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해외춤기행_ 뒤셀도르프 Tanzmesse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 속에서 맛보는 유쾌한 스릴
이경구_고블린파티 단원

 아무 향기가 나지 않는 뒤셀도르프 공항. 햇볕이 귀한 곳이라 불리우는 독일에 첫 발을 디뎠다. 까마득한 밤이었다. '처음'이라는 단어가 내 몸을 한껏 들어올렸다. 8월 27일-31일,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Tanz messe가 개최되었다. 올해 탄츠메세에서 선정한 한국의 무용단은 총 5개 팀으로 Noname Sosu, Bereisht, EDX2, Art Project Bora, Goblin Party 가 있었고, 나는 Goblin Party 의 작품 〈I GO〉의 무용수로서 본 축제에 참여하였다.
 '처음'으로 유럽에 온 여행자이자 탄츠메세에 선정된 작품의 무용수 그리고 유럽 축제의 한 관객으로서 말할 수 있는 '탄츠메세' 는... 지구에 현존하는 무용 작품들을 감상하고 무언가를 발견하거나 혹은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며, 작품에 참여하는 개개인의 입장(안무가, 무용수, 관객)에서 낯선 지구인들과 최소한의 언어로 서로의 감성을 나누고 감사를 전하는 대화의 장이라 말하고 싶다.
 우리팀(Goblin Party)이 무대에 오르는 하루를 제외하고의 며칠간은 독일 뒤셀도르프를 여행하고, 탄츠메세에 공식 초청된 공연들을 관람하는데 시간을 보냈다. 뒤셀도르프의 공기는 꽤나 쌀쌀했으나 햇볕은 기분이 좋아질 만큼 따사로웠다. 라인강 옆으로 나있는 반듯한 길과 푸른 잔디가 심어진 공원에는 유독 손을 잡고 걸어가는 노부부가 많았다. 연못에 몸을 담군 채 물장구치는 소년도 보였고, 자전거를 끌고 나온 젊은이들이 벤치에 앉아 샌드위치를 먹기도 하였다.
 이들의 뻔하다고도 할 수 있을 여유로움을 구경하는데 난 괜스레 숨을 쉬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느린 낮을 보내고서 탄츠메세에 초청된 공연들을 보기 위해 극장으로 향했다. 8월의 끝물, 뒤셀도르프에 예술을 즐기는 사람들의 발자취가 남겨지고 있는 것 같았다.





 공식 초청공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은 Anton Lachky Company의 〈Mind a Gap〉. 소극장, 맨 앞자리에 앉아 있어서인지 평소와 다른 과한 설렘 탓에 두 어깨가 불쑥 솟았다. 조명의 빛이 무용수들의 얼굴을 밝히기 전의 미미한 어둠 속에서도 '사람' 고유의 살아있는 기운이랄까 또는 색채가 무대를 간지럽히기 시작했다. 어떤 분위기만으로 작품을 좋은 듯 이야기하는 것이 싫으나, 시작의 예감이 여느 때와는 전혀 새로웠고, 그 예감은 다행히 틀리지 않았다.
 "비어있는 공간을 신경 쓰세요"라는 뜻의 "mind a gap". 4명의 무용수들은 같지만 다른 것을 함께 행하고, 가장 먼저 발이 접지른 듯 걷는 한 남자가 개인의 공간을 차지하려 공략한다. 그 후, 4명의 무용수들은 "누가, 누가 더 재밌을까요?" 하듯 네모난 공간 안에서 자신의 존재, 즉 캐릭터를 다른 누군가 치고 들어오지 못할 만큼의 에너지 혹은 이야기로 빼곡하게 쌓아간다.
 또한 듀엣과 솔로, 트리오 등 여러 구성이 등장하는데, 한 무용수의 몸에서 만들어진 구멍을 다른 무용수가 마치 틈새시장을 노략하는 듯 깨알스레 덮치는 모습은 유쾌한 스릴감을 선사했다. 잠시 누워있는 누군가의 속옷 안으로 손을 집어넣고, 마치 훼방을 놓고 있는 듯한 장면도 있었다. 역동적이고 밝은, 말 그대로 살아 있는 듯한 무용수들 사이에서 꽃남방을 입은 남자가 말 그대로의 '춤'을 추는데 진지해질만하더니 나머지 무용수들이 우스꽝스러운 표정으로 나와, 진지한 사람에게 허세 떨지 말라고 따끔한 충고를 하듯 무거워질만했던 공간을 다시 흩트려 놓곤 했다.
 마치 뒤통수를 맞듯 그들의 공간을 치고 들어가고, 보는 관객들의 예상을 엎고 들어오던 것들을 이들은 놓치지 않고 쌓아간다. 그리고 마지막 1분, 49분 동안 하지 않았던 느리고 정갈한 걸음을 그림자처럼 보이며 끝이 났다.
 공연을 보고 나온 후, 집으로 가는 동안 그들의 기운이 계속해서 몸을 뜨겁게 했고 동시에 몰입도 혹은 에너지에 관해 무용수로서의 내 자신이 반성이 되었다. 곧이어 저들이 했던 극장의 무대에 무용수로서의 내가 선다는 것을 생각하니, 두려움과 동시에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독일 뒤셀도르프 Kleines Haus에서 공연한 Goblin Party의 〈I GO〉

 

 뒤셀도르프 Kleines Haus에서 Goblin Party의 〈I GO〉가 무대에 올랐다. 사실 이 작품은 2012년, 서울댄스플랫폼(SDP)에서 관객으로서 만난 작품이었다. 이 후, 〈I GO〉의 주인공이라고도 할 수 있는 심심해 보이고 참 깨끗해 보이는 '죽은 여자 아이'가 오랜 시간동안 마음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그리고 나에게 가장 좋아하는 0순위의 작품이 되었다.
 2013년, 나는 신기하고 우연스럽게 〈I GO〉에 출연하게 되었다. 가장 좋아하는 작품에 무용수가 된다는 것이 학생의 신분으로서 나에게 얼마나 벅찬 감사와 행운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부상과 '죽은 여자 아이'에 대한 캐릭터 소화에 대한 부담으로 인해 개인적으로는 만족하지 못한 공연이었다.
 하지만 8월 29일, 탄츠메세를 통해 독일 뒤셀도르프 Kleines Haus에서 Goblin Party의 〈I GO〉가 다시 한 번 무대에 올랐다. 나에게는 꿈만 같은 일이었다. 이번 탄츠메세 공연에서는 개인적으로 캐릭터에 대한 나의 고찰과 무대에서 이루어지는 호흡과 움직임이 비로소 일치가 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예를 들어 나는 본 작품의 죽은 여자 아이는 죽었지만 살아있는 착각을 길게 하고 있는 천진난만한 아이라 생각하곤 했었다. 표현해야하는 '나'만큼은 절대 이 아이를 짠하다거나, 슬프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두 명의 장례 지도사(?) 같은 남자 무용수들과의 간접적 그리고 직접적인 컨텍에 있어서 죽음과 삶을 고무줄놀이 하듯. 담갔다가도 금방 빠지는 호흡이 움직임에 있어 필요하다는 것도 배웠다. 하면 할수록 알 것 같은 참 재미있는 〈I GO〉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에서 가장 사랑하는 작품으로 한층 물들었고 더욱 소중해졌다.




 탄츠메세의 마지막 밤, 탄츠하우스 메인스테이지에서 한국의 Bereisht 무용단의 공연이 끝난 후 본 공연의 연주자들이 극장 로비로 나와 한층 분위기를 달구었다. 연주자들은 장구와 꽹과리를 치고, 북을 울리며 한국의 소리를 퍼트렸다. 각 나라의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흥에 겨워 춤을 추고, 대화와 웃음소리로 메어진 극장 속에서 나는 한국인으로, 한국의 무용수로 이 축제에 와있다는 것이 너무나 감사했다.
 또한 〈I GO〉의 몇몇 관객들에게 다는 알아듣지 못하는 영어였지만, 그들의 감성과 감사를 충분히 전달받았다. 다시 한 번 탄츠메세에 온다면 나는 누구와 함께, 누구로서, 무엇으로 여기에 와있을까? 가지고 있던 꿈을 실현시켜주고, 가지고 있지 않은 미래를 꿈꾸게 한 독일에 있던 시간과 사람들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Danke Schon! Toi Toi Toi !

2014. 10.
*춤웹진