 남았을 때에 사공의 어머니가 손님네에게 애원했기 때문에 손님네는 사공의 마지막 아들 하나는 목숨을 보존하게 하여 주었다. 조선으로 들어와 떠돌던 손님네는 가난한 할미의 집으로 찾아간다. 할미는 손님네가 온 것을 알고는 정성껏 대접한다. 할미의 정성에 감동한 손님네는 할미에게 소원을 말하라고 하고, 할미는 김장자집의 삼대독자인 철현이가 쉽게 손님을 마치도록 하여 달라고 청한다. 손님네는 김장자의 집을 찾아가 그에게 천연두를 앓게 한다. 그러나 김장자는 손님을 대접하여 아들을 낫게 할 생각은 하지 않고 자꾸만 억지를 부리면서 손님네에게 대항한다. 화가 난 손님네는 철현이를 죽여 자신들의 마부로 삼고 말았다.
 동해안별신굿 손님굿의 끝에는 손님노정기(路程記)가 이어지고, 그 뒤에는 손님네 말놀이라는 무극(巫劇)이 있다. 이 무극은 본래는 손님배송굿 혹은 마마배송굿이라고 불리는 굿에 들어 있었던 것인데 익살스러운 재담이 재미있다. 옛날에는 천연두가 치사율이 매우 높은 무서운 전염병이었던 것이다. 이 병에 걸렀다가 요행히 죽지 않으면 발병된 지 열사흘 만에 천연두신을 돌려보내는 마마배송굿을 크게 했다고 하는데, 그 마지막 대목인 손님네를 말에 태워 돌려보내는 대목이 이 극에 해당한다. 그러나 오늘날 천연두를 예방할 수 있게 되자 손님배송굿도 중요성이 없어지고 말을 만드는 일은 점차 사라지게 된 것이다. 시대나 문화의 변화를 동해안별신굿이 어떻게 수용하고 있는가하는 것을 시사하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김영희 무녀가 서사무가를 연행하는 동안 조무들이 나서서 손님대를 들고 주민들에게 가자 주민들이 돈을 손님대에 꽂아 주령주렁 매단다. 손님대를 손님상 옆에 쌀을 담은 말과 어포에 꽂아두니 김영희 무녀가 다시 어깨에 얹고 연행하였다. 서사무가를 마친 다음 손님대를 흔들며 마을의 안녕을 월별로 공수내리듯이 축원하고 지역민들의 사주를 기록한 용지를 보며 한사람씩 축원해주었다. 조무들을 나오게 하여 민요를 부르게 하였다. 그사이 새참으로 팥죽을 주민들에게 나눠주며 계속 진행하였다.

 이어서 15시 43분부터 서한나 무녀와 김진환 양중이 <대왕거리>를 92분간 연행하였고, 17시 15분부터 김영숙 무녀와 김용택 양중이 <대신거리>를 115분간 연행하였으며, 19시 20분 김동연 무녀와 김정희 양중이 <황제거리>를 83분간 연행하여 밤10시 가까이 되어 22일 일정을 마쳤다.
 23일과 24일에 걸쳐 나흘동안 오전 10시부터 <군웅거리>, <천왕거리>를 비롯하여 <황제거리>, <걸림거리>, <용왕거리>, <장수거리>를 하고 24일에는 <월래거리>, <꽃,등, 뱃노래>, <거리굿>으로 마무리하였다.




 기본구조의 굿에 나타난 ‘푸너리춤’의 춤 구성과 특징

 신암별신굿의 22거리 연행내용 중에 기본구조를 지닌 굿거리는 가망거리, 제석거리, 성주거리, 부인거리, 천왕거리, 대왕거리, 대신거리, 황제거리, 군웅거리, 용왕거리 등 9거리였다. 이러한 기본구조의 굿거리는 앞서 밝힌 바와 같이 6단계의 연행구조로 진행되는데 좀 더 구체적인 내용과 춤을 살펴보기로 한다.

 <가망거리>는 김동연 무녀(동해안별신굿 전수조교)와 김정희 양중(동해안별신굿 전수조교)이 굿을 연행하였는데 ‘푸너리춤’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먼저 양중들이 장고, 징, 꽹과리로 푸너리 1장단(굿거리형, 2소박4박 2장단 첫박에 징1번)을 치면 춤을 추기 시작한다. ①무녀가 부채와 수건을 들고 주민들을 등지고 굿당을 향해 천천히 느린 걸음으로 전진하며 좌우세로 손을 흔들고 ②후진하면서 팔을 내려 앞뒤로 흔들고 제자리에서 좌우세로 흔든 다음 ③다시 천천히 전진하고 왼쪽으로 돌아 앞(주민)을 보고 계속 돌아 뒤(굿당)를 보면서 부채를 펴고 위 아래로 들고 내린다. ④수건을 든 왼손은 반대로 아래위로 흔든다. ⑤반대로(오른쪽) 한 바퀴 돌며 팔을 흔들고 앞을 향할 때 부채를 접고 좌우로 흔든다. ⑥앞을 향한 채 전진후진하고 부채를 어깨에 얹고 수건을 옆을 들고 제자리에서 흔든다. ⑦다시 앞으로 양팔을 흔들며 전진하여 ⑧오른쪽으로 돌며 굿당을 향할 때 다시 부채를 펴고 흔들며 세 바퀴를 연속을 돈 다음 ⑨다시 왼쪽으로 세 바퀴 돌아 굿당을 향해 양팔을 펴든다. ⑩푸너리 2장단(1장단 첫박에 징1번)에 절을 하고 다시 뒤로 물러나 절을 하여 삼배하고 반배를 더하고 마친다(1분30초).





 그 외 굿거리에서 다른 무녀들이 춘 푸너리춤은 <제석거리>의 홍효진(2분), <성주거리>의 김동언(2분), <부인거리>의 김정숙(1분50초), <천왕거리>의 손영만(1분30초), <대왕거리>의 서한나(1분50초), <대신거리>의 김영숙(1분50초), <황제거리>의 김동연(1분40초) 등이 있었다<필자 영상촬영>. 이들이 연행한 것을 비교해보면 첫째, 춤에 소요된 시간과 장단은 각자의 성향과 즉흥성, 현장성으로 각기 달라 고정되지는 않았지만, 기본원칙과 기본구조는 유사했다. 둘째, 대체로 연령별 즉 60대 이상의 고령층 무녀와 그 이하 젊은 층에서 춤의 성향이 달랐다. 즉 고령층은 동작이 작지만 부드러움과 유연함을 보이고, 젊은 층은 활기 있고 춤사위가 확실하고 조금 길게 추었다. 그리하여 고령층은 어르는 사위, 좌우새, 여미는 사위, 얹는 사위로 춤집이 작았고, 젊은 층은 어르는 사위보다는 좌우새와 어깨에 얹고 겨드랑에 끼는 사위로 춤집이 컸다. 셋째, 고령층일수록 춤구조가 일정하고 공통점이 많으나 젊은 층은 규칙에 얽매지 않고 자유롭게 추는 경향이 있다.
 푸너리춤의 공통적인 춤구조와 특징은 첫째, 처음 양중들이 푸너리장단을 치면 무녀는 바로 춤을 추지 않고 무복의 매무새를 가다듬고 마음을 정비하고 나서 주민을 등지고 굿당을 향하여 춤추기로 시작한다. 둘째, 전진후진 걸음과 좌우회전걸음, 제자리걸음 등 3가지 걸음법이 주로 쓰인다. 셋째, 손팔동작은 양팔을 평사위에서 좌우로 흔드는 좌우세가 주를 이루고, 팔을 상하로 크게 들고 내리는 큰 좌우새, 한 손은 어깨 얹고 다른 손은 반대편 겨드랑이에 끼었다가 펴서 반대로 얹고 끼는 사위, 부채는 펴서 뒤편에 여미고 수건은 앞에 들고 도는 사위, 넷째, 부채는 도는 사위에서 굿당을 향할 때 펴고 앞을 향할 때 접으며 신의 세계와 인간세계를 구분하여 펴고 접는다. 다섯째, 도는 사위는 신을 모신 신의 세계인 굿당과 주민들을 향한 인간세계를 넘나드는 의미로 양 세계를 왔다 갔다 하는 춤으로 보였다. 그리고 도는 방향의 손은 위로 들고 따르는 쪽의 손은 허리 뒤로 붙여 도는데, 계속 돌 때는 양손을 모두 위로 쳐들고 돈다. 여섯째, 굿당을 향해 돌 때는 부채를 펴고 돌고, 주민을 향해 돌 때는 부채를 접는데, 여러 바퀴 돌 때는 부채를 펴 양손을 모두 들고 돈다. 일곱째, 마지막 춤을 마칠 때는 굿당을 향해 삼배하면 장단은 조금 빨라지는 푸너리 2장단을 치고 마친 다음 청보장단으로 바뀐다. 일곱째, 장단은 강하지만 춤은 굿거리형의 부드러운 춤을 춘다.
 이처럼 굿문서나 춤은 분명히 선대 무녀들로 부터 전승한 전형적 특징을 보여주고 있지만 연행자(무녀)에 따라서, 또 현장성, 즉흥성이 가미됨에 따라서 연행내용은 개인차를 보인다. 게다가 전승의 연륜과 연령층에 따라서도 세대차도 나타나고 있었다.




 동해안별신굿의 무복과 무구

 동해안별신굿의 무복은 한마디로 조촐하다고 할 수 있다. 무당들은 굿을 하는 동안에 굿의 종류나 춤의 종류에 따라 간단한 무복을 착용한다. 치마저고리만을 무복으로 착용하거나 그 위에 남색의 전복을 덧입는 것이 일반적이다. 특별한 굿거리나 춤에 따라 표의(表衣)로서 포를 착용하거나 머리에 고깔 또는 화려하게 장식한 화관을 쓰는 정도이며 무복으로서의 특별한 양상은 찾아볼 수 없다. 다만 단순함 속에서도 두루마기, 몽두리, 쾌자, 활옷, 원삼, 철릭 등 의례용 겉옷에서 보이고 있는 복식 대부분은 색동소매와 한삼이라 할 수 있다. 동해안세습무 무복의 형태적 특성으로 볼 수 있다.






 동해안별신굿의 머리장식

 동해안별신굿의 머리장식으로는 흰색 띠, 달비, 화관, 비녀, 꽂이, 갓, 고깔 등을 볼 수 있다. 머리띠는 얇은 흰 천을 가늘게 감아 머리에 띠를 두르고 여분으로 꽃을 만들어 장식한다. 달비는 길이가 일정치 않으며 머리카락을 두 갈래로 묶어 연결한 것으로 여자의 긴 생머리카락이며 어른 손 한 웅큼 정도의 굵기로 만든다. 굿을 할 때 머리를 감싸며 머리를 단정하게 만들어 주고, 가발처럼 쓴 후 굿 동작에서 자유롭게 하기 위해 단단하게 고정한다. 굿거리 이후 땀범벅이 된 달비는 세탁하지 않고 뜨거운 방바닥에 놓아 습기를 말려 다시 사용한다고 한다. 달비는 굿판에서 구경하는 할머니들이 잘라준 머리채도 있고, 세습무에서 무녀들에게 중요한 상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에 절대 태우지 않고 소중히 관리하는 중요한 장신구이다.
 명주수건은 무녀들이 가체한 머리 전체를 가릴 때 사용하며, 머리 전체를 감싸는 형태이다. 화관은 문굿에서 밝이춤을 출 때 머리에 쓰며, 화려하고 아름답게 장식한다. 붉은 댕기는 갑사로 만들며 홍색이고 흰 머리띠와 함께 달비를 고정하고 머리모양을 장식하는 역할을 한다. 갓은 성주굿이나 심청굿 권위가 높은 굿거리에서 주로 사용한다. 고깔은 명주천이나 종이로 접어 쓰기도 한다. 세존굿에서 추는 중춤, 중도둑잡이굿, 양중이 염불을 구송할 때 등에 주로 흰 천이나 흰 종이를 사용한다.





 군웅거리와 천왕거리까지만 촬영을 마치고 다음날 춤비평가회 회의 관계로 굿판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나머지 부분은 대보름날부터 연행하는 부산 기장 칠암면에서의 동해안별신굿에서 다루기로 한다.

2015. 05.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